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邱 八達洞 90號墓>
팔달동유적의 서쪽 사면에 위치하는 목관묘로 묘광의 형태는 동서로긴 장방형이며 등고선과 직교합니다.
목관과 묘광 사이에는 암반덩어리를 넣어 채우는 초기 목관묘의 양상을 보여줍니다.
유물은 보강토 사이에 놓여 있으나 흙이 내려 앉으면서 목관의 내부로 쓸려 내려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무덤에서는 후기의 특징을 지닌 동모.동과와 함께 철검.철모.판상철부 등이 출토되어 이 지역 초기철기 단계의 특징적인 유물상을 보여줍니다.
大邱 八達洞 90號墓
동모.동과(銅矛.銅戈)大邱 八達洞. 90號墓. 길이 18.1cm(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개.장경호.철모.철검.판상철부(蓋.長頸壺.鐵矛.鐵劍.板狀鐵斧)
大邱 八達洞. 90號墓. 길이21.3cm(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신락'명 원통형동기('臣樂'銘 圓筒形銅器)
경산 임당 高1.7cm(문화재보호재단)
두형토기.장경호(豆形土器.長頸壺)
大邱 八達洞. 高 28.4cm(慶北大學校)
★<慶州 朝陽洞 5號墓>
조양동의 낮은 구릉지대에는 시기를 달리하는 목관묘.목곽묘.옹관묘 등이 조영되어 있습니다.
목관묘는 모두46기가 조사되었는데 묘광의 형태는 장타원형 또는 세장한 장방형입니다.
이들 중 가장 고식이 5호 무덤으로 구덩이에 목관을 안치하고 그 위에 돌과 흙을 썩어 덮은 형태인
적석목관묘에 해당됩니다.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다뉴소문경(多紐素文鏡).소동탁(小銅鐸).철과(鐵戈).철검(鐵劍) 등이
출토되어 무문토기에서 와질토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문화양상을 보여줍니다.
흑도장경호(黑陶長頸壺)
慶州 朝陽洞 5號墓.높이 32.0cm (國立慶州博物館)
철과.동경.소동탁( 鐵戈.銅鏡.小銅鐸)
慶州 朝陽洞 5號墓.길이 23.5cm (國立慶州博物館)
★<昌原 茶戶里 1號墓>
낮은 설상대지에 만들어진 삼한 초기의 목관묘입니다.
통나무로 만들은 구유모양 널과 함께 널 밑 중앙바닥에 설치된 요갱(腰坑)에서
각종 칠기와 철기 청동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유물들이 담긴 바구니가 발견되었습니다.
출토된 유물 중에서 중국 전한대(前漢代)의 성운문경(星雲文鏡)과 오수전(五銖錢), 그리고
각종 칠기 등은 이 지역이 일찍부터 낙랑이나 중국과 교류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유물들로 미루어 이 무덤이 축조된 시기는 기원전 1세기 후반 무렵으로 생각됩니다.
<昌原 茶戶里 1號墓 木棺>
<요갱내 유물출토상황>
칠초동검(漆(초革+肖)銅劍)
昌原 茶戶里 1號墓 높이 길이 60.2cm (國立中央博物館)
철모.동모(鐵矛.銅矛)
昌原 茶戶里 1號墓 높이 길이 55.2cm (國立中央博物館)
동환.소동탁.청동대구(銅環.小銅鐸.靑銅帶鉤)
昌原 茶戶里 1號墓 높이 길이 6.1cm (國立中央博物館)
성운문경(星雲文鏡)
昌原 茶戶里 1號墓 높이 지름12.8cm (國立中央博物館)
방형합.장경호.두형토기(方形盒.長頸壺.豆形土器)
昌原 茶戶里 57號墓 높이 20.7cm (國立中央博物館)
☆<光州 新昌洞 遺蹟>
이 유적은 잔구상(殘丘狀)의 구릉지대와 그 아래의 충적대지(沖積臺地)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소댁지 외에도 초기철기시대부터 삼한시대에 이르는 집자리와 밭이랑 등의 생활유적과 함께
무덤군이 있는 복합유적입니다. 소택지에는 나무로 만든 각종 농구류를 비롯하여 생활 관련 목기류.칠기.토기류.동물뼈.씨앗류.민물패류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어 기원전 1세기경의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이 유적은 삶과 죽음의 공간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 이 지역 초기철기시대의 문화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두형토기 (豆形土器)
光州 新昌洞 높이 30.3cm (國立光州博物館)
시루(甑)
光州 新昌洞 높이 21.7cm (國立光州博物館)
칠초동검(漆(초革+肖)銅劍)발굴 상태
목기(木器)
光州 新昌洞 (國立光州博物館)
목기(木器)
光州 新昌洞 길이 91.1cm (國立光州博物館)
목기(木器)
光州 新昌洞 길이cm (國立光州博物館)
현악기 : 슬 <絃樂器 : 瑟 >
이 현악기는 광주 신창동 소택지 유적과 경산 임당동A지구 121호 무덤 출토품을 근거로 복제한 것입니다.
신창동에서는 반만 남아있는 채로 출토되었으며 길이77.2cm.너비 28.2cm 가량으로 복원되었습니다.
두부(頭部)에 소공(小孔)을 뚫어 현(絃)을 맬 수 있도록 하였으며 미부(尾部)에 평면 역삼각형의 돌출부를 만들고
여기에 촉구멍을 뚫어 현고정부를 결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남아 있는 현공(絃孔)은 6개이나 원래는 열개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내부는 중앙부가 약간 솟아 있으나 전채적으로 파내어 요자형(凹字形)을 이룹니다.
한편 임당동 121호 무덤의 현악기.칠초동검(漆(초革+肖)銅劍).부채.목제두(木製豆)의 배열상태가
다호리 11.15.17호 무덤에서
확인된 칠기판과 출토위치가 유사하여 다호리 것도 현악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로 볼 때 기원전 1세기경의 삼한 전역은 동일한 문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들이 우리나라 현악기의 최고(最古)의 자료로서 뿐만 아니라 가야금의 시원형(始原形)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악기 복제(絃樂器 複製)
光州 新昌洞 길이77.2cm (國立光州博物館)
參考 : 韓國古代國家形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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