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야는 삼국지에 전하는 변한 안야국(安耶國)을 기반으로 함안지방에서 성장 발전한 가야입니다.
아나가야(阿那加耶) · 안나국(安羅國) · 아시라국(阿尸羅國)으로도 불렸으며, 가야 전기(前期)부터 멸망할 대까지 계속해서 남아있던 세력입니다. 바다와 육지로 나갈 수있는 함안지역은 교통의 요지로서 가야의 모든 지역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곳입니다.
아라가야는 통치자들의 거대한 무덤을 따로 만들었으며,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남쪽으로 내려와 전쟁을 할 때 이에 대항하여 싸울 만큼 힘을 갖추고 있었던 큰 세력입니다.
아라가야의 유적과 유물들은 함안지역을 비롯해서 인근의 馬山.宜寧.晋州 일대에서도 다수 확인 되고 있을 정도로 넓은 지역에서 보입니다. 아라가야의 고분문화는 前期 · 中期 · 後期로 나눌 수 있고 中期는 무덤양식과 유물의 특징에 따라 다시 2단계로 細分이 가능합니다.
前期는 서기 3세기경에서 4세기말에 해당되는데, 길이 4m이내의 소형덧널무덤이 주류를 이룬 시기이며 대표적인 것으로 황사리(篁沙里)고분군 · 윤외리(輪外里)고분군 · 회산리(會山里)신산고분군 · 말이리(末伊里) 북쪽 능선부의 발굴유구 등이 있습니다.
中期는 아라가야의 전성기로서 서기 5세기대의 약 100년 동안이며, 무덤양식과 출토유물의형식에 따라
대형덧널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의 유행단계로 나누어집니다. 말이산고분군이 대표적인 유적이며,
5세기 초에서 중엽에 걸친 시기에는 길이 4m이상의 대형덧널무덤이 조성되기 시작합니다.
덧널의 규모가 커지면서 불꽃무늬굽다리접시(火焰文透窓高杯)가 출현하며 다량의 토기와 말갑옷 · 고리자루큰칼 · 미늘쇠(有刺利器) 등의 풍부한 철기가 부장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 통치자의 형성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즉 말이산 고분군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세력집단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 입니다.
5세기 후반에는 구덩식돌널무덤이 크게 유행하며 말이산고분군을 비롯하여 가야리 . 신음리 등지의 대형고분군이 조영됩니다.
돌덧널은 길이가 10m에 이르는 대형이 만들어지고 봉토의 규모도 지름 20m, 높이 6m이상으로커집니다.
순장(殉葬)도 이루어지는데 여섯 사람이나 되는 순장자가 있는 무덤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무렵이 아라가야의 최전성기로 여겨지며 그 영역은 현재의 함안군 일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남강 연안의 의령, 진주지역까지 확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後期는 6세기 전반대로서 이전 단계까지 산발적으로 축조되어 왔던 덧널무덤이 자취를 감추고 직전단계에 유행한 대형의 구덩식돌덧널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무덤양식인 옆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의 축조가 성행합니다.
토기에 있어서도 변화가 일어나 불꽃무늬굽다리접시가 완전히 사라지고 투껑접시(高杯) · 한 줄의 네모진 굽구멍이 뚫린 손잡이굽다리접시(把手附一段方形透窓高杯)와 고령지방 양식의 토기가 유입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고령의 대가야와 함께 후기 가야연맹의 핵심적인 존재로서 남부 가야지역에서 맹위를 자랑하던 아라가야는 말이리고분군의 지속적인 축조로 보아 독자적인 정치체를 계속 유지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라가야는 6세기 이후 가야세력에 대한 신라(新羅)의 계속적인 압박에 대항하기 위하여 안으로는 가야세력의 결속을 꾀하고 밖으로는 백제 · 왜와도 손잡아 부흥에 앞장서게 됩니다. 그러나 6세기 중반 이후 신라의 강력한 정복전쟁의 희생물이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고분 / Unesco Gaya Tumuli 》 (史蹟 第 515號)

〈함안 말이산 고분군 / 咸安末伊山阿羅伽倻古墳群
古墳群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본 가운데 전경으로 남북으로 약 2km 정도 뻗은 중심능선과 좌우 가지능선 줄기를 따라 고분들이 줄지어 있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 (사적 제 515호)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아라가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이 조성되어 있는 고분군으로 아라가야 대표적 유적이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을 한자로 표시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을 표시하는데, 이를 보아 말이산의 어원이 아라가야의 왕과 관련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말이산은 함안 가야분지에 위치한 해발 40~70m의 나지막한 구릉이다.
남북으로 약 2km 정도 길게 뻗은 중심능선과 이로부터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으로 되어 있다. 고분군은 구릉의 중심과 가지능선에 열을 지어 서 있으며 이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산 위에 산‘이라는 경외(敬畏)의 느낌을 받게 한다
말이산 고분군의 면적은 52만m2로 단일 고분유적으로서는 국내 최대급이다.
말이산 구릉의 주능선과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가지능선 꼭대기에는 대형의 봉토분이, 경사면에는 중소형의 고분군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대형의 봉토분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중반~6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을 1~37호분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정밀지표조사 결과 이들 봉토분을 포함해서 약 1,000기 이상의
고분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말이산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에 12호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창원대학교박물관, 경남연구원 등
여러 기관에 의해 수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말이산고분군은 널무덤(木棺墓)서 대형의 덧널무덤(木槨墓)으로
교체되고 아라가야의 전성기의 5~6세기에는 돌덧널무덤(石槨墓)과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을 중심구조로 하는 대형 봉분이
밀집 분포하는 고분군으로 밝혀졌다.
특히 1918년 일제에 의한 약탈적 발굴조사 이후 100년 만에
이루어진 말이산 13호분 발굴조사에서는 가야고분 최초로 별자리가
새겨진 덮개돌이 확인되어 가야인의 천문사상을 연구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에도 말갑옷을 비롯한 말갖춤새, 꾸미개, 철제무기류, 토기류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이 유물들은 예술성과 실용성을 갖춘 아라가야의 수준 높은 문화와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말이산 고분군은 수준 높은 고대문화를 간직한 채 한반도의 주요 국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발전했던 아라가야의 대표적 유적이라 할 수 있다.

咸安 도학리 11號 돌덧널무덤

수레바퀴모양토기(車輪飾土器)
咸安 末伊山34號墳 5世紀 高 14cm 幅 20cm.

↑그릇받침(筒形器臺)
咸安 末伊山34號墳 5世紀 高 58.0cm 口俓 20.2cm.

↑ 그릇받침(鉢形器臺)
咸安 末伊山34號墳 5世紀 高 52.5cm 口俓 46.0cm.

↑ 뚜컹항아리(有蓋壺)
咸安 末伊山34號墳 5世紀 (壺)高 44.0cm.口俓 15.0cm.(蓋)高 13.0cm.口俓 20.5cm.

굽다리항아리(臺附壺)
咸安 末伊山34號墳 5世紀 (壺)高 28.2cm.口俓 15.7 cm.

여러가지토기(土器 各種)
咸安 末伊山34號墳 5世紀 高 cm.口俓 cm.

불꽃무늬굽다리접시(火焰文透窓高杯)
咸安 道項里10號墳 5世紀 高 19.1cm.口俓 18.9cm.

굽다리 접시(高杯)
咸安 篁沙里 古墳群 4世紀 高 cm.口俓cm.
굽다리 접시(高杯)
咸安 篁沙里 古墳群 4世紀 高 13.2cm.口俓 14.0 cm.
굽다리 접시(高杯)
咸安 篁沙里 古墳群 4世紀 高 cm.口俓cm.

그릇받침(器臺)
咸安 篁沙里 36號墳 4世紀 高 18.7cm.口俓 20.9 cm.

손잡이잔(把手附杯)
咸安 篁沙里 古墳群 4世紀 (右)高10.7 cm.口俓9.5cm.

굽다리항아리(臺附壺)
咸安 篁沙里 35號 . 44號墳 4世紀 (右)高 17.7cm.口俓 11.8 cm.

굽다리 접시(高杯)
馬山 縣洞 8號墳 4世紀 (左)高 13.1cm.口俓18.4cm.
〈咸安 馬甲塚 馬甲出土狀態 〉 5世紀
금입사고리자루칼(金入絲環頭大刀)
咸安 馬甲塚 5世紀 長 89.7cm 幅4.0cm.

미늘쇠(有刺利器)
咸安 道項里3號墳 5世紀 長35.9 cm 幅10.2cm.

덩이쇠(鐵錠)
咸安 道項里3號墳 5世紀 長12.5cm

재갈(銜)
咸安 道項里3號墳 5世紀 長12.5cm
살포(鐵鏟) 투겁창〈鐵矛(金+牟)〉
咸安 道項里34號墳 5世紀 투겁창 長62.0cm 幅4.3cm,
咸安 道項里27號墳 5世紀 살포 長 46.5 cm ,

함안 말이산 아라가야 고분군에서 - 明揆 -
'가야(伽耶) > 가야 유물(伽耶遺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퀴모양토기(車輪飾角杯) (0) | 2008.01.10 |
---|---|
손잡이달린 잔(把手附杯) (0) | 2008.01.10 |
달팽이모양의 손잡이 달린 잔 (0) | 2008.01.10 |
가락국 시조 왕릉 위치를 새긴 판(始祖駕洛國王陵圖板) (0) | 2008.01.04 |
대가야(大加耶) (0) | 2007.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