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의림지 겨울 풍경(2010/12월8일)

鄕香 2010. 12. 9. 14:08

 

어제 저녁부터 하얀 눈송이는 가로등 불빛을 타고 소록소록 밤새도록 내리더니 이렇게 순백의 설경을 그리고 싶었나보다.  현란한 색들의 축제에 물들여져 어질러진 것들에 부질없음을 일깨워 하얀 순백의 편함을 담아주고 싶었나보다. 온갖 욕망과 바람으로 우리의 마음에 다채색으로 칠하여 혼란과 어지러움으로 가득 채워졌을 때, 컴퓨터에 온갖 조각과 부산물로 가득하여 화면이 굼뜰 때, 이 들을 모두 떨쳐내고 비우고 싶듯이 우리 마음도 비워 이렇듯 순백으로 칠하고 싶지, 망친 그림을 지우고 덧칠하는 조잡스런 구차함보다 이렇듯이 새로움으로 새로운 화선지에 다시 그리는 거지..  우리의 삶을 하얗게 간결하고 단아하게 그리는 거지   

 

 

동이 틀 무렵 눈을 뜨자 달려왔지 너의 잔잔한 수면위에 하얗게 물든 내 자화상을 보고 싶어서.. 

 

 

2천년을 묵묵히 지내 온 너의 세월은 어떤 거니, 바람이 너를 대신해 너의 생각들을 수천의 편린으로 내게 반짝이는 구나 그건 물 같고  바람 같은 것이라고..

 

 

사람들은 너의 고마움을 잊고 살지, 너는 모든 것에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의 피 이고, 살 이고, 뼈 이자 양분이지, 너는 몽매에도 못 잊을 내 마음에 안정과 편함을 주는 어머니의 자궁속이고 수액이지...

 

 

너(水)의 순환적 정체성은 늘 대하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은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향, 맑고 청량한 심성, 언제나 변함없는 아니 변할 수도 없는 생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물을 닮은 여자가 참 좋다, 이럴 때는 늘 어머니를 포옥 안고 싶다. 그 두 손도, 가슴도, 그 마음도, 포옥 안고 싶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 알아보리라."

 

 

오늘아침 의림지호수에 오리가 참 많구나, 우리 先人들은 오리는 우리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영험한 짐승으로 믿었던 동물이지요.  오리는 一夫一妻의 참 금슬이 좋은 새이고요. 마을입구나 성황당 앞에 오리모양의 솟대가 있는 것도, 혼례에 목기러기를 올리는 것도, 모두 오리를 상서롭게 생각하는 '예'지요. 

  

 

오늘 아침 날이 참 추웠어요. 사진기를 든 손이 얼어 감각 조차 없어 셔터를 누르기도 어려웠습니다. 드디어 동이 트고 햇살이 비추네요. 저 햇살에 좀 구워 볼까 따끈하게 ㅎㅎ, 살짝 드리는 말씀인데요, 여기서 ㅎㅎ 는 하하가 아니랍니다, 히힛

 

 

아침햇살을 받은 용두산과 까치봉자락입니다. 연분홍빛 복사꽃이 만발한 것처럼 발그레 물이 들었어요.

 

 

아침햇살을 살짝 비켜봤더니 용두산에 내린 눈빛깔이 하얗게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하얀 배꽃이 온산에 핀 것 같죠

 

 

남매일까요, 부부일까요 아님 연인 일까요.. 이곳에 오면 그것이 늘 궁금합니다. 

 

 

손도 꽁꽁 몸도 꽁꽁 이젠 아침 먹으러 집에 가야겠어요. 그런데 이 길 참 근사하죠?  한 쌍의 젊음이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었다면 보기에 더 좋았을텐데..

 

 

2010년12월8일 아침에..  - 仁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