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百濟時代) 261

百濟歷代王 9代 책계왕(責稽王) ~16代 진사왕(辰斯王)

?∼298(분서왕 1) 백제 제9대 왕으로서 서기286년부터 298년까지 재위에 있었다. 일명 청계(靑稽) 또는 책체(責替)라고도 한다. 고이왕의 맏아들이며, 왕비는 대방왕(帶方王)의 딸 보과(寶菓)이다. 체구가 장대하고 의지가 굳세었다고 한다. 286년(책계왕 1)에 고구려가 대방을 공격하였을 때, 대방왕이 사위인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자 군사를 보내어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이 때문에 고구려와의 사이가 나빠져,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아차성(阿且城: 지금의 서울 광장동 아차산성)과 사성(蛇城: 지금의 서울 풍납동 토성)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298년 한군(漢軍: 낙랑의 군대)과 맥인(貊人: 동예로 추정됨)의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참고문헌) 三..

백제 한성시대미사리유적발굴유물 (百濟漢城時代河南渼沙里發掘遺物)

京畿道 河南市 渼沙洞 일대에 위치한 미사리유적은 1960년 金元龍 先生에 의해 新石器時代의 유적으로 학계에 보고된 이래로 수차에 걸쳐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1979년에는 미사리 섬의 북쪽 일부가 사적26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후 1980년에는 사적지 일대에 대한 긴급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

한성시대유물 3[漢城時代 夢村土城發掘遺物 <器臺,各種土器.鐵器>〕

몽촌토성은 외형상 해발 30~40m 가량의 나지막한 야산처럼 보이는데 그 규모는 南北 길이 730m, 東西 길이 540m 가량이고 평면형태는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 또는 마름모꼴을 하고 있습니다. 토성의 성벽은 기저부의 폭이 30~50m 가량 되고 성벽의 높이는 각 지점별로 차이가 있으나 15~17m 가량 되며, 성벽은..

백제 한성시대 유물 2〔 漢城時代 夢村土城發掘遺物 < 壺 . 甕 . 蓋 > ]

몽촌토성은 외형상 해발 30~40m 가량의 나지막한 야산처럼 보이는데 그 규모는 南北 길이 730m, 東西 길이 540m 가량이고 평면형태는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 또는 마름모꼴을 하고 있습니다. 토성의 성벽은 기저부의 폭이 30~50m 가량 되고 성벽의 높이는 각 지점별로 차이가 있으나 15~17m 가량 되며, 성벽은..

백제 한성시대 유물 1〔 漢城時代 夢村土城發掘遺物 <高杯 . 三足土器>]

몽촌토성은 외형상 해발 30~40m 가량의 나지막한 야산처럼 보이는데 그 규모는 南北 길이 730m, 東西 길이 540m 가량이고 평면형태는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 또는 마름모꼴을 하고 있습니다. 토성의 성벽은 기저부의 폭이 30~50m 가량 되고 성벽의 높이는 각 지점별로 차이가 있으나 15~17m 가량 되며, 성벽은..

백제 도읍지 (百濟 都邑址)

백제문화는 도읍을 몇 차려 옮겨간 도읍의 시기에 따라 3기로 나누는데 고고학 . 미술사에 있어서의 시대구분으로 사용될 뿐 아니라 백제 유적 . 유물의 절대연대 설정에도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그 시기 구분은 서울의 명칭에 따라 한성(漢城)시대(4세기초~475년) . 웅진(熊津)시대(475~538) . 사비(泗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