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회화(繪畵)

우봉 조희룡 필 매화도(又峰趙趙熙龍筆梅花圖)

鄕香 2010. 2. 4. 09:08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의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석감(石墾)∙철적(鐵笛)∙호산(壺山)∙단로(丹老) 또는 매수(梅叟)입니다. 중인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고,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였는데 글씨는 추사체(秋史體)를 본받았고, 그림은 난초와 매화를 특히 많이 그렸답니다. 1846년(헌종 12) 헌종의 명으로 금강산을 탐승하고 시를 지어 바쳤으며, 1848년에는 궁궐편액의 글씨를 쓰라는 명을 받았고, 1851년(철종 2)김정희(金正喜) 일당으로 지목되어 추자도로 유배되었습니다. 20대에는 이학전(李鶴田)·이재관(李在寬) 등과 교유했으며, 1847년에는 유최진(柳最鎭)·전기(田琦) 등과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고 김정희파의 여항문인 서화가들과 시·서·화를 통해 교유했습니다. 김정희의 문하에서 학문과 서화를 배우고 19세기 중엽 화단에서 중추적 구실을 했으며, 고서화와 함께 골동품을 좋아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회화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청나라 화적을 직접 소장하고 비평을 하는 등 그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었습니다. 화론에서는 수예(手藝)를 강조하고 재능을 중시하여 서화가에게는 학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손의 재주, 즉 기량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엿습니다. 산수와 함께 사군자를 특히 잘 그렸으며, 김정희가 강조했던 간일한 남종문인화풍에 토대를 두되 다양한 구도와 담채의 대범한 구사, 필치의 자유로운 운영,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실험의식, 거리낌없는 표현력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매화서옥도 梅花書屋圖〉(간송미술관)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인전기집인 〈호산외사 壺山外史〉, 귀양시의 기록인 〈해외난묵 海外蘭墨〉, 회고록인 〈석우망년록 石友忘年錄〉 등이 있습니다.

이 매화도는 노수간(老樹幹)이 꿈틀거리듯 힘찬 기세로 솟구쳐 화면을 가득 채우고 줄기에서 뻗은 잔가지들에서 붉고 흰 매화들이 만발한 이 작품은 그 형태와 색채 . 필치 등에서 음양과 강약이 절묘하게 대비를 이루면서 기묘한 균형을 자아냅니다. 특히 조희룡 특유의 힘찬 필세와 자신감 넘치는 활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활기찬 필력을 지닌 서가書家였기에 가능하였는데, 힘찬 필선과 예리하고도 섬세한 필묘를 세련되게 구사한 점에서도 그러한 면모가 확인 됩니다. 조희룡의 분방하고도 장식적인 화풍은 엄격한 문인화풍을 추구한 선비들의 취향을 벋어난 것이었으며, 감성을 중시하고 개성을 적극적으로 표출한점에서 근대적인 성향을 뚜렷이 드러낸 것이 었습니다.

 

   

 

매화도(又峰趙熙龍筆梅花圖)

 朝鮮19世紀 / 趙熙龍 1797~1859 / 紙本淡彩 /縱 113.2 × 橫 41.8 cm /高麗大學校博物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