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까운 아차산 동쪽자락에 구리시 아천동이라는 오순도순 예쁜 작은 마을을 감싼 산자락에 배와 포도와 복숭아를 심은 꽤 큰 과수원을 일궈 조상대대로 이어 살아온 친구가 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육남매가 분할 받은 과수원을 서울사람들에게 하나 둘 팔고 서울로 떠나고 그 자리에 서울사람들이 집을 짓고 들어와 제법 큰 마을이 되었다.
친구는 몇 해 전부터 물려받은 포도밭자리에 소일 삼아 벌을 치는데 몇 해째 가을이 저물 무렵이면 꿀이나 화분을 들고 찾아준다. 꿀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는데, 화분은 어떻게 먹는 줄 몰라 재작년에 준 것도 그대로 있는데 올해도 가져다주었으니 고민이 생겼다.
이걸 어떻게 먹지? 생각하다가 찻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보니 표현 못할 신비로운 온갖 향기로움이 마치 비누물방처럼 부풀어 올라 팡팡 터지듯 입안을 가득 채운다. 순간 번쩍 드는 생각하나 있다.
요즘 들어 자극성 음식에 약한 위를 달래기 위해 아침마다 귀리오트밀을 더운 물에 불려 먹는데 그 맛이 밋밋 심심했다 불린 귀리오트밀에 화분을 찻숟가락으로 하나 넣어 먹어보니, 이게 웬일인가! 눈이 번쩍 트인다. 맛없던 귀리오트밀이 입맛을 당긴다. 아침이면 썩 내키지 않던 귀리오트밀이 이제는 아침 오기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되었다.
(10년 전 2012년 6월28일 오후 친구의 한옥 뒤 복숭아 밭 자리에서 담은 아천동 앞 마을)
(꽃가루 花粉)
( 아천동 친구 생가(2011년 4월16일 12시54분 촬영), 봉숭아밭, 포도밭, 배밭이 둘려졌던 이 한옥은 봄이면 바깥채 사랑방에 앉아 문을 열면 복사꽃, 배꽃 향기가 랑뱅 아르페지 향수를 능가하는 향긋함으로 스며들고 강건너 천호동이 바라보이던 무릉도원 같던 집이었다.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최은희)" 촬영도 했었던 집으로 지금은 친구의 큰 형님으로부터 넘겨받은 막내아우가 산다.)
2022년 12월 19일, - 鄕香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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