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장(柳德章 1694~1774 )의 본관은 진주. 자는 자고(子固)·성유(聖攸), 호는 수운(峀雲)·가산(茄山). 묵죽화를 잘 그렸다는 진동(辰仝)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사간 성삼(星三)입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묵죽화가 이정(李霆)을 이어, 조선 후기 신위(申緯)와 함께 묵죽의 전형을 이룬 이가 유덕장입니다. 동시대 인물인 신광수(申光洙)가 〈석북집 石北集〉에서 그의 묵죽화에 대하여 "당세의 짙푸른 수운의 대나무는 속세를 벗어났으며 그 기세가 높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정의 묵죽화풍을 답습했다고 합니다. 즉 먹의 대조를 통해 대나무간의 거리를 나타내는 수법과 통죽(筒竹)을 그리는 데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대나무 밑의 토파(土坡)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이정보다 간단하게 선으로만 그리거나 음영을 조금 넣고 끝이 뾰족한 수직점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대나무를 묘사하는 필치와 먹의 농도조절에서는 김정희(金正喜)가 지적했듯이 이정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정의 묵죽화를 따랐는데, 화면 우측 하단에 바위나 토파를 배치하고 그 위에 윗부분이 부러진 완대를 그려넣는 형식이나 구도는 李霆의 통죽을 따른 것입니다. 화면 한 귀퉁이의 토파에서 두 줄기의 굵은 대통이 힘차게 뻗어 나오고 마디에서 예리한 댓잎이 올라오는 이 작품은 금강저가 갖추어져 있다는 추사의 평에 비견된다고 하겠습니다. 秋史 金正喜는 유덕장의 묵죽도에 대해 "峀雲의 竹이 창경하고 고졸하여 팔목에 금강저가 갖추어 있다. 灘隱(이정)에게 비기면 한 구석의 손색이 있지만 근일 천학의 무리들은 너무 거리가 멀어 견주어 말 할 수 없다" 라고 말을 했었습니다. 이 그림 외에도 현재 〈설죽 雪竹〉(간송미술관)·〈설죽도 雪竹圖〉(국립중앙박물관)·〈신죽도 新竹圖〉(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전합니다.
수운유덕장필묵죽도(峀雲柳德章筆墨竹圖)
朝鮮18世紀 / 柳德章 1694~1774 / 紙本水墨 /縱 28.5× 橫 42 cm /高麗大學校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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