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미황사/達摩山美黃寺》명승 제59호
백두산으로 부터 뻗어 내린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돋아 올리고 마지막으로 길게 솟은 산, 달마산(達摩山489m)은 공룡의 등줄기처럼 뾰족뾰족 솟아난 기암 괴봉이 7km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장관을 이룬다 가히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리는데 손색 없을 만큼 수려하고 힘찬 기상과 장엄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는 남도의 제1경이요 불상과 바위 그리고 석양 빛이 어우러져 그 황홀함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을 자아 낸다. 이렇듯 수려한 산세가 아름다운 미황사를 품고 있는 것에는 까닭이 있다. 미황사 홈페이지에서 따온 전설에 의하면
"신라 제 35대 景德王 8년(749년)에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현 갈두항)에 이르렀기에 사람들이 다가서면 배는 물러서고 사람들이 물러서면 배는 다시 포구로 다가오고 이러기를 수차례에 이르렀을 때 이야기를 전해들은 義照和尙이 목욕 게재한 후 제자들을 대동하고 포구로 나가니 비로써 배가 포구로 들어왔다. 의조화상과 제자들이 배에 오르니 금으로 장식한 옷을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있고 큰 상자 안에 경전, 불상, 문수 · 보현보살상, 40 성중, 五十三善知識, 16羅漢, 佛畵 등이 가득 들어 있고 알 모양의 바위도 하나 있어 깨니 검은 송아지 한마리가 나왔는데 순식간에 큰 소가 되었다.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노를 잡고 있던 金衣를 입은 사람이 나타나 "나는 우전국(인도) 국왕인데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처님 모실 곳을 찾다가 금강산에 봉안하고자 하였으나 새 절터가 없어 돌아가던 중인데 이곳의 산세를 바라보니 일만 부처가 보이므로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려 하니 소 등에 불상과 경전을 실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자리에 부처님을 모시시오" 하여 石卵에서 나온 검은 소 등에 실고 가는데 소가 크게 한 번 울고는 드러눕자 그 자리에 通敎寺라는 절을 짓고 소가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으로 머문 자리에 절을 짓고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답다 하여 '美', 金衣人의 은혜로운 황홀한 빛에서 '黃'자를 따서 美黃寺라고 했다."
《달마산 미황사 일주문/達摩山美黃寺一柱門》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조선 선조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미황사는 전각이 불에 타고 기록마저 없어졌다.
이후 조선후기 3차에 걸쳐 대대적인 중창불사로 다시 번성했고 고승들이 주석하면서 승풍을 크게 떨쳤으나 언제 부터인가 쇄락하여 폐사되었다고한다. 현재 미황사에 주석하고 계신 지운, 현강, 금강 세 스님이 1989년에 주인 없이 비워 있는 미황사에 머물게 되었고 흔적만 남은 명부전, 삼성각, 달마전, 만하당, 부도암 등을 복원하고 퇴락한 세심당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10여 년간 중창불사 원력을 세워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현재 경내에는 보물 제947호 대웅전, 보물 제1183호 웅진당, 보물 제1342호 괘불탱 등 국가지정 문화재 3점이 있다. 발굴조사와 고증을 통해 옛 가람배치를 확인하고 정비계획에 따른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일주문 천장의 단청이 울긋불긋 화려하다 그 현란한 문양 때문에 건축 구조와 양식을 헤아려 보기가 싶지 않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으로 오르는 긴 돌계단은 5,4,4,4,4,3개씩 6단계로 구성되어 길게 이루어져 있다.

가파른 산자락에 여러 단을 마련하고 제1단에 일주문, 두 개 단 위에 천왕문, 제 4단 위에 선다원 , 제 5-6-7단 위에 정문 격인 자하루가 위치하고 자하루 문을 지나 축대에 마련된 돌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앞마당이다 .

33계단을 오른 제3단에 위치한 천왕문 좌측 공간을 통해 바라본 풍경이다. 축대 위 마주 보이는 건물은 전통찻집(선다원) 연잎밥과 단팥죽도 있는데 맛도 좋고 영양가 면에서도 월등하다. 천왕문은 안에 사천왕을 모시는 공사 중이라고 양철판으로 둘려져 있어 미관상 보기 안 좋아 담지 않았다.

자하루 우측 공간에서 바라본 달마산을 곁들여 바라본 풍경이다

《자하루/紫霞樓》
3개단에 걸쳐 9, 13, 15개 의 돌계단을 오르니 미황사의 정문인 紫霞樓, 아름답고 상서로운 노을빛이 노닐다 가는 곳인가 보다.

《자하루/紫霞樓》
문 안을 통해 대웅전 앞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보인다.

자하루 좌측에서 올려다본 범종각과 좌측 청운당, 우측은 하심당(종무소)이다.

자하루에서 우측 옆에서 바라본 정경이다. 한 단 위 대웅전에서 한 단 아래 좌측으로 세심당, 안심료, 감로당 등 부속건물들이 군집해 있다 .

세심당 축대에 꽂아 놓은 대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받는 石槽이다. 약수인지 수조 옆에 물바가지가 마련되어 있다. 고색 아름다운 것에 파란 플라스틱 바가지라니! 조화롭지 않아 비켜 찍었는데 좌측에 살짝 끼어들었네!

紫霞樓 뒤 모습 '萬歲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자줏빛 아름다운 노을을 즐기니 그 기쁨 萬歲를 이어가리'. 대개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누각은 경사진 지면을 그대로 받아들여 전면은 2층 후면은 단층으로 건축한 것이 일반적인데 자하루는 가파른 지면을 깎아 평지 터를 마련하여 2층 건물을 짓고 건물 뒤 축대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수많은 대웅전을 봐왔지만, 이처럼 고풍스런 모습의 아름다운 전각은 미황사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달마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높은 기단에 꾸밈없는 단아한 모습은 경건하고 우아하다 사적비(1692년)에 따르면, "서역 우전국왕의 인도로 경전과 불상을 가득 실은 배가 사자포구(현 갈두항)에 닿자 義照和尙과 香徒 100여 명이 그 배를 맞이하여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웠다. 창건 이후 미황사는 조선중기까지 12암자를 거느린 대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성했다고 한다. 현재 경내에는 6동의 전각과 14동의 요사와 부속건물이 있다.

《미황사 대웅보전/美黃寺 大雄寶殿》
잡석으로 쌓은 높직한 기단 위에 문양을 새긴 둥근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의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내사출목, 외삼출목의 다포식으로 결구 했다. 제공의 쇠서는 위로 가볍게 올라간 모양으로 단층 팔작지붕의 18세기 이후 건축양식을 띠고 있다. 더욱 특이로운 것은 초석의 형태이다. 1982년 중수할 때 조선조 영조30년(1754년)에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으며 상량문이 묵서된 종도리는 해체해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보고만 있는데 추녀 밑 뽀얀 속살을 그대로 내보이는 나무의 향기가 몸으로 스며드는듯 상큼한 느낌을 주고 검은 현판에 희고 흰 색으로 '大雄寶殿' 네 글자가 쓰여 있는 현판을 두 손으로 포옥 감싸 든 양 지극정성을 보인다.

보물 제947호 미황사의 중심 전각 대웅보전에는 한 가운데에 석가모니불을 그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모셔져 있다.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엄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벽화, 중국 둔황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견되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1598년에 중창하였고 1660, 1754년, 1982년, 2007년에 거듭 중수하였다고 한다.

《해학이 담긴 초석》
잡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안치한 주춧돌 面에 거북이, 게, 엎어놓은 연꽃잎. 꽃봉오리 등의 문양을 새겨 놓았습니다. 미황사를 처음으로 창건했다는 신라 제 35대 景德王 8년(749년)의 시기로 볼 때 1.269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을 견디고 버텨서 오늘 이렇게 내게 큰 감동을 줍니다. 지금에 이르기 까지 災難도 수없이 겪어 건물은 몇 번을 짓고 타버리기를 반복했어도, 살아있는 주춧돌만은 새로 갈아 쓰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더구나 멀쩡하고 이처럼 재치를 넘어 익살스럽기까지 한 옛 주춧돌을 바꿀 리 없겠지요. 처음 이 주춧돌을 다듬으며 게와 거북이를 새기게 된 연유야 알 수 없지만, 석수장인의 심성과 끼가 이 무늬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설화에 의하면 미황사가 창건된 시기는 景德王 8년(749년), 그렇다면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이차돈 죽음 이래 번성한 신라불교가 한창 꽃을 피웠던 통일신라시대이며 그 시대 문화유산들은 안정된 사회분위기와 여유로운 생활상을 엿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존엄하고 엄숙한 사찰의 대웅전 주춧돌에 이런 형태의 문양을 새길 생각을 했을까?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바다 생물을 새겼다는 설도 있고, 미황사의 창건설화에서 나타나듯 바다를 통해 인도불교가 전해졌기 때문이라는 이도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을 말한다면, 사찰은 거의 화재에 치명적인 목재건축물이기 때문에 災殃을 막고 오래토록 보존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물을 가져오고 多福을 가져다준다는 우리 민족의 소망을 상징하는 거북이와 게를 가장 기본이 되는 초석에 의미를 불어 넣고자 당시 주지스님이나 책임자가 石手匠人에게 주문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미황사 창건설화에 나타나는 경덕왕 시절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삼국통일 후 안정된 때이고 불국사와 석굴암 등 불교문화의 걸작들이 탄생하던 전성기였으니 그 여파는 땅끝마을 이곳까지 아름다운 미황사를 탄생시켰을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지금 나에게 중요하고 재밌는 것은 이 해학적인 문양이 천년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내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설기고 꼬인 나무기둥의 결이 마치 미묘하게 얼기고 설긴 사람의 근육을 보는 느낌입니다.》

게와 거북 그리고 불가사리(?)

연꽃잎과 불가사리(?) 기둥은 비바람에 깎기고 파여 물결처럼 흐르는 듯한 무늬의 근육질만 남아 육중한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연꽃잎, 거북, 연꽃봉오리.


《나비 모양의 경첩》

대웅보전 좌측, 객실로 쓰는 '향적당'

좌측 대웅보전 추녀, 응진당, 우측 달마선원 뒤로 달마산 바위봉우리들,
미황사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선 달마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 때문에 남도의 금강산이라고도 불린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선을 전하고 해동의 달마산에 늘 머물러 있다고 하여 달마산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고려사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의 높은 관리들이 찾아와 달마산을 찬탄하고 예경하였다고 전해진다.

《미황사 명부전/美黃寺 冥府殿》

석축에 돌담, 그 아름다움과 담쟁이의 그림솜씨,

《미황사 응진당/美黃寺 應眞堂》
보물 제1183호 응진당은 석가모니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들을 모신 곳이다 應眞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아라한'의 한자어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께 여러 차례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응진당 돌담》


응진당과 달마선원 사이로 바라본 달마산, 마치 옛 만화 '라이파이'에 나오는 마법의 성채 같다. 그 시절 또 다른 만화 '날쌘돌이'도 생각이 난다. 14살 소년 시절 검정다리 앞 동네 살 때 경복중학교 다니는 친구 고흥국이가 빌려와 함께 보곤 했었지...

요사채로 쓰는 건물들로 앞 부터 요사로 쓰는 세심당, 후원 안심료와 감로당 건물로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세심당 앞에서 들여다본 모습이다 감로당 끝에서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종무소와 그 뒤로 향적당(객사), 명부전, 끝으로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세심당/洗心堂》
스님들의 거처요, 정진처요, 마음을 씻는 곳이니 수련장이기도 하겠다.

미황사를 떠나기 전 만세루 앞에서 돌아서서 바라본 대웅보전, 고색창연한 모습이 단청한 건물들 보다 아름답기가 단연 으뜸이다. 그 뒤로 달마산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千佛千塔 인양 늘어서 있다.

《범종각/梵鐘閣》

자하루를 나서자 바로 찻집 겸 기념품 판매소이다.

판매소라기 보다는 소박하고 정갈하고 운치가 있어 산방 같은 분위기다.

연잎밥도 있다. 단팥죽과 솔잎차를 청해서 단팥죽 맛을 보니 천상천하에서 제일 가는 맛이었다. 씁싸레한 솔잎차도 아주 좋았다.

잘은 모르지만, 달마대사의 행색이다. 아마도 미황사와 연관되는 창건설화에 나오는 인도와 연관해서 제작한 것은 아닐까?

길을 가다 내 마음 멈춰서서 淸天에 바위 봉우리 達摩山, 침엽수 울창한 靑山과 갈대숲(蘆林)의 어우러진 풍경을 보네. 그러나 아쉬움 하나, 청천에 날아가는 기러기(雁) 없네.

2018년 11월17일 달마산 미황사, -鄕邨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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