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520

正東津에서..

평화누리길 13개 코스, 전 구간 210.8km 종주에 이어 경기옛길 6大路 (경흥길, 영남길, 의주길, 삼남길, 평해길, 강화길) 모두 47개 구간, 총538.3km를 종주하고 바로 이어 조선 역대 왕릉 27곳과 追尊 왕릉 및 왕비 릉을 모두 답사한 후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족저근막이 발병이 나서 100일 넘도록 집과 병원을 오가던 중 불쑥 떠오른 생각 하나, 걸어서 생긴 병 걸어서 고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딱딱한 길을 많이 걸어서 생긴 병이니 부드럽게 걸어서 고쳐야 하겠다 싶다. 바닷가 뜨거운 모래밭을 걷다가 발이 뜨거워지면 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가 다시 뜨거운 모래밭을 찜질하듯 부드럽게 걷기를 번갈아 반복하면 낫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가장 가깝게 여겨져 달려간 을왕..

「신라 진흥왕 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

《북한산 비봉 北漢山 碑峰》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는 삼국시대 신라 제 24대 진흥왕(진흥왕16년 : 555년)의 영토 확장과 순수의 목적,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진흥왕은 불교의 이상적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기를 원하였으며 불과 수 년 만에 한반도 중부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에는 스스로 미륵의 화신이 되고자 한 젊은 화랑들의 헌신적인 희생도 한 몫 하였습니다. 568년 진흥왕은 太王을 자부하며 변경까지 수레를 몰아서 나라 안을 살피는 순수巡狩의 길에 올랐습니다. 북한산을 거쳐 8월에는 함경도 함흥에 있는 황초령黃草嶺에 이르러 비문을 남겨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에 즈음하여》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신라..

「 경주부윤 조기복 묘비 (추사 김정희의 隸書)」

파주시 광탄면 고려시대 국립숙박시설이었던 혜음원址를 찾아 보기위해 버스에서 내려 길 들어섰는데 혜음원지 방문자센터 마당 맞은편 우측 산자락에 "추사 김정희 친필 조기복 묘표"라고 쓴 자줏빛 관광 고적 알림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걸 어찌 그냥 지나치랴 기꺼이 발길을 옮겨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묘 주인공보다 추사의 글씨로 인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조기복(趙基復 : 英祖49年(1773년)~憲宗5年(1839년)은 本貫은 林川, 字는 백초(伯初)이며 조선 후기 문신이다. 10대에 걸쳐 벼슬을 지낸 가문으로 刑曹判書를 지낸 高祖 효정공(孝貞公)오재(寤齋) 趙正萬, 水原都護府使를 歷任한 曾祖 趙明奎, 郡守를 지낸 祖父 趙德浩, 通德郞을 역임하고 司僕寺正에 追贈된 할아버지(生父의 父)趙德洞, 아버지는 통..

「혜음원지 (파주시) 惠蔭院址 (坡州市)」

〈혜음원지(惠蔭院址)〉 우암산 비호봉(328.6m)의 서남쪽 산줄기의 고갯마루인 혜음령에서 북쪽으로 약 1.2km지점에 위치한 혜음원지는 우암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남쪽부분에 의지하여 터를 잡았기 때문에 입구인 남쪽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습니다. 혜음원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다만 「東文選」 과 「新增東國與地勝覽」 동의문헌에서 기록으로만 확인되어오다가 1999년 동네주민의 제보를 접한 동국대학교학술조사단에 의해 「惠蔭院」이라는 돋음 글자가 새겨져 있는 암막새기와가 수습됨으로써 처음으로 그 위치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위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혜음원지의 창건 배경 및 그 과정, 창건과 운영의 주체, 왕실과의 관계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혜음원은 개경(개성)과 남경..

「 金浦 章陵」

《金浦 章陵》 김포 장릉은 김포시청 뒷산(장릉산150m)에 위치합니다. 장릉산(章陵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북성산(北城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김포군읍지』에서는 장릉산은 김포현의 鎭山에 해당하는 북성산이라고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양주군 군장리에 있던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 이부(定遠君 李琈))의 묘인 흥경원(興慶園)을 북성산으로 옮기고(移葬) 묘호(廟號)를 장릉(章陵)으로 함에 따라 북성산 이름이 자연스럽게 장릉산으로 불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장릉 매표소) 장릉에서 능침으로 가기 위해 蓮池로 가는 길 寢下荒池一任他 十丁功役兩旬過 非要遠客遊觀美 是爲齋官闕漏多 石磴霾雲籠小嶼 金塘霽月印淸波 先王遺澤民來子 展矣宗邦福不那 침하황지일임타 십정공역양순과 비요원객유관미 시위재관궐루다 석등매운롱소서 ..

「통진 향교(通津鄕校)」

홍살문(紅箭門)〉 홍살문은 붉은색 주칠(朱漆)을 하는데서 홍살문(紅箭門)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붉은색은 벽사(辟邪)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풍속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 먹거나 대문에 뿌리는 거나 아이 돌(돐)떡으로 수수팥떡을 만들어 먹는 일 등은 붉은색을 귀신이 꺼리는 색이라 하여 악귀를 물리치고 집안의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홍살문의 붉은색도 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홍살문 상부 가운데 태극은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의 상태로서 우주 만물 구성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체를 말합니다. 태초에 우주가 생성될 때 태극이 생기고, 이 태극이 둘로 갈려져 하나는 陰이 되고 하나는 陽이 됩니다. 이 음양의 배합으로 하여 천지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변화, ..

《청와대 탐방》

어짐이 일어나 겸양이 남다른 젓가락들이 나의 옛 무대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모두 한 두 곳은 아픔을 담고 있는 몸들이지만 그 아픔 중에서도 일곱 젓가락이 모여 담백한 곰탕으로 기력을 보하고 오늘의 목적지 청음 선생의 옛 집터와 청와대 탐방을 위해 정답고 운치 있는 우리의 친환경적이고 기품있는 아름다운 한옥들이 아늑하게 들어서 있는 서촌 골목길로 발걸음 내디뎠습니다 백악산을 주산으로 그 아래 자리한 天下第一福地에 터를 잡은 漢陽 청와대 앞 광장 칠궁七宮과 궁정동을 거쳐 세검정으로 넘어가는 도로 입구 좌측이 청음 김상헌 선생의 옛 집터이다. 무궁화동산 한 가운데에 있는 쉼터 김상헌 선생의 옛 집터는 무궁화동산이 되었고 그 안쪽 소나무 숲에 소개표석과 청음 선생의 詩碑가 새워져 있다. 청와대 앞 광장 모퉁이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