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신석기시대(磨製石器간석기)

新石器時代

鄕香 2006. 3. 1. 23:49

기원전 8천년 경이 되면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해지는 후빙기가 되는데,

이 새로운 자연 환경 속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원시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을 하게 됩니다.

이를 배경으로 인류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를 신석기시대라 합니다.

유물로는 토기.석기.골각기.토제품과 여러가지 자연유물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신석기문화는 농경을 배경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마제석기(摩製石器 :간석기)와 토기(土器)등 신석기적 문화 특성을 가지면서

기원전 6~5천년 경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토기의 출현입니다.

토기는 진흙을 빚어 불에 구워낸 것으로 인간이 처음으로 경험한 화학적 변화의 산물입니다.

당시의 토기는 물에 개어 만든 진흙을 손으로 직접 빚거나 길고 긴 둥근 진흙띠를 감아 올려

형태를 만든 후 그늘에서 말리며 무늬를 넣었는데 구운 온도는 600~700℃ 정도입니다.

토기는 무늬를 베푸는 방법에 따라 덧무늬(隆起文)토기와 빗살무늬(櫛文)토기로 나뉩니다.

 

덧무늬(隆起文)토기는 토기 겉면에 진흙띠를 붙이거나 겉면을 맞집어 돋게하여 무늬를 만든 것으로

부산 동삼동,통영 상노대도.연대도 조개더미 등에서 빗살무늬토기층보다 아랫층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토기는 부산.김해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해안에서 주로 출토되지만 북으로는 양양 오산리,

서쪽으로는 신안 흑산도,

내륙지방으로는 단양 상시리 바위그늘 유적에서도 출토되어

조사가 진행되면 분포 범위가 더 넓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 즐문)는 신석기시대의 대표되는 토기입니다.

다양한 무늬새기개로 토기 표면을 누르거나 그어서 기하학적 형태를 이룬 무늬를 장식한 것입니다.

그릇의 표면은 매끄럽고 구울 때 파손이나 뒤틀림을 막기 위해 석면이나 활석가루를 섞기도 하였습니다.

바닥은 일부 납짝한 것도 있으나 둥굴거나 뾰죽한 것이 많고 입쪽이 크게 바라진 형태가 대부분입니다.

덧무늬토기가 일부 지역에서만 출토되는 것에 비해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를 빗살무늬토기문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토기의 형태와 무늬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그릇모양.무늬를 기준으로 한반도의 신석기문화를 동북.서북.중서부.남부지방 등 크게 네 지역군으로

나누는 신석기시대 편년의 기준이 되어왔습니다. 

대동강,재령강, 한강유역과 서해안의 인접지역에 해당하는

중.서부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뾰족바닥(尖底)을 기본으로 하는 반란형(半卵形)토기가 대표적입니다.

이 지역 토기의 특징은 바닥.몸통.아가리에 각각 서로 다른 무늬가 새겨진 초기단계에서

점차 바닥→몸통→아가리의 순서로 무늬가 생략되다가 청동기(靑銅器)시대의 민무늬토기로 넘어 갑니다.

 

 우리 나라 남해안 신석기 시대는

동삼동.수가리패총 등의 층위와 무늬를 중심으로 5기로 편년하는데,

 

조기(早期)를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덧무늬).

전기(前期)는 자돌(刺突),압인(押引)문토기.     

중기(中期)는 태선침선문토기(太線沈線文土器).

후기(後期)는 퇴화침선문토기(退化沈線文土器).

말기(末期)는 이중구연토기(二重口緣土器).로 나눕니다.

 

 토기의 모양은 밑이 뾰죽한 포탄형이 대부분이나,

밑이 납작한 항아리나 화분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있으며 목이 긴 항아리도 조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