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신석기시대(磨製石器간석기)

新石器時 鰲山里遺蹟址 遺物

鄕香 2006. 4. 17. 10:19

『鰲山里遺蹟』

江原道 襄陽郡 손양면 鰲山里에 위치한 이 유적은 동해안으로부터 내륙쪽으로 약 200m 가량 떨어진 '쌍호'라고 불리는 석호의 동북모서리인 사구위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 유적은 1977년 유적이 위치한 사구의 토사를 채취하여 호수를 매립하던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는 6차례에 걸친 지표조사를 실시하였고, 1981년부터 모두 7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모두 14기의 원형주거지가 확인되었으며, 복원가능한 납작밑 토기 20여점을 포함하여 다량의 토기편과 결합식낚시바늘, 돌톱, 흑요석제 석기, 점토제 인면상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ⅤⅥ(5-6)층주거지 조사 광경〉

 

(흙으로 빚은 얼굴土製人面像 /高5.1cm, 幅4.6cm, 厚1.0cm)

 

유적의 층위는 지점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략 4.5m의 퇴적층에서여섯 개의 자연층위가 확인되었습니다. 제Ⅰ층은 점토층으로 일부지역에서만 확인되며, 여기서는 점토대토기를 비롯한 청동기시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제Ⅱ층에서 Ⅳ층까지는 사질로 이루어진 층으로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며, Ⅳ층과 Ⅵ층은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

Ⅱ층을 신석기시대 상층, Ⅲ층을 신석기시대 중층, 그리고 Ⅴ층을 신석기시대 하층으로 구분하였으며, 이 중 Ⅴ층은 다시 7개의 층위로구분되지만 출토유물이나 C¹⁴연대측정결과 이들 층간의 현저한 시간차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자리는 모두 하층에서만 확인되었는데, 대체로 직경 6m 가량의 원형에 가까운 평면형태를 하고 있으며, 모래로 된 바닥에는 5cm 정도의 두께로 점토를 깐 다음 불을 놓아 단단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주거지 내부 중앙에는 좁고 긴 돌을 4개나 여러 개 돌려 만든 나모난 화덕자리가 하나 또는 두 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크기는 110X70cm 정도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오산리 7,8호주거지 전경(1984)〉

 

〈오산리 8호주거지 내부 노지 전경(1984)〉

 

집자리의 내부 및 주변에서는 다량의 토기와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하층에서는 모두 납작밑 토기만 출토되었습니다.

이들 토기는 좁은 바닥에 아가리가 넓은 발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토기의 표면은 갈아서 광택이 나며, 아가리쪽에만 국한하여 문양을 시문하였습니다. 시문방법은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점열문이나 손톱무늬 등의 눌러새긴무늬와 종주평행단사선문 위주의 새긴무늬, 그리고 이들 두 가지가 혼합된 방식이 있습니다. 그밖에 하층에서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융기문토기가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중층에서도 역시 납작밑 토기만이 출토되고 있으며, 점과 선을 배합하여 그릇 상반부에만 시문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상층에서는 직립구연에 뾰족한 바닥을 가진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는데, 구연부에는 밀집단사선문, 사격자문, 띠무늬 등이 시문되어 있고, 동체부에는 어골문을 시문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덧무늬토기隆起文/高16.0cm,口徑23.5cm,底徑8.9cm)              (덧무늬토기隆起文/高14.5cm,口徑21.0cm,底徑9.2cm)

 

 

(납작밑바리平底鉢/高15.4cm,口徑20.6cm,底徑10.3cm)               (납작밑바리平底鉢/高28.0cm,口徑37.5cm,底徑8.5cm)

 

 

(납작밑바리平底鉢/高30.3cm,口徑39.5cm,底徑cm)                (납작밑바리平底鉢/高25.7cm,口徑28.4cm,底徑7.4cm)

 

 

(납작밑바리平底鉢 / 高11.5cm,口徑14.5cm,底徑6.4cm)          (두귀달린항아리兩耳附壺 / 高21.5cm,口徑cm,底徑cm)

 

 (두귀달린항아리兩耳附壺 / 高17.2cm,口徑12.2cm,底徑cm)

 

 

(두귀달린항아리兩耳附壺 / 高17.5cm,口徑8.3cm,底徑6.4cm)         (긴목 항아리長頸壺 / 高31.2cm,口徑10.6cm, 底徑6.4cm)

 

 

(납작밑바리平底鉢 / 高9.4cm,口徑10.8cm,底徑7.0cm)                (납작밑바리平底鉢 / 高18.1cm,口徑23.2cm,底徑7.0cm)

 

 

             (납작밑 바리平底鉢 / 高10.5cm,口徑15.8cm,底徑7.9cm)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 / 高42.0cm,口徑48.0cm)

 

토기와 함께 다량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는데, 결합식 낚시바늘, 장방형 돌칼, 화살촉, 돌도끼, 돌톱, 추형석기, 흑요석제 돌칼 등 16종 242점의 석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중 결합식 낚시바늘은 가장 특색있는 어구의 하나인데, 낚시의 허리부분과 바늘을 별도로 제작하여 묶어서 사용하게 만든 것입니다. 낚시의 허리부분은 길이 10cm 정도로 돌을 갈아서 만들었으며,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바늘 부분은 동물뼈를 깎아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밖에 돌톱은 비교적 강도가 높은 혈암으로 제작한 것인데, 길이는 24cm 정도이며 23개의 톱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유적에서 채집된 목탄시료에 대한 방사선탄소연대 층정결과 B.C, 6,000년에 해당하는 연대가 나왔으며, 토기의 형식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시대의 유적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밖에 출토된 흑요석에 대한 형광X선분석을 실시한 결과 원산지가 백두산으로 밝혀지고 있어 선사시대 원재료의 교역에 관한 과학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 결합식낚시바늘結合式釣針 / 高(左)9.4cm 〉

 

〈 결합식낚시바늘結合式釣針 / 高(左)9.4cm 〉

 

(돌톱石鋸 / 高4.3cm,幅18.0cm,厚2.5cm)

 

(돌추 각종石錘各種 / 高(左)7.5cm,)

 

(자수정및화살촉 紫水晶 , 石鏃 / 高(左)5.2cm,幅1.4cm)

 

(돌도끼 각종石斧 各種 / 高(左)12.9cm,幅18.0cm,厚2.5cm)

 

(돌칼 각종石刀 各種 / 高(左)10.5cm,幅18.0cm,厚2.5cm)

 

(갈돌石+展石 / 幅8.6cm,)

 

(돌괭이 石金+秋 / 高28.5cm)

 

 

(긁개 / 高 8.6cm)

 

 

(흑요석원석 黑曜石原石 / 高 13.2cm)

 

 

본 글은 1997년 12월 서울학교박물관 발굴유물도록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