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변한과 진한은 마한, 낙랑 및 중국, 일본, 북방지역 등 동북 아시아의 전 지역과
교역체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동검을 비록한 청동의기류의 한국식동검문화는 기본적으로 마한의 청동기문화를 계승하였습니다.
고조선과 낙랑에서는 단조철기 기술을 도입하고, 수레부속구 등을 수입하였으며, 세형동검도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중국과는 거울(漢鏡)을 비롯한 일산대꼭지(蘆弓帽), 허리띠장식(帶鉤), 청동방울 등의 사치품이 수입되었는데,
주로 낙랑을 통해서 수입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漢)의 화폐를 비롯하여 붓 등의 서사용구(書寫用具)가 발견되는 점이라든지,
낙랑과의 교역에 중국어가 사용된 문헌 기록에서 보면 해상을 통한 직접 교역도 있었을 것으로 봅니다.
이 외에 오로도스를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과 관련을 지닌 유물도 발견되고 있고,
특히 일본과도 관련을 지닌 유물이 영남 해안 지역에서 다수 발견되고 있어 해상을 통해 광범위하게 교역관계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김해지역은 일본이 낙랑과 교역하는데 있어서 중간 기착지가 되었고, 따라서 대외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외 교역에는 주로 철생산이 그 기반이었는데,
낙랑과 마한, 왜, 동예 등지에 철을 수출하였고, 일상의 교역에서도 철을 화폐처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철기 보급
우리나라의 철기보급은 두 단계로 크게 구분됩니다.
첫째는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중국 전국시대의 燕나라 제철기술이 전래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철기는 鑄造하여 만든 농기구와 공구류가 주류이고, 무기류는 청동기로 만들었습니다.
남부지방에서는 한국식동검문화와 함께 주조철부(鑄造鐵斧)가 세트를 이루면서 출토되는데,
주로 충청도와 전라도에 한정되고 있지요.
둘째는 漢代의 제철기술이 도입되어 철기사용이 보편화되는 시기입니다.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한반도 남부에는 철기의 사용이 급속도로 보편화 되는데,
주로 鍛造의 무기류와 생활 공구류가 주류를 이룹니다.
주조품은 땅을 파는데 사용된 괭이의 일종인 주조철부에만 한정되고 있지요.
청동제 무기류는 철제로 대체됩니다.
철제 공구류는 자체의 효용성 뿐만 아니라 목제농기구의 가공 등에도 사용되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철제 무기의 발달은 전쟁을 통한 사회의 통합과 재편성을 가져 오게되어, 국가 체제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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