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回 벗모둠

무의도 모둠 / 舞衣島

鄕香 2016. 4. 17. 18:35

(2016년 4월15일)무의도. 

화창한 사월 눈을 뜨면 아름답고 숨을 쉬면 향기롭네. 그 옛날 어질고 어질라하여 자애로움으로 곱게 영글린 그 동무들 모여 봄날처럼 생기롭고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을 내가 네게서, 네가 내게서 순박하고 고왔던 모습을 보고 보이며 맑고 청명한 날에 빛살처럼 따사로움으로 드넓은 바다처럼 가슴을 열고 보듬고 아우르고자 학이 춤추듯 갈매기 날갯짓하는 舞衣島에 모여서 옛정을 지펴 내일의 아련한 꿈속에서도 그리울 애틋한 추억을 쌓으리. 


<각각 지하철을 이용하여 서울역이나 공덕전철역이나 홍대입구역에서 인천공항철도로 환승해서 종점 인천국제공항역에서 내려 인천국제공항3층 7번 출구에서 222번 또는 2-1번 잠진도행 버스를 타고 잠진항에 도착, 무의도행 무룡1호 여객선에 승선하는 동무들 >


무의도는 어떤 곳이니?  범호가 경희에게 물었다, 모두 궁금한 표정으로 경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귀를 쫑긋, 그러나 원형이는 감성쟁이, 이미 건너 창밖 바다만큼 깊은 명상에 풍덩 빠져 있었다.  



선상에 나가섰더니 갈매기들이 유람선을 따라 배회하며 먹이를 보채고 있다.  


모처럼 탄 유람선과 마음마저 풍성하게 열리게 하는 바닷바람에 모두가 즐거운가보다 미소를 감추지 못하네. 


어느 사이에 배는 잠진항을 떠나 무의도선착장에 도착하였다. 후련하도록 시원한 바다를 보니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길용, 인남, 태식, 지철, 기창 등 동무들이 아쉽고 생각난다.


배에서 내린 이곳은 큰 무의도,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광명항 종점까지 가면 바로 작은 무의도로 건너갈 수 있는 소무의인도교 앞이다.


《무의바다누리길》

1區間. 소무의 인도교 길 : 주민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하여 대무도와 소무도를 연결한 길이 414m의 다리.

2區間. 마주 보는 길 : 대무의도와 마주하고 있는 서쪽마을과 떼무리선착장을 연결하는 길. 

3區間. 떼무리 길 : 소무의도의 자연생태가 그대로 남아 있고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는 당산길.

4區間. 부처깨미 길 : 만선과 안전을 위하여 풍어제를 지냈던 곳으로 경관이 뛰어난 길.  

5區間.  몽여해변 길 : 소무의도 동쪽마을과 맞닿은 동구 땅끝과 몽여해수욕장이 있는 길.  

6區間.  명사의 해변 길 : 유명을 달리 하신 박정희대통령이 생전에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던 고즈넉한 해변이 있는 길.

7區間.  해녀섬 길 : 소무의도 남쪽의 작은 섬 해녀도를 조망할 수 있는 안산 능선길.  




《누리팔경》

1景,부처깨미(꾸미) : 만선(滿船)과 주민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당제를 지냈던 곳,

2景, 몽여해수욕장 : 모래와 하얀 굴껍질, 몽돌로 이루어진 250m정도의 작은 해수욕장.

3景, 몽여 :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길목에 하루 두 번 드러나는 두 개의 바위.

4景, 명사의 해변 : 故 박정희 대통령께서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던 한적하고 아늑한 작은 해변. 

5景, 장군바위  : 해적들이 바위모양을 보고 장군과 병사들로 착각해 섬을 구했다는 설화가 있는 바위.

6景, 당산, 안산 : 소무의도를 이루는 74m, 30m, 두 봉우리 정상.  

7景, 서쪽 마을 . 동쪽마을 : 소소한 풍경이 아름다운 어촌마을 풍경. 

8景, 소무의인도교 : 소무의도 떼무리선착장과 대무의도 광명항선착장을 잇는 타원형 모양의 414m의 다리.


광명항 버스종점에서 내린 후 소무의도로 건너가기 위해 소무의인도교로 발걸음도 가뿐하게 다가가는 동무들의 뒤태.





무의도는 예전에는 대무의도와 소무의도로 나뉘었는데 두 섬 사이에 414m 길이의 인도교를 놓아 두 섬사람들과 관광객이 오고갈 수 있어 통틀어 그냥 무의도라 부른다.



오늘의 선도대장 경희는 어려서는 뽀얀 얼굴에 키도 작고 말 수 적은 아이였다. 지금은 말술(斗酒)도 불사(不辭)하는 우람하고 듬직하고 심성도 무던한 호걸이다. 그에 버금가는 동무들과 좀 괜찮은 무의인도교 앞에서 기념으로 추억을 담는다. 그런데 범호와 종득이는 어디 갔지?


훗날 이 모습, 이 흔적이 무척 그리울 때가 있겠지...


두 동무의 미소가 舞衣처럼 너울너울 마음도 즐겁다.


소무의인도교 위에서 방금 떠나온 대무의도 광명항을 뒤돌아본 모습이다.

과거에는 언들(주목망)로 동백하(冬白蝦=새우)를 많이 어획하였고 안강망 어선이 30여척이 있을 정도로 부유했던 섬이었으며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군병참기지로도 이용되었다. 탐승(探勝) 장소로 유명할 정도로 해안절벽과 기암괴석 등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서남쪽으로 영흥도, 자월도, 덕적도. 북쪽으로는 강화도, 인천국제공항. 동쪽으로는 팔미도, 월미도, 인천대교, 송도 국제도시가 있고 맑은 날에는 서울 북한산이 보일 정도로 주변전망이 뛰어나다. 어류는 우럭, 농어, 놀래미, 광어 등이 많이 잡혀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란다.




소무의도는 동쪽에 안산, 서쪽에 당산 두 봉우리로 이루진 섬이다. 

대무의도에서 소무의인도교를 건너 떼무리(소무의도)에 내려서니 바로 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 이 길은 바로 안산정상으로 오르는 제7구간이자 끝구간이다. 좌측 포구 옆으로 가는 길이 제1구간인데 우석이가 산을 봤으니 산으로 오르자며 산으로 간다기에 혼자 보낼 수가 없어 다른 동무들은 1구간으로 시작해서 중간에 만나기로 하고 우석이와 나는 역순(逆順)으로 제7구간이자 마지막 구간인 '해녀섬길'로 들어섰다. 정상의 하도정까지 700m이다. 오늘의 선도대장 경희를 위시하여 종득, 범호, 원형, 종순이는 춤을 추는 파도의 율동에 갈매기 노래하고 금빛은빛 모래 정다운 바닷가 1구간으로 향하고 나는 우석이를 따라 소월 시인의 미지의 임을 향한 그리움이 凝結되어 진분홍으로 물든 진달래가 흐드러진 언덕의 계단으로 발길을 옮긴다.    (1구간으로 가던 7구간으로 가던 이 자리로 오기는 마찬가지다. 圓과 같으니까.)  



《하도정
안산정상에 있는 정자(亭子)의 모습이다. 절벽아래 바닷가는 조수 때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밀려 나가면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길이 들어난다는 곳이다.  


명사의 해변으로 가는 안산능선길이다.  


7景, 서쪽마을  동쪽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소한 풍경이 아름다운 어촌마을 풍경, 따습고 포근한 봄볕 같은 가슴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겠다싶은 정겨움이 서려 있다.  소무의인도교 앞에서 경희, 원형, 종득, 종순, 범호는 우측 동쪽마을을 지나 몽여해변을 거쳐 안산 정상 하도정으로 해서 소무의인도교 앞에 도착되고 우석이와 나는 그 반대쪽으로 돌아 소무의인도교에 이르게 된다.


6區間.  名士의 海邊路 : 故박정희 대통령께서 생전에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던 고즈넉한 해변이 있고 창망한 바다를 보며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둘이 가는 길에 사진은 외롭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니 외로울 짬이 비집고 들어설 틈새가 없다.


명사의 해변이라니 어느 名士에 얽힌 海邊일까?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백삼십 여 m만 가면 궁금함이 풀리겠지..


앞을 바라보면 망망대해 가슴이 뻥 뚫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구멍이 생겼다. 그런데 좌측 수면에 보이는 두 점으로 보이는 작은 바위, 물이 빠지면 하루 두 번 보인다는 몽여일까.. 여기서 몽여란, 쌍여로 나가는 길목이라는 뜻의 목여가 변해서 몽여로 불리게 되었다. 쌍여란, 물밑에 있는 두 개의 바윗돌이라는 순수 우리말로 바닷물이 빠지면 두 개의 바위가 드러난다.


(해안트래킹) :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시 때만 하루 2번 해안선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이 지역이다.  간조시에 저 아래 드러난 해안길로 가면 해안(海岸)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 해녀섬 》
소무의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으로 전복을 따던 해녀들이 쉬었던 섬이라 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지난날 연안부두 조성을 위한 채석장으로 이용되다 보존을 위해 금지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섬이 우측 소나무가지 사이로 은근슬쩍 내밀고 있다.



작지만 아담하고 포근한 모습의 모래톱이 보인다. 너절한 시설물만 없으면 조용하게 사색하며 머무르고 싶을 곳이다.


 이곳 해변은 雨期 때는 익사자가 자주 떠밀려오기도 했던 슬픈 사연도 지니고 있다고..


《명사의 해변》
한적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좋아 생전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가족과 함께 휴양을 즐겼던 곳으로 얼마 전에 tv '강적들'이란 프로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여고시절,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곳에서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공개된 것을 보았다. 



명사의 해변에 두 조각상. 남녀의 조각상일진데 어느 것이 여성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조개껍질로 엮은 목걸이를 하고 합장하며 기원하는 조각상이 여성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른쪽 가슴에 하트를 두 손으로 받들고 있는데, 그 표현하는 짓거리가 남녀구분에서 갸웃거리게 한다. 그래도 남성일 것이다. 요즘 젊은 애들 하는 행동을 보면 남자들도 여성스럽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일까! 읽어보니 이 산의 주인 정명구氏의 당부의 글입니다. 재벌도 아니고 상속받은 것도 아닌 이 산주인은 소무의도가 외국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합심하여 전 재산을 담보로 빚을 내어 2010년에 이 산을 취득하여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무의도 주민들과 합심하여 혼연일체로 정성껏 가꾸어 2012년 5월3일 '무의바다누리길'이라는 이름으로 개통하여 무료로 개방하니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입니다.   



애국하는 마음으로 빚을 내어 이곳을 취득하여 가꾼다는 분이 운영하는 작고 허술한 매점건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렸으면 이런 Performance를 벌일까! 정말이지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쓰레기처럼 썩고 악취풍기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행실입니다. 지구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연을 아끼고 질서와 공중도덕을 지켜 좋은 환경으로 꾸며 부끄럽지 않게 귀엽고 예쁜 후손에게 보기도 아름답게 넘겨야 합니다.    



만장처럼 펄럭이는 저 천들은 무엇이며 무슨 까닭이 있을까



바닷바람에 겉잡을 수없이 펄럭이는 천을 엿보다가 기회를 잡아 셔터속도 500으로 잡아본 '김문삼'이라는 분의 글귀는 다음과 같다.  "냇가 나무그늘에 오색천막촌이 생기고 앞집 옆집 어울려 한낮 더위를 식힌다. 저녁들녘 반딧불이는 추억만 남아 그리움의 상념만 깊어가는 여름밤."



 《몽여》
쌍여가 나가는 길목이라는  뜻의 목여가 변해 몽여라 불린다고한다. '쌍여'란 물밑에 있는 두 개의 바윗돌이라는 순수 우리말로 바닷물이 빠지면 두 개의 바윗돌이 드러난다.



벗이여, 옥빛바다에 넋을 놓으셨나 아님 挽章처럼 펄럭이는 시구 한 구절에 매료되었느냐  그도 아님 無想無念일까..



名士의 해변길은 돌아가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생전에 가족과 함께 휴양을 하시던 곳이고, 몽여해변길은 물 속에 바윗돌 두 개가 잠겨 있다가 물이 빠지면 드러나 보인다는 해변이다.  



이제 명사 해변길이 끝나고 5區間.  몽여해변길로 들어선다. 소무의도 동쪽마을과 맞닿은 동구 땅끝과 몽여해수욕장이 있는 길이다. 1구간으로 시작한 경희, 원형, 종득, 범호, 길수는 어디 쯤 오고 있을까! 황진이의 '꿈'처럼 어긋나는 일은 없겠지..   



안산은 계단을 끝으로 마무리 짓고 해변에 당도(當到)했다.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는 도시에 사는 녀석들보다 행복하겠구나! 찌들지 않은 좋은 환경에 운 좋으면 파도에 떠밀려온 죽은 물고기도 먹을 수 있고 어부가 말리려고 널어놓거나 줄에 달아놓은 생선도 주인의 뜻과는 상관 없이 네 멋대로 먹을 수도 있으니.. 그래서 그런가 얼굴도 곱고 털빛도 백옥처럼 희구나..



드디어 우리는 만났네. '섬이야기 박물관' 앞에서..



무사히 만난 것에 막걸리로 축배를 들고..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찾아지지 않는 우리에게 먼 곳일 수밖에 없는 바다에서 기념도 하고..



이제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만, 그래도 마음의 빛깔은 어느 색에 더 고움도 덜 고음도 없는 무지개처럼 각각 독특한 특유의 고운 빛깔이 모여 홍예(虹霓)처럼 멋이 있다.  마침, 손을 빌릴 수 있어 모두 함께 7가지 추억으로 나눌 수 있는 모습도 담을 수 있었다. 모두 모자를 써서 얼굴이 검다. 이럴 때 플래시가 필요한데 아쉽다. 그래도 미소를 띤 모습은 알아볼 수 있네.  



사진도우미께서 너무 어둡게 찍어 얼굴이라도 알아볼 수 있게 조금 밝게 꾸몄다. 너무 밝게 꾸미면 내가 서글퍼질 것만 같아서..



이제 또 두 팀은 서로 엇갈려 출발했던 원점을 향해 길을 나선다. 너는 내가 왔던 길로 나는 네가 왔던 길로..



파란하늘에 빨간 비치파라솔 눈길을 끈다. 빈 하얀 의자가 햇빛에 가므스름하게 끄슬릴까봐 감싸고 있는 빨간 비치파라솔, 좀 더 더워지면 찾아든 손을 위해 그때는 더욱 뜨거운 열정으로 너의 직분을 다할 거지? 



모래와 하얀 굴 껍질 작은 몽돌들이 깔려 있는 몽여해수욕장이다.



범호와 원형이 그리고 종득이는 내가 왔던 곳인 6,7,8구간을 거쳐서 원점으로 가고, 우석이와 나는 범호와 원형이 그리고 길수와 경희가 왔던 5,4,3,1구간을 거쳐 원점으로 간다. 경희와 길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셈이다.



4區間. 뒤에 계단은 부처깨미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4구간의 부처깨미길의 한 모퉁이를 돌아가는 풍경이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길잡이 역할을 했던 한국 최초의 근대식 등대가 있는 八자 모양을 닮은 섬 팔미도가 조망대에서 바라 보인다고, 그러나 해무로 인해 확인할 수 없었다.



海岸은 기묘한 암벽을 이루고 있어 보기에 아름답다.



《부처깨미(꾸미)》

과거 소무의도 주민들이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제물로 소를 잡아 풍어제를 지냈던 곳. 소무의도 모습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전해지는데 이곳이 뱀의 머리부분에 해당한다.



모퉁이를 돌아오니 소무의인도교와 대무의도가 바라보인다. 하늘에는 뽀얀 해무가 있어 뿌연데 바다물빛은 변함없이 그 빛깔도 고운 비취색 옥빛이다.  



대무의도 끝머리의 모습이다.



당산 등성이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니 동무들과 막걸리 잔을 나누던 '섬 이야기 박물관'과 몽여해변과 동쪽마을이 개나리 벚꽃 다발로 안고 아늑하게 자리하여 봄볕을 즐긴다.



바다를 끼고 당산 중턱으로 가는 당산길에는 아직도 노랑 개나리꽃이 한창이다. 육십갑자를 훌쩍 넘어 어언 간에 십년이 넘어갔으니 다시 11살의 어린 소년이 아닌가 싶다. 흘러간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이 고무줄을 하며 부르던 동요가 떠오른다. "꽃과 같이 곱게 나비같이 춤추며 아름답게 사는 우리 희망으로 자라서 이 동산을 꾸미며 우정으로 꽃을 피우리."



나무 한 그루 없던 민둥산을 가꾸어 숲을 일궈낸 우리 세대들, 지금은 산과 들과 골짜기에 이처럼 자연이 살아서 건강한 숨을 쉬고 있다.  



무리지어 활짝 핀 개나리꽃, 수십 년을 보았건만 질리지도 않는다. 언제나 다감한 누나처럼 친근하며 화사하고 곱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난 누나는 고사하고 형도 없다. 힘들 때나 슬플 때는 마음마저 의지할 곳도 없다. 이참에 공개 청하노니 마음씨도 몸매도 풍성한 누나 어디 없소!



앞서가는 세 동무 바쁠 것도 없는데 앞만보고 묵묵히 걸어간다. 좀 느끼면서 가자구요. 이 아름다운 세상 떠나면 그만인데..



동무가 앞서간 자리에서 뒤를 돌아본다.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모습인가 보고 싶어..



노랑개나리꽃 하도 봐서 노랑꽃물 든 눈동자 씻으려고 옥빛바다를 보네. 길가 나뭇가지들 멋진 자태 뽐내며 서로 씻어준다며 섬섬옥수 고운 折枝를 옥빛바닷물에 적시고 있네.



《떼무리》

조선 末에 간행된 '조선지지자료'에 '떼무리' 1910년경 지형도에는 '췌무리'로 기록되어 있다.

"본 섬에서 떨어져 나가 생긴 섬' 또는 그저 대나무로 엮어 만든 '떼배' 만하다고 하여 띄무, 뙤무리, 떼무리로 불렸거나 '데릴사위'를 뜻을 가지는 '췌(贅)'를 써 췌무리로 불렀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길이 보기에 내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나봐 얼마만치 누워 있던 흙길이 슬그머니 나무판자로 엮어 깔아놓고 길이라고 나를 속여 먹는다.  



난간이 없었으면 더욱 운치로울 것이다.



노랑꽃울타리 사이로 본 유려한 해안선에 부드럽게 취하고 물빛 고움에 이는 떨림이여..



앞서가는 동무들 아직은 쓸 만하네. 비록 작은 오름의 계단이지만, 풍금 치듯 오른다.



소무의도는 대무의도와 함께 무의도(舞衣島)라고 하였는데, 옛날 어부들이 짙은 안개를 뚫고 근처를 지나가다 섬을 바라보면 섬의 모양이 마치 말을 탄 장군이 옷깃을 휘날리며 달리는 모습 같기도 하고, 선녀가 춤추는 모습 같기도 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소무의도는 '떼무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조선말기 '조선지지(朝鮮地誌)'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300년 전 소무의도에 처음으로 '박동기'라는 사람이 딸 셋을 대리고 들어와 섬을 개척한 후 기계 유씨(杞溪 兪氏) 청년을 데릴사위로 삼아 유씨 집성촌이 형성되었고 지금도 당산 서편에 시조묘가 남아 있다. 섬의 면적 1.22㎢, 해안선 길이 2.5km 이다. 보이는 포구는 떼무리선착장이다.



아름다운 떼무리포구를 한눈에 담고 보니 그 아름다운 경치에 그냥 넘어갈 자신이 없어 앞서가는 동무를 불러 세워 핑계 삼아 또 한 번 담는다.   



동무의 배낭에 대롱대롱 매달린 귀 달린 양은 그릇, 잔일까 대접일까 이리보고 저리 봐도 막걸릿잔이 틀림없건만, 누군가는 샘물 떠 마시는 물잔이라 하니 맥주를 담으면 맥주잔이요 소주를 담으면 소주잔이렷다.



막걸릿잔을 달고 가니 안주들이 꾸러미로 나서서 유혹한다. 잔도 잔이지만, 그 훤칠한 체구에 걸걸한 모습이 제값을 한 것이겠다.



잘 모르지만 그 모양으로 미루어 보니 낙지 잡는 통발인 것 같다.



저 다리만 건너가면 인생의 3대 즐거움에서 두 번째로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포구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고 물 빠진 항구에는 땅바닥에 배만 처연하다.  



지금까지 걸어온 개나리 활짝 핀 길 위쪽 등성이 인근에 '모예재'란 곳이 있는가 보다. 큰 키에 한껏 멋 부린 소나무에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이 사진을 보니 올라가 보지 않은 일이 아쉽다.  



물이 빠지는가보다. 작은 몽돌바닥 드러난 포구에서 배가 온몸을 드러내고 오수(午睡)를 즐기고 있다.



귀퉁이를 마 악 돌아가는 동무들 뒷모습을 보니 애틋한 정이 짙게 묻어난다. 모두 모두 건강하자. 동무들아..



저만치 앞서가는 동무들 뒤에서 나는 무엇에 홀렸을까 혼자 서성인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통통배 한 척 낚시꾼 몇 사람 실고 어디론가 떠나고.. 



소무의인도교 중간에 서서 지나온 곳을 돌아보기도 하고.. 



낚시질을 마치고 떼무리항구로 돌아오는 배도 보고..



다시 앞을 보니 동무들은 보이지 않네.



배 한척 없이 텅 빈 광명항선착장은 고요한 물결만 아슴아슴 졸고 있다. 붉은 해 서쪽 등성이를 붉게 노을 그릴 때 갈매기 때 몰고 만선의 기쁨안고 기우뚱 어기여차 어부들의 노랫소리에 파도마저 너울춤 춘다. 




소무의도를 돌아보고 다시 돌아온 광명항 부두에도 한적하기만 하다.



점심을 예약한 '선창 회 식당'이다. 동무들은 삶에서 두번 째의 즐겁고 기쁜 행사를 벌리려고 이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십만 원짜리 광어회 두 접시에 해물칼국수 2 그릇, 이어 매운탕과 딸려나온 반찬에 푸짐한 잔치가 벌어졌다. 이런 자리에 술은 當然之事요. 和氣 충만하다. 그런데 마음 속 한 곳 허전한 것은 몸이 편치 않아 함께 자리하지 못한 동무들이 있는 까닭이다. 모두 건강하자 동무들아!  



한잔 술에 기쁨을 두잔 술에 행복을 세잔 술에 건강을... 그 이상은 없다. 네가 건강해야 내가 볼 수 있고, 내가 건강해야 너를 볼 수 있다. 모두 건강하자.



나는 술은 잘 마시지 않는다. 동무를 만나 좋은 시간이니 석 잔이다. 대신 칼국수로 술 삼아 잘도 먹는다.



색깔도 예쁘고 시원한 칼국수 맛도 괜찮았다. 그런데 미안하다. 함께 나누지 못한 동무야...



매운탕은 그대로 인데 자리는 비었다.



그렇게 둘째로 즐거운 행사를 끝내고 첫째의 줄거운이 기다리고 있을 집을 향해 버스를 타고 대무의도 선착장에 도착하여 장진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이 섬은 개인소유인데 10억에 매물로 나왔단다. 저 섬을 사서 나만의 왕국을 세우고 싶어도 백성이 없어 못한다.



무의도 선착장 방죽을 사이로 푸른 바다와 갯벌이 이채롭다.



물 빠진 바닷가갯벌에서 먹이을 찾는 갈매기..  




저만치 해무(海霧)에 쌓인 큰 배는 갈 길을 못 찾고 뒤뚱거리는데, 나를 태운 여객선은 무의도 선착장을 떠나 바다를 가른다. 우리를 태우고 바람도 안 부는데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갈매기도 덩달아 날아든다. 나를 따라온다.

 


학처럼 춤을 추며 나를 따라온다. 나는 줄 것이 없는데..



그렇게 도착한 잠진항에 나를 토해 내고 다시 여객선은 허기가 도는지 사람들을 태운다. 사람을 먹는다. 어제도 그랬듯이 내일도 그럴 것이다.  오늘의 모든 일정에서 아름다운 경관으로 느낀 좋은 풍경으로 인한 기쁨과 행복,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 배삯 등을 찬조한 경희에게 모든 동무들을 대신하여 고마움을 드리며 진행자로서의 미안함을 함께 드린다.》



2016년4월15일 (금요일) <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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