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伽耶)/금관가야(金官伽耶) 3

「금관가야 왕의 무덤 / 金冠伽耶의 王陵」

〈김해 대성동유적 / 金海 大成洞遺蹟〉洛東江 河口에 위치한 金海는 三國史記나 三國遺事에 전하는 金官國(《三國志》魏書 韓傳의狗耶韓國)의 古地로 알려져 왔다. 前期伽耶諸國의 盟主國이기도 하였던 이 금관가야국의 실체가 김해 대성동유적의 발굴조사로 그 수수께끼의 베일을 벗게 되었다. 대성동유적은 가야국의 시조인 首露가 降臨하였다고 傳하는 龜旨峯과 그가 묻혔다고 傳하는 首露王陵 사이의 평지에 형성된 나즈막한 구릉위에 위치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39기의 무덤중 당시 금관가야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은 3세기후반부터 5세기전엽에 걸쳐 만들어진 大形의 木槨墓들이다.  이들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통해 보면 당시의 금관국은 바다를 이용하여 중국과 일본 등과의 交易을 주도하면서 그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3세기 후반..

금관가야(金官加耶)

금관가야(金官加耶)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始祖 首露王이 서기 42년에 나라를 세운 후 532년 九衡王이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10대 490년 간 존속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역사책에서는 加耶 · 南加耶 · 金官國 · 駕洛國 · 南加羅 등으로도 나타납니다.금관가야는 김해지역에 있던 弁韓의 구야국이 성장.발전하여 서기300년 무렵 성립된 나라로 鐵을 매개로한 대외교역권을 장악하면서 前期加耶를 주도하게 됩니다. 금관가야의 영역은 손잡이가 달린 화로형토기와 아가리가 꺾인 굽다리접시의 분포를 통해 볼 때, 김해를 비롯하여 동쪽으로 부산지역. 서쪽으로는 창원 동읍. 진영일대로 추정됩니다. 특히 대성동 유적은 가야국의 시조(始祖) 수로(首露)가 降臨하였다고 전하는 龜旨峯과 그가 묻혔다는 傳 首露王陵 사이의..

『金冠伽倻』 1代 首露王 재위49~199 )~10代 구형왕(仇衡王)?~ ? 재

《1代 首露王 (?~199 )》(재위 49~199)일명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이다. 탄생과 치적에 관하여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직도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날 하늘의 명을 받아 9간(九干:族長) 이하 수백명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늘에 제사지내고 춤추고 노래하자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금빛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의 알이 여섯개 있었다.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