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경기 옛길 평해길 제 5 코스, 물끝 · 양진나루길

鄕香 2021. 4. 8. 15:16

조선시대에는 6개의 큰 길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평해길은 서울 한양에서 경기도 동부를 거쳐 강원도 강릉을 지나 동해안 해안선을 타고 평해까지 잇는 지름길을 평해로 또는 관동대로라고 불렀습니다. 이 길은 현재의 구리와 남양주 그리고 양평을 경유하며 관동대로라는 별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관동지방인 강원도와 한양을 이어주던 길입니다.

평해로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가던 길이었고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을 데리고 강릉에서 한양으로 오던 길이며, 강원감사를 비롯하여 원주 감영의 관리와 강원도 각 군 현으로 부임한 관리들이 원주 감영을 거쳐 한양을 오가던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통해 영동·영서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다녔고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상거래를 하던 보부상과 지역 생산품을 실은 우마차들이 끊임없이 왕래하던 길이었습니다. 이렇듯 평해로는 역사와 문화와 민족의 희노애락이 스며있는 길이겠습니다. 평해로는 강과 산과 들판이 빗어낸 아름다운 전원 풍경을 음미할 수 있는 길입니다.

 

물끝길(양진나루길)은 경의중앙선 신원역에서 양평역까지 남한강 정취를 느끼며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는 길니다. 양근나루는 서울 마포나루나 뚝섬나루에서 실은 새우젓을 양근나루에 내려육로를 통해 강원도 홍천이나 횡성까지 마차로 실어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물길이 끝나고 육로교통이 시작되는 곳으로 사람과 물자, 문화를 연결해주던 양평사람들의 오랜 삶이 담긴 곳이기도 합니다. 정겨운 시골길과 나무향이 가득한 숲길 도랑에 흐르는 물소리에 발맞추어 걷다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길입니다.

 

 

신원역 앞을 걸어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강변산책길로 들어섭니다.

 

 

잘 정리된 강변공원을 혼자 무상무념으로 걷노라니 푸르른 수목의 싱그러움이 맑은 공기에 실려 가슴을 풍선처럼 상큼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주니 넓게 펼쳐진 마음으로 평온이 안개처럼 번집니다. 

    

 

 

 

강가에 수청나루가 있는 곳입니다.

수청나루는 광주시 남종면 수청리와 양평군 양서면 도곡리를 잇는 나루입니다. 

지금은 나무로 만든 목선이 아닌 아담한 기관선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지도에는 水淸津으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나루의 역사도 깊거니와 지금도 남한강 경기도 구간에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루이므로 가치가 높습니다. 

기관선인 水淸號는 항시 수청리에서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도곡리에서 강을 건널 사람은 태극기를 올려서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뱃사공이 아닌 선장이 배를 몰고 옵니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 수청나루도 조만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육교를 이용해 도로 건너편 자전거도로가 있는 보행로 갑니다. 

 

 

육교를 건너 굴다리 지나 좌측으로 -

 

 

언덕위에서 좌측 보도로 들어섭니다. 우측은 양서초등학교입니다.

 

 

4월7일 수요일 평일이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적하지만 그래도 자전거도로를 외면하고 안전을 위해 보행로를 걷기 바랍니다. 

 

 

도곡터널 

  

 

도곡터널 끝머리에서 바라본 바깥은 영화관에서 화면을 보는 느낌입니다.

 

 

터널을 나서자마자 우측에 안내판과 보도 불럭을 깔아놓은 길로 들어섭니다. 하천둑길로 이어지는 입구입니다. 

 

 

 

 

도독터널 출구 옆에서 하천가 둑으로 내려서서 뒤돌아본 정경입니다. 

 

 

걸어갈 둑길의 모습입니다 옆 어린 벚나무 가지에 평해길 리본이 바람에 간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좌측 산자락에 국수역이 보입니다.

 

 

앞 도로에서 좌측으로

 

 

길 끝머리에 국수역이 보입니다. 

 

국수역을 인증샷 하고 시각을 보니 오후1시28분, 양평까지 가려면 여기서 끼니를 해결하고 가야겠다. 어디서 뭘 먹지! 

시골역전이어서 일까 음식점이 여럿이다. 주로 자전거마니아들을 위해서 인지 전과 해장국 된장찌개 등인데 앞서본 설렁탕집이 아른거려 설렁탕을 먹기로 했다. 

 

 

상호 '어메 설렁탕' 안으로 들어서니 안방과 거실과 건너방을 개조한 실내는 산뜻하고 분위기가 맘에 든다. 

몇 팀이 안쪽에 자리하고 있기에 문설주 옆 외진 자리에 앉았다. 

 

 

묵직한 놋그릇에 담아낸 뽀얀 국물에 쇠고기도 넉넉하다. 서울에 이름 있는 설렁탕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맛이다. 

 

 

설렁탕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어메집을 나와 그 옆 전신주에 달아놓은 이정표가 가르키는 옆길로 들어섰다. 

 

 

농협마트 앞을 거쳐 좌측 골목길로 갑니다. 

 

 

마을 안 골목길 모습. 전신주에 달린 이정표에 아신역까지 3.2km 

 

 

골목이 끝나고 공터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옆에 돌계단이 있습니다. 

 

 

돌계단으로 오르면 횡단보도 건너 다리가 있습니다.

 

 

다리 건너 좌측 길로 들어서면 두 갈래길 

 

 

우측 길로 들어서 40m 정도가면 4대강 국토종주 남한강자전거길이 나오고 자전거길 우측방향으로 

 

 

4대강 국토종주 남한강자전거길 우측으로 진행

 

 

4대강 국토종주 남한강자전거길 100m 앞 원복터널로 진입 

 

 

좌측 자전거길로 갑니다.

 

 

길가에는 약쑥이 먹기 좋을 만큼 지천으로 돋아났습니다.

 

 

기곡터널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가 나란히 정다운 이 길은 자전거로 여러 번 지나갔었건만 이렇게 걸어가노라니 초행길인양 생소하다. 

 

 

 

바람에 나부끼던 꽃잎이 임의 손길인양 내 얼굴을 보듬는다.

 

 

폐철길 위에 폐열차로 레스토랑을 만든 쉼터에 만개한 벚꽃잎이 꽃비로 내리는데,

한 여인이 그 정경을 담고 있네. 꽃을 꽃이 담는 마음을 나는 담고 싶구나!

   

 

등나무터널에 폐철길에 벤치가 客을 기다린다. 등나무에 보랏빛 고운 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울까!

 

 

등나무터널을 벗어나니 저만치 아신역이 손짓한다. 어서 오라고 -

 

 

이제 5코스 종착지를 향해 우측 방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아신역 정면 앞길로 내려갑니다. 

 

 

아신역에서 150m 걸어내려가면 국도가 가로놓여 았습니다. 우측으로 아래 자전거길로 내려갑니다. 

 

 

자전거길로 내려가는 길

 

 

4대강 국토종주자전거길로 갑니다.

 

 

우측길로 들어섭니다 이정표는 양평역까지 5km 거리 임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평해 제5 물끝길 종착지점까지 5km.

  

국도교각 밑을 통과합니다. 

 

 

우측 다리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서 좌측으로

 

 

이 집 냉면이 얼마만큼 냉면맛을 내는지 나는 모른다. 양평군에서 소개글판을 내준 걸로 미루어볼 때 그 맛을 믿어볼만 하겠다. 여기서 좌측 길로 들어서자 바로 옥천냉면집 뒷길로 갑니다.  

 

 

옥천냉면집을 끼고 뒤로 이어진 자전거길은 지하통로를 통과합니다. 

 

 

육교를 건너자 바로 뒤돌아본 전경으로 옥천낸면집과 원조할매 순대국 간판이 보입니다.  

 

 

한강하구로부터 99km 지점.

 

 

4대강 국토종주자전거도로를 곧장 따라가도 양평역이지만 평해옛길은 흐드러지게 활짝 핀 벚꽃나무 뒤 육교를 넘어 우측 강변으로 갑니다. 

 

 

'덕구실보도육교'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덕구실보도육교 

 

 

강변산책길로 이어집니다.

 

 

자전거와 보행자 겸용 도로입니다.

 

 

강가 풍경은 어느 곳 어느 때나 새롭고 아름답습니다.

 

 

강가의 복사꽃을 보니 옛 시절 18번 노래가 저절로 목울대를 타고 넘습니다.

 

"복사꽃 능금 꽃이 피는 내 고향 만나면 즐거웠던 외나무다리 그리운 내 사랑아 지금은 어디

새파란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못 잊을 세월 속에 날려 보내리

 

어여쁜 눈썹달이 뜨는 내 고향 둘이서 속삭이던 외나무다리 헤어진 그날 밤의 추억은 어디

싸늘한 별빛 속에 숨은 그 임을 외로운 세월 속에 어이 잊으리"  

 

 

작은 모래섬이 자라고 있습니다.

 

 

줌으로 덩겨본 작은 모래섬에 오리 세 마리는 목을 움츠리고 졸고 가마우지 한 마리는 날개 벌려 물기를 바람에 말리고 있습니다. 

 

 

개울물이 강으로 합수되는 하구의 습지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양근이라는 말에는 楊提根基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말은 튼튼한 근원기초라는 의미입니다. 놀라운 것은 양근이라는 지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한국 천주교 역사 안에서 차지하는 양근 성지의 의미가 일맥상통한다는 점입니다.

 

楊根이라는 지명은 고구려 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지금의 양평은 1908楊根郡에 전입된 砥平郡의 평자와 양근군의 양자를 합쳐 오늘날의 양평군이 되었습니다.

 

楊根이란 버드나무 뿌리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남한강 변에는 폭우와 홍수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버드나무를 심어 그 수가 많았습니다. 버드나무는 일단 뿌리만 내리면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속성수입니다. 그래서 남한강 변에 심어진 버드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폭우로부터 제방의 붕괴를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양평시가지를 관통해서 남한강으로 합수되는 개울과 언덕위에 그림 같은 성당의 모습이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담은 정경입니다. 

 

 

한국적 흥에 겨운 버드나무와 밝지만 엄숙한 성당의 모습이 전혀 이질감을 찾아볼 수 없이 조화롭다. 

 

버드나무는 초기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의 상징적인 나무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가 로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자 당대의 로마 황제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을 잡아들여 처형했습니다. 황제들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이들을 잡아 죽이면 그 수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 되어 뿌리만 내리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나는 버드나무처럼 계속 퍼졌고 순교자들로 인해 그리스도 신앙은 더욱 튼튼해졌습니다.

  

 

다리를 건너서 성당으로 -

 

 

양근성당 외관이 간결하고 중후함을 풍기는 서구적 아름다운 건축양식입니다. 

 

 

양근성지 담을 끼고 돌아가면 양근성지 정문입니다.

 

 

소나무가 멋진 양근성지 

양근성지로부터 충청도와 전라도로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었으며 지도자급 평신도들이 가성직제도로 성직자 역할을 하면서 미사와 견진성사를 두 해 동안 집전하던 곳으로 천주교의 요람으로 불립니다.

또한 이순이(루갈다) 유중철(요한) 동정부부와 쌍벽을 이루는 조숙(베드로) 권천례(데레사) 동정부부와 20명의 순교자들이 태어나거나 신앙을 증언하다가 체포되어 순교한 곳입니다.

 

 

 

커피 간판은 왜 이곳에 세워서 양강섬을 가렸는가!

  

 

양강섬

양근성지 광장에서 바라본 양강섬, 양평을 지나가는 남한강의 물줄기를 이곳 사람들은 양강이라 부르기에 이 섬을 양강섬이라 부르는 것이겠습니다. 

 

 

섬으로 연결한 부교. 길이 94.6m. 폭 5m 공사비 22억원. 2019년 8월14일 - 2020년 7월14일 준공.

 

 

양강섬 내 공원

 

 

"떠드렁산"

양강섬 물 건너 보이는 작은 봉우리는 떠내려 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부래산浮來山으로 표기하기도 하고 충주에서 떠내려 왔다고 하여 충주산이라고도 불립니다.

 

 

양강섬에서 마주 보이는 독봉 孤山과 그 위에 세워진 亭子 고산정,  

 

  

다시 부교를 건너 고산정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고산정(孤山亭) 

 

 

독봉(獨峰)에 우뚝 세운 孤山亭 

 

 

이 고산정은 물안개공원 조성당시 빼어난 풍취를 감상코자 근년에 새로이 세운 정자입니다.

북쪽에서 힘차게 뻗어 내려온 용문산 지맥 끝에 지어진 정자로서 고산이란 명칭은 정자 아래로 보이는 떠드렁산의 또 다른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원래 물안개공원 옆 국도는 조선시대 관동대로인데 조선의 3개의 큰 길 중 하나로 무척이나 붐비는 길이였다.

지금은 평지로 곧게 개설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군청소재지로 가는 마지막 고개이자 꾸불꾸불한 언덕길이었습니다. 이제는 팔당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예전 모습을 찾기 힘들지만,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모래톱에 우뚝 선 바위섬으로 한눈에 보였던 고산의 풍모는 지나가는 길손마다 시문을 남기기에 모자람이 없는 아름다운 경치였습니다

 

고산정은 정면3, 측면2칸의 조선시대 골기와의 팔작지붕입니다. 현판 글씨는 상산 신재석(常山 申載錫)이 썼습니다.

 

 

 

고산정에서 내려오는 계단 끝 옆에 세워진 황명걸 시인의 詩碑. 

 

"志操"

한 포기 작은 풀일지라도, 그것이 살아 있으면, 비에 젖지 않나니

더구나 잎이 넓은 군자풍의 파초 임에랴 빗방울을 데리고 논다

 

한 마리 집오리일지라도 그것이 살아 있으면 물에 젖지 않나니

더구나 몸가짐이 우아한 왕비 같은 백조임에랴 물살을 가르며 노닌다

 

 

양근성지 앞 공원광장의 모습 

 

 

고산을 끼고 돌아가는 길 끝 대로변에 있는 고산 뒤쪽 한 면을 깎아 조성한 인공폭포와 김종환 노래비가 있습니다.

  

 

"물안개공원 인공폭포"

고산의 측면을 깎아낸 자리에 인공폭포를 만들었고 그 앞에 김종환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작은 미소로 너를 부르리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들은 변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내가 아플 때보다 네가 아파할 때가 내 가슴을 철들게 했고
너의 사랑 앞에 나는 옷을 벗었다 거짓의 옷을 벗어버렸다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너를 사랑하기에 저 하늘 끝에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로
오래 두어도 진정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둘이 하나되어》

니가 보고 싶어 / 널 만나게 됐고 / 니가 좋아 널 사랑한다
죽고 싶을 정도로 / 슬픈 일이 생겨도 / 변함없이 사랑하게 해주오
우리들의 만남에 / 끝은 있겠지만 / 그날까지 너를 아끼며
아까운 시간들을 / 바보처럼 보내며 / 우린 그렇게 살지 않겠다
이 넓은 세상에 / 수 많은 사람중에 / 널 만난건 내겐 너무 특별해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어떤 현실도 / 서로 참아 낼 수 있어 / 너 없는 이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어 /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너의 가슴속이 마르지 않도록 /사랑의 물을 너에게 준다

머뭇거리는 동안 / 세월은 지나간다
너를 사랑할 시간도 없이 / 세상 살다 보면 / 현실이 힘들어서
말다툼에 상처도 받지만 /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 어떤 현실도 / 서로 참아 낼 수 있어
너없는 이 세상은 / 생각할 수도 없어 /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 둘이 하나될 수 있도록
어떤 현실도 / 서로 참아낼 수 있어 / 너 없는 이 세상은
생각할 수도 없어 /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김종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발길을 옮긴다. 사랑으로 남게 해주오 -

  

 

우측의 보행과 자전거 겸용 길로 들어섭니다.

 

 

한강으로 유입되는 좌측 하천방향으로 →

 

 

다리 건너 좌측으로

 

 

다리 건너 좌측 하천 따라 양평전통시장 방면으로 우측은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입니다. 

 

 

계속 하천 따라 양평전통시장으로 갑니다.

 

 

다시 다리 건너 좌측길로

 

 

거쳐온 하천길 뒤돌아본 정경입니다. 해질 저녁녘 홀로 산책하는 저 여심을 살며시 훔쳐 보고 싶구나!

 

 

좌측 계단으로 올라서면 양평역으로 이어진 역전거리입니다.

 

 

평지도 아닌 하천바닥 한 가운데에서 밑둥 둘레가 3m 정도로 저리 크게 자라도록 살아 남을 수 있었다는 것에 경이롭다. 장마 때에는 큰 물과 태풍이 지나갈 때도 있었건 만··· 

  

 

경기옛길 제5길 물끝 양근나루길 끝나고, 제6길 거무내길의 시발점 양평역입니다. 

 

2021년 4월7일(수요일)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