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시대(三韓時代)는 삼국시대가 전개되기 이전의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마한.진한.변한을 중심으로 한
소국연맹체단계(小國聯盟體段階)를 말합니다.
이시기는 철기사용의 보편화, 새로운 제도기술(製陶技術)에 의한 와질토기(瓦質土器)의 생산, 계급의 발생을 특징으로 하며,
신라.백제.가야의 고대국가가 태동하는 모태(母胎)가 됩니다.
삼한시대는 크게 전.중.후기로 구분 됩니다.
전기는 한국식 동검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 전국계(戰國系)의 주조철기(鑄造鐵器)가 전래되는 시기 입니다.
중기는 한대(漢代) 철기기술을 바탕으로 철기 사용이 보편화되는 시기로 청동기는 쇠퇴하고 명맥만 유지합니다.
삼각구연점토대토기(三角口緣粘土帶土器)와 주머니옹, 조합우각형 파수부호(組合牛角形把手附壺)등
전기와질토기(前期瓦質土器)가 주된 토기이고, 무덤은목관묘(木棺墓)가 사용 됩니다.
후기는 대형 목곽묘(木槨墓)가 사용되고 후기와질토기(後期瓦質土器)로 토기문화가 변화 됩니다.
삼한 전기에는 한국식동검문화가 기반이며, 동검과 다뉴세문경.방울 등의 청동 의기가 주류를 이루고,
철기는 공구류에 한정되었으며, 이들 청동기는 집자리에서는 출토되는 예가 거의 없고 무덤에서만 출토됩니다.
따라서 당시 실제 생산용구로는 사용되지 못하고, 일부 계층의 권위의 상징물로서 이용되었으며
이러한 무덤에 묻힌 사람은 당시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추장(酋長)이나 군장(君長)과 같은 신분의 소지자로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청동기가 방울이나 거울. 의기 등이 주류를 이루는 점에서 제사장(祭祀長)적인 성격이 강함을 알 수 있지요.
따라서 삼한 전기 사회는 제정일치적인 성격이 강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기가 보편화되고 철제 무기가 발달하면서 이러한 청동의기는 점차 쇄퇴하고,
제정(祭政分離)이 분리된 사회로 발전합니다.
한국식동검문화는 철기와 함께 발전된 청동기문화입니다.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 2세기 전후한 시기까지 해당되며,
폭이 좁은 세형동검을 비롯하여, 동모.동과(銅戈).동사(凍).세문경(細文鏡).방울류 등이 조합을 이룹니다.
이들은 요령식동검문화와는 달리 주로 대동강 이남 지역에서 분포하며, 목관묘에서 발견됩니다.
철기가 보편화 되는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세문경이 한경으로 대체되면서 소멸하고, 동모와 동과 등은 장신화 또는
장식성이 가미되어 의기화 합니다.
삼한 전. 중기의 무덤
삼한전기의 무덤은 목관묘, 토광묘, 석곽(관)묘, 옹관묘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목관묘는 새로이 출현한 형태이고,
토광묘는 신석기시대 이래로 계속되어 온 것 입니다.
석곽(관)묘는 청동기시대의 주된 묘제였으나 이시기는 쇠퇴하여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옹관묘는 청동기시대의 것이 옹관을 세워서 묻은 것에 비해,
이 시기에는 눕혀서 묻는데, 2개의 토기 아가리를 합쳐서 사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중 목관묘는 가장 주된 무덤으로 다량의 철기와 청동기, 칠기 등이 부장되는 경우가 많아 상위계층 또는
상위집단의 무덤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목관은 통나무와 판자로 만들었고, 바닥에는 요갱(腰坑)을 설치하여 부장품을 묻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관의 상부 또는 주위에 돌을 채워 넣거나 쌓은 경우도 있는데. 여기서는한국식동검을 비롯한 청동기가 주로 발견됩니다.
토광묘는 주로 집단에서 성인용 무덤으로 사용되었고,
옹관묘는 처음에는 유아나 소아의 무덤으로 사용되다가 성인무덤으로도 쓰였습니다.
『馬韓』
마한(馬韓)은 삼국시대 초기 한반도 서남부에 있던 三韓의 하나이다. 서해에 접하고, 동쪽은 辰韓, 남쪽은 弁韓에 접해 있었다.
나중에 百濟에 병합되었다.
마한인은 정주민이며, 농업이 중심이다. 각각의 부족에게는 족장이 있고 큰 부족의 통솔자를 신지(臣智), 그보다 작은 부족의 통솔자를 읍차(邑借)라고 불렀다. 《三國志》〈위서魏書〉동이전東夷傳에 의하면 취락에는 성이 없고, 54개국이 존재했다. 그 중의 백제국伯濟國이 백제로 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마한의 건국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와 있지는 않으나, 조선시대까지는 기원전 2세기 초에 기자조선의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을 피하여 바닷길로 달아나, 월지국(月支國)에 세운 나라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마한의 9대 왕의 연표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발굴된 유적의 특징으로 볼 때에, 원주민들은 기원전 3세기 이전부터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반도 서남부를 중심으로 정치집단을 이루었고, 목지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연맹의 형태를 유지했다고 여겨진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마한은 백제 온조왕(溫祚王)이 9년에 멸망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지》를 비롯한 많은 중국 사서에서 마한의 존재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온조왕 때 멸망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이 마한 정복 기사는 후대의 기록을 온조왕 대로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사기》를 신뢰하는 학자들은 이 시기에 마한의 중심 세력이 멸망하였으며, 이후에 등장하는 마한은 마한의 잔존 세력이라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백제가 마한을 자칭한 것이 사료에 기록된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백제가 체제를 정비하고 고대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고이왕(古爾王) 시기부터 마한의 중심 세력이 목지국에서 백제로 이동하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후에도 마한의 잔존 세력은 전라남도 해안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후 근초고왕 때 마한이 완전히 멸망한 것으로 본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일본은 369년 백제군과 연합하여 한반도 남부를 정복하고 그 땅을 백제에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 기사는 정황 상 일본이 주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이 마한을 정복한 기록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한의 문화적 특징>
성곽은 없으며, 활 . 방패 . 창 등을 잘 다루었고, 집은 초가지붕에 흙으로 벽을 세웠으며, 문은 윗쪽으로 내었다. 玉을 좋아하고 금 . 은 . 비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농업과 蠶業에 힘썼다.
큰 나라는 1만여 호, 작은 나라는 수천 호라고 하며, 총 10여만 호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추산하면 마한의 인구는 약 50만 명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마한 54개국>
* 감해국(
感奚國) : 익산의 백제 때의 이름 금마저와 함열에 남아있는 곰개라는 지명 때문에 현재 익산시 함열군 지역으로 추정된다.*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 :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으로 추정된다. 감해의 다른 이름이 감개인데, 금마면의 옛 이름이 대감개로 감개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 건마국(乾馬國) :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익산시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을 미루어 봤을 때 현재의 금마면, 왕궁면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목지국 중심의 마한이 백제에 통합될 때 중심세력이었다는 설도 있다.
* 고랍국(古臘國) : 목지국을 맹주로 하였다. 위치는 분명치 않으며, 백제 때 고룡군이라 불렀던 전북 남원군이라는 설이 있다.
* 고리국(古離國) : 경기도 양평군과 여주군으로 추정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 고비리국(古鼻離國) :*고원국(古爰國) :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전의 내용에 따라 경기도와 충청도 쪽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고탄자국(古誕者國) : 현재의 지명과 연관된 바가 없어 학자마다 추정하는 곳이 다르다. 예로 천관우는 경기도 양평군을 추정하고, 정인보는 전라북도 김제시를 추정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길이 없다.
*고포국(古蒲國) : 정인보는 경북 경산시, 천관우는 충남 부여군으로 추정하였다. 충청도설이 우세하나 정확한 근거는 전무하다.
*구로국(狗盧國) : 충남 청양군의 백제 때 이름이 고량부리현이었으므로 그곳으로 위치를 추정한다.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
*구소국(狗素國)
*구해국(狗奚國)
*내비리국(內卑離國)
*노람국(怒藍國) : 삼한시대의 노람국(怒藍國)을 삼국시대의 노음죽현(奴音竹縣)에 비정되는데 이는 노람이 노음과 비슷하게 여기기 때문이며 음죽군(陰竹郡)은 지금의 이천시 남부에 1읍 2면에 걸쳐있던 지역으로 지금의 장호원읍이다.
*대석삭국(大石索國)
*막로국(莫盧國)
*만로국(萬盧國) : 남포현(지금의 충남 보령시 웅천읍·남포면·주산면·미산면·성주면 일대)의 삼한시대 이름.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 전라남도 고창군에 있었다. 4세기 경 백제에 흡수된 뒤 백제 때에는 모량부리현이라 불렀고,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는 고창현이라고 불렀다.
*모수국(牟水國) :지금의 경기도 수원 일대를 차지하였던 소국으로, 고구려 때에는 매홀(買忽), 통일신라 때에는 수성(水域)이라 일컬었다.
*목지국(目支國) : 삼한 시대 때 지금의 충청남도 직산 (또는 천안) 이나 전라북도 익산을 중심으로 위치가 추정되고 있는 나라이다. 기록에 따라 '월지국(月支國)'이라고도 한다
*백제국(伯濟國) : 한강유역에 있었던 마한의 소국. 후에 백제(百濟)로 성장, 발전하였다. 부여족의 이동과 분파과정에서 형성된 부여계 고구려 이주민인 온조(溫祚)집단이 남하하여 한강유역에 정착함으로써 이루어진 정치집단이다.
*벽비리국(辟卑離國) : 지금의 김제시는 삼한시대에 벽비리국(辟卑離國)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된다. 백제가 이 지역을 차지한 뒤 벽골군(碧骨郡)을 설치했고, 백제 멸망 후 당(唐)이 벽성(辟城)으로 고쳐 고사주(古四州:고부)의 영현을 삼았다.
*불미국(不彌國) :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 불사분야국이라고도 불린다. 전라북도 전주시로 추정하기도 하고, 전라남도 승주군 낙안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불운국(不雲國)*비리국(卑離國) : 3세기 이후 백제에 복속되었다. 비리는 백제의 부리(夫里)와 같은 말로 본래 평야를 뜻하는 ‘벌(伐)’에서 유래된 말이다. 오늘날 위치는 충청남도 지역인 것 같은나 정확하지는 않다.
*비미국(卑彌國)
*사로국(駟盧國) : 백제의 사시량현(沙尸良縣)이다. 지금의 충남 홍성군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알려진다.
*상외국(桑外國) : 쌍부현(雙阜縣)은 고려시대 전후로 지금의 화성시 장안면과 우정읍에 있던 지역이다..삼귀(三歸)·삼괴(三槐)등으로 불렸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마한54국 중에 상외국(桑外國)으로 알려졌다
*소석삭국(小石索國) : 소석삭국이라고 하였다는 교동군(喬桐郡)은 지금의 강화군 교동면과 서도면, 삼산면 일부이다.
*소위건국(素謂乾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 속로불사국과 같은 의미인 통진군(通津郡)은 대한민국의 지명이다. 옛 신라시대 분진현(分津縣)을 중심으로 술성현(戌城縣)과 동성현(童城縣)지역을 합쳐 형성된 지역으로 김포평야지역의 대부분을 포괄한다.
*신분활국(臣濆活國)
*신소도국(臣蘇塗國) : 소태현(蘇泰縣)은 태안군의 옛 이름이다..삼한시대에 신소도국(臣蘇塗國)이 있었다. 신소도국의 소도는 삼한시대에 종교적인 신성구역을 의미하며 국명에서 보듯이 목지국이 마한의 정치적인 중심지라면 신소도국은 마한의 종교적인 중심지로 여겨진다. 소태라는 이름은 신소도국에서 유래되었다고 여겨진다.
*신운신국(臣雲新國)
*신흔국(臣國) : 대전광역시 유성구 일대에 있던 조선시대 고을 진잠현은 삼한시대에 신흔국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삼국시대에 백제의 진현현(眞峴縣)이었다.
*아림국(兒)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 여래비리국의 위치는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하여 토착 사회집단과 지배세력을 토대로 독립적인 상태였으나 4세기 중엽에 다른 소국과 함께 백제에 복속된 것으로 추정한다.
*염로국(冉路國) : 염로국(冉路國)은 삼한 시대 때 지금의 충청남도 온양군(또는 아산시)이나 중심으로 위치가 추정되고 있는 나라이다. 염로국은 목지국보다 규모가 짧고, 온천으로 발생되어 있는 지역이다.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 지금의 경기도 부천시 일원 또는 강원도 춘천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른 마한 연맹체의 국가들과 여러가지 형태의 결속관계를 성립한 이후 토착적인 지배세력이 3세기이후까지 독립적인 성장을 지속했다가 백제에 복속되었다.
*원양국(爰襄國) : 경기도 남양군은 삼한시대 마한의(원양국爰襄國), 나중의 쌍부현 지역은 상외국(桑外國)으로 추정된다.
*원지국(爰地國)
*일난국(一難國)
*일리국(一離國)
*일화국(日華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지반국(支半國)
*지침국(支侵國)
*첩로국(捷盧國)
*초리국(楚離國)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 : 위치는 전라남도 정읍시 또는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으로 추측되나 정확하지 않다.
*치리국국(致利鞠國) : 치리국국이 있던 지륙현(知六縣)또는 지육현(地育縣)은 지금의 서산시 지곡면 일대에 있던 지역이다. 전자는 백제시대의 명칭이고 후자는 신라시대 경덕왕대부터의 명칭이라지만 표기만 다른 것일 뿐 같은 말이다.
이상 54소국으로 연맹체를 이루어 馬韓이라 합니다.
※ 마한왕 목록
마한 왕의 역대왕의 기록은 청주 한씨 족보에 각 왕의 명칭과 치세기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실재했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代) (시호) (휘) (재위기간)
1代 무광왕(武康王),애왕(哀王) 한준(韓準) 고조선의 마지막 왕
2代 강왕(康王) 한탁(韓卓) 4년
3代 안왕(安王) 한감(韓龕) 32년
4代 혜왕(惠王) 한식(韓寔) 13년
5代 명왕(明王) 한무(韓武) 31년
6代 효왕(孝王) 한형(韓亨) 40년
7代 양왕(襄王) 한섭(韓燮) 15년
8대 원왕(元王) 한훈(韓勳) 26년
9代 계왕(稽王) 한정(韓貞) 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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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辰韓』
진한(辰韓)은 한반도 남부에 있던 삼한(三韓)의 하나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지역으로,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마한(馬韓), 남쪽은 변한(弁韓)에 접해 있었다. 모두 12개의 국가로 되어 있었으며, 12국 중 하나인 사로국(斯盧國)이 이들을 병합하여 신라(新羅)가 되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의하면 진한은 진(秦)에서 옮겨온 유민으로 마한에서 동쪽의 땅을 분할하여 살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에는 사로국의 원 거주민들이 조선의 유민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제로 발굴되는 유물의 양상도 위만조선 계통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진한은 위만조선 계통의 종족으로 이해되고 있다. 진한의 12국은 진왕(辰王)에게 소속되어 있었는데, 진왕은 마한 사람이 대대로 이어갔다고 한다. 이를 두고 마한의 진왕이 진한 12국의 종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진한의 지배자인 진왕이 따로 존재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진한은 초기에는 마한의 통제를 받았으나 3세기 무렵부터 중국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내기도 하는 등 소국 연맹체의 세력이 크게 신장하였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로국(신라)를 중심으로 결속하여 세력을 성장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신라가 점차 성장함에 따라 진한의 여러 소국들은 신라에 편입되어 소멸되었다.
진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고 한다.
토지가 비옥하고, 풍속이 유순하며, 남녀의 구별이 있고 鐵殿을 사용하여 주변국과 무역을 하였으며,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진한 12국)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12개의 소국 중 큰 나라는 5 ~ 6천 가구 작은 나라는 6 ~ 7백 가구라 하였다.
* 사로국(斯盧國) * 기저국(己柢國) * 불사국(不斯國) * 근기국(勤耆國) *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 * 염해국(冉奚國) * 군미국(軍彌國) * 여담국(如湛國) * 호로국(戶路國) * 주선국(州鮮國) * 마연국(馬延國) * 우유국(優由國) 이상 12국이다.
* 사로국(斯盧國) : 박혁거세가 세운 진한 12소국 가운데 하나로 신라의 모태가 되었다. 경주에 위치해 있었다. 3세기중엽부터 국력이 커지면서 주변 소국들을 복속시켜 4세기에는 경상도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신라'라는 국호는 503년 지증왕 때 채택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가 왕위에 즉위한 이후 국호를 서나벌(徐那伐), 서라벌(徐羅伐) 등으로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진한6부>
진한 6부(辰韓六部)는 현재 한반도 동남쪽에 있었던 부족연맹체 진한에서 신라의 기반이 된 서라벌의 여섯 부락이며, 씨족 집단으로 육촌(六村) 또는 육부촌(六部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고조선의 유민이 나뉘어 살며 생겨났다고 하였다.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 둘째는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觜山)의 진지촌(珍支村) 혹은 간지촌(干珍村), 넷째는 무산(茂山)의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의 가리촌(加利村 혹은 加里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의 고야촌(高耶村)이다.
유리 이사금이 32년에 개편하여 양산촌을 양부(梁部)라 하며 이씨(李氏)를, 고허촌을 사량부(沙梁部)라 하며 최씨(崔氏)를, 대수촌을 점량부(漸梁部) 혹은 모량(牟梁)이라 하며 손씨(孫氏)를, 간진촌을 본피부(本彼部)라 하며 정씨(鄭氏)를, 가리촌을 한기부(漢祇部)라 하며 배씨(裵氏)를, 고야촌(명활부, 明活部)를 습비부(習比部)라 하며 설씨(薛氏) 성을 주었다.
그러나 6촌이 곧 6부로 변천된 것인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대체로 부족사회의 6촌이 점차적으로 분화되어 단계적으로 행정 구역의 명칭으로 변화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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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弁韓』
변한(弁韓), 또는 변진(弁辰)은 한반도 남부에 있던 三韓의 하나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일부 및 경상남도 지역으로, 남해에 접하고, 서쪽은 馬韓, 동쪽은 辰韓에 접해 있었다.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의하면 12개국이 있었다고 전하며, 나중에 구야국을 중심으로 가야로 발전했다.
《삼국지》에 따르면 변진(변한)은 진한과 잡거(雜居)하였다고 한다. 언어나 법속 등이 모두 진한과 비슷하여 특별히 구분되지 않았다고 하며, 제사지내는 풍습만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고고학 발굴 결과에서도 변한과 진한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2] 낙동강 하구 지역에서 양질의 철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삼한과 동예(東濊), 왜(倭), 한군현 등에 수출하였다. 또한 철을 화폐로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변한 지역의 소국들은 가야 연맹을 이루는 소국들로 발전하였다고 보고 있다.
<변한 12국>
*미리이동국(彌離彌凍國) 현재의 밀양시 일대*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 현재 고성군 일대
*고순시국(古淳是國) 미상, 천관우는 사천시 일대로 비정했다.
*반로국(半路國) 현재의 고령군 일대, 반파국(伴跛國)의 오기이다.
*악노국(樂奴國) 현재의 하동군 악양면.
*군미국(軍彌國) 사천군 곤양면과 곤명면 일대.
*미오여마국(彌烏邪馬國) 현재의 마창진지역, 이후의 골포국. (이병도는 고령군으로 비정했으나 이지역은 반파국의 땅이다.)
*감로국(甘路國) 현재의 김천시 개량면 - 이지역은 삼국사기에 진한으로 표기되고 일찌감치 신라 영역에 편입되었다.
*구야국(狗邪國) 나중의 금관가야.
주조마국(走漕馬國) 현재의 김천시 조마면.
*안야국(安邪國)현재의 함안군 일대, 아라가야가 일어선 곳이다.
*독로국(瀆盧國) 현재의 부산광역시 옛 동래군 지역.
*접도국(接塗國) 나중의 칠포국, 지금의 함안군 칠원면.
※위의 위치 비정은 이병도 박사의 說을 중심으로 일부 고쳤음. 이들은 대부분 전기가야연맹으로 그대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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