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역대 왕릉

조선국 제23대 순조, 순원왕후 김씨(인릉)/純祖, 純元王后 金氏(仁陵)

鄕香 2009. 7. 4. 09:52

《순조·순원왕후 김씨/인릉》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산 13-1 헌인릉 내 

 

 

仁陵은 조선 제23대 純祖(1790~1834, 재위 1800~1834)와 純元王后 金氏(1789-1857)의 능이다. 순조는 제22대 正祖와 유비 박씨의 아들로 1790년 창경궁 집복헌에서 태어나셨다. 정조 24년(1800)에 왕세자로 책봉되셨고 그 해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조의 繼妃인 대왕대비 貞純王后가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순조 재위기간은 외척의 세도정치의 부정부패로 국정이 어지러웠으며 자연재해와 홍경래의 난 등으로 사회적으로도 혼란하였다. 재위 34년(1834) 11월13일 45세에 경희궁 회상전에서 승하하셨다. 세상을 떠난 후 廟號를 純宗으로 하였다가 哲宗8년(1857년) 純祖로 추존되었고 고종 광무3년(1899년) 다시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로 추존되셨다.

 

純元王后 金氏(1789-1857)는 永安府院君 金祖淳의 따님으로 정조13년(1789)에 태어나 순조 2년(1802)에 왕비가 되셨고, 순조와의 사이에서 1남(추존 문조)3녀(명온·복온·덕온공주)를 낳으셨고 1834년 손자 헌종과 1849년 양아들 철종이 모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조선의 왕비 중 유일하게 연이어 2번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셨다. 哲宗 8년(1857) 창덕궁 양심각에서 69세로 돌아가셨다. 대한제국 선포 후 光武3년(1899년)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로 추존되셨다. 

 

 

〈정자각/丁字閣〉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 제례를 드리는 집이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됨에 따른 것이다. 

 

 

〈순조대왕 인릉 비각 純祖大王 仁陵 碑閣〉

 

 

〈순조대왕 인릉 구 비문 純祖大王 仁陵 舊 碑文〉  (全面)

 

朝鮮國

純祖大王仁陵

純元王后祔左 

 

 

 

〈순조대왕 인릉 구 비 음기純祖大王仁陵 舊 碑 陰記〉  (後面) 

 

御筆

純祖淵德顯道景仁純禧體聖凝命欽光錫慶繼天配極隆元敦休懿行昭倫熙化峻烈文安武靖英敬成孝大王 崇禎紀元後一百六十三年庚戌六月十八日誕生庚申二月冊封 王世子是年七月 卽位甲午十一月十三日 昇遐在位三十四年壽四十五上 諡號曰文安武靖憲敬成孝 廟號曰 純宗乙未四月十九日葬于交河舊治後乙左之原 憲宗十四年戊申追上 尊號體聖凝命欽光錫慶 今上四年癸丑追上 尊號繼天配極隆元敦休丙辰十月十一日 遷奉于廣州獻陵右岡子左之原丁巳追上 尊號懿行昭倫熙化峻烈改上 諡號曰文安武靖英敬成孝 廟號曰 純祖 

 

妃明敬文仁光聖隆禧正烈宣徽英德慈獻睿成弘定純元王后金氏 崇禎紀元後一百六十二年己酉五月十五日 誕生壬戌冊封 王妃甲午 憲宗嗣位尊爲王大妃 翼宗追崇尊爲 大王大妃垂簾同聽政七年庚子 命撤簾己酉今上嗣位垂簾同聽政三年辛亥 命撤簾丁巳八月四日 昇遐壽六十九追上

尊號 慈獻是年十二月十七日 祔葬 仁陵而同封  崇禎紀原後二百三十年 月 日

 

 

〈순조대왕 인릉 구 비 음기  純祖大王 仁陵 舊 碑 陰記〉  (역문譯文)

 

순조 연덕현도경인순희체성응명흠광석경계천배극융원돈휴의행소륜희화준렬문안무정영경성효대왕은숭정기원후 163년(경술, 1790) 6월18일에 탄생하셨고, 경신년 2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시고 같은 해 7월에 즉위하셨다. 

갑오년(1834) 11월13일에 승하하시니 재위는 34년이었고 수한壽限은 45세이시다. 

시호를 문안무정헌경성효라 하였고 묘호를 순종이라 올렸으며, 을미년(1835년) 4월19일 교하 구치 뒤 을좌 언덕에 장사하였다. 헌종14년(1848)무신년에 존호를 '체성응명흠광석경'이라 올리고 금상(철종) 4년(1853년)계축년에 존호를 '계천배극륭원돈휴'라 올렸다. 병진년(1856년)10월11일에 광주 헌릉 우강 자좌 언덕에 천봉(遷葬)하였다. 정사년(1857년)에 존호를 '의행소륜희화준렬'이라 올리고, 시호를 ' 문안무정영경성효'라 고쳤으며 묘호를 순조라 하였다.  

 

왕비 '명경문인광성륭희정렬선휘영덕자헌예성홍정' 순원왕후 김씨는 숭정기원후162년(기유년,1789) 5월15일에 탄생하여, 임술년(1802년) 왕비로 책봉되셨다. 갑오년(1834년)에 현종(孫子)이 왕위에 오르시자 왕대비가 되셨고, 익종(아들)이 추승되자 대왕대비가 되셨으며, 수렴청정을 7년하고 경자년(1840년)에 수렴청정을 거두셨다. 기유년(1849년)에 금상(철종)이 왕위에 오르시자 수렴청정을 3년하셨고 신해년(1852년)에 수렴청정을 거두셨다. 정사년(1857년) 8월4일에 승하하시니 수한은 69세이셨다. 존호를 자헌이라 올리고 같은 해 12월 17일에 인릉에 합장으로 장사하였다. 숭정기원후 230년 철종8년(1857) 월 일   

 

 

〈순조숙황제 인릉 신 비문純祖肅皇帝 仁陵 新 碑文〉 (前面)

 

大 韓

純祖肅皇帝仁陵

純元肅皇后祔左 

 

 

 

〈순조숙황제 인릉 신 비문純祖肅皇帝 仁陵 新 碑文〉 (後面〉

純祖淵德顯道景仁純禧體聖凝明欽光錫慶繼天配極隆元敦休懿行昭倫熙化峻烈大中至正洪勳哲謨乾始泰亨昌運弘基高明博厚剛健粹精啟統垂曆建功裕範文安武靖永敬成孝肅皇帝  哲宗戊午追上  尊號大中至正洪勳哲謨 辛酉追上  尊號乾始泰亨昌運弘基壬戌追上  尊號高明博厚剛健粹精小子嗣服之十六年己卯追上 尊號啟統垂曆建功裕範光武三年己亥十一月追尊恭上  諡號曰  肅皇帝 廟號曰  純祖

 

后 明敬文仁光聖隆禧正烈宣徽英德慈獻顯倫洪化神運粹穆睿成弘定純元肅皇后金氏  哲宗戊午追上 

尊號顯倫辛酉追上  尊號洪化壬戌追上  尊號神運小子嗣服之十六年己卯追上 

尊號粹穆光武三年己亥十一月追尊恭上  諡號曰 肅皇后表隧之石  哲宗所親書也 

今于立石于原表之次敬書前面與追記 庸伸小子之微忱焉 光武四年  月 日  

 

 

 

〈순조숙황제 인릉 신 비문 純祖肅皇帝 仁陵 新 碑文〉  (譯文)

 

순조 연덕현도경인순희체성응명흠광석경계천배극융원돈휴의행소륜희화준렬대중지정홍훈철모건시태형창운홍기고명박후강건수정계통수력건공유범문안무정영경성효숙황제는 철종 무오년(1858년)에 존호를 '대중지정홍훈철모'라 올리고, 신유년(1861년)에 존호를 '건시태형창운홍기'라 올렸다. 임술년(1862년)에 존호를 '고명박후광건수정'이라 올렸고, 소자(고종)가 왕위를 이은 지 16년(기묘,1879)에 존호를 '계통수력건공유범'이라 올렸다. 광무3년(기해,1899) 11월에 추존하여 시호를 숙황제로 묘호를 순조라 하였다.

 

황후  명경문인광성융희정렬선휘영덕자헌예성홍정현륜홍화신운수목예성홍정순원숙황후김씨 철종 무오년(1858)에 존호를 '현륜'이라 올리고, 신유년(1861)에 존호를 '홍화'라 올렸다. 임술년(1862)에 존호를 '신운'이라 올리고, 소자(고종)가 왕위를 이은 지 16년(기묘,1879)에 존호를 '수목'이라 올렸다. 광무 3년(기해,1899) 11월에 추존하여 시호를 숙황후로 하였다. 표수석은 철종의 친필 글씨이다. 이번에 세우는 비는 원래의 표석 다음으로 세우고, 전면과 추존하는 기록을 삼가 써서 소자(고종)의 작은 정성을 표한다.

광무 4년(1900년) 월 일

 

 

〈순조 능침 純祖 陵寢〉

순조의 능침의 석물 배치도 역시 영조의 원릉에서 시작된 상계(上階)와 하계(下階)  2단계로 조성된 것에 영조의 원릉과 정조의 건릉의 예와 같은 방식으로 석물이 배치되었다. 상계에는(봉분, 난간석, 석양, 석호, 망주석, 혼유석)을, 하계에는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마)이 배치되었다.

 

 

혼유석 魂遊石

 

 

장명등 長明燈

간략하나 단정함이 풍미롭다.

 

 

문석인 文石人 / 홀을 쥔 모습과 얼굴에서 문인 다운 후덕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읽을 수가 없고 간교함만 엿보인다.

 

 

날렵하고 민첩한 모습의 무석인 武石人

 

 

곡장 뒤에서 바라본 모습

 

2009년 7월4일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