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백자(白磁)

3. 조선 청화백자<靑華(畵)白磁>

鄕香 2007. 3. 25. 21:42
 

청화 백자

이 고급스런 백자는 조선 도자사에서도 특별한 성취를 이룬 분야로 평가 받고 있으며 15세기 중엽에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백토로 빗은 그릇면에 코발트(Co)라는 광물성 안료로 그림을 그린 뒤 투명한 백자유를 씌우고 1300도 가량의 높은 온도로 구워 만들었습니다.

새하얀 地面 위에 파란색의 그림이 그려져 청순한 기품과 고상한정취를 자아내는 청화 백자는 "도자기의 꽃"이란 칭송받으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량이 적고 귀한 것은 청화 백자의 안료가 중국을 통해 수입되므로 무척 비쌌으며 유교적 가치관으로 볼 때 청화백자도 사치스럽다 하여 끊임없이 정책적으로 규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청화백자는 분원에서만 만들어졌으며 청화 그림은 궁중의 화원들이 직접 분원에 내려가서 그리는 경우가 많았지요.

 청화백자는 왕실용이나 사대부 집안에서 사용되어 서민들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가품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릇의 모양이나 그려진 문양이 지체에 어울리게 일정한 격조를 보이며 상류 사회의 美의식과 조선 시대 미술의 전반적인 흐름이 잘 되어 있는 점도 특기할만 합니다.

 조선 시대의 청화 백자는 특히 15,16세기의 소위'고청화(古靑華)'와 18세기 전반의 金沙里가마 것을 최고로 치는데 전자는 워낙 유례가 드물면서 회화적인 역량이 출중한 이유이고 후자는 조선 특유의 격조의 미학을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1. 긴 목이 서서히 벌어져 내려오다가 무게 중심(中心)을 동체(胴體) 하부(下部)에 두고 넓은 굽을 만나는 분원말기(分院末期)의 전형적

(典型的)인 백자병(白磁甁)입니다. 구연부(口緣部)는 뢰문(雷文), 굽도리는 굵은 청화선(靑畵線)의 종속문대(從屬文帶)를 돌렸습니다.

사각(四角)의 격자문대(格子文帶)와 이조(二條)의 청화선(靑畵線)으로 구획(區劃)한 동체(胴體)는 부채꼴 모양(模樣)의 파도문(波濤文)을 배경(背景)으로 잉어, 게, 새우, 조개, 오리 등이 자유롭게 배치(配置)되었으며, 경쾌(輕快)한 필치로 청화안료(靑畵顔料)의 농담(濃淡)을 살려 익살스럽게 표현(表現)하였습니다.

이처럼 대범(大汎)하게 현실적(現實的)인 공간(空間)을 무시(無視)하여 파격적(破格的)이고 자유로운 공간구도(空間構圖)를 연출(演出)하는 시도(試圖)는 19세기(世紀) 청화백자(靑畵白磁)에 현저(顯著)하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담청색(淡靑色)의 백자유(白磁釉)가 고르게 시유(施釉)되었으며 잘 녹아서 은은(隱隱)한 광택(光澤)이 있다. 굽은 안바닥을 깊이 깎아내어 두께가 얇습니다.

접지면(接地面)과 주변(周邊)의 유(釉)를 닦아내고 검은 모래가 섞인 내화토(耐火土)를 받쳐서 번조(燔造)하였습니다.

 

 

백자청화파어문병(白磁靑畵波魚文甁)

조선(朝鮮19世紀初) / 백자(白磁)  높이 : 27.3Cm / 입지름 : 4.6Cm / 바닥지름 : 12.3Cm/국립중앙박물관所藏

 

 

2. 긴 목과 동부(胴部)를 모두 육면(六面)으로 깎은 작고 아담한 병(甁)입니다.

따로 접합한 경부(頸部)는 상하(上下) 거의 대칭적(大稱的)인데 구연(口緣)은 도톰하게 처리하였습니다. 동체(胴體)는 전체적(全體的)

으로 구형(球形)에 가까운데 견부(肩部)에서 원호(圓弧)를 그리다 거의 직선(直線)으로 좁아지며 굽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양구성(文樣構成)은 경부(頸部)와 동체(胴體)가 동일하게 삼단구성(三段構成)을 보이고 있습니다.

경부에는 파초(芭焦)잎 모양의 독특한 연판문(蓮瓣文)과 사격자문(斜格子文)을 상하(上下)에 두고 넓은 각 면(面)에는 국화절지문

(菊花折枝文)을 모서리 부분에는 칠보문(七寶文)을 배치(配置)하였습니다. 청화발색(靑畵發色)은 옅은 편이며 주문양(主文樣)은 특히

세필(細筆)로 간략하게 윤곽선만을 표현하였습니다. 유(釉)는 담청색(淡靑色)의 분원백자유(分院白磁釉)이며 빙렬(氷裂)은 없고,

굽은 안바닥을 깊게 깎아내었으며 접지면(接地面)에는 유(釉)를 닦아내고 내화토(耐火土)를 받쳐 번조(燔造)하였습니다. 

 

 

백자청화국화당초문각병(白磁靑畵菊花唐草文角甁)

조선(朝鮮) / 백자(白磁) 15.3Cm / 입지름 : 3.4Cm / 몸통지름 : 10.3Cm / 바닥지름 : 6.7Cm /국립중앙박물관所藏

 

 

3 .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조선 백자에서는 고전적인 유백색 설백색의 달항아리를 비롯하여 추초문(秋草文)이 간결하게 그려진 청화 백자 항아리나 병이 만들어지고 굽이 높은 제기와 각병(角甁)이나 각항아리들이 등장하여 조선 후기 백자의 다양한 기형들을 예시합니다. 1752년에 땔감과 백토(白土)를 옮겨오거나 완성된 제품을 운반하기 편리한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로 관요를 옮겨 고정한 뒤에는 이전의 금사리(金沙里) 가마에서와 같은 유백색의 백자와 간결한 청화 백자 병, 항아리, 제기, 문방구 등의 제작이 활발해졌고 점차 분원기 특유의 청백색 백자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필통은 그러한 중기와 후기의 전환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깨끗한 백자 바탕에 청화 안료로 한 면에는 매화가, 반대편에는 대나무가 그려졌는데, 그림 솜씨가 뛰어나서, 작은 필통에 그려진 것이지만 큰 화폭을 대하는 것 못지않은 감흥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청화 백자의 그림들은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화원(畵員)들이 그린 것으로, 맑은 청화의 색조가 매화 향기를 그대로 전하는 듯합니다. 희고 깨끗한 바탕과 깔끔한 그림이 잘 어울린 문기(文氣)가 가득한 뛰어난 작품입니다. 

 

 

백자청화매죽문필통(白磁靑畵梅竹文筆筒)

조선(朝鮮18世紀) / 백자(白磁) 높이 : 12.7Cm / 입지름 : 9Cm / 바닥지름 : 8.6Cm/국립중앙박물관所藏

 

 

4 . 발치에 안개를 감은 먼 산과 집들이 들어선 가까운 언덕, 그 사이를 유현히 흘러 이어주는 강물과 거기에 뜬 배, 버드나무가 선 강기슭과 근처에 정박한 배들이 그려진 조선 후기의 접시입니다.

접시의 안쪽 면 가장자리에 윤곽선 일곱 가닥을 촘촘히 두르고 그 안에 가득히 그림을 그려넣었습니다.

전체적인 구도를 비롯하여 원경과 근경의 표현, 운필(運筆), 농담(濃淡)의 처리 등으로 미루어 이 그림을 그린 화공의 솜씨가 비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바깥 면 아래쪽 둘레 세 군데에는 간략한 선으로 비룡문을 그려넣었는데 역시 솜씨가 능숙합니다.

굽다리 속에는 청화로 단풍잎 모양의 윤곽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만고(萬古)라는 글자가 가까스로 읽을 만하게 적혀 있으며, 가마를 나타내는 도장인 듯한 우(又)자와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백자청화산수문접시(白磁靑畵山水文 )

조선(朝鮮18世紀) / 백자(白磁) 높이 : 1.1Cm / 입지름 : 14.2Cm / 바닥지름 : 7.2Cm /국립중앙박물관所藏 

 

 

 

5 . 조선시대(朝鮮時代) 중기(中期)의 전형적(典型的)인 '달항아리'라 불리는 형태(形態)로서 이처럼 청화(靑畵)로 운룡문(雲龍文)을 나타낸 예(例)는 극히 드뭅니다. 구연(口緣)은 바깥으로 각이 벌어져 있으며 구형(球形)을 이룬 동부(胴部) 중앙에는 접합(接合)의 흔적(痕迹)이 남아 있습니다. 문양(文樣)은 구름속을 헤쳐나오는 한마리 용(龍)이 넓은 동부(胴部)를 감싸고 있는데 적절(適切)한 농담(濃淡)과 섬세(纖細)한 표현(表現)이 돋보이며 구름의 표현도 이채(異彩)롭습니다.

유(釉)는 고르게 시유(施釉)되었는데 유백색(乳白色)을 띄며 전면(全面)에 가는 빙렬(氷裂)이 나있고, 굽다리는 두텁게 깎았으며 넓은 접지면(接地面)은 직선(直線)으로 처리(處理)하였으며, 굽안바닥에 일부 굵은 모래가 붙어 있습니다.

 

 

 

백자청화운룡문(白磁靑畵雲龍文)항아리

조선(朝鮮17세기말~18世紀 初) / 백자(白磁) 높이 : 35.3Cm / 입지름 : 20Cm / 바닥지름 : 16.6Cm /국립중앙박물관所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