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철인왕후 김씨/예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 38-4 서삼릉 내
〈금천교禁川橋〉
홍살문 앞에 있으며 능 앞으로 흐르는 개울을 높이 일컬어 어구御溝 또는 금천禁川이라 하고 여기에 놓인 다리를 금천교라 한다. 금천교는 주로 능역의 수계가 맞닿는 홍살문 앞에 설치한다. 금천교는 그 안쪽이 바깥쪽과 구별되는 특별한 영역, 즉 임금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풍수지리에 따른 배산임수(背山臨水 :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지세)의 의미 또한 지니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물은 산으로부터 흘러온 땅의 기운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금천교를 건너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예릉(睿陵) 情景으로, 홍살문紅箭門은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붉은 색을 칠한 나무문으로 홍전문紅箭門 · 홍문이라고도 한다. 화살모양의 살대는 법도法度의 곧고 바름을 의미하여 나라의 위엄을 상징한다. 능역의 들머리에는 홍살문이 서 있고 제관祭官들이 능을 찾아 왔을 때 절을 하는 판위版位가 참도 앞머리 옆에 있다. 홍살문에 도착한 제관은 판위에서 능을 향해 절禮拜를 올리고 정자각丁字閣에 이르는데,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는 돌길을 참도參道라 한다.
〈정자각丁字閣〉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제례를 드리는 집이다.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됨에 따른 것이다.
참도參道는 향도(香道)와 어도(御道)로 구분되어 있다. 가운데 높은 길은 혼령이 다니는 향도香道라 하며 돌아가신 선왕先王의 혼령 즉 위패를 받들고 가는 제관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고 낮은 돌길은 제향祭享을 올릴 임금이 걷는 길이다.
《철종장황제 · 철인장황후 능침.(哲宗章皇帝 · 哲仁章皇后 陵寢)》
睿陵은 조선 제25대 철종(哲宗1831-1863,재위1849-1863)과 왕비 哲仁王后 金氏(1837-1878)의 陵이다. 철종 임금님은 장조(思悼世子)의 손자 全溪大院君 李㼅의 셋째 아드님으로 순조 31년(1831)에 경행방(종로2가 부근)에서 태어나셨다. 이복형이 역모에 연루되어 강화도 유배지에서 살던 중 헌종이 재위 15년 만에 돌아가시자 그 이듬해 大王大妃이신 순조의 비 純元王后 金氏의 명으로 헌종의 뒤를 이어 19세 때 창덕궁 인정전에서 왕위에 오르셨다. 처음에는 왕을 대신하여 大王大妃가 나라를 다스렸고, 그 뒤 국정을 보실 때는 외척의 세도정치로 나라의 정책이 문란하여 이를 바로 잡고자 하였으나 국정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재위 14년(1863) 12월에 33세로 창덕궁에서 돌아가셨다. 대한제국 선포 후 융희 2년(순종2년,1908) 哲宗章皇帝로 추존되셨다.
능침은 상계와 하계를 둔 영조이래의 例에 따랐다.
《철종장황제 · 철인장황후 능침.(哲宗章皇帝 · 哲仁章皇后 陵寢)》
철인왕후(哲仁王后 金氏 1837-1878)는 永恩府院君 金汶根의 따님으로 철종 2년에 왕비로 책봉되셨고 철종9년(1858년) 아드님을 낳았으나 일찍 돌아갔다. 그 후 고종 15년(1878) 42세로 창경궁에서 돌아가셨다. 융희2년(1908년) 哲仁章皇后로 추존되셨다.
봉분을 보호하기 위해 봉분 둘레에 돌린 난간석에서 童子石柱 가 받치고 있는 팔각 竹石 한 면에 원형으로 파낸 그 안 바닥에 하늘(乾)字를 음각으로 새겨 놓았다. 주역 64괘 중 하늘(乾)과 땅(坤)을 새겨 놓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주역(周易)의 기본괘로서 태극기 모서리에 있는 하늘(乾)과 땅(坤), 물(坎)과 불(離)을 상징하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를 십이간지(十二干支) 또는 십이지지(十二地支)라고 한다. 이것은 중국에서 불교적인 신앙에 유래된 것으로 호법신으로 잡귀을 물리칠 수 있는 12가지의 동물을 神의 將帥(神將)로 표현한 것이다. 그 후에 시간을 구분할 때 하루를 12등분하여 자시(子時), 축시(丑時), 인시(寅時) 등 12방위로 나누어 오늘날 24시간으로 나눈 것과 같이 사용하였으며,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라는 10간은 하루하루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10일을 1순으로 하여 한 달을 3순으로 나누었으며, 매번 중복되는 달수를 피하여 12지간을 붙여서 갑자(甲子), 을축(乙丑), 병인(丙寅) 같은 방법으로 사용하였고, 또 이것을 60갑자를 만들어 1년씩 사용하던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으로 12간지의 표현은 각기 다른 동물(12獸)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십간은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십이지지는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이다.
“子 쥐” (23시~01시) / “丑 소” (01시~03시) / “寅 호랑이” (03시~05시) / “卯 토끼” (05시~07시) / “辰 용” (07시~09시) / “巳 뱀” (09시~11시) / “午 말” (11시~13시) “未 양” (13시~15시) / “申 원숭이” (15시~17시) / “酉 닭” (17시~19시) / “戌 개” (19시~21시) / “亥 돼지” (21시~23시) .
따라서 이 난간석주 허리에 양각된 원 안에 닭(酉)字를 음각으로 새겨 12지신 중 닭의 주시(注視) 방향인 17시~19시 방향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12개의 난간석주에 각각 12地支神像을 생략한 의미를 대신한 글자를 그 순서대로 해당 방위마다 같은 방식으로 새겨져 있다.
『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 를 십이간지(十二干支) 또는 십이지지(十二地支)라고 한다. 이것은 중국에서 불교적인 신앙에 유래된 것으로 호법신으로 잡귀을 물리칠 수 있는 12가지의 동물을 神의 將帥(神將)로 표현한 것이다. 그 후에 시간을 구분할 때 하루를 12등분하여 자시(子時), 축시(丑時), 인시(寅時) 등 12방위로 나누어 오늘날 24시간으로 나눈 것과 같이 사용하였으며,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라는 10간은 하루하루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10일을 1순으로 하여 한 달을 3순으로 나누었으며, 매번 중복되는 달수를 피하여 12지간을 붙여서 갑자(甲子), 을축(乙丑), 병인(丙寅) 같은 방법으로 사용하였고, 또 이것을 60갑자를 만들어 1년씩 사용하던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는 것으로 12간지의 표현은 각기 다른 동물(12獸)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십간」은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십이지지」는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이다.
"子 쥐 (23시~01시) / 丑 소 (01시~03시) / 寅 호랑이 (03시~05시) / 卯 토끼 (05시~07시) / 辰 용 (07시~09시) / 巳 뱀 (09시~11시) / 午 말 (11시~13시) / 未 양 (13시~15시) / 申 원숭이 (15시~17시) / 酉 닭 (17시~19시) / 戌 개 (19시~21시) / 亥 돼지 (21시~23시) ."
『봉분 둘레에 설치한 돌난간으로 꽃봉오리 형식의 보주 아래 구슬 띠를 돌리고 그 아래에 구슬 띠를 중심으로 상하로 꽃잎을 촘촘히 돌린 높은 기둥은 石柱, 橫으로 돌린 팔각의 횡석주는 竹石, 석주와 석주 사이에서 죽석을 받치고 있는 장구모양에 문양을 새긴 기둥은 童子石柱라고 한다. 8각의 죽석竹石을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는 허리 상하에 각각 구슬무늬 띠를 돌려 새기고 그 안에 연결고리무늬를 양감으로 새겼고 머리 턱 부분에는 앙련仰蓮을 장식했다.』
이 난간석주 허리에는 양각된 원 안에 뱀(巳)字를 음각으로 새겨 12지신(神將) 중 뱀(巳)지신의 주시 방향인 09시~11시 방향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12개의 난간석주에 각각 12地支神像을 생략한 의미를 대신한 글자를 그 순서대로 해당 방위마다 같은 방식으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에서 동자석주가 받치고 있는 팔각 죽석에 원형으로 파낸 그 안 바닥에 땅(坤)字를 음각으로 새겨 놓았다. 주역64괘 중 하늘(乾)과 땅(坤)을 새겨 놓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주역(周易)의 기본 괘로서 태극기 모서리에 있는 하늘(乾)과 땅(坤), 물(坎)과 불(離)을 상징하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팔각 장명등 八角 長明燈》
이제까지 왕릉에서 본 도식적인 장명등과는 그 형태와 문양에서 새로움을 본다. 우선 옥개석(屋蓋石)의 지붕부터 특이하다. 3충 지붕위에 반원형의 돔(寶珠)까지 표현되어 있다. 추녀마루의 끝 8개의 전각에는 연목에 부연까지 정교하게 표현 했고 날카로움 없이 유순한 모양이다. 또한 처마 밑은 활대처럼 부드럽게 휜 전각선에 맞춰서 서까래들이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마치 영국의 왕관이나 청나라 황제의 모자를 연상케 한다. 얼굴격인 화창부에는 4개의 火窓과 4개의 '壽'字가 새겨져 있다. 몸통부에는 8면에 각각 장생문長生文이 새겨져 있다, 허리부에는 8면에 각각 귀꽃문이 새겨져 있다. 하체부 테두리는 덩쿨당초문을 돌렸고 그 아래 8개의 귀면(鬼面)을 새겼고 8개 다리(脚)가 표현되어 있다.
팔각의 火窓부에는 화창이 4개, 돋을새김한 '壽' 字문양이 4개가 있다.
8각의 몸통(腹部)에는 각 면마다 원형의 안바탕에 여러 가지 장생문을 돋을새김하여 입체감을 살렸다.
가는 허리부분에는 8개의 모서리마다 마디무늬로 장식하고 8개의 각 면에는 귀꽃이 돋을새김 되어 있다.
〈무인석 (武人石)〉
능의 주인을 保衛하는 武官,
〈문인석(文人石)〉
능의 주인을 보필(輔弼)하는 文官.
왕조 시대에 왕을 모시는 신하는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앞에서 모시는 臣은 의(疑), 뒤에서 모시는 臣은 승(丞), 왼쪽의 신하는 보(輔), 오른쪽 신하는 필(弼)이라 했다. 이중에서 좌우 양옆에서 모시는 신하가 직위가 높아 보필이란 말이 나왔으며, 곧 신하로서는 최고위 직인 재상을 뜻했다.
곡장 뒤에서 바라본 예릉 情景
《철종장황제 예릉 표비문 哲宗章皇帝睿陵 表碑文》 〈앞 글 前面文〉
大韓
哲宗章皇帝睿陵
哲仁章皇后祔左
《철종장황제 예릉 표비문 哲宗章皇帝睿陵 表碑文》 〈뒷면 글 後面文〉
哲宗熙倫正極粹德順聖欽命光道敦元彰化文顯武城獻仁英孝章皇帝 純祖 辛卯六月十七日誕生己酉六月八日封德完君九日 卽位 癸亥十二月八日 昇遐 在位十四年 壽三十三 甲子四月七日 葬于 高陽禧陵右岡子坐之原隆熙二年戊申七月追尊爲 章皇帝
后明純徽聖正元粹寧敬獻莊穆哲仁章皇后金氏 憲宗丁酉三月二十三日 誕生 辛亥冊封 王妃 癸亥 太皇帝嗣位 尊位大妃戊寅五月十二日 昇遐 壽四十二是年九月十八日 葬同原異封 隆熙二年戊申七月 追尊爲章皇后 隆熙二年 月 日
《철종장황제 예릉 표비문 哲宗章皇帝睿陵 表碑文》 〈풀이 글 譯文〉
철종희윤정극수덕순성흠명광도돈원장화문현무성헌인영효장황제, 순조 신묘년(1831) 6월17일 태어나셨고, 기유년(1849) 6월8일 덕완군으로 봉해 지셨고 그 이튼날 9일에 왕위에 오르셨고, 계해년(1863) 12월8일 돌아가셨다. 재위 14년에 수한은 33세이셨다. 갑자년(1864년) 4월7일 고양 희릉 오른쪽 남동 언덕에 모셨다.
후명순휘성정원수녕경헌장목철인장황후 김씨는 헌종 정유년(1837)3월23일에 탄생하시어 신해년(1851) 14세에 왕비로 책봉되셨다. 계해년(1863) 태황제가 보위를 물려 받자 대비로 추존되셨으며 무인년(1878) 5월12일 돌아가셨다. 壽限은 42세이셨고 같은 해 9월18일 철종의 능침 좌측 옆에 모셨다.
융희 2년(순종2년, 1908) 무신년 7월에 장황후로 추존되셨다.
융희 2년 월 일.
《철종장황제 예릉 표비각 哲宗章皇帝睿陵 表碑閣》
표비를 보호하기 위한 집.
2009년 7월2일 철종 예릉 情景
2023년 4월 24일 일부 사진과 글 첨삭. -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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