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역대 왕릉

조선국 제27대 순종황제, 순명효황후 민씨,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유릉)/純宗皇帝, 純明孝皇后 閔氏, 繼妃 純貞孝皇后 尹氏(裕陵)

鄕香 2009. 7. 4. 09:57

《순종황제·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황후 윤씨 / 유릉》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 홍유릉 내

 

裕陵은 조선의 국호를 개칭하고 황제국으로 발돋움한 대한제국의 제 2대 황제이자 최후의 황제인 조선 제27대 순종과 황후 純明孝皇后 閔氏(1872~1904)및 繼后 純貞孝皇后 尹氏(1894~1966)를 합장한 陵이다. 순종은 고종 11년(1874) 2월28일에 고종의 둘째 아드님으로 창덕궁 관물헌에서 태어나셨다. 고종12년(1875) 3월25일 왕세자에 책봉되시고, 광무(대한제국 고종 연호) 원년(1897) 10월12일 황태자가 되셨다. 광무 11년(1907) 1월21일부터 7월19일 까지 대리청정을 하시다가 7월19일 경운궁 돈덕전에서 고종의 뒤를 이어 황제위에 오르셨다. 황제위에 오른 후 年號를 융희라 정하고 기울어가는 국운을 바로 잡으려 하셨으나 재위 4년만인 1910년에 국권을 일본에 강탈당하셨다. 이 후 순종은 15년간 단지 창덕궁 李王으로 불리시다가 1926년 4월25일 53세로 창덕궁 흥복헌에서 돌아가셨다. 순종 장례일 계기로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순명효황후 민씨는 여은부원군 민태호의 따님으로 고종 19년(1882)에 세자빈이 되셨고, 광무 원년(1897) 황태자비가 되셨으나 순종이 즉위하기 전인 광무 8년(1904) 11월에 33세로 돌아가셨다.

 

순정효황후 윤씨는 해풍부원군 윤택영의 따님으로 광무10년(1906)12세의 나이로 황태자비에 책봉되셨고, 그 다음해 순종이 황제위에 오르자 황후가 되셨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으려 조약 체결을 서두르자 황후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셨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1966년 1월13일 72세로 창덕궁 낙선재에서 돌아가셨다.  유릉은 조선왕조에서 유일하게 세 분이 합장된 능이다. 

 

 

〈능침 아래 침전 앞 뜰 전경〉 

다른 왕릉과 다르게 능침주변에 있던 모든 석물이 능침 아래 침전(정자각) 앞 뜰 神道 좌우에 배치되어 있어 왕릉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石像들은 문인, 무인, 코끼리, 사자, 해태, 낙타, 말 등 순번으로 배치되어 있다. 

 

 

황제의 침전(왕릉의 정자각)과 참도 좌우로 배열된 석물들의 모습,

왕릉에서는 石虎와 石羊이 각각 한 쌍씩 봉분 좌우와 뒤에 배치하고 문무인석은 봉분 앞 좌우에 배치된 것과 다르게 황제의 능은 석물의 종류도 다르지만 모두 침전 앞 參道 좌우로 배치되어 있다. 

 

 

침전(寢殿)

순종황제의 신위를 모신 제전(祭殿)으로 건물의 형식과 규모가 중국 황제의 능의 例를 따른듯하다. 조선 역대 왕릉의 " 丁 "字 모양의 丁字閣대신 황제 능의 例를 따른 듯  一字形으로 基壇위에 날렵한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을 지었으며, 그 안에 정자각과 다르게 침상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침전과 홍살문을 잇는 참도 좌우측에는 넓은 공간에는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기린, 코끼리 . 사자 . 해태 . 낙타 . 말의  석상들이 순서대로 배치되어있다.

 

침전 내부 모습

 

능침에는 곡장 안에 봉분을 감싼 병풍석이 둘려져 있고 난간석을 돌렸으며 혼유석, 망주석 장명등이 있을 뿐이다. 왕릉과 다르게 문인석, 무인석, 석호, 석양 등은 모두 능침 아래 침전 앞에 배치되어 있다.

 

 

병풍석에는 국화문이 양각돠어 있다. 

 

 

침전(寢殿) 기단에서 홍살문을 향해 바라본 전경이다.

 

 

〈순종황제표비전문 純宗皇帝表碑前文〉 

 

순종효황제유릉 純宗孝皇帝裕陵

순명효황후부좌 純明孝皇后祔左

순정효황후부우 純貞孝皇后祔右

 

 

〈순종황제표비후면문 純宗皇帝表碑後面文〉 (陰記)

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 高宗十一年甲戌二月初八日誕降乙亥冊封王世子光武元年丁酉冊封皇太子丁未夏卽皇帝位隆熙庚戌後丙寅三月十四日昇遐春秋五十三在位四年是年五月初二日葬于楊州  洪陵左岡卯坐原

后 敬顯成徽純明孝皇后閔氏  高宗九年壬申十月二十日誕降 壬午冊封世子嬪光武元年丁酉冊封皇太子妃 甲辰九月二十八日昇遐春秋三十三是年十一月二十九日葬于楊州龍馬山內洞卯坐原丁未追封爲皇后丙寅四月二十五日遷奉于裕陵而同封  繼后獻懿慈仁純貞孝皇后尹氏高宗三十一年甲午八月二十日誕降光武十年丙午冊封皇太子妃丁未進封皇后隆熙庚戌後丙午一月十三日昇遐春秋七十三是年一月二十二日葬于裕陵而同封   

隆熙庚戌後戊申十月 日 改立  

 

〈순종황제표비 음기 純宗皇帝表碑 陰記〉 (역문 譯文)

순종문온무녕돈인성경효황제  순종께서는 고종11년 (갑술년1874)2월초8일 (誕降)태어나시고 고종12년(을해년,1875년) 왕세자에 봉해지셨다. 대한제국 선포 해인 광무원년(정유년1897)에 황태자에 책봉되셨으며, 정미년 여름(1907년,7월) 황제 자리에 오르셨다. 융희 4년 (순종 4년,1910) 경술년( 8월29일) 일본제국주의에 의해대한제국이 망한 16년 후 임시정부 8년 병인년(1926년) 3월14일 돌아가셨으니, 춘추(壽限)53세에 재위 4년이셨다. 그 해 5월 초이틀날 양주 홍릉 좌측 언덕묘좌에 장사지냈다.

후 경현성휘순명효황후민씨는 고종9년 (1872년 壬申年)10월20일 태어 나셨다. 고종19년(壬午年1882년) 10세에 세자(순종)빈에 봉해 지셨고, 광무원년(丁酉年,1897년)황태자비에 책봉 되셨으며, 광무 8년(갑진년1904년) 9월28일 세상을 달리하시니, 춘추(壽限)는33세이시다. 그해 11월29일 양주 용마산 내동 묘좌에 장사지냈다.  순종1년(정미년,1907년) 황후에 추봉되시고, 임시정부 8년 (병인년,1926년) 4월25일 유릉으로 천장 순종과 함께 한 자리(穴)에 모셨다. 

계후 헌의자인순정효황후윤씨는 고종31년(갑오년 1894년)8월20일 태어나시어 광무10년(병오년,1906년) 황태자비에 책봉되시고, 융희1년 (정미년1907년) 13세에 황후에 오르신 후 60년 세월에 10년 강산이 6번 바뀌어 나라가 바뀌고 일제강점 치욕에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치르시고 자유 대한민국 제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 재임 期 병오년(1966년) 1월13일 恨스러우셨을 삶을 떠나 하늘에 오르시니 춘추(壽限)73세이셨다. 그 해 1월22일 순종황제 유릉에 세 분을 한 봉분에 함께 모셨다.  

 

 

〈순종황제표비각純宗皇帝表碑閣〉 

문인석상과 무인석상을 함께 담은 情景

 

 

침전 基壇 기단위에서 바라본 석물들이 배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문인석(文官石人像) 관복 뒷모습. 

 

 

무인석(武官石人像) 갑주(甲胄) 뒷모습.

 

 

여러 형태의 동물들의 石像

 

 

해태, 사자, 코끼리 등 석물들의 형상,

 

 

쌍봉낙타와 말의 石像

 

 

〈제정 祭井〉

산릉제례에 사용할 물을 긷는 우물. 홍살문 밖에 위치해 있다. 

 

 

〈수복방守僕房〉

수릉관(守陵官 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守僕 청소 등 능의 잡다한雜事일을 맡아 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 

 

 

〈유릉 재실 裕陵齋室〉 

이 건물은 대한제곡 2대 순종황제(純宗皇帝 1874-1926, 황제재위 1907-1910)와 첫 번째 황후 순명황후 민씨(純明皇后 閔氏 1872-1904), 두 번째 황후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 1894-1966)의 제향을 준비하는 곳이다. 재실은 왕릉의 수호와 관리를 위하여 陵參奉 등이 상주하던 곳이며, 제례 시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제사에 관련한 모든 준비를 하던 곤간이다. 능참봉의 집무실인 재실,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安香廳, 祭器를 보관하는 祭器庫, 제물을 준비하는 典祀廳과 그 외 부속 공간인 行廊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릉 재실 裕陵齋室〉 (2009년 7월 촬영)

재실 정면의 모습. 긴 행랑채를 거느린 두 개의 솟을대문이 있다. 

 

 

말끔하게 보수되어 있다. (2023년4월23일)

 

 

〈홍릉 연지 洪陵 蓮池〉

수련

 

 

2023년 4월27일  - 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