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

靑銅器時代 住居址(집터)

鄕香 2006. 4. 15. 19:55

 

신석기시대의 살림집으로는 동굴과 움집이 있으나 청동기시대도 마찬가지로 움집(竪穴住居)이보편적인 형태입니다.

농경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생산 경제 단계로 발전한 청동기시대에는

사냥이나 물고기잡이 등에 의존한 채집 경제 단계의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독립된 하나의 마을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움집은 평야나 하천에서 가까운 낮은 야산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보령 校成里유적과 같이 야산 꼭대기에 만들어지는 山上취락도 있습니다.

청동기인들은 부여 송국리나 울산 검단리유적에서 볼 수 있듯이

구릉상에 형성된 마을은 매우 넓은 면적에 수십 채에서 백여 채의 집들이 밀집되어 있었습니다.

마을안 살림터지역에서는 각 단위별로 토기.석기.청동기 등 생활에 필요한 각종 도구를 만들게 되고  

경계와 방어를 위한 도랑을 파거나 나무 울타리(木柵)를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곳에 커다란 마을이 만들어 지는 것은 벼농사에 필요한 농경지를 확보하고

외적으로 부터 마을 공동체를 효율적으로 방어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국리유적.검단리유적.의창덕천리유적에서는 마을둘레에 나무 울타리(木柵)이나 도랑(環濠)을 돌려

마을의 방어 기능을 더욱 강화시켰음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

 

 

<부여 송국리 유적 54지구 복원 모습> 

 

 

 

 부여 송국리유적 나무 울타리 흔적

 

 

<울산 검단리취락유적>

 

 

<松菊里 圓形住居址> 기원전 5~4세기

 

 

집터의 모양은 공간활용이 더욱 편리한 네모꼴이 대부분이며 바닥 가장자리에는 배수를 위해 도랑을 설치한 예도 있습니다. 

움의 깊이는 50cm 내외가 일반적이며 네모꼴의 경우에는 한변의 길이가 4~5m 가량이고

긴네모꼴의 경우에는 4ⅹ7m 정도로서 서까래가 있는 맞배지붕으로 복원됩니다.

집터 바닥에는 냇돌을 돌리거나 바닥을 약간 파서 만든 화덕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집이 큰 경우에는 여러개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松菊里 方形住居址> 기원전 5~4세기

 

한편 서산 休岩里. 부여 松菊里. 광주 松岩洞. 순천 大谷里. 영암 長川里. 거창 大也里 등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유적에서는

바닥 중앙에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양끝에 기둥을 세운 소위 송국리형 둥군집터가 확인되었는데

이 집터에는 화덕자리가 없으나 저장구덩이가 있어 네모꼴집터와는 구분되는 특수한 문화영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 光州 松岩洞 住居址 >지름 4.3 m 

 

 

<靈岩長川里住居址遺蹟>규모 5.1×4.7m

 

최근 조사된 보령 관산리. 익산 영등동유적에서는 마을의 중심부에서 거대한 규모의 집터가 확인되는데 이는

대가족이나 특수집단의 공동주거 내지는 석기제작소 등의 공동 작업장과 같은 공공시설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