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성동유적 / 金海 大成洞遺蹟〉
洛東江 河口에 위치한 金海는 三國史記나 三國遺事에 전하는 金官國(《三國志》魏書 韓傳의狗耶韓國)의 古地로 알려져 왔다. 前期伽耶諸國의 盟主國이기도 하였던 이 금관가야국의 실체가 김해 대성동유적의 발굴조사로 그 수수께끼의 베일을 벗게 되었다.
대성동유적은 가야국의 시조인 首露가 降臨하였다고 傳하는 龜旨峯과 그가 묻혔다고 傳하는 首露王陵 사이의 평지에 형성된 나즈막한 구릉위에 위치한다. 지금까지 조사된 39기의 무덤중 당시 금관가야의 영화를 엿볼 수 있는 것은 3세기후반부터 5세기전엽에 걸쳐 만들어진 大形의 木槨墓들이다.
이들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을 통해 보면 당시의 금관국은 바다를 이용하여 중국과 일본 등과의 交易을 주도하면서 그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3세기 후반이후 새로이 北方系文物을 수용하면서 강력한 軍事的·政治的 王權國家로 발전해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이때부터 이곳 대성동의 支配者級 무덤에서 甲胄나 馬具類가 많이 출토되고 반면에 그때까지 지배자의 宗敎的 權威를 상징해오던 傳世中國製 거울 등이 폐기되어진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또한 규모가 큰 목곽묘들에서는 다수의 殉葬人骨들이 출토되어 階級의 分化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금관국의 영화도 5세기전엽이후 급격히 쇠퇴하여 諸伽耶의 盟主的 位置를 상실하고 마침내 532년에 금관국의 마지막 왕 仇亥(仇衡)가 신라에 投降함으로써 역사적으로도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金海 大成洞 39號墳 全景)
( 金海 大成洞 39號墳 板甲 出土狀態)
(金海 大成洞 7號墳 板甲出土 狀態)
(김해 대성동 3호분 札甲 出土狀態)
〈筒形銅器〉
透窓이 있는 圓筒속에 靑銅 혹은 쇠(鐵)로 된 棒이나 官玉따위가 들어 있고 아래쪽 구멍내에 나무 덩어리도 남아 있어 장대에 꽂아 흔들면 소리가 나게한 威儀具로 보인다. 그러나 창과 일직선상에서 출토된 예도 있어 창의 물미로 보는 견해도 있다. 대성동유적에서는 철검과 같이 생긴 물미도 함께 출토되었다.
4세기대와 5세기전반대의 고분에서많이 출토되는 이들 유물은 종래에는 일본製로 알려져 왔으나, 국내에서도 출토 例가 증가하고 있고 대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16점을 포함하여 傳 김해로 알려진 것만도 30여점을 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들 통형동기가 금관국을 중심으로 하여 만들어진 휘귀품으로서 일본에까지 전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이밖에도 東萊 福泉洞遺蹟과 함안 사도리유적에서 출토된 예도 있다.
(통형동기·물미) 김해 대성동 1호분
(筒形銅器)김해 대성동 각各 유구遺具
(여러가지 장신구/裝身具 各種)김해 대성동 각 유구
대성동에서 鐵鏃이 만들어지는 4세기대에는 여전히 骨鏃도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상어이빨로 된 鏃은 실용품이라기보다는 장식용으로 사용되어졌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상어이빨로 된 촉과 2호분 출토 石鏃의 아랫부분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여기에 연결되었던 화살대를 이어매기 위한 고달도 함께 출토되었다. 이러한 고달은 일본의 고분에서도 銅鏃에 연결되어 출토된 예가 있다.
(돌촉·상어이빨 촉·고달) 김해 대성동2호분
멧돼지의 길게 삐쳐 나온 大齒를 뽑아 그 속을 파고 2개 1組로 서로 연결하여 팔찌로 사용하였다.
(돼지이빨로 만든 팔찌) 대성동 2호분
〈北方系文物의 埋納〉
김해 大成洞遺蹟에서는 帶鉤와 銅鍑과 같은 북방유목민족에 기원을 둔 유물이 출토되어 주목을 끈다.
帶鉤는 동물형의 飾板에 고리가 붙은 것으로 동서의 기마민족들 간에 널리 애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삼국시대부터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虎形과 馬形의 독특한 형식의 것이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었다.
(청동제호형대구/靑銅製虎形帶鉤) 청동으로 호랑이모양으로 만든 허리띠장식(Buckle)
銅鍑은 유목기마민족들의 휴대용 취사용기임과 동시에 그들의 제사나 연회, 의식 등에도 긴요히 사용되던 것으로 스키타이에 그 기원이 있으나 각 지역마다 형태에 차이가 있다. 대성동에서 출토된 동복은 器形이 細長하고 把手의 斷面이 얇은 소위 內蒙古의 오르도스형 동복으로서 중국銅器文化와의 접촉이 비교적 쉬웠던 내·외몽고, 중국 동북지방 등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우리나라에서는 낙랑(故地)에서 출토된 예도 알려지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把手(손잡이)의 부착형태가 다르나 그 기형의 세장한 점이 대성동 출토 동복과 유사하다. 평양의 舊東大院里에서 韓國式銅劍 등과 함께 출토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동복/銅鍑) 김해 대성동 29호분
위에 帶鉤와 銅鍑은 오랜 기간의 傳世를 거쳐 埋納되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이밖에도 대성동유적에서는 통나무를 쌓아 만든 북방계 요소가 강한 木槨墓도 조사되어 주목을 끈다.
(동복/銅鍑) 평양 동대원리
(대성동 7호분 목곽 범위와 주혈) 柱穴 : 기둥구멍
〈大成洞遺蹟에서 출토된 中國製 거울〉
대성동유적에서는 모두 3점의 중국제 거울이 출토되었다. 23號墳에서 출토된 方格規矩四神鏡과 14호분에서 나온 內行花文鏡(片) 그리고 2호분의 銅鏡이 그것인데, 모두 後漢代 銅鏡이다. 이들 거울은 당시에 있어서 종교적인 귄위나 지배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특수한 寶器로서, 狗耶國의 지배자들이 後漢代에 중국과의 교역을 통해 입수하여 오랜 기간동안 傳世하여 오다가 4세기대에 와서 무덤에 埋納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거울이 지닌 성격이 이때에 와서 폐기되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그 사회의 성격이 종교적 권위에 의한 통치에서 정치적 또는 군사적 권위에 의한 통치로 바꾸어진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14호분의 출토의 破鏡은 부러진 면을 갈고 한쪽에 끈 등으로 꿰어 달 수 있게 구멍을 내고 있어 펜단트로 재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어 당시에 이들 거울이 얼마나 소중히 다루어졌던가를 잘 알려준다.
방격규구사신경(方格規矩四神鏡) 金海 大成洞23號墳
깨진 銅鏡 조각으로 칼 剝器 등 生活利器로 활용했을 만큼 당시 쇠붙이는 귀한 물건이었을 것이다. 위쪽에 손잡이나 걸이用 끈을 꿰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내행화문파경 / 內行花文鏡(破鏡)김해 대성동14호분
〈大成洞遺蹟의 日本製遺物〉
대성동유적에서는 바다를 이용한 일본과의 교섭을 알려주는 일본제 유물도 출토되었다. 巴形銅器, 碧玉製石鏃, 紡錘車形石製品과 石製品 등이 그것이다. 파형동기는 2호분에서 1점, 13호분에서 6점, 23호분에서 1個體分이 출토되었는데, 일본 오사카(大阪)의 黃金塚古墳의 출토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죽제 방패의 장식으로 알려져 있다. 대성동 13호분에서도 파형동기 3개가 1組로 된 2개체분의 가죽제 방패가 출토되었다. 13호, 23호분에서 출토된 파형동기는 대성동 2호분이나 日本 古墳時代에 출토되는 것들이 대개 직경 7cm를 전후한 것인데 반해 직경이 12cm나 되는 超大形品으로서 일본에서도 그 예가 드물다. 한편 이들 파형동기를 자세히 보면 날개를 제외한 중앙부의 圓錐形部分과 그속에 가로질러진 軸 등은 형태, 제작방법 등이 우리나라 原三國時大의 遺品으로 전해지는 傳 金海 출토 銅泡와 꼭같아 일본 야요이(彌生)시대 후기부터 출현하는 파형동기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가 여기서 잡혀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진다.
어쨋든 이들 파형동기 및 碧玉製의 石製品들은 일본의 前期古墳에서는 寶器와 같은 성격으로 매납되어지고는 하는데, 13號墳 출토 異形石製品과 같은 것은 아직 일본에서의 출토 예가 알려지지 않고는 있으나 현재로서의 이들 유물은 일본제로 보아야할 것이다. 이러한 寶器의 성격을 지닌일본제 유물들이 대성동유적에 매납되어 있는 것은 자국의 철생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당시의 일본이 가야의 철을 입수하기 위하여 그 代易品으로 가져와 금관국의 지배층들인 대성동유적의 주인공들에게 바쳤던 것으로 보여진다.
〈巴形銅器 · 漆器방패 出土狀態〉 金海 大成洞 13號墳
파형동기는 어떤 표면에 문양으로 꾸미 듯이 방패 前面에 붙인 꾸밈새이다.
巴形銅器(金海 大成洞 13號墳)
巴形銅器(金海 大成洞 2號墳)
雲珠形銅器 (김해 대성동 2호분)
銅泡 (傳 金海) ↕
〈金海 大成洞 13號墳 發掘調査 全景〉
〈碧玉製 石鏃〉 김해 대성동 13호분 出土
〈金海 大成洞13號墳 石鏃 出土狀態〉
〈紡錘車形石製品〉 金海 大成洞 18號墳
〈異形石製品〉 김해 대성동13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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