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靑銅器時代 墓(무덤)

鄕香 2006. 4. 16. 17:26

 

청동기시대의 무덤에는 고인돌(支石墓), 돌널무덤(石棺墓), 석개토광묘,(石盖土壙墓) 독무덤(甕棺墓)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고인돌이 대표적이지요.

1.고인돌(支石墓)은 브르타뉴(bretagne)반도 및 지중해 해안, 인도.동남아시아 및 동북아시아 지방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가장 많으며 한반도의 고인돌은 이들과 모양은 비슷하나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듯합니다.

동아시아지역의 고인돌은 중국 동북지방이나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발생하여 한반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었으며 일본 규슈지역으로도 전파된 무덤양식입니다.

선사시대 유적 중 가장 특징적인 성격을 띠는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으로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에 분포합니다. 

주검의 위치와 무덤의 형태에 따라 北方式과 南方式의 두 양식으로 구분됩니다

 

북방식은 땅위에 판자돌(板石)을 세워 만든 긴 네모꼴의 무덤칸을 만들고 주검을 넣어

그 위에 크고 넓은 덮개돌(上石)을 덮은 구조로서 일명 탁자식이라고도 합니다.

대동강, 재령강을 중심으로 하는 평남 , 황해도에 주로 분포하며 평남 용강지역에는 수백기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한강 이남지역에는 매우 드물지만 고창(高敞)지역에까지 분포되어 있답니다.

 

 

( 北方式 고인돌(支石墓) 高敞 상갑리)

 

 

 

 ( 北方式 고인돌 江華島 )

 

 

남방식은 땅 밑에 판돌이나 깬돌(割石)로 만든 긴 네모꼴의 돌널(石棺)안에 주검을 넣고

굄돌(支石)이나 돌무지(積石)을 쌓은 후 그 위에 덮개돌(上石)을 덮은 형태로 뚜껑식(蓋石式)과

바둑판식(碁盤式)으로 세분됩니다.

 

 

 

( 南方式 고인돌 高敞 상갑리)

 

 

 

 

뚜껑식은 돌널의 뚜껑이 땅위에 노출되거나 땅 밑의 널을 덮은 뚜껑과는 별도로

그위에 다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형식으로 덮개돌을 받치는 바침돌(支石)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바둑판식은 주로 영.호남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작은 바침돌이 덮개돌을 바치고 있어 바둑판처럼

보입니다. 특히 창원 덕천리에서는 이단구덩이에 이중 뚜껑들의 특이한 형태도 조사되었습니다.

 

 

(돌널무덤(石棺墓) 부여 송국리)

 

2. 돌널무덤(石棺墓)은 시베리아계통의 무덤 양식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중국 동북 지역과 깊은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지하에 판돌이나 깬돌로 네모난 돌널을 만들고 그 위를 판돌이나 나무판자로 덮은 것입니다.

원래 흙으로 쌓은 봉분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으나 현재는 거의 보이지 않고 확인된바도 없습니다.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 전시기에 걸쳐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지만 그 수는 고인돌에 비해 적으며

일부 남부지방의 돌덧널(石槨)무덤으로 이어 지기도 합니다.

돌널무덤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양식의 하나로 지역과 묻힌 사람의 신분에 따라

그 형식과 껴묻거리가 다릅니다.

무덤안에서는 대개 간돌검, 돌살촉,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가지무늬토기, 등과 함께

청동기도 출토됩니다.

 한편 대전 槐亭洞과 같은 충남지역의 돌널무덤은 구덩이의 윗부분을 돌로 채우는 형식인데,

한국식동검 및 청동거울, 청동의기,그리고 덧띠토기와 검은간토기(黑磨鉛土器)등이 세트를 이루며

출토되고 있어 지역적인 특징을 보여 줍니다.

 

 

 

민무늬토기독널(無文土器甕棺) 高45.8cm 송국리

 

석개토광묘(石盖土壙墓)와 옹관묘(甕棺墓)

청동기시대 후기에 서남부지역의 송국리형 토기문화권에서는 발견되는데

이 시기의  독널은 주로 유아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며 

 처음에는 커다란 독의 바닥에 구멍을 뚫은 일상용 토기를 바로 세워 주검을 묻고 아가리를 판돌로 덮는

형태의 외독널(單甕棺)이 사용되다가 철기 문화의 전래와 더불어 두개의 독을 맞대어 눞혀 묻는

이음식(合口式)으로 변화되어 성인용으로도 사용됩니다.

松菊里 외독널(單甕棺) 

 

 

 甕棺 出土狀態 모양 益山 石泉里 53.0cm (國立全州博物館)

 

(三千浦勒島甕棺) 

 

 

 ★ 청동기시대의 예술 활동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는 경상남도 울산 大谷里 반구대와

川前里, 경상북도 고령 양전동의 암각화가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바위 절벽에 의도한 형체를 쪼아내거나 음각선으로 윤곽을 낸 것으로

호랑이.사슴 등의 육지동물, 고래.돌고래 등의 바다동물, 배.사람.사냥꾼 등, 

고령 양전동의 암각화는 同心圓과 네모를 비롯한 기하학무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티브는 시베리아반도에서 시작되어 북부 유라시아에 퍼져있는 선사시대 암각화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청동기시대의 커다란 특징은 벼농사의 보급과 농업공동체의 확립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벼농사는 중국에서 들어 온 것으로 그 시기에 대해서는 견해차이가 있지만,

신석기시대 말에 유입되어 청동기시대에 보편화 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경기도 흔암리와 평양 남경, 부여 송국리유적 등에서 탄화미가 출토된바 있습니다.

 

 불탄 쌀 炭化米 (夫餘 松菊里遺蹟)

 

炭化米 細部 <夫餘 松菊里遺蹟出土>

 

 

 

최근에는 실제 벼농사를 짖던 청동기시대의 논이

충남 논산 마전리와 울산 玉峴 등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

당시의 논은 나지막한 구릉 사이의 계곡에 형성된 충적지(沖積地)에 위치하고 형태는 긴 네모꼴 또는

네모꼴이며 3평 내외로 규모는 매우 자지만 물의 유입과 배수를 위한 수로, 논두렁 등이 갖추어진

것으로 지금의 논농사 갖춤새가 이 시대에도 어느 정도 완비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전리유적에서는 논의 위쪽에서 나무로 짜맞춘 우물과 방죽 시설이 발견되어 논의 관개(灌漑)를 위한

 물 관리 시스템(system)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