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신석기시대(磨製石器간석기)

新石器時代의 집터와 貝塚 .무덤.

鄕香 2006. 3. 10. 12:42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물과 식량 자원이 풍부한 큰 강이나 바닷가 가까운 도서 지역에서

땅을 파고 만든 움집(竪穴住居수혈주거)을 짓고 모여 살았지요.

남긴 유적으로는 집자리와 조개무지,무덤 등이 있습니다.

집자리는 대체로 해안가 언덕이나 강변의 높은 평지에 위치하며, 일정한 깊이로 땅을 파고

나무기둥을 세운 뒤 갈대나 억새 등으로 이엉을 얹어 만든 움집입니다.

움의 형태는 직경 4~5m. 깊이 50~60cm정도입니다.

서울 岩寺洞 유적에서 조사된 집자리에서는 바닥 한 가운데에 냇돌을 돌려 만든 화덕이 발견되었는데,

실내를 따뜻하게 하거나 음식물을 조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닥은 아무 시설이 없는 맨 바닥과 진흙을 다져 만든 바닥이 있는데

그 위에 풀이나 짐승 가죽을 깔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산리 집터 (鰲山里遺蹟)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에 위치하는 집터유적으로 1977년 쌍호라는 호수를 매몰하기 위해

이 곳의 흙을 채취하던중 다량의 석기와 토기편이 출토됨으로 발견되어

서울대학교에서 1981~1985년까지 6차에 걸쳐 학술조사를실시하였는데,

이 유적은 6개의 퇴적층으로 문화층은 청동기시대와 신석기시대층으로,

신석기시대층은 다시 3개층으로 세분됩니다.

맨윗층에서는 중.서부지방 신석기시대의 특징적인 뾰족바닥의 빗살무늬토기가,

가운데충에서는 주로 납짭바닥의 바리토기가 출토되었는데 바리토기의 바닥에는 나뭇잎무늬가 찍혀 있는

것도 있습니다. 민무늬(無文土器)가 보편적이나 무늬토기는 동북지방의 것과 유사합니다.

맨아랫층에서는 지름 약 6m 정도로파서 바닥을 만들고 가운데에 70×70cm 크기의 화덕자리가 한두개씩

마련된 10기의 움집터가 확인되었으며 이 층에서는 바닥에 비해 아가리가 넓은 납짝바닥의 바리토기를

비롯하여 독(甕)과 항아리가 출토되었습니다.

출토된 바리토기의 아가리에 무늬가 있고 석기로는 이음식낚시축.톱.칼.흑요석제 인기(刃器)등이며

이처럼 어로용 석기들이 다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기잡이에 큰 비중을 둔 생활을 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석기시대층에서 채취된 목탄의 탄소연대가 B.C.6000~5000년으로 측정되어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의 연대를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되었습니다.

오산리유적은 동북지방과 중.서부지방 그리고 남부지방이 접하는 지점에 위치하면서

각 지역의 유물들이 섞여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의 지역적 문화를 비교하는데 중요한 유적입니다.♧

 

 

 

<암사동 신석기시대 불탄 집터 (사적267호) >

 

암사동유적 (岩寺洞遺蹟)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집터유적으로 한강 동편의 근접한 충적사질층에

형성되어 있으며 강건너 맞은 편에는 삼국시대의 아차산성(峨嵯山城.阿且山城)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때 문화층이 노출되면서 알려져

일본인 요고야마(橫山將三郞),후지다(ㅇ田亮第)등이 많은 유물을 채집했고,1967년 전국대학연합조사단이,

1968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1971~1975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으며,

1983~84년에 선사유적공원조성 관계로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재발굴하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지점은 6개의 퇴적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문화층은 3개층으로

아랫층(1문화층)은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고 집터와 돌무지 유구가 확인된 층이며,

가운데층(2문화층)은 민무늬토기의 바탕흙에 태선이 시문된 소위 민무늬계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는 층이고,

윗층(3문화층)은 삼국시대의 이음독무덤(合口式甕棺墓)과 건물터의 적심석 등이 발견되는 층입니다.

신석기시대의 집터로는 '71년에 8기. '73년에 1기. '74년에 6기.'75년에 11기 등 모두 26기의 움집터가

조사되었습니다. 평면 형태는 둥근 것도 있으나 모줄인 네모꼴이 대부분이며 지름이나 한 변이 4~6m 정도가

보편적입니다. 바닥가운데는 냇돌이나 깬돌(割石)을 돌려 만든 화덕이 마련되어 있었고

주변에 저장용토기가 박혀 있는 집터도 확인되었으며 1975년 발굴된 2호 집터에서는 중심기둥과 함께

벽체의 불탄기둥들이 확인되어 집의 형태를 복원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발굴된 유물로는 뾰족바닥에 아가리가 곧추선 반란형 빗살무늬토기가 대부분이며

겉면에는 아가리.몸통.바닥에 서로 다른무늬가 다양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바탕흙은 운모가 섞인 사질토가 대부분이나 활석과 석면이 섞인 것도 있습니다.

토기의 형태와 새겨진 무늬는 하남 미사리.봉산 지탑리.온천 궁산리유적에서 출토된 것들과 유사하여 

이들 지역이 신석기시대에는 같은 문화영역 안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석기로는 강자갈을 이용한 긁개.찍개.도끼 등의 뗀석기와 소형의 그물추가 다량 출토되고

간석기로는 도끼.화살촉.갈판과 갈돌.공이 등이며, 자연유물로는 불에 탄 도토리와 뼈 등이 검출되었으며,

석기중에는 짐승과 물고기잡이용 뿐만 아니라 낫.보습 등도 출토되어

당시에 이미 농경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문화층에서 채취된 목탄의 탄소연대가 B.C.4500~B.C.3500년으로 측정되었으며

토기를 비롯한 암사동유적의 출토유물은 내몽고.시베리아의 바이칼(Baikal)호 주변에서 출토되는

유물과도 연관관계를 갖고 있어 우리나라의 신석기문화의 뿌리를 연구하는데에도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지경리 집터>  

<地境里遺蹟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지경리 해발 6~9m의 낮은 모래언덕에 분포하고 있는 

신석기와 원삼국시대의 집터유적으로 주문진~양구간 7번국도 확장 및 포장공사 도중에 노출되어 

1995~1996년에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는데,

신석기시대 집터8기. 원삼국시대 집터 3기가 확인되었고 노출되어 있는 토층은 5개의 퇴적층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문화층은 신석기시대 문화층과 원삼국시대 문화층으로 구분됩니다.

신석기시대의 집터는 둥굴거나 모줄인 네모꼴의 구덩이를 파고 만든 움집터로서 바닥 가운데에 

화덕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 유적에서는 동북지방 토기에서 볼 수 있는 납작바닥에 손잡이가 달리고 점줄무늬가 베풀어진 단지와 세로밀집선무늬가 새겨진 남부지방계 토기 그리고 짧은 빗금무늬에 가로고기뼈무늬 등이 베풀어진 중.서부지방계 토기 등이 함께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중기의 문화연구와 전파경로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습니다.♧ 

 

 

 

<동삼동 조개더미 (사적266호) >  

<東三洞遺蹟址>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하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유적으로

이 조개더미는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말기에 이르기 까지 오랜 기간을 걸쳐 형성되어 있어 

여러층으로 세분될 수도 있으나 크게 3개의 문화층(흑갈색부식토층.패각층.혼토패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맨아래층에서는 원시민무늬토기와 덧무늬토기가 

가운데층에서는 뾰족 또는 둥근바닥의 전형적인 빗살무늬토기가,

맨윗층에서는 아가리 주위에만 2~3줄의 조잡한 줄무늬를 베푼 빗살무늬토기와

아가리 부분을 밖으로 접어 붙인 겹아가리토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토기외에도 규암제의 납작도끼.세모꼴작살.생식기모양석물.격지로 만든 긁게와 화살촉.낚시바늘.

무늬새기개 등의 뼈 뿔연장.팔찌.칼.가면 등의 조가비연장.흙으로 만든 조각품(土偶)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당시 주민들이 먹고 버린 각종 조가비와 짐승뼈가 다량 검출되었으며, 

유구로는 화덕자리와 매장유구로 보이는 돌무지시설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일본 규슈産으로 추정되는 흑요석과 죠몽토기편 등은 당시 두 지역의

주민들이 대한해협이라는 공동어로구역을 중심으로 교역과 문화교류 활동을 활발히 행했음을 알려 주는 

좋은 자료가 됩니다. 이 유적에서 채취된 목탄의 탄소연대가 B.C. 4790년에서 B.C.1810년 까지로 

측정되어 우리나라 남부지방 신석기문화발달 및 변화과정을 살피는데 있어 표준유적이 됩니다.

 

이 유적은 1930년 일본인 요꼬야마(橫山將三郞).오이까와(及川民次郞) 등이 부분적인 발굴을,

1963~1964년 미국인 모어(Mohr. A.)와 샘플(Sample.L.L.)은 시굴조사를실시하였으며,

1969~71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나 정식발굴조사보고서가

아직 간행되지 않아 유적의 편견문제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서로 다른 견해를 보입니다.♧

 

 

 

<연대도 조개더미 (사적335호) >

 

< 煙臺島遺蹟址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면 연곡리(煙谷里) 연대도에 위치하는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유적으로

이 유적에서는 6개의 퇴적층이 확인되었는데 이 가운데 문화층은 3개층으로 구분됩니다.

1문화층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토기편과 자기편 등이,

2문화층에서는 삼국 .고려시대의 토기편과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모두 교란되었고,

3문화층은 신석기시대의 매장유구와 유물이 출토된 층으로 매장유구는 인골이 공반된 것이 13기,

기타 2기 등 모두 15기가 밀집분포되어 있었습니다.

무덤은 대개 부정형의 구덩이를 얕게 판 후 그 안에 시신을 펴묻기하고 토기.석기.꾸미개 등의 껴묻거리를

넣은 후 작은 돌로 덮어준 형태가 대부분이나 일부 엎어묻기한 것도 보입니다.

껴묻거리의 의도적인 매납의식과 함께 머리 방향이 모두 바다를 향하는 서쪽으로 두고 있어 당시

매장풍습과 묘제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검출된 인골은 한민족 직계조상으로서의 신석기인의 연구를 크게 진전시킬 것으로 봅니다.

두개골의 귀부분에서는 잠수부에 흔히 나타나는 외이도골종(外耳道骨腫)이 확인되어 당시 주민이 소라와

전복 등 비교적 깊은 바다속의 조개류를 채취하는 등 그 활동영역이 광범위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연대도 조개더미 출토 토기는 덧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가 대부분으로 3문화층에서는 덧무늬토기가

2문화층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주축을 이뤄 토기변천과정이 잘 파악됩니다.

토기 외에도 화살촉과 작살.이음낚시축.그물추.도끼.끌.대팻날.갈판과 갈돌.숫돌.몸돌과 격지 등의

각종 석기류를 비롯하여 송곳.낚시바늘과 작살.꾸미개 등의 뼈제품과 조가비로 만든 팔찌 등의

각종 꾸미개 및 마노제 대롱옥과 옥제품이 출토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출토된 다량의 흑요석,숟가락모양석기, Sunukite 암질의 석기 등은 일본 규슈지방과의 교류는 물론 

동아시아내에서의 문화권역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이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는 1980년 초에 학계에 알려졌고,

1987년 동아대학교에서 지표조사하면서 태풍 셸마에 의한 유적파괴의 심각성을

발견하여 1988~1992년까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하였습니다.  ♧

 

 

 

<김해 수가리패총 (金海水佳里) >  

 

 

교동유적지 <校洞遺蹟>

강원도 춘천시의 市內 한 가운데 있는 鳳儀山 북쪽 기슭에서 발견된 洞窟유적입니다.

발견 당시 그 안에서 3軀의 사람뼈와 함께 생활 용구인 석기와 토기 장신구인 대롱옥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 동굴의 천정이 그을려 있는 것을 보면 무덤으로 이용하기전에 집으로 사용한 듯 합니다. 

이와 같이 동굴이 집으로 사용되다가 무덤으로 마감된 것은  이 유적이 유일한 예이지만 동굴유적으로는

평북 용천 미송리에서도 조사되었습니다. 이 동굴에서 출토된 토기는 모두 납작바닥으로, 무늬가 없는 한점을 제외하고 모두 아가리 부분에 점이나 선으로 이어진 무늬가 베풀어져 있습니다. 이런 형식은 우리나라 동북지방과 오산리유적의 토기에 많이 보입니다. 석기 가운데에도 오산리 출토품과 같은 이음낚싯바늘(結合釣針)과 

후포리 출토품과 같은 符葬用 대형 돌도끼가 있어 이를 뒷받침 합니다.         

 

 

 

< 厚浦里무덤유적 >  

< 厚浦里遺蹟址 >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후포리의 바닷가에 면한 언덕 꼭대기에서 발견된 무덤유적입니다.

지름 약4m 내외의 불규칙한 둥근 구덩이 안에 40구 이상으로 추정되는 인골이다량의 석기들과 함께

겹쳐져 출토되고 있어 여러 번의 개장(改葬)이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서는 간돌도끼(摩製石斧) 130여점과 돌대롱옥.주걱모양돌판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돌도끼는 길이 20~30cm 안팎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50cm가 넘는

큰 것과 5cm 미만의 것도 보입니다. 이와 같은 장대형 돌도끼는 춘천 교동동굴.회령 연대봉(煙坮峰).

종성 상삼봉(上三峰) 등의 유적에서도 유사한 것이 출토된바 있어 교동유적을 제외하면

동북지방과 동해안에 분포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의 본격적인 무덤시설로 아주 희귀한 예이며 집단 세골장이라는 점도

다른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조개무지는 먹고 버린 조개 껍질이 모인 쓰레기더미로 토기등을 비롯한 각종 생활 도구들이 함께
출토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거의 전해역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무덤은 경북 울진 厚浦里나 경남 통영 연대도 유적에서 조사된 바 있는데

얕은 구덩이에 시신을 펴놓고 그 위에 흙이나 자갈을 덮는 형태입니다.

이때 돌도끼나 장신구, 토기등을 껴묻꺼리로 넣기도 했습니다.

 

신석기시대의 무덤으로 춘천 교동의 동굴무덤과 울진 후포의 집단묘, 통영 연대도,욕지도,상노대도,

산등 및 부산 범방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견된 무덤들이 알려져 있지요.

울진 후포의 경우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를 이용한 洗骨葬이지만,

그 외의 무덤들은 대체로 구덩이를 얕게 파고 특별한 다른 시설은 하지 않고

바로 매장한 土葬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