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오대산 월정사 . 상원사 . 적멸보궁

鄕香 2011. 10. 22. 23:32

 

오대산은 5개의 봉우리와 5개의 암자가 있다고 하여 오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옛날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께서 중국 당나라의 오대문수신앙을 신라에 들여와 처음으로 수용한 곳이 오대산이며 이후로 오대산은 우리나라 문수도량의 성지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리하여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계신다는 문수신앙으로 시작, 오대에 각각 1만의 보살이 계신다는 5만 보살신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월정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습니다.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보살을 친견한 후 신라로 돌아오자마자 문수보살이 산다고 하는 이곳 오대산에 들어와 정진하면서부터 오대산 깊은 계곡에 터를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만월산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금강연을 마주하는 울창한 숲에 둘려싸 여 있습니다. 사찰입구의 전나무 숲길은 산림욕의 장소로 유명합니다.

 

<전나무 숲>

 

이 전나무는 2006년 10월23일 밤에 쓰러지기 전까지 이곳 전나무 숲에서 최고령(약600년 추정)의 전나무였다고 합니다.

 

 

 

오색의 빛깔로 아름답게 물들은 나뭇잎이 바람에 사르르 스치며 나부낄 때면 수많은 나비들이 춤을 추듯 날아오르는 것만 같고 햇살에 반짝이는 추녀 밑 風磬처럼 맑을 소리를 울리는 것만 같습니다.

 

 

 

 

산사로 들어서는 호젓한 숲길에 전나무들의 맑고 은은한 향기를 폐 깊숙이 들여 마신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런 마음과 맑아진 정신으로 산문에 들어서는 정갈한 기분과 고목들의 아름다움과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눈도 마음도 몸도 즐겁다네. 

 

 

 

오대산은,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동대산(1,434m), 비로봉(1,563m), 효령봉(1,561m)을 말합니다. 또한 五臺 즉 東臺(관음암), 西臺(수정암), 南臺(지장암), 北臺(미륵암), 中臺(사자암)을 말하기도 합니다.

 

 

 

 

"月精寺", 마음의 달이 아름다웁다 하여 이름한 '월정사'라지요.

오대산 월정사는 문수보살(文殊菩薩)님의 지혜광명이 가득한 한국불교 중심지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자장융사(慈藏律師)께서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정골사리(頂骨査利)를 모시어 귀국한 뒤 적멸보궁(寂滅寶宮)에 사리를 봉안하시고 이곳에 草家를 지어 도량이 창건되니 그 때가 643년(선덕여왕 12년)이었습니다.

그 뒤 신효(信孝)거사와 신의(信義)스님, 유연(有緣)스님, 이일(而一)스님, 영담(瀛潭)스님, 정암(淨庵)스님 등께서 시대를 이어 중창하며 불법을 널리 펴셨습니다. 이후 6.25 전쟁의 참화로 칠불보전(七佛寶殿)을 비롯하여 모든 건물이 불탔으나 만화(萬化)스님이 적광전(寂光殿)을 중건하고 이어 현해(玄海)스님, 정념(正念)스님의 원력(願力)으로 오늘날의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근대불교의 고승(高僧)이신 한암(漢岩)스님의 선맥(禪脈)과 탄허(呑虛)스님의 교법(敎法)을 계승한 월정사는 선원(禪院)과 출가학교, 기도정진,우리의 전통사찰에 머물면서 사찰의 일상 생활을 체험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 문화와 수행 정신을 체험 이해 시키는 템플스테이, 등 여러 가지 수행활동으로 불교의 세계화, 생활화, 예술화를 이뤄가며 불자(佛子)들의 귀의처(歸依處)가 되고 있습니다.

 

 

오대산은 동, 서, 남, 북, 중앙의 봉우리에 각각의 대(臺)가 있어 오대(五臺)라 불리며, "동대(東臺) 만월산에 관세음보살","서대(西臺) 장령산에 대세지보살","남대(南臺) 기린산에 지장보살","북대(北臺) 상왕산에 미륵보살", "상원사에는 문수보살께서 각각의 일만(一萬)보살로 화현(化現)하여 상주설법(常住說法)하시며, "중앙(中臺)에는 오대신앙(五臺信仰)의 근원지(根源地)인 적멸보궁" 즉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 

더불어 월정사는 만월산의 정기(精氣)와 한강의 시원지인 우통수(于筒水)가 모여 이루어진 청량한 땅에 우뚝 세워져 늘 푸른 숲과 함께 빼어난 풍광(風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월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근원사찰(本寺)로 산하에 60여개의 사찰과 10여개의 암자가 있으며, 국보 제48호인 팔각구층석탑 및 보물 제139호 석조보살좌상 등 수 많은 문화재가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사천왕문>

천상界(절)를 지키기 위해 동서남북에 사천왕을 만들어 세운 문, 즉 절을 천계로 보고 악귀로 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세운 것이 사천왕문. 

 

 

동서남북 사방에서 부처 지키는 수호신. 수미산 중턱 있는 사왕천() 주신()으로 西 광목천왕().   다문천왕(多聞天王) 이릅니

 

 東 지국천왕()과 증장천왕(),

 

 

선고루(宣鼓樓)

누각 아래 금강문이 있습니다.

 

 

금강문을 나서니 돌계단 바로 위에 민화에서나 볼 수 있는 벽사적인 얼굴을 한 호랑이 한 마리가 익살스럽게 반깁니다.

 

 

종무소 앞 전경

 

(적광전(寂光殿))

'적광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전각입니다. 백두대간의 심장부인 만월산을 진산으로 한 월정사의 가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5칸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근대에 신축된 법당 중 가장 으뜸으로 봅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입곱 분의 부처님을 모신 칠불보전(七佛寶殿)이 있었으나, 6.25전쟁 당시 전소되었습니다. 1969년 만화스님이 주지로 계실 때 오대산에서 자생하는 나무를 사용하여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적광전에 모신 부처님은 경주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따른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본디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전각은 대웅전이라 하고 적광전은 본존불로 법신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통례이나, 월정사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적광전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이는 오대산이 화엄 . 문수도량이며 한암 . 탄허 두 대종사께서 주석하시면서 불교 최고의 경전인 화엄사상을 널리 펼쳤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탄허선사께서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함께 모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적광전'이라고 이름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적광전의 외벽은 단청으로 화려하게 장엄하였고, 뒷면에는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한 심우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적광전 네 개의 기둥에는 탄허선사께서 친필로 쓰신 자장율사의 불탑게가 주련으로 걸려 있습니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月精寺八角九層石塔)>

이 석탑은 우리나라 북쪽 지방에 주로 유행했던 다각다층석탑(多角多層)의 하나로 고려 초기 석탑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현재 팔각의 이중 기단이 밖으로 드러나 있는데 지표 아래에 기단부로 짐작되는 시설이 더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기단 위에 팔각의 갑석(甲石:뚜껑처럼 덮은 돌)이 놓여 있는데 갑석 위에는 연꽃을 새겨 꾸몄고, 기단 중석에는 안상(眼像:탑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을 새겼습니다. 이 위에 놓인 1층 몸돌 받침의 모양은 고려의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몸돌 각 면에 새긴 문틀 모양(龕室)과 수평적인 지붕돌(蓋石)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층기단 면석(탑 기단의 받침돌과 덮개돌 사이에 막아댄 넓은 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을 새겨놓아 목조건축 양식의 분위기를 연출하였습니다. 9층으로 된 몸돌과 지붕돌은늘씬한 높이에 비해서 안정된 느낌을 주며, 모서리의 휘어짐이나 탑 몸체부의 문틀 모양 팔각의 다양한 변화 등은 고려 불교문화 특유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위 균형이 잘 잡혔고 조각 솜씨가 뛰어나며, 각다층석탑의 대표적 석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탑 앞에는 강릉 신복사터 석탑과 마찬가지로 공양(供養)하는 보살좌상을 모셔 놓았습니다.

 

 

수광전(壽光殿)

서방 극락정토의 교주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서, 무량수전, 수광전, 극락전으로도 불립니다. 아(阿)는 아미타바(Amitabha. 無量光 . 無量壽) 한량없다.즉 無의 뜻이며, 미타는 壽命을 뜻하므로 목숨이 없는 수명이 다함이 없는 부처라는 뜻입니다.

 

 

삼성각(三聖閣)

 

 

 

개산조각(開山祖閣)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월정사를 창건하신 자장율사의 진영(眞影)을 모신 곳.

 

 

적광전 뒤 경관 (寂光殿 後 景觀)

 

 

진영각(眞影閣)

근대(近代) 고승(高僧)들의 초상(肖像)을 모신 곳.

 

 

적광전 추녀와 9층석탑

 

 

적광전 치미와 까마귀

 

 

종고루(鐘鼓樓)

범종(梵鐘)과 북(鼓)을 위치한 누각.

 

 

 

「 남대 기린산 지장암」<南臺 地藏庵>

 

 

 지장암 전경 (地藏庵 全景)

 一萬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머물러 계신다는 곳으로 스님들의 참선도량입니다.

 

 

<지장암(地藏庵)>

一萬의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머물러 계신다는 곳입니다. 지장보살은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死者)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장암 인근

 

 

지장암 들어가는 길목의 한 경치

 

 

「동대 만월산 관음암」(東臺 觀音庵)

지장암 건너 편 가파른 언덕을 700~800m 올라가니 고즈넉한 언덕 햇볕 따사로운 곳에 관음암이 내려보고 있습니다. 一萬의 관세음보살이 머물러 계신다는 이곳은 구정선사가 출가하여 공부하던 토굴도 있다고 합니다. 

 

 

관음암 담장 안 뜰에 한 그루 외롭게 핀 고운 보라빛 국화과 꽃이 청초하고 아름답습니다.

 

 

「오대산 상원사」<五臺山 上院寺>

 

 

<상원사/上院寺>

이 절은 705년(성덕왕 4)에 성덕왕이 창건했으며, 효소왕(692~701 재위) 때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가 오대산에 입산하여 동쪽에 있는 만월산(滿月山)에는 일만관음보살을, 서쪽에 있는 장령산(長嶺山)에는 일만대세지보살을, 남쪽에 있는 기린산(麒麟山)에는 일만지장보살을, 북쪽에 있는 상왕산(象王山)에는 일만미륵보살을, 중앙에 있는 지로산(地盧山)에는 일만문수보살을 첨례(瞻禮)했습니다. 그뒤 성덕왕이 된 효명이 다시 이 산을 방문하여 진여원(眞如院)을 창건하고, 문수보살상을 조성하여 봉안함으로써 이 절이 창건된 것입니다. 그뒤 1376년(우왕 2)에 영암이 중창하였습니다. 그후 조선조 세조10년 (1464년) 세조임금이 이곳에 행차했다가 문수보살을 배알한 후 고양이 덕분에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 일화가 전하는데 이로 인해 다음해에 중창하고 전답을 하사했으며, 이것을 영산부원군 김수온(金守溫)에게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平昌上院寺重創勸善文〉(강원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소재)이 남아 있습니다. 1469년(예종 1)에 세조의 원찰(願刹)이 되었습니다. 1904년에 선원(禪院)을 개설하고 1907년에 수월화상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게 되었고, 현존 당우로는 선원인 청량선원(淸凉禪院), 승당인 소림초당(小林草堂), 종각인 동정각(動靜閣), 영산전 등이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로는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23점(보물 제793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 등이 있고, 〈상원사중창권선문〉은 한문과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한글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상원사/上院寺>

<동대 관음암 일만의 관음보살이 머물러 계신 곳으로 구정선사가 출가하여 공부하던 토굴이 있는 곳.>

<서대 수정암 일만의 대세지보살이 머물러 계신 곳으로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우통수가 있습니다.>

<남대 지장암 일만의 지장보살이 머물러 계신 곳으로 스님들의 참선도량입니다.> 

<북대 미륵암 일만의 미륵보살이 머물러 계신 곳으로 나옹선사가 수행하신 곳입니다.>

<중대 사자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하며 일만의 문수보살이 머물러 계신다는 곳입니다.> 

 

 

 

수많은 연등 안에서 연등이 가지는 의미에 흠뻑 젖어봅니다.

 

 

<상원사/上院寺>

건물의 빼어난 운치와 자연과학적인 것은 차치하고라도 단청의 그 화려하고 섬세함, 우리 고유 건축미에 매료되어 다음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범종각

 

「중대 사자암 비로전」(中臺 獅子庵 毘遮那殿)

 

中臺 사자암은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1466년(세조12) 10월 5일 상원사 중수(重修) 낙성(落成) 때 세조가 보궁에 올라 예배하고 공양과 보시를 하였다고 세조실록에 기록되어 전해 집니다. 이후 왕실의 내원당(內願堂)으로 명종 代에도 대비(大妃)의 보호 아래 잡역을 면제 받았으며, 임진왜란 이후 월정사는 오대산 史庫를 지키는 승영사찰(僧營寺刹)로 보호되기 시작하였고 1644년부터 1646년 사이에 중수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왕실보호로 寺勢를 유지하고 건물을 보수해 나갔으며 1878년(고종15년) 개건되어 요사채로 사용되던 향각(香閣)이 낡고 헐어 1999년 퇴우스님이 香 사루어 諸佛 . 菩薩님께 발원하고 五臺 상징의 5층으로 향각을 신축하여 비로전, 중향각(총 4층 요사채), 우향각(사무실), 좌향각(접견실 및 승방)이 2006년 8월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비로전(毘盧殿)>

비로자나불을 주불로하여 一萬의 문수보살이 머물러계신다는 비로전입니다.

 

 

 

<비로전(毘盧殿)  삼존불상(尊佛像)과 나무(木)탱화>

적멸보궁은 열반적정의 '신앙지로'(界靜)를 사자암 '비로전'은 연화장(蓮花藏) 세계의 청전묘용(淸靜妙用)의 신앙지로(動界)를 구현하여 동정일원(動靜一源)의 법계를 장엄한다.

(60화엄경)의 보살주처품 제27에 "동북방의 청량산에 문수보살이 계시면서 1만의 권속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한다" 내용에 의해 신라시대부터 오대산 신앙이 태동되어 '보천'과 효명태자에 의해 더욱 신비화되고 구체화 된다.

황색방인 中臺의 지로산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수반으로 1만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믿음으로 낮에는 화엄경을 독송하고 밤에는 문수예참으로 수행정진하였다. 그리고 5臺의 각각에 '東臺 관음보살, 西臺 대세지보살, 南臺 지장보살, 北臺 미륵보살, 上院寺 문수보살" 등 오류선중(五類聖衆)이 많은 권속을 거느리거 상주하는 성지로 이후 불자들의 귀의처(歸依處)가 되었다.

2004년 5월 비로전 불상봉안에 일만 문수보살연화장 세계를 장엄하고자 발원하고 비로전 內 벽체 사방 8면에 각각 다섯 사좌좌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上界에 500문수보살상과 下界에 500문수동자상 動靜一源 세계를 초안하였다.

2005년 12월31일 비로자나불상을 먼저 모셔 점안하여 오대광명이 법계에 나투시게 되었으며, 이후 300년 은행나무에 28개월간 정성으로 연화장세계를 조성하여 2006년 10월1일 비로전에 협시보살로 문수보살像과 보현보살像을 함께 봉안하고 점안하게 되었다.

또한 삼존불상 후불탱화는 세계최초로 觀으로 들어난 극락보수(極樂寶樹)를 새기어 장엄하였다.

 

 

(비로전/毘盧殿)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법당을 일컫습니다.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 등 강원도 내의 네 곳과 경남 양산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하여 5대 적멸보궁 이라고 합니다. 이 월정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석가의 진신사리 가져와 오대산에 봉안하고 이 보궁을 창건 하였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낮은 한 단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단층인 팔작지붕의 겹처마 집입니다. 건물 전면 중앙에만 두 짝의 판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중방을 설치하고 협간 아래에는 판벽(板壁)을 하고 그 위에 띠살창을 한 것이 특이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건물 정면의 두 짝의 문을 열었을 때 이 띠살창을 통해 뒤에 있는 적멸보궁과 비석을 육안으로 볼 수 있도록 창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뒤로 가지 않아도 이 띠창을 통해 적멸보궁과 탑이 새겨져 있는 비석을 보며 참배를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건물은 1466년에 창건된 속건물이 1878년 풍우와 추위를 막는 방풍 . 방한 구조물로 增建된 겉건물이 씌워진 채 보존되다가 2,000년에 보수공사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면적 13.5평으로 배흘림기둥, 연화두식 창방뺄목 등이 15세기 창건시의 古格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부가된 퇴칸, 2익공, 장엄불단 및 장엄구 등은 19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좌측에서 본 적멸보궁>

 

 

<우측에서 본 적멸보궁>

 

 

<정면으로 본 적멸보궁>

 

 

신라시대 자장스님(590-658)께서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님으로부터 부처님사리를 받으시어 643년 귀국한 후 왕에게 건의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이어 頂骨사리를 오대산 지로봉(地盧峰)에 모시고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태백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에 사리탑을 건립 봉안하였습니다. 사리는 梵語 sarira를 번역한 것으로 원래 몸을 의미하는데, 遺骨 . 身骨의 뜻을 지니며 소리나는 대로 舍利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사리는 六바라밀을 닦은 공덕으로 생기거나, 戒定慧 수행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가는 福田으로 신앙의 대상이 됩니다.  

현재 보궁 뒤편 봉분에 세워져 있는 비석은 제작시기를 알 수 없으나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을 한암스님(1876~1951년)께서 찾아내어 다시 세워 놓은 것입니다. 佛舍利 탑 앞에 佛像을 모시지 않은 拜殿이 있으며, 중대 적멸보궁(中臺 寂滅寶宮)의 사리탑은 국내 유일(唯一)의 봉분토탑(封墳土塔)입니다.

 

 

 

<서대 장령산 수정암 (西臺 長嶺山 水晶庵)> ()

일만의 대세지보살이 머물러 계신다는 곳으로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던 우통수가 있습니다.

 

 

 

<북대 상왕산 미륵암(北臺 像王山 彌勒庵)> (상왕봉 1,491m.)

一萬의 미륵보살이 머물러 계신다는 곳으로 고려의 '나옹선사'께서 수행하신 곳이라고 합니다.    

 

 

 

(관대걸이)

 이 곳은 조선 初 세조대왕이 목욕할 때 의관(衣冠)을 걸어둔 곳이라 하여 '관대걸이'라 하며 주변나무는 소나무과 낙엽침엽교목 일명 '잎갈나무'라고 부르며 백두산 중턱에 주로 서식하고 있는 수목으로서 수령을 약 100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약2km 서쪽 서대장령(西臺長嶺) 밑에는 우통수(于筒水)라는 샘이 있어 물의 비중과 맛이 특이하여 중국 양자강의 중냉(中冷)과 같다고 하여 한강의 시원(始原)이라 전합니다.

2011년 10월 20일 - 鄕仁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