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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비드에 布告함

"나이 들어 더 귀한 만남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왜 이리 그리울까 보고 싶을까 애타는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답답한 우리 가슴 눈물 고인다.서로 보면 즐거운 행복이건만,  우한폐렴 창궐하니 방콕이라네짝지도 동무들도 보고 싶건만 애달피 불러 봐도 만날 수 없네 떠나거라 사라져라 우한 폐렴아."   삼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코로나 네가 처음 왔을 때 난 부드럽게 노래로 널 다독이며 물러가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너는 우한 폐렴이란 이름마저 코비드라는 이름으로 슬쩍 바꿔 타고 번지기 시작한지도 삼년이 넘어갔다. 그동안 나는 어찌저찌 운 좋게 잘 넘어갔는데,드디어 너는 마수를 나와 짝지에게도 뻗었다.  며칠 전 스리슬쩍 내 허락도 없이 내도 모르게 내 鼻喉로 스며들어 내 몸에 터 억 자리 ..

「 나비 앞 장 세우고 」

갈 곳이 있어 내다본 창밖은 어제 내린 흰 눈이 굳어 반질반질 潤이 나고 오고가는 이들 걸음걸이가 조심스런 모양새다. 팔순을 바라보는 耆耉의 몸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겠다. 어느 시인은 '사월은 천치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고, 또 누구는 이리 읊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내 보기에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 같이 평범하고 속된 사람은 간절히 봄을 기다린다. 옷을 서너 겹 입지 않아 가뿐해 좋고, 주제도 모르고 우쭐대는 사람도, 짧은 見識으로 남을 재단하는 사람도, 물욕에 사람을 기만하고, 사리분별도 못하는 가식적인 인간을 피해서 순수한 자연을 찾아 길 떠날 수 있는 나비 앞장세우고 오는 봄을 기다린다. 죽어 저승 갈 때 평생을 안주하며 부리던 몸뚱이조차도 챙겨가지 못하는..

《 꽃가루(花粉)》

서울 가까운 아차산 동쪽자락에 구리시 아천동이라는 오순도순 예쁜 작은 마을을 감싼 산자락에 배와 포도와 복숭아를 심은 꽤 큰 과수원을 일궈 조상대대로 이어 살아온 친구가 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육남매가 분할 받은 과수원을 서울사람들에게 하나 둘 팔고 서울로 떠나고 그 자리에 서울사람들이 집을 짓고 들어와 제법 큰 마을이 되었다. 친구는 몇 해 전부터 물려받은 포도밭자리에 소일 삼아 벌을 치는데 몇 해째 가을이 저물 무렵이면 꿀이나 화분을 들고 찾아준다. 꿀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는데, 화분은 어떻게 먹는 줄 몰라 재작년에 준 것도 그대로 있는데 올해도 가져다주었으니 고민이 생겼다. 이걸 어떻게 먹지? 생각하다가 찻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보니 표현 못할 신비로운 온갖 향기로움이 마..

「신라 진흥왕 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

《북한산 비봉 北漢山 碑峰》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는 삼국시대 신라 제 24대 진흥왕(진흥왕16년 : 555년)의 영토 확장과 순수의 목적,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진흥왕은 불교의 이상적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기를 원하였으며 불과 수 년 만에 한반도 중부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에는 스스로 미륵의 화신이 되고자 한 젊은 화랑들의 헌신적인 희생도 한 몫 하였습니다. 568년 진흥왕은 太王을 자부하며 변경까지 수레를 몰아서 나라 안을 살피는 순수巡狩의 길에 올랐습니다. 북한산을 거쳐 8월에는 함경도 함흥에 있는 황초령黃草嶺에 이르러 비문을 남겨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에 즈음하여》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신라..

「 경주부윤 조기복 묘비 (추사 김정희의 隸書)」

파주시 광탄면 고려시대 국립숙박시설이었던 혜음원址를 찾아 보기위해 버스에서 내려 길 들어섰는데 혜음원지 방문자센터 마당 맞은편 우측 산자락에 "추사 김정희 친필 조기복 묘표"라고 쓴 자줏빛 관광 고적 알림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걸 어찌 그냥 지나치랴 기꺼이 발길을 옮겨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묘 주인공보다 추사의 글씨로 인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조기복(趙基復 : 英祖49年(1773년)~憲宗5年(1839년)은 本貫은 林川, 字는 백초(伯初)이며 조선 후기 문신이다. 10대에 걸쳐 벼슬을 지낸 가문으로 刑曹判書를 지낸 高祖 효정공(孝貞公)오재(寤齋) 趙正萬, 水原都護府使를 歷任한 曾祖 趙明奎, 郡守를 지낸 祖父 趙德浩, 通德郞을 역임하고 司僕寺正에 追贈된 할아버지(生父의 父)趙德洞, 아버지는 통..

《산딸기 꽃과 나비 (山茥花와蝴蝶) 》

운길산 가는 산자락에 산딸기덩굴이 온 둔덕을 덮고 연분홍빛 꽃을 피웠네. 5월이면 빨간 산딸기(山茥)요기조기 열리겠지- 꽃을 보노라니 소월 김정식 님의 '님과 벗'이 떠오른다.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 향기로운 때를 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어라 나는 마시리" 그러고 보니 님도 벗도 다 그립다. 시골길가에서 산딸기 꽃을 보네 고운 나비 하나 찾아와 꽃잎에 앉네. 고운 나비 고운 꽃은 어디에서 왔을까 신비로운 이 세상 봄바람 타고 왔겠지 - 마음속 꽃은 어디에 있을까 이 나이 되도록 찾지 못했네. 오, 흔치 않은 하얀 민들레꽃 귀한 너를 보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너를 보니 기쁨이 샘솟고 마음 즐겁다. 옛 세조임금 시절의 선비 彦甫 생각도 나는구나! 그 ..

「한글 차 사발(茶碗)」

임진왜란 당시 일본 하기 지방으로 끌려간 한 도공(沙器匠)이 사발을 빗어 그 겉면에 먹(墨) 으로 한글로 시를 쓰고 유약을 발라 구워낸 그릇이다. "개야 짖지 마라.밤 사람이 모두 도둑인가?조목지 호고려 님이 계신 곳에 다녀올 것이다. 그 개도 호고려의 개로다. 듣고 잠잠 하는구나." *조목지 : 인명 또는 지명으로 사료됨.호고려(胡高麗) :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을 현지 일본인이 부르던 호칭. "되고려사람· 오랑캐 고려사람"의 뜻이었으나 어느 사이에 이들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음. (개야 짖지 마라. 밤 사람이 모두 도둑인가?) (조목지 호고려 님이 계신 곳에 다녀올 것이다. 그 )  ( 개도 호고려의 개로다. 듣고 잠잠 하는구나)   일본(17~18世紀) 萩(はき)地方 / (후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