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제주도』송악산 . 잠수정 . 용머리해안 . 하멜 표착지 .

鄕香 2011. 10. 3. 12:36

어제는 새벽 5시에 출발하여 기차와 비행기 그리고 제주도 일부 해안을 돌아보느라 피로했던 탓인지 오늘 아침 눈을 뜨니 7시가 넘었습니다. 창밖을 보니 햇살에 야자수가 황금빛을 머금는 화창한 날씨입니다. 7시부터 8시30분 사이 숙소(금호리조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식사시간에 맞춰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가 끝머리에 간신히 식사(뷔페)를 마치고 간단한 행장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송악산 분화구와 잠수함 타보기, 산방산굴사. 용머리 해안, 등을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송악산 . 분화구>

리조트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천지연.정방폭포 등이 있는 서귀포시와 중문단지를 지나 대정읍 송악산에 도착하니 09시40분,

영화 '대장금'을 촬영했다는 푯말을 지나 분화구와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이곳은 제주도 서.남단 끝자락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산2번지 일대로 면적 585,982㎡, 동서 길이 880m, 남북 길이 1,030m,

표고 104m, 둘레3,115m로 그 모양이 각기 다른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모여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송악산 5부 능선에 횡렬로 이런 곡사포진지가 여럿 있는데 이는 그 모양으로나 세월의 흔적으로 보아 제2차대전시기에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듯 여겨집니다. 송악산은 일본이 중국 침략전의 발판으로 2차 세계대전 말기의 최후 격전지로 삼았던 곳으로 주변에 중국 도양(渡洋)을 폭격할 목적으로 건설했을 암뜨르 비행장, 섯일 오름의 고사포부대와 포진지, 비행기 격납고 잔해가 산재해 있습니다. 또한 송악산 형안절벽 아래에는 일본군이 판 인공동굴이 15개가 있다고 하니 지난날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송악산 중턱에서 지나온 곳을 뒤돌아보니 유람선과 주변 아담스런 마을 너머 바닷가 해안선을 거슬러 바라보니 산방산이 홀로 우뚝 솟아나 있고 멀리 한라산이 보입니다. 

 

 

송악산 분화구가 있는 정상 봉우리입니다. 오름이 완만하고 그리 높지 않습니다. 올레10길의 길머리이기도 합니다.

 

 

송악산의 이 분석구는 응회암으로 둘러싸여 중앙에 큰 왕릉 모양으로 솟아 있는데, 바깥지름이 500m, 사면 경사 30도, 분석구 가운데는 지름 150m 깊이 68m, 가량 되며, 그 안에는 지금도 검붉은 화산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성산 일출봉과 같이 해안에서 직접 솟아 있어 해발고도 104m,와 비고(99m)가 비슷한 오름으로 주변의 산방산, 용머리, 단산 등의 기생화산체와 함께 지질이나 지형적 측면에서 제주도의 형성과정을 밝히는데 중요한 곳일 뿐만 아니라 송악산 중턱의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가파도, 마라도, 형제섬의 전경과 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깊은 분화구와 한라산을 배경으로 한 산방산과 월라봉의 모습이 웅장합니다.

 

 

응회암으로 둘려진 마치 큰 왕릉모양을 하고 있는 구릉정상가운데에 지름150m, 깊이 68m 가량의 깔때기모양의 분화구입니다

 

(동편에서 본 분화구 모양)

 

(북편에서 본 분화구 모양)

 

분석구 동쪽에 있는 말목장입니다. 이곳 정상까지도 말의 배설물이 듬성듬성 보입니다.

 

 

모든 가축도 저 말들처럼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거늘..

양계장의 좁은 닭장에 갇혀 오로지 알을 제조하는 기계 같은 닭들도 이만한 환경에서 사육되었으면 좋겠네요.

 

 

송악산 중턱에서 바라 본 해안과 산방산, 이제 예약된 잠수함을 타기 위해 서둘러야 합니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달리는 차에서 창을 통해 찍은 '형제바위섬' 

 

 

<잠수함 체험>

잠수함이라는 것은 해군이나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알았고 나와는 참으로 거리가 먼 남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아무나 탈 수 있는 잠수함관광이라는 것이 생겼으니 세상이 좋아지긴 참 좋아진 거죠? 요금은 5만원인데, 리조트에 있는 활인매표소에서 3만9천에 예약 표를 구입해서 관람을 하였습니다.

 

 

 방파제 저편에서 배를 타고 잠수함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군요.

 

 

선착장입구에 이 등대는 포구의 위치를 알려 작은 고깃배들이 찾아들기 쉽게 유도하는 역할을 하겠지요.

 

 

하늘과 바다사이 길게 수평선을 타고 누워 있는 섬이 있습니다. 마치 악어처럼 보입니다.

 

 

나를 실고 잠수함이 있는 곳으로 가는 승객수송선의 선미에 하얀 포말이 인상적입니다.

 

 

송악산 해안의 절벽인데요. 암벽의 단층을 이룬 모습이 화산재와 용암이 겹쌓여 굳어진 분석구라고 합니다.

이 절벽 위 봉우리정상에 앞서 본 분화구가 있습니다.

 

 

절애(絶崖)의 표면이 인위적으로 판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암벽 아랫부분의 동굴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판 동굴이라고 합니다. 위에 올레 10코스의 길이 보입니다.

 

 

 검푸른 창해의 성난 파도에 일엽편주처럼 통통배 한 척이 힘겹게 부대끼며 시달리는 모양이 애처롭습니다. 그 모양을 보고 있노라니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의 어느 한 장면인 것처럼 생각이듭니다.

 

 

 드디어 잠수함이 있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바다 깊은 곳에 이처럼 잠수함기지가 있네요. U 자 모양의 모선 안에 잠수함이 정박해 있습니다,

 

 

잠수함의 앞부분입니다.

 

 

잠수함기지 옆으로 작은 배 한 척 검푸른 바다에 잠길 듯이 위태롭게 떠갑니다. 저렇듯이 검푸른 바다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앞섭니다. 저 배를 탈 수 있는 사람의 간은 얼마나 클까!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내 앞에 있던 여자 분이 열린 해치를 통해 잠수함 안으로 들어가고 있네요. 다음은 내 차례,  흐흐..  떨린다. 

 

 

드디어 잠수가 시작되었습니다. 1개의 창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앉아 창밖 바다 속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뭐가 좀 보일까..

 

 

스쿠버다이버가 먹이로 물고기들을 몰고 옵니다.

 

 

돔, 놀래미, 도미 등이 보입니다.

 

 

 사진을 찍어 보지만 신통한 것이 없습니다.

 

 

잠수부가 창마다 돌아가며 가오리 한 마리를 유리에 붙여 보여주고 다시 떼어서 다른 창으로 갑니다. 마치 서커스단의 원숭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바다 밑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지만 스쿠버다이버가 수중전등으로 비춰주는 곳은 이 정도로 보입니다.

 

 

 산호와 온갖 해초들이 어우러져 바다 속 작은 동산을 이루었네요. 마치 동네 뒷동산처럼..

 

 

창과 창 사이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 잠수함 몸체와 주변이 보입니다. 지금은 잠수함 정박지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잠수함이 수면위에 浮上한 모습이 보입니다. 수중에서 본 잠수부가 잠수함 위에 올라가 있는 것도 보입니다.

 

 

바다 속 구경을 마치고 기지로 올라서는 사람들.. 기대와 달리 밋밋한 기분이지만,  심해를 누비고 다니는 커다란 잠수함에서 갖는 느낌과 체험에 견주어 본다면 아주 미미한 한 부분에 지나지 않겠지만, 바다 속에 들어가는 물체에 몸을 실려 봤다는 것과 잠수함이란 것을 승선해 봤다는 것에 의미를 가지고 싶습니다. 세찬 파도로 인한 어떤 미동도 없었고 그냥 그 자리에서 물속에  잠겼다가 물위로 올라온 듯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밋밋한 기분이지만 한번은 체험할만하다는 생각입니다.  

 

 

나처럼 호기심을 가득 안은 분들을 태우고, 또한 우리를 실어다주기 위해 승객수송선이 다가옵니다.

 

 

잠수함을 타 본 사람들이 부두로 가기 위해 다시 수송선에 오릅니다. 돈을 벌고 삶을 이어가는 생활수단이겠지만 이렇게 보는 즐거움과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많은 투자와 수고를 한다는 생각에 감사한 생각듭니다.

 

 

 (성쿰바당)

옛날 이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원'이 있어 설쿰원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볼 수 없답니다. 설쿰은 바람이 눈에 만든 구멍을 말하며, 여기서는 설기설기 얽혀진 바위투성이 지대를 일컫습니다.

 

 

<용머리 해안 주변의 형성> 

이곳 해설판에 의하면 용머리 주변 지역에는 용머리 응회환, 산방산 용암돔, 그리고 광해악 현무암이 분포합니다. 용머리는 약 백만 년 전에 얕은 바다 환경에서 마그마가 터져 나울 때, 마그마와 바닷물이 만나 결렬히 폭발하며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분화구 주변에 쌓여 만들어진 것이랍니다. 이러한 화산폭발은 나지막한 고리 형태의 화산체(응회환)를 이루었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깎여나가고 그 일부만이 남아 있답니다. 산방산은 용머리 응회환이 형성된 뒤 조면암질 용암이 흘러나와 만들어진 용암돔으로 약 80만년 전에 형성된 것이고, 광해악 현무암은 산방산이 형성되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한라산 기슭에서 솟아난 용암이 제주 서부 지역으로 흘러들어 산방산 주변을 에워싸며 흐른 것이라고 합니다.

 

 

용머리 해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매표소가 있는 곳입니다. '파도로 위험하여 출입을 금지 한다'는 푯말이 닫힌 문에 걸려 있습니다.

 

 

응회환 . 광회악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해안 절벽 위의 모습입니다.  저 절벽 아래 해안가에 용머리바위가 있는데, 파도로 출입이 통제되어 볼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용머리 좌측 해안 전경입니다. 멀리 한라산이 보이지요.

 

 

산방연대에서 내려다본 용머리해안 풍경입니다.

 

 

 <산방연대/山方煙臺> (도지정 기념물 제23-21호, 안덕면 사계리 산33-2.)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 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는 통신수단을 말합니다. 내륙지방에서는 '봉화대'라고 하지요.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설치되었고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피워 신호를 보냈습니다. 산방연대는 사계리의 산방산 남쪽 해안가 '연디동산'에 있으며, 모슬진에 소속된 것으로 대정현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연대는 최근에 보수한 것입니다. 동쪽으로 '당포연대'(직선거리 5.7km), 서쪽 '무수연대'(직선거리 6km)와 교신하였다고 합니다.

 

 

산방연대 윗면 안입니다. 방형의 불을 피우는 화덕자리가 있습니다.

 

 

산방연대를 뒤편에서 본 전체의 모습입니다.

 

 

<하멜 기념비>

 

 

1630년 네덜란드 호르쿰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동인도 화사에서 소속 선박의 포수로 일하던 '하멜'은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서 근무하던 1653년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대만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하였습니다. 이 하멜상선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648년에 건조된 전장 36.6m 폭 7.8m 갑판높이11m 돛대높이 32m 의 범선인 바타비아호를 모델로 재현하였습니다. 범선 안에는 하멜표류기,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등 다양한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멜이 타고 항해하다 표류되어 제주도에 표착되었던 스페르웨르호를 재현한 갑판 뱃머리입니다.

 

 

 돛대의 둘레가 저의 몸통보다도 굵지요. 엄청나게 큰 배임을 아실 수 있습니다.

 

 

하멜이 타고 항해하다 표류되어 제주도에 표착되었던 스페르웨르호를 재현한 선미의 갑판 모습입니다.

 

 

2층 선실로 들어가는 문이 양편으로 하나씩 모두 2개가 있습니다.

 

 

항해사 사무실입니다. 갑판 뒤에 위치합니다

 

 

갑판 위 문으로 들어서면 2층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2층 선실 안에는 각종 자료와 배에서 사용하거나 비치된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와 같은 모양의 함포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하멜일지>

네덜란드 호르쿰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하멜은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 불고 있었던 해양 열풍에 휩쓸려 네덜란드를 떠나 1651년 7월 4일 바타비아(자카르타)에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의 포수로 입사하여, 병졸에서 조수를 거쳐 곧바로 서기로 승진했고 1653년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 13년 간 조선에서 생활하다 조국으로 돌아갔으며 경위를 보고 하고자 쓴 「하멜일지」는 조선의 내부를 세계에 최초로 알린 것이었다.

 

 

2층 선실 가운데에는 각종 네덜란드의 옛 선박들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멜이 조선에서 지내며 겪은 일들에 관한 자료와 내용을 전시한 모습입니다.   

 

 

1층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1층 선실에는 창고와 여러 가지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멜의 흔적>

1666년 일본으로 탈출한 하멜은 1년간 억류되었다가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자카르타)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 건너갑니다. 1668년 하멜을 제외한 일행 7명은 귀국하고 하멜은 조선에서 풀려난 나머지 선원들과 고국을 떠난 지 20년 만에 네덜란드로 돌아갔으며, 독신으로 생활하다 1692년 사망했습니다. 하멜이 귀국했을 때 이미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일으킨 「하멜일지」와 『조선왕국기』는 17세기 유럽에 한국의 내부를 알린 유일한 책이었으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한국을 찾기 위한 항해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페르웨르'호>

 

 

2011년 9월27일 오전, 다음은 산방산의 산방사와 산방굴사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