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내 서늘하고, 싱그럽고 울창한 나무들 숨소리 따라 뿜어지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수정보다 맑은 계곡의 물 흐르는 경쾌한 리듬을 타고 올라가 맞이한 천년사찰 화엄사, 마치 지리산에 숨어 있는 보물창고 같은 절입니다. 웅장한 지리산을 닮은 각황전이나 보제루의 춤추는 아낙네들을 연상케 하는 기둥들의 모습에서 그 어느 보물들 보다 더 나를 매료시킵니다. 그래서 보물 아닌 그 많은 보물들을 한 번에 다 눈에 담아갈 수 없는 곳이 화엄사이기도 합니다. 1,500년을 이어온 화엄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지리산이 뿜어내는 신선함, 지리산봉우리마다 걸린 구름과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함께 머무는 곳이니 자연스레 또 찾아지는 묘한 자연의 멋이 담긴 산사이기도 합니다.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입니다.
화엄사는 544년 백제 성왕 22년에 緣起祖師에 의해 창건되었답니다. 연기조사는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둔골에 전각 두 채의 작은 절을 짓고, 절의 이름을 화엄경에서 따서 화엄사라 했다고 합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기록한 것이니 화엄사가 곧 부처님의 세계이고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이겠습니다.
1, 일주문(一柱門) 2, 관정료(觀靜寮) 3, 돌항아리(石壺) 4, 벽암국일도대선사비(碧巖國一道大禪師碑) 5, 금강문(金剛門) 6, 덕장전(德藏殿) 7, 성행당(省行堂) 8, 광학장(廣學藏) 9,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10, 사천왕문(四天王門) 11,만월당(滿月堂) 12, 청풍당(淸風堂) 13, 원융료(圓融寮) 14, 범음료(梵音寮) 15, 해우소(解憂所) 16, 보제루(普濟樓) 17, 범종각(梵鐘閣) 18, 영산전(靈山殿) 19, 운고각(雲鼓閣) 20, 화엄서림(華嚴書林) 21, 적묵당(寂默堂) 22, 혜원당(惠圓堂) 23,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24,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 25, 명부전(冥府殿) 26, 삼전(三殿) 27, 대웅전(大雄殿) 28, 영전(影殿) 29, 원통전(圓通殿) 30, 나한전(羅漢殿) 31, 각황전(覺凰殿) 32, 사자탑(獅子塔) 33, 각황전 앞 석등(覺凰殿 前 石燈) 34,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35, 선등선원(禪燈禪院) 36, 구충암(九層庵) 37, 화엄사 매화(길상암梅花) 38, 화엄사 올벚나무(지장암) 39, 올벚나무 40, 남악사(南岳祠)
벽암국일도대선사비(碧巖國一道大禪師碑)
화엄사 중창의 주역을 한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0660)의 탑비입니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크게 활약하였고, 僧軍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축성하는 등 조선후기 사회에서 불교계의 위상을 높이는데 공헌하였으며, 戰亂 후에는 화엄사를 비롯하여 해인사, 법주사 등의 여러 사찰의 重修를 주도하여 조선후기 불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고 합니다.
<금강문과 주변>
좌측으로 덕장전(德藏殿), 성행당(省行堂)이 있고 우측으로 광학장(廣學藏)이 있습니다.
덕장전(德藏殿)과 성행당(省行堂)건물은 우리나라 전통사찰의 일상 생활을 체험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 문화와 수행 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수련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금강문/金剛門>
금강문 안에는 절을 수호하는 신장(神將)인 금강역사(金剛力士)像이 있습니다. 좌우로 한 쌍이며 인왕(仁王) 이라고도 합니다. 인왕상 옆에는 문수(文殊)와 보현(菩賢)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각각 사자와 코끼리 위에 앉아 있습니다.
<밀적금강/密迹金剛>
밀적금강은 금강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경호하는 야차신을 말합니다. 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서원이 있으므로 밀적금강이라고 합니다.
<보현동자/普賢童子>
보현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우보처(우측에서 보좌)로 진리의 광대행을 맡고 있으며 행원(行願)의 실천을 나타내기 위하여 코끼리를 타고 있습니다.
<문수동자/文殊童子>
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 좌보처(좌측에서 보좌)로 지혜를 맡고 있으며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자를 타고 있습니다.
<상왕문/象王門>
이곳을 들어서면 스님들의 수도처인 원융료(圓融寮)와 범음료(梵音寮) 건물이 있습니다.
<청풍당/淸風堂>
스님들의 요사채, 청풍당(淸風堂).
<사천왕문/四天王門> 언저리.
<사천왕문/四天王門>
금강문을 지나면 바로 이 사천왕문이 있습니다. 사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의 형상이 좌우에 배치되었습니다. 사천왕은 하늘의 사방을 각각 관장하며 나쁜 기운(악귀)들이 하늘로 들지 못하도록 막는 임무를 가진 왕들입니다. 절을 천계로 보며 이 문은 하늘로 들어서는 관문인 셈입니다.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
수미산의 서방(서구야니주)을 수호하고 위엄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국토르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 해주는 천왕.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
수미산의 북방(북구로주)을 수호하고 재복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
수미산의 남방(남섬주부)을 수호하고 항상 염부제 중생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증장시켜 주는 천왕.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수미산의 동방(동승신주)을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
보제루로 오르는 계단과 그 언저리.
<보제루/普濟樓>
<보제루/普濟樓>
1636년 건립된 이 건물은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 건물로 기둥들은 아담한 여인의 키 정도의 높이에 그 생김은 자연 그대로의 굵은 나무를 틀어지고 굽은 대로 설렁설렁 다듬어 썼습니다. 얼핏 보면 후덕한 아낙네의 몸맵시 같은데, 그 모양이 나란히 줄서서 남도 노랫가락에 맞춰 제각각 유연하게 율동을 주는 것 같은 자태여서 민속적 질박함과 향토적 정서를 주어 마음을 평온하게 합니다. 장식이나 단청도 하지 않아 고색창연한 자연스런 소박미(素朴美)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개 절에서는 '樓下進入'이라 하여 누각 아래로 지나서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지만, 이 보제루는 기둥을 낮게 하여 누각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서게 만들었습니다. 각황전, 대웅전, 큰 石壇이 펼쳐지는 중앙영역의 장엄한 경관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라고들 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보다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겸손을 생각하게 하는 순간입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법고루 모습.
보제루 뒤에서 바라본 법고루의 측면 모습.
아래에서 처다본 범종각(梵鐘閣).
정면으로 바라본 범종각.
<중심 영역/中心 領域>
보제루의 오른쪽을 돌아서 오르는 이곳은 화엄사의 중심 영역입니다. 주위를 둘러싼 전각의 지붕이 꽃잎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그려내어 마치 연꽃 속에 있는 듯한 아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웅전과 東오층석탑, 각황전과 西오층석탑으로 이어지는 2개의 축은, 두 개의 일탑일금당(一塔一金堂)을 한곳에 모아 둔 듯합니다. 주불전인 대웅전보다 각황전이 훨씬 큰 기형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의도된 화엄사만의 매력이라 하겠습니다.
① 각황전(覺皇殿), ②대웅전(大雄殿), ③각황전석등(覺皇殿石燈), ④사자탑(獅子塔), ⑤西오층석탑, ⑥東五層石塔
<화엄/華嚴>
보제루 건물로 前面에는 "華嚴"이라는 현판이 걸렸습니다. 안에는 불화작품전시회(佛畵作品展示會)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대웅전/大雄殿>과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1639년에 중건된 화엄사 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어 특이함이 있습니다.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寶物 第132號
조각이 화려한 서오층석탑과 마주하는 동쪽위치에 있는 이 탑은 장식이 없으며, 일반적인 통일신라 석탑과 달리 기단이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탑신의 각층 몸돌 괴임대도 1단으로 생략되었으며 지붕받침도 4단으로 줄었습니다. 1999년에는 탑 속에서 사리 장엄구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통일신라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619cm입니다.
<각황전/覺皇殿> 國寶第67號,
이른 아침햇살에 발그레 물든 각황전의 웅장한 모습이 자애롭습니다. 화엄사 각황전은 금산사의 미륵전, 법주사의 팔상전, 그리고 '불국사의 청운교 . 백운교' . '경복궁 근정전의 난간 등 우리 전통 건축양식을 복합적으로 본떠 건축한 건물이 경복군 내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건축물입니다.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 寶物 第133號>
640cm 높이의 통일신라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탑은 보기 드물게 기단부 네 면에 각 면마다 3개의 支神 像을 돋을새김으로 모두 12지신(十二支神)을 표현했고, 그 위 갑석4면에는 각 면마다 두 분씩 모두 여덟 무리의 신들(八部衆) 그리고 1층 탑신에는 하늘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이 各面마다 한분씩 돋을새김(陽刻)되어 있습니다. 조각과 장식이 많아 동오층석탑과 달리 화려합니다. 1995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서 청동불상틀, 청자항아리 등 47점의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동향면/東向面)
<남향면/南向面>
<북향면/北向面>
<서향면/西向面>
<대웅전/大雄殿>寶物 第299號.
1639년에 중건된 건물로 일반적인 대웅전과는 달리 특별함이 있습니다. 대체로 절의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이 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대적광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건 당시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義昌君)이 써서 내려준 현판을 그대로 사용해 대웅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戰亂이후 어려워진 여건 때문에 웅장하게 짓지는 못했지만, 대신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더욱 돈독해진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목조삼신불좌상(1636년)과 대웅전삼신불탱(寶物第1363號)이 모셔져 있습니다.
<영전/影殿>
대웅전 좌측에 있는 고승들의 초상화가 있는 맞배지붕을 올린 건물입니다.
<팔작지붕의 원통전/圓通殿>
<맞배지붕의 명부전/冥府殿>
<나한전/羅漢殿>
<각황전/覺皇殿> 國寶第67號,
목조칠존상(1703년)과 삼세후불도(1860년),영산회괘불탱(국보 제301호)이 모셔진 각황전은 1702년에 중건된 건물로서 그 규모나 아름다움으로나 화엄사의 대표적 건축물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불전(佛殿) 중 가장 규모가 큽니다. 원래는 석가여래 입상을 모신 장륙전(丈六殿)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그 이름도 각황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은 숙종(肅宗)임금이 지어 내렸다고 하며, 내부에는 목조칠존상(삼세불과 문수보살 · 보현보살 · 지적보살 ·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이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입니다. 내벽에 둘러져 있던 화엄석경은 보물(제104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자탑/獅子塔> 寶物 第300號
통일신라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조성된 이 사자탑의 높이는 331.2cm이고, 아래 기단의 면석에 갓기둥과 버팀기둥이 없는 불단(佛壇)형식으로, 몸돌은 네모난 기둥처럼 우뚝하게 길며 각 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얕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탑을 노주(露柱)라고도 부르는데, 그 성격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사자탑/獅子塔>細 1
<사자탑/獅子塔>細2
<각황전 앞 석등 / 覺凰殿 前 石燈 > 國寶 第12號.
통일신라 9세기말 내지 10세기 초에 조성 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640cm에 이르는 이 석등은 전해 내려오는 우리나라 석등 가운데 가장 큽니다. 이를 통해서 지금의 각황전 자리에 있던 장륙전(丈六殿)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간주석(竿柱石)은 통일신라 석등의 팔각기둥과는 달리 북처럼 배가 부른 형태(鼓腹形)입니다.
탑 상륜부에 올렸던 연봉우리 같기도 하고..
고상하고 단아하며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여, 옛 선비들이 참으로 닮고 싶어 했던 선망의 소나무의 멋진 자태여..
이른 아침, 고요에 잠긴 산사에 생기로움의 소리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널기 위해서 지리산 능선을 타고 내려온 새벽안개를 쓸어내는 스님들의 싸리비질 소리가 정겹기도 하고 가슴을 아프게도 합니다. 산사의 마당은 고요처럼 마냥 한없이 깨끗하기만 한데, 스님은 쓸고 또 쓸고.. 그래서 아침마다 華嚴의 꽃은 피어나는가봅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부처님의 진신(眞身)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곳이란 뜻입니다.
불상을 모셔놓지 않은 법당 안에 단(壇.戒壇)만 있고 텅 비어 있으며, 그 법당 밖 뒤편에 부처님의 사리탑을 봉안하여 놓은 곳을 적멸보궁, 또는 보궁이라고 합니다. 법당안에 달리 부처상을 모시지 않는 것은 부처의 진신사리 자체가 부처이기에 다른 불상을 구태여 모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녹음이 짙은 동백나무 무리가 터널처럼 이어진 곳에 108계단으로 이어진 그 위는 孝臺라고 부릅니다. 어머니의 모습으로 빗은 석탑의 비구니상을 향해 중생에 자비의 빛을 비칠 석등을 머리에 이고 어머니께 천년 넘는 세월을 한결같이 茶를 공양하고 있으니 효대에는 온통 그 茶香으로 가득하겠습니다.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國寶제35號
289.7cm 높이의 이 탑은 기단에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奏樂天人)과 공양상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고, 기단 갑석 위에는 연꽃 봉우리를 든 비구니像이 서 있습니다. 그 위에 1층 몸돌에는 門의 좌우에 인왕상과 사천왕상, 범천상과 제석천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을 향해 석등을 머리에 이고 앉아 있는 승려상은 찻잔을 들어 공양하는 모습입니다. 이곳은 효대(孝臺)라고도 불리는데,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緣起祖師)가 비구니인 어머니를 위해 탑을 세웠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통일신라 9세기에 조성되었습니다.
<사사자삼층석탑> 上部
1층 몸돌에는 문이 새겨졌고, 잠을쇠로 굳게 채운 그 문 좌우에 神將을 새겨 놓아 신장이 문을 엄중하기 지키는 형국입니다.
<사사자삼층석탑>左面臺部
네 마리의 사자가 갑석 네 귀퉁이 밑에 마련된 仰蓮花臺를 머리에 올려 받치고 있는 그 안, 갑석가운데에 돌출시켜 만든 연화대를 머리에 올린 비구니가 합장하며 앞의 석등아래 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사자삼층석탑>下段部
네 마리의 사자와 비구니가 있는 갑개석아래 갑석에는 각종 악기를 켜고 있는 비천인상이 四方向으로 3인씩 모두 12奏樂飛天人像이 새겨져 있습니다.
<四獅子三層石塔前石燈>
사사자삼층석탑 앞에 세워진 석등으로 연봉우리를 올린 개석(屋蓋石)아래 蓮花臺 위에 앉힌 燈窓이 있고 그 연화대를 세 개의 기둥위에 올린 옥개석(屋蓋石)이 받치고 있습니다. 기둥 안에는 연화대 위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또한 무릎은 세운 위에 찻잔을 받친 손을 올렸고 다른 한 손은 꿇은 무릎위에 공손히 올렸습니다.
석등이야 부처님의 자비를 밝히는 것이겠지만, 4사자탑을 향해 마주하고 있는 동자승은 탑의 비구니께 차(茶)를 공양하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탑과 석등, 비구니와 동자승,이러한 이원화 형태의 구성으로 보아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緣起祖師)가 탑과 석등을 조성함에 있어서, 비구니인 어머니를 위하는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담은 것임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효대(孝臺) 라는 이름도 그런 연유로 후세들이 응용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석등 뒤에서 본 전체모습.
무언가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108계단을 헤아리며 내려가는 발길이 가볍지 않은 것은, 지극한 효심을 본 것에서, 그렇지 못한 자책일 것입니다.
어제 오후 돌아보지 못한 곳을 이른 아침에 다시 찾아와서 돌아보고 나니, 새벽 이내를 삭인 아침햇살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는 아침, 화엄사를 나섭니다.
화엄사입구 옆에는 웅장한 건물이 완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길옆 돌담장 넘어 보이는 새로 지어 완성되어 가는 엄청난 건물의 모습입니다. 콘크리트가 아닌 나무와 흙과 돌로 빗은 우리 고유의 건축의 진수요, 문화요, 예술품이라 하겠습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롭게 융합시킨 돌담과 여울이 아름답습니다.
화엄사는 6세기 중엽(544년, 백제 성왕) 인도에서 온 연기(緣起)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의 자장율사와 의상대사,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에 의해 중창되어 조선 세종 6년(1424년)에는 선종대본산(禪宗大本山)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間)의 건물이 전소되고 주지였던 설홍대사는 300여 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사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의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서면 높이 쌓아 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승방과 강단 등의 수행공간이,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각황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조화된 가람배치의 아름다움이다. <안내문에서,>
이틀 밤을 편하게 보낸 한화콘도
2013년 5월20일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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