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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生覚」

〈나눔과 관계〉 인간은 무엇이고 사람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볼 때 인간이나 사람, 모두 같은 의미겠지만, 사회적 인식으로 볼 때, 인간은 문명이 발생하기 전 원초적 본질을 말하며, 사람이란 문명의 혜택을 입은 교육된 인격체를 말함이겠다. 친구란 무엇인가? 친구란 대등한 인격체의 사람과 사람이 상호 존중하고 예의의 어긋남이 없는 도타움이겠다. 내 위아래 네 없고, 네 위아래 내 없으니 평등이겠다. 친구에서 어느 한 사람이 상대에게 우쭐거리거나 얕잡아 보고 무례한 행동을 한다면 어찌 친구라 하겠는가! 이는 아랫사람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실이겠다. 친구란 서로가 배려와 존중으로 대함을 교분으로 삼아 어긋남이 없어야겠다. 늘 자신을 돌이켜 보고 교만을 경계해야할 것이다. 이 방의 벗들은 산전수전..

「꿈 같던 시절」

코로나로 홍역을 치르고 아직은 좀 개운치 않은 머리로 쉬고 있자니 연일 날씨마저 살결 아리게 춥다. 아직은 먼 남쪽에서 머물고 있을 봄이 그리워지는 까닭이겠다. 남으로 낸 베란다에 한겨울 햇살이 따사롭다(눈부시게 바스러져 내린다) 그 포근함에 젖어 있노라니 두 교시 끝난 휴식 시간에 고무줄 놀이하던 여자애들 모습이 아지랑이 가물거리듯 춤을 춘다. “푸른 바다 건너서 봄이 봄이 와요. 나비 앞장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 들을 지나 산 넘어 봄이 봄이 와요 제비 앞장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 햇볕 따습게 내리는 운동장에서 두 여자 아이가 노래를 부르며 마주 늘려 잡은 고무줄 가운데에서 장단에 맞춰 검정치마에 맨발로 고무줄을 이리저리 넘고 때로는 몸을 회전시켜 고무줄을 질겅질겅 밟으면서 나비처럼 나풀나풀 춤을 ..

경기 옛 길 6大路 47개 全 구간 538.3km 완주

《경기옛길 6大路》이 길을 걸으며 마음과 몸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한강(무쇠막강) 건너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에 조상 대대로 적(고향)을 두고 신당동에서 자란 내가 경기도가 이리 넓고 동과 서, 남과 북 간에 말씨도 생활문화도 조금씩은 다르고 발길 닫는 곳마다 산과 들이 각기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깨침을 주었습니다. 경기 옛 길이 아니었다면 생전에 접하지도 보지도 못했을 유적과 문화에 감동과 기쁨이 발걸음마다 충만하였으며 다져진 건강은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셸리의 어록처럼 봄이 오면 나비 앞장세우고 정든 이 길을 逆順으로  나풀나풀 걸을 것입니다. 건강주고 기쁨을 주신 경기 옛 길 님들께 저도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새해 福 많이 받으..

♠경기옛길 2022.12.31

코비드에 布告함

"나이 들어 더 귀한 만남이건만,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왜 이리 그리울까 보고 싶을까 애타는 그리움에 몸부림치고 답답한 우리 가슴 눈물 고인다.서로 보면 즐거운 행복이건만,  우한폐렴 창궐하니 방콕이라네짝지도 동무들도 보고 싶건만 애달피 불러 봐도 만날 수 없네 떠나거라 사라져라 우한 폐렴아."   삼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코로나 네가 처음 왔을 때 난 부드럽게 노래로 널 다독이며 물러가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너는 우한 폐렴이란 이름마저 코비드라는 이름으로 슬쩍 바꿔 타고 번지기 시작한지도 삼년이 넘어갔다. 그동안 나는 어찌저찌 운 좋게 잘 넘어갔는데,드디어 너는 마수를 나와 짝지에게도 뻗었다.  며칠 전 스리슬쩍 내 허락도 없이 내도 모르게 내 鼻喉로 스며들어 내 몸에 터 억 자리 ..

「 나비 앞 장 세우고 」

갈 곳이 있어 내다본 창밖은 어제 내린 흰 눈이 굳어 반질반질 潤이 나고 오고가는 이들 걸음걸이가 조심스런 모양새다. 팔순을 바라보는 耆耉의 몸이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겠다. 어느 시인은 '사월은 천치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고, 또 누구는 이리 읊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내 보기에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 같이 평범하고 속된 사람은 간절히 봄을 기다린다. 옷을 서너 겹 입지 않아 가뿐해 좋고, 주제도 모르고 우쭐대는 사람도, 짧은 見識으로 남을 재단하는 사람도, 물욕에 사람을 기만하고, 사리분별도 못하는 가식적인 인간을 피해서 순수한 자연을 찾아 길 떠날 수 있는 나비 앞장세우고 오는 봄을 기다린다. 죽어 저승 갈 때 평생을 안주하며 부리던 몸뚱이조차도 챙겨가지 못하는..

《 꽃가루(花粉)》

서울 가까운 아차산 동쪽자락에 구리시 아천동이라는 오순도순 예쁜 작은 마을을 감싼 산자락에 배와 포도와 복숭아를 심은 꽤 큰 과수원을 일궈 조상대대로 이어 살아온 친구가 있다. 이제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육남매가 분할 받은 과수원을 서울사람들에게 하나 둘 팔고 서울로 떠나고 그 자리에 서울사람들이 집을 짓고 들어와 제법 큰 마을이 되었다. 친구는 몇 해 전부터 물려받은 포도밭자리에 소일 삼아 벌을 치는데 몇 해째 가을이 저물 무렵이면 꿀이나 화분을 들고 찾아준다. 꿀은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었는데, 화분은 어떻게 먹는 줄 몰라 재작년에 준 것도 그대로 있는데 올해도 가져다주었으니 고민이 생겼다. 이걸 어떻게 먹지? 생각하다가 찻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보니 표현 못할 신비로운 온갖 향기로움이 마..

「신라 진흥왕 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

《북한산 비봉 北漢山 碑峰》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는 삼국시대 신라 제 24대 진흥왕(진흥왕16년 : 555년)의 영토 확장과 순수의 목적, 순수에 참여한 인물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진흥왕은 불교의 이상적 왕인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기를 원하였으며 불과 수 년 만에 한반도 중부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위업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에는 스스로 미륵의 화신이 되고자 한 젊은 화랑들의 헌신적인 희생도 한 몫 하였습니다. 568년 진흥왕은 太王을 자부하며 변경까지 수레를 몰아서 나라 안을 살피는 순수巡狩의 길에 올랐습니다. 북한산을 거쳐 8월에는 함경도 함흥에 있는 황초령黃草嶺에 이르러 비문을 남겨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에 즈음하여》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신라..

「 경주부윤 조기복 묘비 (추사 김정희의 隸書)」

파주시 광탄면 고려시대 국립숙박시설이었던 혜음원址를 찾아 보기위해 버스에서 내려 길 들어섰는데 혜음원지 방문자센터 마당 맞은편 우측 산자락에 "추사 김정희 친필 조기복 묘표"라고 쓴 자줏빛 관광 고적 알림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걸 어찌 그냥 지나치랴 기꺼이 발길을 옮겨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묘 주인공보다 추사의 글씨로 인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조기복(趙基復 : 英祖49年(1773년)~憲宗5年(1839년)은 本貫은 林川, 字는 백초(伯初)이며 조선 후기 문신이다. 10대에 걸쳐 벼슬을 지낸 가문으로 刑曹判書를 지낸 高祖 효정공(孝貞公)오재(寤齋) 趙正萬, 水原都護府使를 歷任한 曾祖 趙明奎, 郡守를 지낸 祖父 趙德浩, 通德郞을 역임하고 司僕寺正에 追贈된 할아버지(生父의 父)趙德洞, 아버지는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