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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高句麗 · 百濟 土器의 文樣

고구려의 토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가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여 토기의 器種과 文樣을 함께 살펴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 토기는 손잡이가 두 개 혹은 네 개 달린 단지나 바리, 병, 시루 등 대부분 납작 바닥의 토기가 많고 소성온도가 비교적 낮은 편이다. 문양에 있어서도 어깨나 몸통 부위에 간단한 횡선이 돌려지거나 단순한 파상문과 능형문 · 승문 등이 시문 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무문인 경우가 많고 흑색이나 회색 · 갈색 등으로 마연된 토기가 있다. 그리고 단지나 병 등에 시문된 파상문은 신라나 가야의 그것과 달리 대부분 반원을 연접시킨 형태인데, 이는 부분적이기도 하지만 백제토기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또 중국의 영향으로 황갈색의 유약을 바른 토기가 제작되기도 하는데 ..

문양(文樣)

토기에 문양을 넣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토기를 제작 해 온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된 일이다. 토기에 나타나는 문양은 토기를 제작하는 방법과 과정에 따른 흔적으로 남겨지는 경우와 장식이나 실용적 기능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있다. 문양을 시문하는 방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주로 점토를 덧붙이거나 도구를 이용한 새기기, 깍기, 문지르기, 두드리거나 눌러찍기 등이 있다. 이 밖에도 토기의 표면에 안료를 바르고 문질러서 채색된 문양을 나타내기도 한다.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토기제작 기술이 도입되면서 등장하는 원삼국시대의 와질토기에는 이전의 무문토기보다 태토의 밀도를 치밀하게 하기 위해 토기벽을 두들겨 생긴 승문(繩文), 격자문, 평행문 등의 이른바 타날문이 가장 일반적인 문양으로..

4. 장식토우(裝飾土偶)

장식토우는 신라토기에서 가장 많이 보이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신라에 복속되거나 영향 아래에 있던 낙동강 東岸에서 약간의 예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토기에 장식적인 토우를 붙이는 전통은 신라에서 발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뿔잔이나 상형토기가 같은 분포권을 나타내고 있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한편 신라토기에서도 장식토우가 붙은 토기는 대체로 6세기경의 토기에서 많이 보이는 데, 이러한 현상은 三國史記에 지증왕(智證王)이 즉위 3년(502년)에 달려묻기(殉葬)를 금지한 기록이나 이 후에 보다 활발해진 영토의 확장과 같은 시대적 배경에 연유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된다. 신라의 장식토우는 그 형태가 매우 간략하고 소박하지만, 필요한 경우 性器와 같이 기원하고자 하는 목적과 관련한 부분은 과..

3. 우리나라의 토우

우리나라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토우가 만들어졌지만 수량은 많지 않으며, 양양 오산리유적((襄陽郡 巽陽面 鰲山里遺跡)에서 출토된 사람얼굴모양과 울산 신암리유적의 말, 욕지도 조개더미유적의 돼지가 대표적이다. 이와 유사한 의미의 유물로는 뼈나 뿔 그리고 조개껍질과 같은 재료로 만든 사람모양이나 사람얼굴모양 등의 것이 있는데 웅기 서포항유적과 부산 동삼동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토우를 말할 때는 수량도 많고 형태도 다양하며, 가장 활발하게 제작된 삼국시대 특히 가야와 신라의 유물을 일컷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려시대의 토우로 전하는 것은 거의 없으며, 조선시대에는 도자기로 조그맣게 만든 인물과 동물이 무덤에 넣어졌는데 이것을 흔히 명기(明器)라 부른다. (경주 용강동 돌방무덤의 토용)

장식토기(裝飾土器) (토우장식토기를 중심으로)

1. 장식토기와 토우(裝飾土器와 土偶) 삼국시대의 토기는 나라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각종 기하학적 무늬나 인물이나 동물의 구체적 모습을 새기거나 만들어 붙여서 표면을 장식한 것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삼국시대의 토기 중에서도 특히 신라와 가야의 토기애서 많이 보이며, 이외에 동물이나 인물의 형태를 작게 만들어 붙이거나 손잡이 등을 동물의 모습으로 만든 토기도 있다. 이와 같이 토기의 표면에 작은 모습의 인물이나 동물을 만들어 붙인 것들을 토우장식토기라 부르며, 손잡이 등을 동물 모습으로 만든 것도 그 아류에 속하므로 이들을 모두 합해 장식토기로 분류할 수도 있다. 토우는 문자 그대로 흙으로 만든 人形을 뜻하는 것으로 넓은 의미로는 사람의 모습 뿐 아니라 여러 가지의 동물이나 생활용기, 집 등의 형태를..

가야 토기(伽倻 土器)

가야 토기들의 이모저모 굽다리접시(外反口緣高杯) 가야 4세기 김해 예안리11호, 높이 11.0cm, 부산대학교 . 두귀항아리(兩耳附壺) 가야 4세기김해 대성동 10호, 높이 29.0cm, 慶星大學校 굽다리접시(高杯) 가야 4세기 함안 황사리 30 · 29호 높이(오른쪽) 15.5cm , 慶尙大學校 굽다리접시(高杯) 가야 4세기 함안 황사리 26 · 24호 높이(오른쪽) 14.0cm , 昌原大學校 그릇받침(器臺) 가야 4세기 부산 복천동 60호 높이 40.2cm , 釜山大學校 두귀항아리(兩耳附長頸壺) 가야 4세기 부산 복천동 60호 높이 19.1cm , 釜山大學校 이형토기(異形土器) 가야 4-5세기 합천 저포B-6 · 출토지모름, 높이(왼쪽) 13.4cm , 昌原大學校 ·慶..

▣ 가야(伽耶) 2026.08.23

가야 토기(伽倻土器)2.

고령은 大伽倻의 故址로 이 지역의 토기는 有蓋長頸壺와 高杯形器臺, 上下一列2段透窓高杯, 蓋杯 등이 주요 기종이다. 고령식 토기는 대가야 首長層의 집단묘역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하여 후기에는 합천, 함양, 거창, 산청, 진주 등 영남지방 서북부지역과 소백산맥을 넘어 남원지방까지 분포하며 대가야의 멸망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신라후기 양식토기로 대체된다. 이와 같은 고령식 토기의 상대순서와 종말 연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으나 절대연대 비정에는 다소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현재까지 출토된 고령식 토기의 상한 연대를 비정할 수 있는 자료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렇지만 또 하나의 이유로는 목곽묘에 대한 조사 예가 부족한 것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고령 쾌빈동유적의..

▣ 가야(伽耶) 2026.08.22

가야 토기 (伽倻土器) 1.

가야 토기는 古式陶質土器의 양식을 계승 · 발전하지만, 각 지역별 특색이 뚜렷하다. 이것은 가야의 정치적 배경과 관련된 것으로, 현 단계에서 가야 토기를 지역별로 분류하여 대체로 아라가야의 故址였던 함안, 대가야의 고령 등 가야 소국의 중심지에 따라 여러 지역 양식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크게는 이른 시기부터 신라의 정치적 영향을 받거나 예속된 지역인 김해, 창녕, 대구 등 낙동강 동안 지역과 함안, 고령 등의 낙동강 서안 지역의 토기가 양식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낙동강 서안 양식이 전형적인 가야 토기라고 할 수 있으며, 대표적인 특징은 굽다리접시의 경우 투창이 직렬로 배치된 나팔형 굽다리와 목단 지는 목과 어깨 부분이 둥글게 연결되고 목에만 밀집파상문이 시문 된 점 등이다...

▣ 가야(伽耶) 2026.08.17

고식도질토기(古式陶質土器)

2. 고식도질토기(古式陶質土器)古式陶質土器의 기형에는 兩耳附短頸壺를 비록 하여 小形短頸壺, 高杯, 直口壺 , 爐形土器, 筒形器臺, 把手附盌, 臺附小壺, 把手附臺附小壺, 廣口小壺 등이 있고 年代的으로는 고식도질토기의 발생시점인 3세기말 4세기초부터 신라 토기와 가야 토기로 분화되기까지의 약 100년 동안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소위 고식도질토기의 발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현재까지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중국 越州窯나 전국시대 토기 또는 灰釉陶器 등 외부영향에 의한 발생설과 자체 발생설이 있다. 입큰단지와 그릇받침(廣口小壺 · 器臺) 신라 4세기 경주 월성로 가6호 높이 21.0cm 경주박물관 항아리(短頸壺) 신라 4세기 경주 월성로 가12호 높이(오른쪽) 12.4cm 경주..

신라 토기(新羅土器)

3. 신라 토기(新羅 土器) 신라 토기는 그 상대적인 변천과정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의견의 접근을 보고 있으나 그 절대 연대에 대해서는 연구자에 따라 약 100년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신라토기 발전과정의 특징을 단계적으로 간단히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⒈ 제1기 신라식 토기의 특징인 상하 투창이 엇갈리게 뚫린 굽다리접시가 출현한 단계로 월성로 가-13호분에서 이러한 신라식 고배와 긴목단지 등이 출토된다. 긴목단지는 목이 직선상으로 벌어지고 돌대에 의해 2-3단으로 구분되며, 어깨에도 돌선이 돌아가는 등 신라식의 특징이 나타나지만 이후 단계에서 보이는 밀집된 파상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긴목단지) 2. 제2기 이 단계가 되면 고배의 배신은 얕아지고 기형이 직선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