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外國)/알타이(Altai) 문명

알타이 역사와 환경

鄕香 2011. 8. 25. 00:09

 

아시아 한 가운데에는 "알타이(Altai)"라고 불리워지는 아름다운 산악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이 곳의 아름다움은 노래, 전설, 서사시로 찬양되어 왔습니다. 이 지역은 수정과 같이 맑고 얼음과 같이 찬 물이 흐르는 급류와 난공불락의 절벽, 눈으로 모자를 쓴 듯한 산봉우리, 통과하기 어려운 산림지대,풍부한 날짐승과 약초, 방목된 가축으로 가득한 초원, 종려나무와 혹독한 바람이 있는 동토고원지대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이 천혜의 땅에는 지금도 알타이인, 러시아인, 카자흐인, 등의 사람들이 곡물을 재배하고 양과 말을 방목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책을 쓰며,학문을 연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알타이에는 여러 비밀통로가 있는 미로같은 동굴과 수수께끼같은 신(神) 에르리크(Erlik)가 있으며, 아름다운 서사시와 구전문학 및 민요가 있고, 선사시대로부터의 뿌리깊고 풍부한 역사가 있습니다.

이 선사시대를 연구하여 역사적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고고학의 사명입니다.

 

<알타이 고원지대의 추야(Chuya)江 주변 풍경, 눈 덮인 봉우리는 쿠라이(kurai)山峯들>

 

알타이의 유적들은 19세기 초에 이미 학술적으로 주목을 끌었으며, 1826년에는 데르프트(Derpt)대학의 교수인 레데브르(K.F . Ledebur)에 의해 차리쉬(Charysh) 강 계곡에 위치한 몇 기의 쿠르칸(역자주:무덤 구덩이 위를 돌로 덮은 고분)에 대한 조사가 행해졌습니다. 그 후 1865년에는 학술원 회원인 라드로프가 남서 알타이의 베렐(Berel)계곡에 위치한 동결된 스키타이(파지리크)시대의 쿠르칸들을 발굴하여 놀라운 보물들을 세계에 공개하였습니다. 

 

<사진: 쿠르간 1-2호, 칼쥔>

 

20세기에 들어와 알타이지역은 체계적인 학술조사를 통해 세계적인 학술상의 보고(寶庫)가 될 만큼 풍부한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학술원 회원인 오클라드니코프(A.P .Okladnikov)는 훌륭한 구석기유적지들을 발견하였으며, 그랴즈노프, 루덴코, 키셀료프 등의 교수들에 의해 파지리크문화에 속하는 나무, 펠트, 천, 가죽으로 만들어진 장식예술품들이 연구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현세대의 학자들에 의해서 계속되어 훌륭한 학술적 업적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위에 예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고고학적 발견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것은 시베리아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기원전 2천년 이전의 다체색의 회화가 그려진 카라콜(Karakol)의 석관과 수많은 암각화, 기원후 유목민의 유적들, 구석기시대로 부터 근세에 이르는 수미터 두께의 인류의 문화적 잔존물을 포함하고 있는 동굴들입니다. 

 

<사진:암각화(岩刻畵) 사카치 알리안>

 

"알타이의 진주"중 하나는 의심할 바 없이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고산지대인 우코크(Ukok) 고산지역입니다. 

여기에서는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고고학자들에 의해 청동기시대, 초기철기시대 및 역사시대에 속하는 독특한 유적군이 발견되었으며, 가장 주목할 발견은 파지리크문화의 동결된 쿠르간(Kurgan)이었습니다.

 

<사진:쿠르간 1호 칼쥔>

이 쿠르간에서는 찬란하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이 매장되어 있었고, 또한 문신이 남아있는 풍부한 의복을 입은 여성미이라의 발견은 놀라운 것이 었습니다. 

 

<사진: 쿠르간 2호 발굴장면 칼쥔>

 

알타이의 역사는 지리적 위치의 영향으로 중국, 한국, 몽골, 이란, 카자흐스탄 등 주변국가의 역사 및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풍요롭고 독창적인 스키타이문화는 흑해로부터 오르도스지방과 극동까지 확산되어 예술적인 면에서 동일한 정신적 기반을 가진 스키토-시베리아 공동양식이라는 놀라운 문화를 세상에 선물하였습니다. 

한편 중앙아시아로부터 도나우강에 이른 훈족의 소용돌이, 즉 "위대한 민족이동"으로 당시 남부 시베리아와 알타이에 살고 있던 종족들도 훈족의 영토 속으로 편입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는 고(古) 투르크시대는 보다 두드러진 특징을 지닌 시대로 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에 거주하는 수많은 투르크어족들이 강력한 통일국가로 통합되었습니다. 현대의 많은 민족들의 기원은 이 시대에 열렸습니다. 

몽골시대, 즉 광량한 유라시아 대륙을 몽골인들이 지배하던 시기에 알타이 주민들은 중가리아 칸국(氵干國)에 이르기까지 줄곧 몽골족 국가조직의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알타이는 독립되거나 폐쇄되거나 격리된 영토로 남아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 땅의 거주자들은 전 인류의 역사속에서 아시아와 유럽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 속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관계로 인하여 제정(帝政)러시아가 시베리아 동쪽으로 팽창하게 되었을 때에도 알타이지역이 제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체계속에 편입되었던 알타이지역은 강력한 국가조직을 갖춘 古투르크시대 이후 부터 이 천혜의 땅을 지배하려는 강력한 여러 세력으로부터 오히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민족적 통일성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카툰(Katun)江 계곡의 쿠르간(Kurgan)발굴 광경.

무덤 위를 돌로 덮은 특징적인 형태의 고분으로 파지리크(Pazyryk)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민속학자들은 이 알타이 주민들의 풍요한 문화, 전설, 종교를 연구해 왔습니다. 수집된 놀라운 자료들은 이들의 정신적 윤택함과 독특한 세계관 등 전통문화의 독창성과 선명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줍니다. 다시말해 이들의 뿌리깊은 천년이상의 역사와 민족문화, 정신세계의 풍요로움과 독특성은 이러한 이러한 민속자료를 통해 엿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알타이의 민속문화가 주변지역의 하카스, 투바, 카자흐, 쇼르인(역자주:쿠즈네츠크의 타타르인) 등 남부 시베리아 일대 주민들의 민속문화와 유사함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알타이의 땅 그 자체에는 아직 많은 비밀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역사학자, 고고학자 및 민속학자들 앞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놀라운 발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귀중한 자원들을 계속 보존 연구하여 전 인류의 자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러시아 학자들 앞에만 놓여진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가 당면한 고결한 과제입니다. 

 

< 러시아학술원 회원 데레비안코(A.P.Derevianko) .

   러시아학술원 객원회원 몰로딘(V.I.Molod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