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광한루/廣寒樓

鄕香 2013. 5. 23. 12:19

고요한 정적이고 싶은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광한루 담장을 마주보며 담장 따라 줄지어 열린 번다한 온갖 기념품을 늘어놓은 상점들과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가까운 대로변에 위치한 청대부(淸臺府)란 문을 두고 표를 사서 입장 하려면 이곳을 거치도록 서문(西門)에 매표소를 둔 것은 지역 상권에 도움을 주려는 의미 있는 배려에 미소를 머금게 됩니다. 물론 미소의 온전한 의미는 호젓하게 돌담장을 따라 걸으며 잠시라도 당시의 춘향의 연정에 빠져보고 싶었던 감상이 깨진 것에 까닭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청대부/淸臺府)

 

양 옆에 곁방을 둔 소솔대문이 참으로 고상하고 품위가 있습니다. 그 운치에 어울릴 사진을 담고 싶어 기다리는데, 주차장에서부터 기념품점포를 거치도록 저 커다란 파란비닐봉지를 들고 앞서가던 노파가 내가 담고자는 서문 앞 가운데에서 버티고 서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망부석이 되었습니다. 강렬하게 눈에 티는 파란색만 아니었어도 그런대로 좋으련만.. 애고, 할 수 없지 얼른 보고 순천까지 가야할 바쁜 마음에 그냥 담을 수밖에...   

 

 

<춘향관/春香館>

성춘향의 일대기를 9폭의 대형 畵幅에 담아 춘향의 얼과 수절정신을 숭고한 민족혼으로 오래토록 기리고자 1992년 개관되었습니다.

 

 

오작교가 가로지른 연못가에는 왕버들이 오래 세월이 무색하도록 건강하고 왕성합니다.

  

 

(왕버들나무)

이 나무는 1582년 선조임금 재위 15년경에 연못을 조성하고 오작교 축조와 함께 심어진 것으로, 당시 관찰사는 송강 정철이었고 남원부사는 장의국 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나무의 크기는 높이 약 22m, 가슴높이 둘레 6.6m, 가지 폭 25m 정도입니다. 왕버들은 버드나뭇과 쌍떡잎식물 갈래꽃류에 속한 낙엽 교목으로 냇가에서 자랍니다. 높이는 20미터, 지름 1미터 정도 자라, 나무껍질 회갈색에 잎은 어긋나고 가장자리 톱니 있으며 커다란 턱잎 있습니다. 같이 4월에 피며 열매 5월에 익습니다. 우리나라 충청도, 강원도 이남, 일본, 중국 등지의 따뜻한 곳에서 자랍니다. 암수 딴그루이고, 버드나무에 비해 키가 크고 잎도 넓기 때문에 왕버들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잎이 새로 나올 때는 붉은 빛을 띄워 쉽게 실별할 수 있습니다.

 

 

<오작교/烏鵲橋>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주기 위해서 은하수에 수많은 까치들이 모여 다리가 되어 주었다는 이야기처럼 연못과 다리를 놓아 구현한 것에서 옛 사람의 멋스러운 취향을 봅니다.

  

 

지리산 천 갈래의 계곡물이 모여 고요한 요천강(寥川江)을 이루고 그 물을 받아 천체의 은하수를 상징으로 만든 연못에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놓아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얽혀 내려오고 있는 이 오작교를 1년에 한 번만 밟으면, 부부간의 금슬이 좋아지고 자녀가 福을 받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두 번을 밟으면 어찌 될까요? 아마도 금슬이 넘쳐서 다른 여인에게 까지 그 금슬이 미치는 건 아닐까? 무엇이든 넘치는 것은 부족함만 못합니다.

 

 

옛 선인들의 의미와 생각이 집합된 광한루, 어디 광한루 뿐일까, 글씨하나 이름하나에도 의미를 두어 詩로 엮어 吉祥과 멋을 담던 고상하고 품위 있는 우리의 조상님들이시여.. 

 

 

돌 하나를 배치하는 것에도 의미를 주고 뜻을 담아 구성하는 선조들의 서정적 심미안을 연못 안에 조성한 작은 가섬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광한루/廣寒樓>

성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피워 낸 춘향전으로 한 층 더 유명해진 광한루, 그 연혁을 보면 1419년 황희정승이 '광통루'를 세우고 세종 16년(1434년)에 중건되었고, 1444년에 정인지에 의해 '광한루'라 개칭되었습니다. 그 후 정유재란 때 전소되어 인조 4년(1626년)에 남원부사 장의국(張義國)이 고요한 강 寥川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광한루 前面 동서 양편에 平湖를 만들어 은하수를 상징하게 하였으며, 못 안에는 三神島를 만들어 한 섬(방장섬)에는 대나무를, 또 한 섬(봉래섬)가운데에는 백일홍을 심고, 나머지 한 섬(영주섬)에는 蓮亭을 지었습니다. 또 가운데에는 荷花蓮을 심고, 못을 가로 지르는 烏鵲橋를 놓았습니다. 연못을 앞에 둔 누각으로 마루주위에 난간을 둘렀고 본채 동쪽에 연접된 두 칸의 부속건물은 정조 때(1776~1800)에 증축한 것입니다.

기둥위의 공포양식이 주심포집에 다포집의 계통을 절충한 특수한 건물인데, 건축양식보다 춘향과 이도령의 아름다운 인연이 얽힌 전설적인 누각으로 더 유명해져 있습니다.

 

 

 <광한루의 側面>


 

<광한루 前面>

 

 

<광한루 뒤 측면모습>

 

 

광한루에서 삼신산으로 이어진 다리.

 

 

<삼신산/三神山>

이 3개의 섬은 神仙이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상징으로 조성한 것입니다. 왼쪽 섬이 영주산(영洲山), 가운데는 봉래산(蓬萊山), 오른쪽 오작교 옆에 있는 섬이 방장산(方丈山)입니다. 섬과 섬 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고,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6각의 방장정이 소삼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三神山으로는 '한라산'은 "영주산",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에 해당합니다. 이 亭子는 육각정인 방장정(方丈亭)입니다.

 

 

방장섬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광한루.

 

 

방장섬에서 측면으로 본 광한루.

 

 

방장섬에서 바라본 오작교.

 

 

방장섬에서 영주섬으로 이어진 木橋입니다.

 

 

연못의 물고기들이 사람이 다가서면 먹이를 바라고 이렇게 몰려듭니다.

 

 

 

<완월정/玩月亭>

 

전설에 따르면 옥황상제가 계신 玉京에는 광한전이 있고,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달나라 궁전)의 절경 속에서 노닐었다고 합니다. 이 전설에 따라 재현한 것이 광한루원(廣寒樓苑)입니다.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선조들이 달나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지은 누각입니다.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통적 조선건축양식의 이 완월정의 수중무대에서 남원의 민속행사인 춘향제가 해마다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지방의 서예가들이 무료로 가훈 써주기 행사를 열고 있었습니다.

 

 

<팽나무>

조선 명종(1558년)재위 무렵에 심어졌던 것으로 알려진 이 나무는 광한루원을 조성하기 전에 옛 '남산관' 마당에 정원수로 있었던 것을 기증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450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푸르고 싱싱하기가 청년같습니다. 높이 18m정도에 가슴높이둘레가 3.7m이고, 나뭇가지 폭은 약 약 20여m 정도라고 합니다.느릅나무과에 속하는 팽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서 오래 살고 몸집이 거대하며 어린가지에 잔털이 있고,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입니다.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 모양으로 10월에 익습니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 역활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 왔습니다.

 

 

<그네>

그넷줄이 엄청나게 길어서인지 그네뛰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그네 타는 기술과 요령이 있어야겠지만, 힘 좀 쓰겠다 싶은 청.장년도 올라가서는 겨우 흔들거리다가는 이내 멋쩍게 고개를 내젖고 내려옵니다. 이 여인은 좀 타는가 싶게 자세는 잡혔으나 다른 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월매집/月梅屋>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으로,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뛰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해 춘향이 살고 있는 월매집 부용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집으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안채의 모습.

 

 

<부용당>

 

 

<서문/西門>

 

 

2013년 5월19일 南原에서,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