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선운산 /禪雲山 (全北 高敞郡)

鄕香 2018. 6. 8. 20:37


아담한 山勢를 屛風 삼아 1500년의 悠久한 나날에 그윽한 풍경소리로 부처의 慈悲를 끊임없이 俗世에 실려 보낸 古刹 禪雲寺의 면면과 그 뒤 빼어난 동백 숲의 고운 숨결 피워낸 동백꽃의 아린 그리움을 가슴에 담고 情炎을 불살라 피어 낸 스님의 상사화 꽃무릇을 보며, 열정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내 그림을 되삭여 보고자 찾아간 선운사, 청순한 동백꽃도 열화 같은 戀情 속으로 삭여 붉은 꽃으로 피워낸 스님의 상사화도 어느 님이 담아 갔나 볼 수가 없네. 도솔산 특이한 바위의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담은 깊이 있는 사연과 수많은 나무들 그들만이 지닌 이야기를 들으며 선운사 앞 길가에서 생복분자 즙 한 잔으로 만족한 선운사 旅程일세.

 


코스 : 선운사-석상암-마이재-견치산(국사봉)-소리재-낙조대-천마봉-용문굴-마애불상-도솔암-장사송-선운사-송악 (10.8km)



오늘의 산행지는 전라북도 고창군(아산면-심원면)에 있는 선운산(336m)이다 본래 이름은 도솔산(兜率山) 이었으나 백제 위덕왕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한 禪雲寺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웅전 뒤에는 천연기념물 제 184호로 지정된 수령 약 500년에 키가 6m에 이르는 동백나무들의 군락이 屛風처럼 펼쳐져 있다. 북으로부터 경수산(444.3m) 선운산(수리봉336m) 개이빨산(犬齒山349m) 천왕봉(303m) 청룡산(314m) 국기봉(337.8m) 비학산(307.4m) 구황산(297m) 형제봉(248m) 등 9개의 산봉우리가 타원형을 그린 가운데 선운사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동북쪽 끝자락에 살짝 열린 틈바구니를 빠져나와 주자천과 함류하여 서해바다 곰소灣으로 흘러 들어간다 해질 무렵 서해바다로 숨어 들어가는 해넘이 풍경은 선운산을 끌어안고 바다 속 심해로 잠긴다. 봄이면 동백꽃 피어 향기롭고 9월이면 그리움으로 붉게 타는 꽃무릇이 아름다운 도솔산 선운사..  






兜率山 仙巖寺 一柱門 』

일주문은 어떤 意味? 마음을 가다듬어 敬虔하게..


나무의 계절이다. 싱싱하고 활기찬 모습에서 기쁨을 본다. 어찌 즐겁지 않으리



북으로부터 경수산(444.3m) 선운산(수리봉336m) 개이빨산(犬齒山349m) 천왕봉(303m) 청룡산(314m) 국기봉(337.8m) 비학산(307.4m) 구황산(297m) 형제봉(248m) 등 9개의 산봉우리가 타원형을 그린 가운데 선운산 깊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이 개울은 동북쪽 끝자락에 살짝 열린 틈바구니를 빠져나가 주자천과 함류하여 서해바다 곰소만으로 흘러들어간다


 

선운사 흙돌담 모서리에서 길은 갈린다. 좌측은 진흥굴-장사송-도솔암-천마봉-낙조대에 이르거나, 또 달리 도솔제-투구바위-사자바위-국기봉-쥐바위-청룡산-배맨바위-천마봉-낙조대로 가는 길이다. 우측 길은 오늘 내가 멋 모르고 들어선 석상암-마이재-수리봉-견치산-소리재-낙조대-천마봉으로 가는 길이다. 

  


이제 석상암으로 가는 산길로 들어선다.


 

선운사 흙돌담에서 8분 정도 걸어오니 이정표가 눈 앞에 있는 석상암을 외면하고 좌측 숲으로 들어가란다.



마이재 능선을 타기 위해 등성이 측면을 타고 오르는 길이다. 어느새 땀이 흐르건만 이런 길은 바람도 외면하는 길이다.



바위에서 떨어져 나간 잡석이 제멋대로 뒹굴고 있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뿜어주는 좋은 기운들에 상쾌한 몸 어느새 마이재에 이르렀다. 수리봉까지는 700m거리이다.



키 큰 참나무 아래 철쭉이며 온갖 잡목들이 녹색향연을 펼치니 나도 따라 물이 든다. 



첫 봉우리 수리봉이다. 주차장에서부터 40분만에 도착한 곳이다. 현재 11시31분.




수리봉 쉼터의 모습.



이곳은 수리봉정상의 모습이다. 바위에 서서 바라보면 곰소만이 눈에 잠긴다.

 


파란 하늘, 떠다니는 흰 구름, 넘실거리는 초록바다, 그 위 점점 섬섬, 녹색 너울치는 산줄기 그 어느 것 하나 자연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다. 



내 가는 능선 옆 산줄기의 바위봉우리가 개이빨산(犬齒峰)이다. 저 산은 오늘 코스에 없는데 들려갈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바위는 화산암이다. 석질은 강한데 큼직하게 수직으로 갈라지는 성질이 있다.



바다에 섬들이 구름위에 떠 있는 듯 환상적인 모습이다. 저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다시 길따라 길 떠난다. 그 길가에 거무죽죽한 바위가 쪼개져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가는 길가에 참나무들이 길에 수를 놓아 아름답다 옷과 노출된 피부에 살균시켜 작은 해충을 막아주니 그 고마움 또한 크다.    



  옴두꺼비의 등대기 같은 굴참나무의 수피를 보니 건강하기 이를 데가 없다. 서울 근교의 나무들이 이리 좋은 환경을 알기나 할까! 그들이 가여운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산길을 가다보면 마냥 젊음이 스며들어 어린이가 된다. 思索은 고차원의 사치다. 그냥 꾸밈없이 마음이 즐거워 동요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청미래 덩굴나무 토속적으로 망개나무라고 부른다. 어려서 서울흥인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먹어본 망개떡이 생각난다. 찹쌀떡처럼 속에 단팥을 넣어 송편모양으로 빗어 윤택하고 두터운 망개나무 잎에 싸서 찐 망개떡과 찹쌀옹심이에 단팥을 입혀 만든 것 5개씩 가늘게 쪼겐 댓가지에 꽂아 상자 안이 잘 보이도록 사방에 유리창이 달린 긴 사각나무상사 안에 층으로 칸을 두고 그 위에 올려 담은 나무상자 두 개를 긴 작대기 양 끝에 걸어 어깨에 메고 '당고, 당고(たんご)' 소리치며 거리를 다니며 팔던 그 달콤하고 차진 떡이 엄청 먹고 싶다. 20여 년 전 점심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다가 경복궁 동십자각에서 박물관 정문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체면 불구하고 뭉텅 사갖고 사무실에서 젊은 동료에게 옛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누어 먹던 생각도 더불어 떠오른다. 

    


아주 작은 봉우리에 측량점이 있고 누군가 돌탑을 쌓았다 올라가보니 검소만이 화들짝 놀란다.


견치산이 어떻게 생겼길래 개이빨이라고 이름 했을까 줌으로 당겨보니 송곳니 1개에 어금니가 둘이다  



견치산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견치산으로 가면 다시 이 자리로 되돌아와서 소리재으로 가야 한다. 그냥 지나칠까 싶은데 견치산이 귀엣말로 속삭인다, 나 보고 가는데 1km 밖에 안 되는데 언제 다시 나 보러 올 거야?   

 

산 너머 산, 능선 너머 산줄기, 가까운듯 아득한 산 너울, 바라보는 마음도 파랑이 인다. 



가파르게 200m 내려가서 다시 300m 오르니 견치산정상 국사봉이다. 견치산 봉우리에 서서 보니 정작 견치산은 볼 수가 없다. 생각이 난다. '사물은 언제나 좀 떨어져서 볼 때 제대로 볼 수 있고 아름답다.'

 


다시 견치산 입구로 돌아왔다. 여기서 수리봉이 아닌 소리재 용문굴 방향으로 간다 소리재로 가나 수리봉으로 가나 길은 만난다.



이정표에서 10분 거리에 靑竹이 숲을 이뤄 터널을 놓았다.



소리재에서 바로 가면 용문굴과 도솔암 마애불 그리고 낙조대로 간다.



건강한 참나무숲길은 아무리 걸어도 힘들지 않은 기분 좋은 길이다.  



목적지가 가깝다 낙조대가 850m 거리에서 나를 기다린다.



이곳 선운산은 서해안권의 국가지질공원의 명소로 약 8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화산암체의 흔적이 선운산을 중심으로 남아 있다. 주로 유문암으로 이루어진 화산암체는 점성이 높아 쉽게 흐르지 않고 주변 암석보다 단단하고 치밀하지만 수직으로 절리 되는 성질 때문에 바위 일부가 뭉텅 떨어져 나가 수직절벽을 이루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형성하였다.



선운산정상인 낙조대가 가까운 모양이다 점차적으로 이곳 특유의 유문암이 눈길을 끈다.



보이는 바위봉우리들은 절리로 바위가 뭉텅 떨러져 나가고 남은 바위 면은 멋진 절벽을 이루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좌측 방향은 500m 거리에 용문굴이 있다. 용문굴을 보고 내처가면  도솔암을 거쳐 선운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 오늘의 목적지 낙조대는 850m 거리에 있다. 낙조대와 천마봉을 거쳐 다시 이곳으로 와서 용문굴로 내려갈 생각으로 낙조대로 발을 옮겼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으슥함 없이 밝고 호젓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나도 덩달아 밝아진다.



키 큰 참나무 숲을 벗어나니 저만치 바위봉우리가 뾰족하게 솟아 있다. 낙조대의 수리봉일 것이다.

 


이 산행에서 처음 맞이한 나무계단이다 철조계단에 고무냄새 풍기는 타이어 발판을 깐 길이 아니다 얼마나 다행인가! 풍금 치듯 경쾌한 소리 울리며 오르니 이것도 신선한 충격이다.



드디어 수리봉이다 이곳에서 영화 '대장금' 중 최상궁 촬영지란다. 그것이 이리 중한가! 최상궁은 또 누구지?


 

낙조대 옆 서쪽에 배맨바위라는데 철조계단이 길게 놓여 있다. 왕복 2.8km거리다 일정에 없던 개이빨산도 코스 이탈해서 들려온 죄가 있어 이번에는 안 갈란다. 가보면 여기서 보는 것만 못할 지도 모른다 개이빨산처럼..



《낙조대》

두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그 사이에 데크를 설치해 서해로 잠기는 해와 마지막 열정을 다 쏟아 황홀한 노을을 장식하고 스러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이름하여 落照臺다.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낙조대와 천마봉 등 봉우리들은 화산암체의 일부인 유문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유문암은 주변의 火山礫 응회암보다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하여 풍화에 강한 특성이 있어 잘게 부서지기 보다는 큰 절리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다고, 실제로 보아도 수직으로 크게 갈라져 떨어져 나간 부분은 바위절벽을 이뤄 수려한 경관을 보인다. 



선운산 낙조대 천마봉, 배맨바위 등 이곳 바위지대의 표면을 자세히 보지 않아도 용암이 흐르면서 固結된 유문암의 유상구조나 구과상 구조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화산암체의 일부가 차별침식을 받아 가파른 수직암석의 절벽을 형성한 이곳은 바위지대 끝에 다가서면 그냥 오금이 저리도록 斷崖이다.



상당히 높은데 높이가 284m이다. 서울 아차산(348m) 보다도 낮다. 그럴 수밖에 이곳은 지대가 낮은 바닷가에 있으니 해발에서 바로 오름으로 이어지니 길고 높게 느낄 수가 있고 서울은 그 자체가 지대가 높은니 지대가 높은 만큼 실제 산오름은 짧고 낮게 느껴지겠다. 


《유문암의 구과상 구조》

한점을 중심으로 광물들이 원형의 형태로 자라면서 만들어진 것을 구과(spherulite)라고 하며, 구과가 많은 화산암의 구조를 구과상 구조라고 한다. 선운산 일대의 유문암 내에는 자갈 모양의 구과를 잘 볼 수 있는데 이들 구과 속에는 이차 광물들 즉 석영이나 장석 등에 의해 절반 내지 전체적으로 채워져 있다.



도솔암 인근 그 일대에 무리를 지은 유상암 바위群 모습이다. 오른쪽 제일 큰 바위줄기 앞머리 바위 면에 움푹한 곳이 바위 면을 다듬어 마애불을 새겨 모신 바위이다.   



천마봉 너른 바위지대에서 돌아서서 올려다본 낙조대의 모습이다.




도솔암과 그 일대 바위群들의 모습이다. 오른쪽 제일 큰 바위줄기 앞머리 바위 면에 움푹한 곳이 마애불을 새겨 모신 곳이다.   



도솔암과 마애불 일대의 바위들을 줌으로 당겨본 모습이다.

 


천마봉에서 다시 용문굴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용문굴과 낙조대 소리재로 갈리는 삼거리이다. 여기서 용문굴로 내려가 도솔암 마애불을 거쳐 바로 선암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용문굴의 지붕격인 위 바위는 석질이 단단한 유문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굴이 형성된 곳은 화산력 응회암으로 되어 있어 각각 특성에 따라 풍화작용으로 강한 유문암은 온전한 모습으로 남고 그 아래 응회암은 쪼개지고 부서져 내려 굴이 되었다. 용문굴 서쪽 모습(낙조대 가는 방향)

  


서편 용문굴의 남쪽 귀퉁이 모습


 

동편 남쪽 귀퉁이 위쪽 모습.



동편의 용문굴 중앙 모습.



용문굴 동향 모습.






용문굴을 뒤로 하고 도솔암 마애불을 찾아 길 떠난다.



도솔암으로 가는 길목의 이 바위봉우리도 위는 유문암이고 아래는 응회암으로 위는 견고하게 본연의 모습이고 아래는 쪼개지고 부서져 용문굴처럼 진행 중이다. 

 


바위 상부를 당겨본 유문암의 표면이다.

한점을 중심으로 광물들이 원형의 형태로 자라면서 만들어진 것을 구과(spherulite)라고 하며, 구과가 많은 화산암의 구조를 구과상 구조라고 한다. 선운산 일대의 유문암 내에는 자갈 모양의 구과를 잘 볼 수 있는데 이들 구과 속에는 이차 광물들 즉 석영이나 장석 등에 의해 절반 내지 전체적으로 채워져 있다. 바위 표면에 둥글게 움푹 들어간 곳은 바위가 수직으로 갈라져 떨어져 나가면서 구과도 빠져 나간 자리이다.



나무숲에 가려 있는 엄청난 바위 표면에 유문암의 구과(spherulite)가 짐승의 눈동자처럼 보인다. 하단 지면 가까이는 변성 퇴적암이어서 이도 먼 훗날 다른 용문굴이 탄생 될 것이다.



유문암을 받치고 있을까 눌려 있을까 스며든 빗물과 풍화로 갈라지고 쪼개지고 부서져 가면서도 안깐힘으로 버티고 있는 석회질 응회암




나뭇가지 뒤에 가려져 있는 이 거대한 유문암도 일부가 수직으로 떨어져 나가 수직절벽을 이루고 있다.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 禪雲寺 兜率庵 磨崖佛 』

 보물 제1200호 이 磨崖佛은 고려시대에 조각한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마애불상으로 彌勒佛로 추정된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 마애불은 지상 3.3m 높이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불상의 높이 15.6m, 幅8.48m 이다. 책상다리 아래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座臺가 새겨 있고 머리 위에 구멍은 동불암이라는 누각의 기둥을 세웠던 곳이다. 명치 끝에는 검단선사가 쓴 비결록을 넣었다는 龕室이 있다. 조선 말에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감실을 열자 갑자기 풍우와 뇌성이 일어 그대로 닫았는데 책 첫머리에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고 전한다. 이 비결록은 19세기 말 동학의 접주 손화중이 가져 갔다고 한다.




유문암 바위가 絶離되어 떨어져 나간 반듯한 단면을 다듬어 그 자리에 불상을 새겼다.



길고 우뚝한 콧마루 위 양쪽에 치올린 두터운 눈꺼풀 가운데 선을 그어 눈동자를 감추고 눈 꼬리가 치올라간 매서운 눈매에 도톰한 두 입술은 벌어진 듯 벌어지지 않은 긴 입과 어우러져 의외로 묘한 미소를 내 비치고 있다. 마치 보는 이의 속마음을 읽고 빙긋 내비치는 의미는 "네 맘 내가 다 알지" 하는 듯하다. 육계와 이마의 경계는 모호하고 코 바로 위에 백호가 있다 크고 긴 귀는 어깨선에 이르고 있는 듯 없는 듯 짧은 목 밑에 가는 三線을 그어 삼도를 표현하였다. 어깨의 법의는 通肩衣 이고 가슴은 입체감 없이 평평하다 두 손가락을 펴서 단심에 모은 위쪽 군의에 四線의 띠를 縱으로 감아 단정한 매듭을 지었다 결과부좌한 다리 위로 법의자락 옷주름이 복련좌 상대까지 표현되었고 도식화된 발가락은 손가락처럼 크고 닮았다. 이와 같은 표현은 천불천탑의 운주사 부처의 손과 닮은 것으로 볼 때 백제 장인의 석공기술의 영향을 받은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佛像 머리 위 여러 개의 네모난 큰 구멍은 木造前室의 구멍으로 한 구멍에 목재의 일부가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문암은 화강암과 화학조성은 같지만 빠르게 식어서 입자의 크기가 작은 화산암의 일종이다. 천천히 식은 유문암질 마그마는 용암 안에서 작고 고운 입자 크기의 결정을 형성하거나 흐른 자국의 유상구조, 구과상 구조가 잘 나타나기도 한다.

용암이 흐르면서 평행하게 형성된 구조를 유상구조라고 한다.  한 점을 중심으로 광물들이 원형의 형태로 자라면서 만들어진 결정 구조를 구과상 구조라고 한다.




마애불상 하부는 점성이 강한 유문암질 마그마가 흐르면서 생긴 유상구조가 보인다. 그리고 마애불이 붉은 색깔을 띠는 이유는 유문암에 포함된 산화철이 풍화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도솔암 극락보전 / 兜率庵 極樂寶殿』



도솔암兜率庵 극락보전 옆 약수 한 바가지 떠서 마시니 촉촉이 스며드는 시원함에 오장이 즐겁다.  



천연기념물 제 354호의 이 나무는 높이 23m에 둘레 3.07m로 외줄기 3m 높이에서 3 가지로 갈라져 다시 가지마다 여러 갈래로 뻗어난 盤松으로 수령 약 600살로 추정되고 있다. 이나무는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 불려지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長沙縣에서 유래한 것이고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修道했다는 眞興窟 앞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행은 끝나고 수림 우거진 개울를 따라 여여한 마음에 조선 선비의 팔자 걸음으로 시조가 아닌 동요를 흥얼거리며 가는 길에 내노라는 인생 부러울 것이 없다.  



버섯도 이쯤 되면 뛰어난 예술가다. 문양 좀 보라 구성도 아름답다 온통 녹색지대에 고은 적갈색 단연 홍일점일세. 

참나무에 서식하니 분명 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 아름다움을 어찌 탐하리 이미 보는 기쁨으로 보신하고도 남았네

보는 이 마다 이럴 진데 손이 갈까! 그도 욕심인 것을...



선운산을 포함하여 9개의 산봉우리가 타원을 이룬 그 가운데에 흐르는 도솔천兜率川이다.



『禪雲寺 天王門』 선운사로 들어가는 문으로 세속과 천계를 경계하는 문이며 사천왕이 지키고 있다.



 『禪雲寺 萬歲樓』  주로 일자형 홑집, 종묘 사당 사찰 등 엄숙한 건물에서 보이는 맞배지붕의 만세루는 불법을 배우는 승려들의 강의실이다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선운사를 짓고 남은 목재를 사용하여 지었다는 說도 있고 또 고려시대의 건물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건물은 19세기 말에 보수된 것이다. 이 건물은 樹皮만 벗긴 후 다듬지 않고 자연의 모습 그대로 사용하여 소박하고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보이니 수더분하고 담박한 질그릇을 빗은 조선의 미가 아닐 수 없다.

 

만세루너머 대웅전 뒤 짙푸른 동백나무 숲을 보니 못내 아쉽다 좀 이른 시기에 왔다면 처절하도록 붉게 핀 동백꽃을 보았으련만, 생각이 이에 미치자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선조 때 임금이 조선통신사로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을 보내며 일본의 동태를 살펴보고 오라고 하였다 다녀온 정사와 부사에게 선조 임금이 묻기를 "일본의 정세와 기미는 어떠한가?" 하니  '일본은 조선을 침략할 기미가 있으니 반드시 대비해야 합니다.는 정사 황윤길(西人)의 바른 보고에 대하여 副使 김성일(東人)은 西人의 의견에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본은 침략의 기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결국 집권세력인 東人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방비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맞는다. 그 東人 金誠一의 詩 한 수가 떠오른다.

'동백꽃' 兩柏天然各有情 冬春風度孰能評 世人摠愛韶華晩 獨我憐渠雪襄明. 

두 가지 동백나무 각자 다른 점 있나니 동백 춘백 그 풍도를 누가 능히 평하리오 사람들은 모두 봄철 늦게 핀 꽃 좋아하나 나는 홀로 눈 속에 핀 동백 너를 좋아하네. 

 


「梵鐘樓」

佛殿四物인 梵鐘, 法鼓, 木魚, 雲版이 모셔진 樓閣이다. 

 


동백꽃을 보고 싶었고 꽃무릇 열정을 담고도 싶었는데..

대웅전 뒤 짙푸른 동백 이파리에 그만 고개 숙였소 대웅전과 만세루 사이에 자리한 연등에 밀려 대웅전은 올려다보지도 못했다오. 근간 기회에 다시 찾아와 못가 본 사자바위 투구바위로 돌아내려올 그때를 기약하네.



『선운사 동구』서정주 시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高麗史樂志에 있는 禪雲山歌는 征役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亡夫의 哀切한 事緣의 백제가요로서 그 遺址가 남아 있으면서도 歌詞가 傳해지지 않아 아쉬움이 여간 아니었는데 朱奉官 氏의 뜨거운 애향심으로 천오백년의 恨을 풀게 되어 여기에 그 事蹟을 적는다.

-高敞文化院-



“禪雲寺” (송창식 노래)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참, 노랫말도 어쩜 그리 내 맘이더냐..


『 高敞郡 三仁里 송악 』

주차장에서 선암사 일주문으로 가는 초입 좌측 개울가에 암벽을 타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덩굴식물로 높이가15m가 넘는 巨木이 있다.  이 나무는 내륙에 자생하는 송악 중 가장 큰 식물로 꽃은 가지 끝에 여러 개가 둥굴게 모여서 핀다. 본래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늘 푸른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부의 섬이나 해안지역에서 주로 자라며 서식 한계선이 동쪽은 울릉도까지 서쪽은 인천 앞 바다의 섬들까지 퍼져 있다. 내륙에서는 이곳이 송악이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이다. 남부지방에서는 송악이 소牛가 잘 먹는 식물이라고 해서 소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이 나무 밑에 있으면 머리가 맑아진다는 속설이 있는데 늘 짙푸른 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드는데서 유래된 말일 것이다. 약용으로 쓰이는 이 송악은 천연기념물 367호이다.



'송악' 나로서는 처음 보는 덩굴식물이다.  



송악의 줄기 모습.


탐방안내소 맞은 편 개울가의 공원 풍경

 


달리는 버스차창으로 담은 풍경 몇 장



보리나 밀이 누렇게 익어 들판을 덮고 있다. 한곳에 모를 낸 논처럼 머잖아 보리와 밀을 걷어 들이고 모내기를 할 것이다.



호남은 옛부터 곡창지대이다 이 지역 사람들의 넉넉한 살림살이가 보이는 듯하다.



인천강

2018년6월3일(일요일)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