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제천시의 의림지는 삼한시대 진한에 의해 만들어진 저수지로 마한의 벽골제(김제), 변한의 수산제(밀양), 대제지(의성), 공검지(상주)와 함께 우리나라 고대 대표적인 저수지입니다. 그 중 의림지는 다른 저수지와는 다르게 현재까지도 저수지와 주변 농경지가 잘 보전되어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충실할 정도로 저수지와 주변 논밭이 잘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의림지 위 상류에 근대에 만들어진 의림제2저수지(비룡담) 모습입니다. 제천시의 주산인 우측 용두산과 좌측 까치봉 사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룡담 저수지>
의림 제2저수지(비룡단)에서 의림지로 가기 전에 담은 다정한 그림자.
<제2의림지 방죽 아래 소나무 숲>
제2저수지에서 4~500m 내려오면 유서 깊은 의림지입니다. 주변에 어름축제 때 만든 얼음집입니다.
어름덩어리를 벽돌 쌓듯 만든 얼음집입니다.
많은 눈이 내려 어름집을 덮어 자연스런 멋이 있습니다.
<의림지에서 빙어낚시와 썰매를 즐기는 사람들>
"이래가지고서야 오늘 빙어회로 소주 한 잔 할 수 있겠나, 허 참!" 호수얼음구멍에 낚시하나 드리우고 세 사람이 자못 심각합니다.
투명한 병 속에 댓 마리 정도의 공어가 보입니다. 낚시를 드리운 젊은 분의 얼굴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열댓 마리는 되어야 소주 한잔거리는 되지," ㅎㅎ
팔을 걷어붙이고 손을 넣어 움켜쥐면 빙어 두어 마리는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충동을 느낍니다.
의자형태로 만든 썰매를 빌려 타는 아이들은 마냥 즐겁습니다.
<의림지 옆 놀이공원>
< 볏짚으로 만든 눈사람 >
상류 제2의림지(비룡담)에서 까치산을 끼고 의림지로 유입되는 물줄기
<의림지에 남북으로 놓인 목교>
<의림지/義林池>국가명승 제20호
이 호수는 제천의 명승지로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충청도를 호서라고 함은 이 호수의 서쪽지방이라는 의미이며, 제천의 옛 이름인 '내제'라는 큰 제방의 의미도 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래합니다. <세종실록>에는 의림제라고 하고, 길이가 530척, 관수 면적이 400결이라 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우륵이 쌓았다고 하며, 또한 박의림이 쌓았다고 하나 알 수 없습니다.
세종 때에 정인지에 의해 두 차례 수축하였으며, 1972년의 장마에 둑이 일부 무너져 이듬 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호반의 둘레는 1.8km, 만수면적 15㎡, 저수량 50만㎥, 수심은 8~13m이며, 몽리면적197만㎡입니다. 호수변에는 순조7년(1807)에 세운 영호정(映湖亭)과 1948년에 세운 경호루가 노송사이에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해빙기에만 맛볼 수 있는 공어가 있습니다.
의림지의 물은 자연으로 이루어진 이 벼랑에서 낙차하여 600m에 이르는 협곡을 거쳐 드넓은 제천평야의 농경지로 유입됩니다.
의림지 남측의 정경으로 상류비룡담에서 흘러내린 물이 의림지로 유입되는 곳입니다. 마주 보이는 산은 용두산줄기입니다.
의림지 버드나무
의림지방죽위에서 수십 년을 넘게 무리지오 자라고 있는 소나무입니다.
의림지제방과 그 위의 소나무들
의림지를 품어안고 있는 용두산과 백곡산 그리고 까치봉 입니다. 의림지는 이렇듯이 산에 둘려져 있어 마치 분지와 같은 지형을 하고 있습니다.
의림지 방죽에 무리지어 자라온 소나무의 아름다운 가지 모습중 하나.
<우륵정/于勒亭> 제천시 모산동241
의림지(義林池)는 전라북도 김제(金堤)의 벽골제(碧骨堤), 경상북도 밀양(密陽)의 수산제(守山堤), 의성(義城)대제지(大堤池), 상주(尙州)공검지(恭儉池)와 함께 고대(三韓時代:馬韓.辰韓.弁韓) 수리시설(水利施設)의 하나로 그 중 온전히 남아 그 역활을 충실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저수지입니다. 이 의림지 축조설 가운데 신라시대 진흥왕(534~576)때 우륵이 돌봉재(石峯)에서 살았다고 하며 그의 유적으로 우륵당(于勒堂) 옛 터와 우물로 사용했던 우륵정(于勒井)이 있었고, 제비바위에서 가야금을 탔다고 전해옵니다.
제천시는 2007년 의림지 명소화 사업으로 우륵의 예술 혼을 기리기 위해 옛날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한 이곳에 정자를 건립하고 우륵정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의림지 제방에는 수 백 년 묵은 소나무 군락과 버드나무 숲인 제림을 배경으로 주변에 영호정(映湖亭)과 경호루(鏡湖樓)와 같은 정자와 누각이 있고, 제비바위(燕子岩), 용바위(龍岩), 홍류정지(紅流亭址) 등 전통적인 시설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적, 역사적 가치가 뛰어남으로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名勝)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륵샘>
이 우륵샘은 의림지 바로 옆 동북쪽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륵당 중건 권유문고」를 보면, 우륵당을 '전, 홍사구 墓下 片路地'로 칭하고 있고, "우륵당지 밑에 정천"이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참고로 하여 전, 홍사구 묘소 가는 길 옆 우물을 우륵정이라 불렀으나, <조선환여승람>에 '우륵정은 의림지 동북쪽 벼랑 밑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고, <충북도읍지>에는 '우륵정은 우륵당에서 동북쪽 벼랑 밑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의림지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우륵당 남서편에 위치하고 있는 '전, 홍사구 묘하 우물터는 우륵정이 아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내재문화 1999년 11집에 "늪지를 형성한 샘이 우륵정이라고 결론 지을 수 없다. 하지만 상시 우륵이 우륵대에서 거주하면서 제일 가까운 곳에 샘물을 팠을 것이라는 추론을 하고 싶다."고 기록하고 있어 우륵정이 현재의 이 자리(2009년까지 늪지였음)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에 제천시는 위의 검토할 때 2개 지역에 대해 이론이 있다고 판단되나, 현재까지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우륵대가 온전히 남아 있고, 우륵대와 가까운 곳에 샘을 파고 물을 마셨을 것이라는 추론에 동의하였으며, <조선환여승람>에 있는 '우륵정은 의림지 동북쪽 벼랑 밑에 있다.'는 기록을 검토할 때 현재의 위치가 우륵대의 동쪽에 있어,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었고, 다만, '벼랑 밑에 있다.'는 기록에 대해서는, 현 지형이 산 밑에 있고, 이곳이 조선시대에는 논이 아닌 벼랑 밑의 늪지였을 가능성 또한 있다고 판단되어, 2009년 당시 늪지였던 모산동245-1번지 토지를 매입하여 현 위치에 2010년 6월30일 우륵샘을 재현하였습니다.
산 밑 샘에 가운데가 넓게 패인 암반을 놓아 샘물이 흘러나오도록 한 그 위에 큰 돌들로 덮어올려 바위틈에서 샘물이 흘러나오도록 구현하였습니다.
<의림지를 배경으로 소나무와 벚나무가 운치있게 어울립니다.>
2014년 1월23일 <鄕香>
'◈ 세월에 그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 할매돼지국밥집- 용궁사 일출 - 공수포구 (05시20분~07시20분) (0) | 2014.03.16 |
---|---|
우수(雨水)에 젖은 오후 (0) | 2014.02.19 |
마애이불병좌상 /槐山院豊里磨崖二佛竝坐像(괴산) (0) | 2013.11.30 |
강화 교동도.경기수영지/喬桐島 京畿水營址 (0) | 2013.11.25 |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 (0) | 201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