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계비 정순왕후/원릉》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2-1 동구릉 내
《원비 정성왕후/홍릉》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 30-1 서오릉 내
元陵은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와 계비(繼妃) 貞純王后 金氏(1745-1805)의 陵이다. 영조는 제19대 숙종(肅宗)의 넷째 아드님으로 숙종25년(1699) 연잉군에 봉해지셨고 兄 경종(景宗)이 왕위에 오른 후 왕세제(王世弟)를 거쳐 경종의 뒤를 이어 1724년에 창덕궁 인정전에서 보위寶位에 오르셨다.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52년) 영조는 탕평책(蕩平策)을 써서 당쟁의 근절에 힘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균역법을 시행하고 사치를 금지했으며 백성의 부담을 덜어 주기도 하셨다. 또한 농사를 장려하고 국방에도 충실을 기울이시는 등 많은 치적을 남기셨다. 그러나 아들 사도세자가 붕당정치로 희생되는 비운을 겪으셨다. 재위 52년에 83세로 경희궁 집경당에서 돌아가셨다.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는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金漢耉의 따님으로 영조 35년(1759) 15세에 왕비가 되셨고 1800년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하셨다. 순조(純祖) 5년(1805)에 자손없이 61세로 창덕궁 경복전에서 승하하셨다.
정순왕후는 순조 즉위와 함께 4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고 철렴(撤簾)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특명으로 철렴을 선포했다.
"나는 본래 불민(不敏)한 사람이다. 일찍이 서책(書冊)을 보니, 부인으로서 국정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였다. 우리나라가 불행하게도 두 대왕(大王, 중종·인종)이 연이어 승하하였으므로, 주상이 어린 나이에 보위를 이어 국정을 맡길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부득이 섭정을 하기는 하였으나, 미안한 마음을 일찍이 하루도 잊지 못하였다. 더구나 재변이 계속 이어지고 여러 변고가 함께 발생함이 지금과 같은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나의 부덕한 소치 때문이 아닌가 하여 주야로 근심하고 염려하였으며 2∼3년 이래로는 항상 성상께 귀정(歸政)하고자 하였으나, 아직 주상의 학문이 성취되지 못하여 모든 기무를 홀로 결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굳이 사양하는 까닭에 머뭇거리다가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이제 주상의 춘추가 장성하고 학문이 고명하여져서 군국(軍國)의 여러 정사(政事)를 재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귀정하고 다시는 정사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니, 대신들은 국사에 마음을 다하고 성상을 잘 보도(輔導)하여 태평스런 정치에 이르도록 힘쓴다면 매우 다행하겠다. 부덕한 나로서는 비록 폐습을 바로잡아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려 하였으나, 잘못되는 일이 많아 끝내 그 효과를 보지 못했으니, 인심에 반드시 맞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생각하여 보건대,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실로 부덕한 나 때문이니 지금 귀정하는 것도 너무 늦은 것이다. 이 계획은 실로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내 뜻을 대신들에게 직접 말하고자 접견한 것이다."
2023년 3월 18일, 朝鮮 第 21代 英祖大王 元陵 情景
비각 안에는 다음과 같이 表碑가 3개 있다. 바라볼 때 좌로부터 "영종대왕 원릉비, 영조대왕 원릉비, 정순왕후 김씨 등이다.
〈영종대왕 표비문 / 英宗大王 表碑文〉 前文
朝鮮局
英宗大王 元陵
〈영종대왕 표비문 / 英宗大王 表碑文〉 後文(陰記)
英宗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軆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 崇禎紀元後六十七䄵甲戌九月十三日誕生己卯封延礽君辛丑冊封 王世弟甲辰 卽位丙申三月初五日 昇遐七月二十二日 葬于楊州 健元陵西第二崗亥坐之原在位五十二壽八十三(二十二日改以二十七日)
崇禎紀元後一百四十九䄵 月 日立
〈원릉 (영종대왕) 표비문 / 元陵(英宗大王)表碑文〉 譯文
영종 지행숭덕영모의열 장의홍륜광인돈희 체천건국성공신화 대성광 운개태기녕 요명순철건건곤녕 익문선무 희경현호대왕은 갑술년(1694,숭정 기원후 67년)9월13일에 탄생하시어 기묘년(1699)에 연잉군에 봉해지셨고 신축년(1721)에 왕세제로 책봉되신 후 갑진년(1724)에 왕위에 오르셨다. 병신년(1776) 3월5일에 승하하시어 7월22일에 양주(현 구리시) 건원릉(태조) 서쪽 두 번째 산줄기의 해좌(북북서 방향에서 남남동 방향)언덕에 장사지냈다. 재위는 52년, 천수는 83세이시다. (22일을 27일로 고치다.)
1776년(숭정기원후149년) 월 일에 세우다. *영조은 세상을 떠난 후 첫 묘호(廟號)를 '英宗'이라 하였다가, 1890(고종27년)에 묘호를 英祖로 고쳤다. 따라서 표비도 묘호를 고쳐 또 세웠다.
《영조대왕 표비문》 (前面)
朝鮮國
英祖大王元陵
《영조대왕 표비문》〈음기 陰記〉(後面)
英祖至行純德英模毅烈章義弘倫光仁敦喜軆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配命垂統景
曆洪休中和隆道肅莊彰勳正文宣武熙敬顯孝大王元陵表隨之石 正宗所親書也 正宗壬寅定 世室甲辰追上
尊號配命垂統景曆洪休小子嗣服之二十七年康寅改上 廟號曰 英祖 尊諡曰正文宣武熙敬顯孝追上
尊號 中和道肅莊彰勳又立石于原表之次敬書前面幷追記如右
崇禎紀元後二百六十三年 月 日
영조지행순덕영모의렬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배명수통경
력홍휴중화융 도숙장창훈정 문선무희경현효대왕 원릉표수지석 정종소친서야 정종임인정 세실갑진추상
존호배명수통경력 홍휴소자사복지이십칠년 강인개상 묘호왈 영조 존시왈정문선무희경현호추상
존호 중화도숙 장창훈우립석우원표지차경서 전면병 추기여우
숭정기원후 이백육십삼년 월 일
《영조대왕 표비문》〈역문譯文〉
조선국 영조대왕원릉
영조지행순덕영모의렬장의홍륜광인돈희체천건극성공신화대성광운개태기영요명순철건건곤녕배명수통경 력홍휴중화융 도숙장창훈정 문선무희경현효대왕 원릉 표수지석은 *정종(정조)이 친히 쓴 것이다. 정종(정조) 임인년(정조 6년, 1782년) **세실(世室)을 정하고 갑진년(1784년)에 '배명수통경력홍휴' 존호를 올렸다. 소자(고종)가 왕위를 이은 지 27년인 경인(고종27년, 1890년)에 묘호를 '영조'로 고쳐 올렸고, '정문선무희경현효'의 시호와 '중화융도숙장창훈'의 존호를 추상하였다. 또 원래의표석(영종)에 이어서 다시 표석(영조)을 세우고 공경히 전면의 글과 위의 내용을 추가로 썼다. 원표의 아래에 입석하여 전면을 쓰고 추기를 한 것은 앞과 같다. 숭정 기원 후263년(고종27년.1890년) 월 일에 세우다.
*정조는 세상을 떠난 후 첫 묘호를 正宗이라 하였는데, 1899년(광무3년)에 황제로 추존하면서 廟號를 正祖로 고쳤다.
《원릉(정순왕후)표비문》〈전면글〉
朝鮮國
貞純王后 祔左
《원릉(정순왕후)표비문》〈뒷면글〉
睿順聖哲莊僖惠徽翼烈明宣綏敬光獻隆仁昭肅靖憲貞純王后金氏 英宗大王繼妃 英宗二十一年乙丑十一月十日誕生三十五年己卯冊封 王妃丙申 正宗嗣位尊爲 王大妃庚申今 上嗣位尊爲 大王大妃垂簾同聽政三䄵癸亥 特命撤簾乙丑正月十二日昇遐六月二十日祔葬于 元陵之左同原異封壽六十一
崇禎紀元後二百七十八年 月 日
《원릉(정순왕후)표비문》〈역문(譯文)〉
예순 성철 장희 혜휘 익렬 명선 수경 광헌 융인 소숙정헌 정순왕후 김씨는영종(영조)대왕의 두 번째 왕비이시다. 영종(영조)21년(을축년)11월10일에 탄생하시어 영조35년(기묘년,1759)에 왕비로 책봉되시고, 병신년(1776)에 정종(정조)이 왕위에 오르시자 왕대비에 오르셨다. 경신년(1800) 금상(今上=순조)이 왕위에 오르시자 대왕대비에 오르신 후 수렴청정을 3년 하시다가 계해년(1803)에 특명으로 철렴(撤簾)하셨다. 을축년(1805) 정월(1월)12일에 승하하시어 6월20일에 원릉 왼쪽 같은 언덕에 봉분을 달리하여 장사지냈다. 천수는 61세이시다.
*영조는 세상을 떠난 후 첫 廟號를 '영종'이라 하였다가 1890(고종27년)에 묘호를 '영조'로 고침.
*정조는 세상을 떠난 후 첫 묘호를 正宗이라 하였는데, 1899년(광무3년) 황제로 추존하면서 廟號를 正祖로 고침.
《영조(영종) 표비와 정순왕후표비각》
〈정자각丁字閣〉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 제례를 드리는 집이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됨에 따른 것이다.
영조대왕 · 정순왕후 능침 情景 (2009년6웡27일 촬영)
영조 · 정순왕후의 원릉은 기존 다른 왕릉의 상계(上階), 중계(中階), 하계(下階)로 3단을 둔 것과 다르게 상계에서 바로 하계로 이어져 상계(봉분, 난간석, 석호, 석양, 망주석, 혼유석)와 하계(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마) 2단으로 구분지었다.
영조는 1776년 昇遐하셨을 때, 묘호를 英宗으로 하였다가 제27대 고종이 왕위를 이은지 27년인 경인년(1890년)에 묘호를 英祖로 바꿨다. 廟號란, 임금이 죽은 뒤에 종묘에 그 신위를 모실 때 올리는 尊號이다.
원릉 곡장 뒤에서 바라본 정경.
〈수라간水剌間〉
산릉제례山陵祭禮 때 제례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던 곳.
〈수복방守僕房〉
제기祭器를 보관하거나 수릉관(守陵官 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守僕 : 청소 잔디 수목 등 능의 잡다한(雜事)일을 맡아 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
(소재지 : 東九陵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산2의1)
『英祖의 元妃 貞聖王后 徐氏 弘陵』
弘陵은 고양시 서오릉 내에 위치하며, 조선 21대 영조의 원비 貞聖王后 徐氏(1692-1757)의 陵이다.
정성왕후는 達城府院君 徐宗悌의 따님으로 처음 연잉군의 부인이셨다가 영잉군이 왕세제가 되시자 따라서 景宗 원년(1721)에 王世弟嬪이 되셨고, 1724년 영조(연잉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셨다. 왕비는 조선 역대 왕비 중 중전 재임기간이 약 33년으로 가장 길었으나 영조 사이에 자식 없이 영조 33년(1757)에 66세로 창덕궁에서 돌아가셨다.
홍릉의 전체적인 배치는 쌍릉 형식이나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능의 왼쪽이 비어 있다. 이는 영조가 생전에 정성왕후와 함께 묻히려고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어 비워 두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조의 능이 현 구리시 동구릉의 원릉에 조성되면서, 현재에도 이 자리는 비어 있다.
〈정자각丁字閣〉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제례를 드리는 집이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英宗大王元妃 貞聖王后 表碑閣》 (2023년 3월19일 촬영.)
《貞聖王后弘陵 表碑文》(前面文)
朝鮮國
貞聖王后 弘陵
《貞聖王后 表碑》 〈비 뒷면 글(陰記)〉
"惠敬莊愼庚宣恭翼仁徽昭獻端穆章和貞聖王后徐氏 英宗大王元妃壬申十二月七日 誕身甲申行嘉禮辛丑冊封 世弟嬪甲辰進封 王妃丁丑二月十五日昇遐六月四日葬于高陽 昌陵左降乙坐之原春秋六十六 小孫卽阼之九年乙巳十月 日謹書"
《貞聖王后 表碑》 〈비 뒷면 글 역문(譯文)〉
'혜경장신경선공익인휘소헌단목장화정성왕후 서씨, 영종(영종1725 - 1776) 대왕의 원비(元妃), 임신(1692)년 12월7일 탄생, 갑신(1704)에 가례(嘉禮)를 행하셨다. 신축(1721)에 세제빈에 책봉되셨고 갑진(1724)에 왕비로 책봉되셨으며 정축(1757)2월15일에 승하하셨다. 6월4일 고양 창릉 왼쪽 을좌(乙坐)에 장사지냈으며 수(壽)는 66세. 손자(正祖)가 임금 자리에 오른지 9년(1785) 을사 10월에 삼가 쓴다.
정성왕후 능침 (貞聖王后 陵寢)
생전에 英祖께서는 元妃 貞聖王后 능침 옆으로 오시겠다고 넓게 자리를 잡아 놓으시더니, 임금님 조차도 의지와 다르게 오시지 못하셨네. 보는 이 조차 허전하고 정성왕후의 옆 너른 자리에 바람만 차오네.
〈수복방守僕房〉
제기祭器를 보관하거나 수릉관(守陵官 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守僕 : 청소, 잔디, 수목 등 능의 잡다한(雜事)일을 맡아 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
↑ (2023년3월19일 촬영) / (2009년6월27일 촬영.)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 내)에서 - 鄕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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