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伽耶) 93

「伽 倻의 歷史」

가야(伽耶)는 서기 300년 무렵에 三韓 중 弁韓이 모태가 되어 성립된 세력집단으로 가야(伽倻).가라(加羅.加良).가락(駕洛).임나(任那)등으로 표기되었던 고대국가로 형성하지 못하고 소국들의 연맹 형태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가야연맹체 또는 연맹왕국 "가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가야는 前期와 後期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전기는 김해지역의 구야국(狗耶國.金冠國)을 중심으로한 가야연맹을, 후기는 금관국이 신라의 영향권 내로 편입됨에 따라 고령지역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가야연맹을 의미합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철기문화가 보급되면서 경상도 해안지역의 여러 집단들도 일정한 정치세력으로 결집되어 소국(小國) 단위로 통합되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이들은 변한(弁韓)으로 총칭되었던 구야국(狗耶國)이었습니..

가야(伽耶) 2007.05.30

『金冠伽倻』 1代 首露王 재위49~199 )~10代 구형왕(仇衡王)?~ ? 재

《1代 首露王 (?~199 )》(재위 49~199)일명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김해 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이다. 탄생과 치적에 관하여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직도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날 하늘의 명을 받아 9간(九干:族長) 이하 수백명이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늘에 제사지내고 춤추고 노래하자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금빛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의 알이 여섯개 있었다.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