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다산 기념관》
때 아닌 이슬비에 촉촉이 젖은 다산의 거리, 맑고 단정함에서 조선의 진정한 선비 다산 선생의 정갈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곧지 않게 가로질러 뻗어간 길의 유연함에서 법 이전에 민심을 헤아리던 진정한 목민관의 德과 선행이 서린듯이 아름답다.
《다산초당도》
1812년 陰9월12일에 다산 정약용 선생과 초의선사가 월출산을 구경하고인근의 백운동에서 하룻밤 머문 뒤 만든 시화첩 (백운첩)에 실린 그림이다. 초의선사는 백운동圖와 우열을 비교할 수 있도록 시화첩 맨 끝장에 다산초당 전경을 그린 (다산초당도)를 수록하였다.
조선 /1812년/지본담채 27 × 19.5cm /개인소장
萬德山 白蓮寺는 萬德寺라고 불렸다. 정약용 선생의 '萬德寺誌'에 신라 문성왕 1년(839년) 무염국사가 창건한 뒤 의종24년(1170년) 승려 요세(了世)가 중건하고 주석하면서 번창해오다가 희종7년(1211년) 了世(1163-1245)에 의하여 80여칸의 큰 가람을 세우고 白蓮結社를 하였다. 이 후 요세는 圓妙國師가 되었으며 이것이 오늘의 백련사의 맥이다. 백련결사란,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淨土求生과 참회로서 죄를 멸하는 懺悔滅罪를 결사하는 것으로서 중국 東晉 때 高僧 慧遠이 東林寺에서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念佛往生 결사를 하고 이를 白蓮結社라 한 것에 기원한다. 이러한 결사는 고려에 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곳 백련사는 圓妙國師 了世 이래 여러 국사를 배출하였고 번창해 오다가 고려 말 왜구에 의해 폐허화 된 것을 조선조 세종 때에 이르러 불교에 심취한 효령대군의 배려아래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푸른 기운이 몸을 감싼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나무 숲이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
동백은 차나무과 상록 교목으로 남도지방의 대표적인 수종으로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봄에 피는 春栢, 가을에 피는 秋栢, 겨울에 피는 冬栢으로 구분되는데 백련사의 동백나무는 대부분 이른 봄에 꽃을 피워 '춘백'에 든다. 백련사 남-서쪽 구간 5만㎡ 넓이에1,5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의 난온대 지방을 대표하는 동백나무가 집단적으로 서식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주변의 백련사, 다산 초당 등과 관련된 문화적 장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숲이다.
사천왕문에 갈음하는 두륜산 대흥사와 같은 해탈문이다. 옛 시대에는 백련결사를 연 팔십여 칸에 이르던 대표적인 대찰이었건만 지금은 두륜산 대흥사의 말사가 되어 있다. 이런 경우를 隔世之感이라 해야 하나!
東方을 관장하며 선한 자에 상을, 악한 자에 벌을 내린다는 비파를 든 지국천왕과 禪을 통해 해탈에 이른다는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동자의 형상이 세워져 있다.
사자를 타고 있는 동자와 서방세계를 지키며 온갖 나쁜 이야기들을 달변으로 물리친다는 광목천왕이 뱀을 휘어 잡고 있다.
해탈문을 지나니 다시 동백나무 숲이다.
주변에서 유난히 키 큰 나무가 눈길을 끈다. 바라보니 그 모양이 기묘하다. 한 나무의 두 줄기가 하나로 합쳤는데 그 형태가 착 감싸 안은 모습이다.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안내판을 보니 여기서 다산초당까지는 800m 거리이지만, 일정관계로 들려볼 수가 없다.
길지않게 가로지른 동백나무 숲을 지나니 높은 축대 위로 사찰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백련사에는 만덕산백련사사적비, 원묘국사중진탑, 그리고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숲이 유명하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은 웬일로 막아 놓았을까!.
백련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해탈문을 통과한 길은 가로막아 선 높은 축대를 끼고 돌아 돌계단을 거쳐 만경루 측면을 지나 만경루 앞마당으로 이어져 있다. 돌계단을 올라서서 만경루 1층으로 들어서면 입구 안에 돌계단이 있고 계단 위는 좁은 마당이고 그 앞 높은 축대위에 팔작지붕의 대웅전이 봉황의 날개를 활짝 편 듯이 다포지붕이 높게 치솟아 있다.
만경대 앞마당으로 가기 전의 건물로서 스님들의 요사이다.
만경루 앞마당에서 바라본 좌측 전경이다.
만경루의 바깥쪽 자태이다.
만경루 마당 좌측에 자리한 배롱나무(목백일홍)의 자태이다. 그 많은 가지의 모습이 마치 수많은 젊음이 어우러져 춤을 추는 듯 현란하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단청이 화려한 백련사 대웅보전은 1762년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다포건물로 각 추녀마다 活柱를 세워 무게감 있게 솟아오른 추녀마루를 받치고 있고 건물 전면 가운데 현판 좌우 2개의 중심 기둥 위에 용머리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굳게 닫힌 문 안으로부터 스님의 불경소리가 흘러나와 예의상 차마 열고 들려다 볼 수 없었지만, 조선 후기에 조성한 목조 여래삼존상이 봉안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본존불 여래상과 그 좌우에 보살상을 봉안하는데 보살상 없이 삼존불만 봉안한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대웅전의 현판글씨는 백련사의 本寺인 대흥사의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대웅전과 정문격인 만경루 사이는 마당이랄 수 없는 길만 있어 공간이 좁아 만경루 1층 안 계단에서도 대웅전 모습을 온전히 담을 수가 없는 실정이다.
정면에서는 전체를 담을 수 없어 대웅전과 만경루 사이 좁은 길 건물 끝머리에서 측면으로 담은 대웅전 모습이다, 이렇듯 좁은 길옆에 바로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건축한 높은 건물 대웅전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정과 편함을 떠나 위압감을 느낀다.
추녀마루를 받치고 있는 活柱
대웅전 前面에서 平枋 위 花盤에는 全面의 4곳에 부처상을 그려 넣었다.
대웅전과 만경루 사이 마당 겸 길이다.
《만경루/萬景樓》
백련사 만경루에서 창문으로 내다보면 구강포 너른 바다와 섬이 한 시야에 잡힌다. 해서 萬景을 볼 수 있는 만경루이겠다. 현판의 글씨는 대웅전과 같이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다.
만경루 옆 서편 범종각 앞은 어느 정도 공간이 여유롭다.
《범종각/梵鐘閣》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을 위시하여 그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다시 그 좌우에 명부사왕이 모셔져 있고 이하 모든 명부 권속이 자리하고 있다.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山神과 獨聖과 七星을 나란히 함께 모신 곳이다.
토착신앙이나 민간신앙을 불교가 수용하는 과정에서 山神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모신 산신을 불교에 여래에 준해 접한 것이며 獨聖은 석가모니처럼 홀로 깨우친 자를 일컬으며, 七星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신앙의 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준하여 포용한 것이다.
백련사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외떨어져 자리한 응진전과 천불전이 위치해 있는 마당 가운데 한 그루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풍경이다.
《응진전/應眞殿》
《천불전/千佛殿》
응진전 마당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해무 속에 강진만의 구강포가 아스라이 펼쳐 보인다.
응진전을 내려와 만경루 옆을 돌아내려가는 길..
만경루 밖 멋진 배롱나무를 거쳐 동백 숲으로 ..
선암사와 더불어 양대산맥을 이루던 백련사, 왜구의 침략이 빈번했던 강진만이 가까워 要塞처럼 성(行乎土城)을 쌓아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 했건만, 백련사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國師를 여덟 분이나 배출한 대찰이 오늘에 와서 해남 대흥사의 말사가 되어 명맥만 잇고 있다.
다시 길 나섭니다.
2018년 12월16일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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