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伽耶) 89

대가야(大加耶)

대가야는 지리 고령군조(地理 高靈郡條)에 기록되기를 "대가야국은 시조 이진아고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16대, 520년에 이르렀다(大加耶國自始祖伊珍阿鼓王至道設智王凡十六世五百二十年)"고 합니다.삼한 때까지 반로국(半路國)으로 불린 고령지역의 정치세력은 주변지역과 동일한 문화기반 위에 있었습니다.고령 반운리유적(盤雲里遺蹟)의와질토기가 영남지방의 다른 지역에서 출토된 것과 같은 점으로 이러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4세기대에 접어들면서 고령의 세력은 야로면(冶爐面)일대의 철광(鐵鑛)을 개발하고 힘을 키워 가야의 하나로 성장하였습니다.  서기 400년 신라의 요청을 받아 내려온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가야를 공격하였는데, 금관가야를 비롯한 낙동강하류의 가야세력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

아라가야(阿羅加耶)

아라가야는 삼국지에 전하는 변한 안야국(安耶國)을 기반으로 함안지방에서 성장 발전한 가야입니다.아나가야(阿那加耶) · 안나국(安羅國)  · 아시라국(阿尸羅國)으로도 불렸으며, 가야 전기(前期)부터 멸망할 대까지 계속해서 남아있던 세력입니다. 바다와 육지로 나갈 수있는 함안지역은 교통의 요지로서 가야의 모든 지역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라가야는 통치자들의 거대한 무덤을 따로 만들었으며,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전쟁을 할 때 이에 대항하여 싸울 만큼 힘을 갖추고 있었던 큰 세력입니다.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들은 함안지역을 비롯해서 인근의 馬山.宜寧.晋州 일대에서도 다수 확인 되고 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에서 보입니다. 아라가야의 고분문화는 前期 · 中期 · 後期로 나눌..

금관가야(金官加耶)

금관가야(金官加耶)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始祖 首露王이 서기 42년에 나라를 세운 후 532년 九衡王이 신라에 투항할 때까지 10대 490년 간 존속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역사책에서는 加耶 · 南加耶 · 金官國 · 駕洛國 · 南加羅 등으로도 나타납니다.금관가야는 김해지역에 있던 弁韓의 구야국이 성장.발전하여 서기300년 무렵 성립된 나라로 鐵을 매개로한 대외교역권을 장악하면서 前期加耶를 주도하게 됩니다. 금관가야의 영역은 손잡이가 달린 화로형토기와 아가리가 꺾인 굽다리접시의 분포를 통해 볼 때, 김해를 비롯하여 동쪽으로 부산지역. 서쪽으로는 창원 동읍. 진영일대로 추정됩니다. 특히 대성동 유적은 가야국의 시조(始祖) 수로(首露)가 降臨하였다고 전하는 龜旨峯과 그가 묻혔다는 傳 首露王陵 사이의..

「伽 倻의 歷史」

가야(伽耶)는 서기 300년 무렵에 三韓 중 弁韓이 모태가 되어 성립된 세력집단으로 가야(伽倻).가라(加羅.加良).가락(駕洛).임나(任那)등으로 표기되었던 고대국가로 형성하지 못하고 소국들의 연맹 형태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가야연맹체 또는 연맹왕국 "가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가야는 前期와 後期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전기는 김해지역의 구야국(狗耶國.金冠國)을 중심으로한 가야연맹을, 후기는 금관국이 신라의 영향권 내로 편입됨에 따라 고령지역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가야연맹을 의미합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철기문화가 보급되면서 경상도 해안지역의 여러 집단들도 일정한 정치세력으로 결집되어 소국(小國) 단위로 통합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이들은 변한(弁韓)으로 총칭되었던 구야국(狗耶國)이었습니..

가야(伽耶) 2007.05.30

『金冠伽倻』 1代 首露王 재위49~199 )~10代 구형왕(仇衡王)?~ ? 재

《1代 首露王 (?~199 )》(재위 49~199)일명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이다. 탄생과 치적에 관하여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직도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날 하늘의 명을 받아 9간(九干:族長) 이하 수백명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늘에 제사지내고 춤추고 노래하자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금빛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의 알이 여섯개 있었다.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