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송정책을 표방하던 고려는 초기에 거란과 충돌하였으나 국교가 회복된 후에는 사절이 오고가고 더불어 무역이 이루어졌다. 고려는 주로 금.은 및 각종 공예품을 수출하고, 단사(丹絲), 양(羊) 등을 수입하였고, 의천(義天)이 "대장경(大藏經)을 편집하고 간행하는데 거란의 대장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여진족이 금(金)나라를 건국하면서 양국은 군신관계(君臣關係)를 맺는 등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행(使行)을 통한 공무역(公貿易)이 이루어졌는데, 그 규모는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이 거울도 그런 통로로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여진의 글씨가 새겨진 거울(女眞文字銘銅鏡)
高麗時代《중국 金代 》/ 지름15.7cm / 국립중앙박물관所藏
'고려시대(高麗時代) > 금속.토기(金屬.土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전 대모 칠 국화넝쿨무늬 불자(螺鈿 玳瑁 漆 菊唐草文 拂子) (0) | 2009.02.16 |
---|---|
항해하는 배가 새겨진 거울("煌丕昌天"銘航海圖文銅鏡) (0) | 2009.02.16 |
도교 제사에 놓인 접시(靑磁象嵌접시) (0) | 2009.02.16 |
수녕옹주(壽寧翁主) 의 묘지(墓誌) (0) | 2009.02.14 |
고려 관리 허재의 석관(許載石棺) (0) | 2009.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