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靑銅器時代 文化

鄕香 2006. 4. 1. 14:02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가

기원전 1.000년경 끝나고 무문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가 나타나게됩니다.

이 문화는 남부 지역에서는 대체로 원삼국 초기의 소위 와질토기 문화(삼한= 마한.진한.변한)와 교체되는

기원전 1세기까지 존속되며 북한에서도 기원전 2세기까지는 존속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무문토기를 사용한 주민들은 주로 낮은 구릉지대에서 생활하였고 앞 시대인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한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에서 생활하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계통의 사람이라고 여겨져 왔습니다.

즉 두문화 사이에는 주민의 出自가 다르기 대문에 생업.무덤.토기 등에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견해입니다.

물론 두 문화의 내용을 비교 검토해 보면 분명히 많은 견해를 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보면 무문토기 문화 내용 속에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요소가 적지 않게 남아 있어

두 문화의 차이가 주민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예로 평안도.황해도를 중심으로 한 서북 지방의 대표적인 무문토기인 팽이형토기나 동북 지방의 대표적인

무문토기인 구멍무늬토기는 형태나 무늬 그리고 바탕흙 등에서 빗살무늬토기의 전통을 강하게 엿볼 수 있고

도끼.끌.대패날 등의 공구류와 반달칼.갈돌과 갈판.곰배괭이 등의 농구류 그리고 화살촉.창끝 등의 무구류 등

각종 석기의 형태에 있어서도 신석기시대의 말기와 같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아직 빗살무늬토기 문화와 무문토기 문화의 교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북쪽 지방과 중국 동북지방 일대의 무문토기 계통의 문화를 가진 주민이 한반도로 들어와

先住民과 접촉하면서 문화 교류를 통해 동화하는 과정을 밟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 동북쪽의 동부여의 자손인 우태와 소서노의 실질적 아들로 생각되는 비류와 온조가 유류(유리)를 피해 '십제'란

이름의 백제의 전신을 건립한 대방땅을 떠나 서해를 건너 처음 정착지인 미추홀(인천)을 거쳐 한반도 하남에 정착한

백제의 이동 설에도 문화 흐름의 유래를 견주어 볼 요소일 수 도 있으니까요.   

 

청동기시대는 석기를 만들어 쓰던 인류가 처음으로 구리와 아연 또는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만든 금속기를 사용하기 시작함으로 기술면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한 시기입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가 해당되지만 기원1~2세기까지도 여전히 사용되었지요.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BC 10세기경 중국의 동북 지방을 비롯한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유입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 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단지 중국 동북 지역인 요령성 일대를 중심으로 한 遼寧式銅劍文化와 관계가 깊을 것이라는 점은

전기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청동기들의 출토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됩니다.

또한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상류의 미누신스크 문화와, 서쪽에서 퍼져오는 스키다이 문화,

그리고 내몽고의 오르도스 문화가 조합된 이른바 미누신스크-스키다이-오르도스 복합 문화와도 일부 관계가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영역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반도 만으로 지역을 국한 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까지의 고고학 자료에 의하면 우리 청동기 문화와 가장 관련이 깊은 지역은 지금의 중국 동북 지방인 요령성과 길림성.

흑룡강성 등 소위 동북3성으로 불리는 지역입니다.

이지역에서는 우리 청동기 문화 내용과 상통하는 무문토기로 분류할 수 있는 토기들과 반달칼(半月形石刀).돌도끼(摩製石斧).

곤봉두(棍棒頭) 등의 마제석기 그리고 활석제의 청동기 주조용 거푸집.동검.투겁창.도끼 등의 청동기 관련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돌널무덤.고인돌.널무덤 등 한반도 무덤형태의 무덤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 지역과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는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이라는 특이한 형태의 동검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상호 같은 문화권 민족으로 밀접한 관계임을 짐작케 합니다. 

이 요령식동검은

날이 선 부분이 곡선을 그리는 특이한 형태로 전체 모습이 비파라는 악기를 닮았다고 해서 비파형동검이라 불립니다.

칼몸과 칼자루를 따로 만들어 결합하는 조립식 동검으로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동검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중국 동북 지방 이외에 한족(漢族)의 발상지인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원지구에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夏)왕조 시기부터

춘추(春秋)시대 말에 이르기까지 소위 중원 지구 청동기 문화가 지속되어 왔는데

이 문화는 제례와 의식에 사용하는 청동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앞의 동북 지방 문화와는 차이를 보입니다.

중원 문화에서 보이는 동검은 춘추시대 전기 이래로 사용된 중국식 동검이 특징적이며 칼몸과 칼자루가 하나로 붙어

주조된 것으로 요령식동검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따라서 요령식동검 문화와 중국식 동검 문화는 다른 문화권의 민족임을 조심스럽게 엿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 서북방 오르도스(Ordos) 지역에도 기마민족에 의해 초원지대에 널리 퍼져 있던 동물 문양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청동기 문화가 존재하였습니다. 오로도스 청동기 문화는 후에 흉노계 문화로 연결되는데,

이 문화에서 보이는 오로도스식동검 역시 칼몸과 칼자루가 함께 주조된 소위 일주식(一鑄式) 동검이며 칼자루 끝에 대칭된

동물 문양을 주로 장식한 독특한 단검이라 앞에서 말한 동검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초기 청동기 문화는 세부적으로 차이를 보이지만 큰 틀에서 볼 때는

중국 동북 지방 일대와 한반도에 걸쳐 기원전1,000년 전반에 형성된 요령식동검 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며,

그 기원도 이 문화권에서 찾아야 하며 우리의 기원을 중국 동북 지방 북부여는 물론 고조선에서 부터 찾아야 합니다.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의 무늬가 새겨진 토기와 달리 무늬가 없는 無文土器가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석기류와

함께 청동제 유물이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이 支石墓, 石棺墓, 木棺墓, 甕棺墓 등의 무덤이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농경과 목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생산력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사회내부에 신분적 차이가 생긴 점입니다.

 

부여 松菊里, 여주 欣岩里, 평양 南京 등의 집터유적에서 출토된 불탄 쌀(炭化米)과

각지에서 발견된 불탄 잡곡(보리.조.수수.피.기장 등)을 비록하여 대전 괴정동(槐亭洞)에서 출토된 타비로 밭을 갈고있는

무늬가 새겨진 - 농경문(農耕文)청동기 유물은 농경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좋은 자료입니다.

또한 무산 범의구석(虎谷洞)유적에서는 20마리 분의 돼지뼈가 검출되어 돼지나 개 등을 집에서 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농경은 선진문명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반도의 경우는

좀 늦은 신석기시대 후기에야 시작되어 그 뒤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농경생활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서 시작 단계의 농경대상은 조.기장.피 등 북방계통의 잡곡문화였으나 청동기시대에는 쌀을 비록해 보리.수수 등

다양한 종류의 잡곡이 경작되어 본격적인 농경생활에 들어서면서 주거지역도 하천이 있는 구릉지대로 옮겨가게 되었지요.

 

청동기시대의 개념 

고고학에서의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를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 등의 네 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대란 말이 시간의 한 부분 즉 絶對年代를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연속되는 고고학적 시간 속에서

한 단계를 말합입니다.

또한 고고학자가 정해 놓은 시대는 대체로 경제적인 단계와도 일치하는 경향이 있어서 각 시대는 경제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 시대 구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기술사적인 분류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분류입니다. 

 

기술사적 분류란

인류의 문화 발전 단계를 기술의 진보 주요하게 사용된 利器의 재질로 인한 분류로,

덴마크의 톰센(c.J.Thomsen.1788~1865년)이 1836년에 제창한 '三時代法'이 최초의 기술사적 분류입니다.

삼시대법은 인류의 과거 문화 단계를 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 철기시대로 나누고 이시대가 연대적으로 연속성을 가지고

일어나게 되었다는假設입니다. 

이 가설은 당시 신설된 코펜하겐 북방고물박물관의 수집물을 정리하던 톰센이 한 시대의 유물을 한자리에모아 놓으려고 하다가

생각해낸 것으로 직접적인 영향은 歷史家 '베델 시몬센(Vedel Simonsen)에게서, 

또한 고대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TltusLucrutius기원전99~기원전55년?)의 세계론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삼시대법은 그후 유적 발굴 조사에 의해 層位별로 확인되어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1865년에는 영국의 러보크(J.Lubbock)가 톰센의 석기시대를 석기 제작 방법에 차이를 분류 기준으로 하여

다시 '구석기시대'와'신석기시대'로 구분하여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의 네 시기로 나누는 '사시대법으로

사용하게 되어 최근까지 고고학 시대 구분으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사인 시대 구분으로 보면 그 적용범위가 대체로 스칸디나비아를 비롯한 북유럽일대로 한정되어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청동기시대가 생략되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석기시대가 18세기 들어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끝나게 되는 등

지역마다 차이를 보인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래의 기준 관념을 떠나게 되었으며 전혀 관계가 없는 형식학적, 연대학적, 문화적, 경제적 용법이 부여됨으로써

본래의 의의가 상실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분류로는

요즘에는 기술 이외에도 생계, 사회, 건물, 운반, 교역, 종교, 미술, 문자 등 모드 분야의 특징을 종합해서 시대를 설정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분류 방법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일반사적인 분류에 의한 청동기시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술-청동 야금술의 출현과 물레(陶車)의 사용

생계-동물의 힘을 이용한 견인 쟁기에 의한 농耕과 농경을 위한 관계 시설의 설치

사회-城砦 도시의 성립 및 계급과 분업의 발생

건물-궁전 건물

운반-배와 수레의 사용(풍력과 가축력을 이용 계속적인 힘을 지배하고 관리)

교역-화폐와 도량형의 사용

종교-신전 건물

미술-각종 공예품의 제작

문자-문자의 사용

 

이 밖에 소련 고고학계의 前 계급사회-계급사회-사회주의사회'와 같은 발달단계적 시대 구분이나, 

'원시 문화 -괭이농경 문화-농민.촌락 문화-도시 문화'와 같은 문화단계적 시대 구분도 있으나 세계 학계에 정착된

 일률적인 시대 구분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대 구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논의가 있어 왔으나 기술사적인 분류가 일반적이며 선사시대의 구분은

대체로 '사시대법'에 다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