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압구정리』
물길도 사나운 무시막강을 나룻배 휘적휘적 노 저어 건너가면,
은빛금빛 고운모래 강조가비 새끼자라 조곤조곤 다정한 내 고향 압구정,
바람도 머물던 백사장너머 미역 감고 물장구치며 건너던 샛강,
동산에 배꽃향기 그윽하고 모래밭에 목화송이 포근한 내 고향 압구정,
파란하늘 오고가는 뭉게구름 사이사이 끼룩끼룩 갈매기 날고
갈대숲에 오리들 정다운 강가언덕에 午睡를 즐기는 고즈넉한 압구정.
정겹던 나룻배, 짙푸른 무시막강, 아름답던 은빛모래, 꿈을 담던 샛강,
향기로운 배꽃심성 목화솜 닮은 가슴들 모두 다 어디 갔나, 내 고향 狎鷗亭里.
〈옥수동 매봉산에서 바라본 중랑천과 한강의 합수머리 주변, 뚝섬, 압구정, 금호동, 옥수동 등을 가르고 흐르는 한강의 모습.〉


압구정 맞은 편 한강 건너 남산과 응봉산을 바라본 전경.
6 .70년대 압구정이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서 서울로 편입되기 전 옥수동 금호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무시막강(한강)을 건너 넓은 楮子島 모래톱을 걸어 압구정으로 가는 여인들 모습. 여인들의 뒤로 매봉과 응봉이 보이고 두 봉우리 사이로 작고 흐릿하게 북한산이 보인다.
한낮의 뜨거운 흰 모래톱을 하염없이 걸어 시댁을 가시는가! 친정집을 가시는가 한 손에 양산을 바쳐 들고 한 손에 가방과 신발을 들고 맨발로 걷는 여인이여 그대나 나나 지금은 검은 머리 흰 모래빛깔만큼이나 희고 희어라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보니 더 없이 그립소! 그 시절 그 때가...

중랑천과 한강이 합수되어 두 물길이 수천년 세월에 쓸어온 모래가 쌓여 이루어 놓은 모래섬(저자도)이 옥수동과 압구정 사이 한강 가운데에 있었다.
<사진 우측에 한양대학교와 중랑천과 작게나마 살곶이다리가 보이고 좌측은 한강의 본줄기이고 그 사이가 뚝섬유원지 였다. >

《 압구정리 앞 모래 둔덕 》
샛강에 나가 빨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압구정리 모래 둔덕이 어찌 아니더냐 그 너머 목화밭에 핀 꽃이 새댁처럼 고왔지 올망졸망한 아이들 엄마 따라 샛강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모래언덕은 쏟아지는 햇볕에 달궈진 모래 정말 뜨겁고 힘들었지..
금호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무시막강을 건너면 저자도 모래섬을 가로질러 가면 깊지 않은 샛강이 나온다. 그 샛강에서 빨래를 하고 미역 감고 하얀 모래에 널어 논 빨래는 어느새 말라있다. 그 건조된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개서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모래둔덕을 넘어가는 압구정 아낙네들.. 엄마 강으로 빨래간다는 말에 한낮 무더위에 시들해진 아이들 덩달아 따라나서 물장구치고 새끼자라 강조가비랑 놀다가 다시 엄마 따라가는 길 모래톱..

지금의 압구정 현대아파트단지의 모습,
예전에는 저지대 논밭이었 곳에 모래섬 저자도를 퍼다가 돋아서 그 위에 현대아파트를 건축하였다.

동화 속 꿈같던 이야기를 모두 앗아간 지금의 압구정 현대 아파트.
지금의 압구정동은 1963년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가 서울로 편입되면서 강남구 압구정이 되었고 아파트단지로 개발되었다. 한명회가 노년에 갈매기 벗 삼아 지내던 狎鷗亭은 흔적도 없고 글자 새긴 바위로 명맥만 잇고 있다.

狎鷗亭은 韓明澮가 이 자리에 亭子를 짓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翰林學士 倪謙에게서 지어 받은 이름이라고도 하며 한명회가 중국 宋나라 宰相이던 韓琦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면서그의 서재이름을 압구정이라고 했던 故事에서 따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狎鷗亭은 "세상을 다버리고 강가에서 살며 갈매기와 아주 친근하게 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합니다. 근대까지도 '압구정'은 정자가 있던 이 자리는 東湖라 불리던 옥수동과 압구정동 사이 남쪽 강가에 지금은 없어졌지만 닥나무가 무성했던 楮子島와 강물 사이에 서남쪽으로 바라다 보이던 낭떠러지 언덕바지에 위치하였고 서울시로 편입되어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도 필자(廣州郡 彦州面 狎鷗亭里210番地)의 증조부댁 옆에 강남 일대 야산 사이사이 이뤄진 골짜기 물이 모여 제법 깊은 골을 이루며 압구정을 휘돌아 한강으로 빠져 나가는 아담한 암봉의 한강쪽 낭터러지 위에 정자(狎鷗亭)는 멋진 소나무들과 아우러져 더욱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압구정에 올라서서 보면 목멱산 줄기 응봉산과 아차산너머로 멀리는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 등 여러 봉우리가 시아에 들어와 절경을 이루던 곳입니다. 조선시대 이곳의 자연부락은 '뉘주니, 먼오금, 옥골(玉谷), 장자말(長者洞)이라고 불렸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후 일제강점기에 지명개편되며서부터는 압구정리로 불리었습니다.

2017년 6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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