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역대 왕릉

조선국 제19대 숙종대왕, 1계비 인현왕후 민씨, 2계비 인원왕후 김씨(명릉) / 肅宗,仁顯王后 閔氏,仁元王后 金氏(明陵) & 원비 인경왕후(김씨) / 元妃 仁敬王后 金氏(翼陵)

鄕香 2009. 7. 4. 09:48

《숙종肅宗·명릉·明陵》《원비元妃·익릉翼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 30-1 서오릉 내

 

明陵은 조선 제19대 肅宗과 繼妃 仁顯王后 閔氏, 그리고 두 번째 繼妃 仁元王后 金氏의 陵이다. 숙종과 인원왕후는 나란히 자리한 雙墳이며, 인원왕후의 능은 옆에 따로 같은 언덕에 모셔 졌다. 숙종은 왕비를 세 번 맞아들이셨는데, 원비인 인경왕후 김씨의 陵인 翼陵은 서오릉 안에 따로 모셨다. 숙종은 18대 현종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8년(1667)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67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6년간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예의에 관한 선비들간의 논쟁과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 때 인현왕후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우셨다. 재위 46년(1720)에 60세에 돌아가셨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驪陽府院君 閔維重의 따님으로 숙종 7년(1681)에 숙종의 繼妃가 되셨다. 숙종 15년(1689) 왕자 윤(윤, 뒤에 景宗)의 세자 책봉 문제로 장희빈이 모함하여 폐위 되셨다.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 뒤 35세로 돌아가셨다.

 

 

정자각 바로 뒤 언덕에 肅宗과 첫 繼妃 仁顯王后 閔氏의 陵寢이 자리해 있고, 우측에 보이는 능침이  두 번째 繼妃 仁元王后 金氏의 陵이다.

 

 

 《명릉 明陵》

명릉은 조선 19대 숙종(肅宗 1661-1720, 재위 1674-1701)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仁顯王后 閔氏1667-1701), 그리고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金氏1687-1757)의 능이다. 정자각 쪽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오른쪽 쌍릉이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이며, 왼쪽 단릉이 인원왕후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 표비와 인원왕후 표비각〉

 

 

〈숙종과 인현왕후 표석 비문〉 (앞면)

 

朝鮮國

肅宗大王 明陵

仁顯王后 祔左

 

 

〈숙종 · 인현왕비 표비 음기 肅宗 · 繼妃仁顯王后 表碑 陰記〉

 

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崇禎紀元後三十四年辛丑八月十五日誕生甲寅卽位庚子六月八日昇下十月二十一日葬于高陽東峰峴甲坐之原在位四十六年壽六十繼妃孝敬仁顯王后閔氏丁未四月二十三日誕生辛酉冊封 王妃辛巳八月十四日昇下十二月九日葬壽三十五

 

〈숙종·인현왕후 표석비문〉 (譯文)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은 신축년(1661명나라 숭정 기원 후34년)8월15일에 탄생하여 갑인년(1661)에 왕위에 오르셨다. 경자년(1720) 6월8일에 세상을 떠나 같은 해 10월21일 고양 동쪽 봉현의 갑좌(동북동에서 서남서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재위는 46년 나이는 60세이시다.

두 번째 왕비 효경 인현왕후 민씨는 정미년(1667)4월23일에 탄생하시어 신유년(1681)에 왕비로 책봉되셨다. 신사년(1701) 8월14일에 세상을 떠나시어 같은 해 12월9일에 장사지냈다. 나이는 35세이셨다. 

 

 

〈肅宗과 繼妃 仁顯王后 陵寢〉

 

숙종은 14세에 왕위에 오르시어 세 차례의 환국換局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시고,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시고 화폐(상평통보) 유통, 백두산정계비 설치, 왕실 규율 확립 등 업적을 남기셨다.

인현왕후는 숙종7년(1681) 왕비가 되셨으며 원자책봉 문제로 폐위되셨다가 숙종20년(1694) 복위되셨다. 숙종27년(1701)에 세상을 떠나 명릉에 처음 모셔졌다. 인원왕후는 숙종28년(1702)에 왕비가 되셨으며, 붕당정치 속에서도 연잉군(영조)을 끝까지 보호하여 왕위에 올리셨다. 명릉의 석물은 숙종의 명에 따라 크기를 줄이고 간소하게 만들어졌다. 

 

〈숙종 대 세 번의 換局은 1680년 庚申換局(서인집권), 1689년 己巳換局(남인집권), 1694년 甲戌換局(서인집권) 으로 숙종은 세 번의 환국을 통해 권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여 대신들을 다스리고 왕도정치로 국방을 다지고 백성을 편안케 하셨다.〉

 

 

 

〈肅宗과 두 번째 繼妃 仁顯王后 陵寢의 상설 전경〉

 

 

문석인과 그에 딸린 석마

 

 

무석인과 그에 딸린 석마

 

 

《仁元王后 金氏 陵寢》

 

첫 번째 繼妃 仁元王后 金氏(1687-1757)는 慶恩府院君 金柱臣의 따님으로 숙종 28년(1702)에 왕비가 되셨고

英祖 33년(1757)에 71세로 돌아가셨다.

 

 

우측에서 바라본 인원왕후 능침

 

 

《비각碑閣》

바라볼 때 좌측은 숙종과 셋째 왕비 인현왕후 표비 · 우측은 둘째 왕비 인원왕후 표비.

 

 

《명릉 인원왕후표비문 明陵 仁元王后表碑文》 (앞면 글)

 

朝鮮國

仁元王后祔左岡

 

 

《명릉 인원왕후표비문 明陵 仁元王后表碑文》 (뒷면 글)

惠順慈敬獻烈光宣顯翼康聖貞德壽昌永福隆化定懿章穆仁元王后金氏丁卯九月二十九日 誕生壬午冊封 王妃丁丑三月二十六日 昇遐七月二十日 葬于高陽 大王陵右岡乙左之原壽七十一嗚呼前面篆字及陰記小子泣血拜手敬書少伸微忱焉  

崇禎紀元後百三十年立于 大王陵碑左

 

《명릉 숙종 계비 인원왕후 표비문 明陵 肅宗繼妃 仁元王后 表碑文》 (뒷면 글 역문)

조선국 인원왕후를 오른쪽 언덕에 모심 

혜순 자경 헌열 광선 현익 강성 정덕 수창 영복 융화 정의장목 인원왕후 김씨는 정묘년(1687) 9월29일에 탄생하시어 임오년(1702)에 왕비로 책봉되셨다. 정축년(1757) 3월26일에 세상을 떠나시어 같은 해 7월12일 고양 대왕릉(숙종 명릉) 오른쪽 산줄기 을좌(동남동에서 서북서 방향)언덕에 장사지냈다. 나이는 71세이시다. 오호! (표석) 앞면의 전자(篆字전서체)와 뒷면의 내용을 소자(영조)는 피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작은 정성을 다하여 써 올립니다.  1757년(명나라 숭정 기원후 130년)에 명릉 표석 왼쪽에 세우다. 

 「篆字(전서체)는 보통 표석 앞면이나 신도비의 머릿글로 씀」

 

 

바라볼 때 좌측 單墳은 숙종의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 능침, 우측 雙墳은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 능침. 원비 인경왕후 익릉은 따로  떨어진 다른 능선에 위치함.

 

 

《익릉 翼陵》

(肅宗의 元妃 仁敬王后 陵

 

조선 제19肅宗의 첫 번째 元妃 仁敬王后 金氏(1661-1680)이다. 인경왕후는 光城府院君 金萬基의 따님으로 顯宗 12(1671) 11세에 세자빈이 되셨다가 숙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1674) 왕비로 책봉되셨다. 그러나 천연두에 걸려 숙종 6(1680)에 경희궁 회상전에서 20세에 돌아가셨다

 

 

〈參道와 丁字閣〉

참도參道는 향도(香道)와 어도(御道)로 구분되어 있다. 가운데 높은 길은 혼령이 다니는 향도香道라 하며 돌아가신 선왕先王의 혼령 즉 위패를 받들고 가는 제관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고 낮은 돌길은 제향祭享을 올릴 임금이 걷는 길이다. 

翼陵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익랑(翼廊)이 있어 특이하다. 능역에 산릉제물을 준비하는 수라간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익랑을 수라간을 대신하는 거 아닌가 싶다.  

〈翼廊 문의 오른쪽과 왼쪽에 잇대어 지은 행랑.〉

 

 

홍살문부터 정자각까지 경사진 땅에 지형에 맞춰 일정한 간격으로 단을 두어 박석(薄石)을 깔고 향로와 어로가 조성되어 있어 특이롭다. 〈薄石 얇고 넓적하게 떠낸 돌로 궁궐이나 왕릉 등 길에 깔아 놓은 디딤돌〉

 

 

〈肅宗大王의 元妃 仁敬王后 翼陵 表碑閣〉

 

 

〈숙종 원비 인경왕후 익릉 비문 肅宗 元妃 仁敬王后 翼陵〉 (앞면 글)

朝鮮國  仁敬王后翼陵

 

 

〈仁敬王后 翼陵 碑文〉(뒷면 글)

光烈仁敬王后金氏 肅宗大王元妃辛丑九月三日誕生 辛亥冊世子嬪 甲寅進封王妃 庚申十月二十六日昇遐辛酉二月二十二日葬在 明陵北崗丑坐之原壽二十

 

 

〈仁敬王后 翼陵 碑文〉(역문)

 조선국 인경왕후 익릉

광렬 인경왕후 김씨는 숙종대왕의 첫 번째 왕비이신데 신축년(1661) 9월3일에 탄생하시어 신해년(1671)에 세자빈에 책봉되시고 갑인년(1674)에 왕비에 책봉되셨다. 

경신년(1680)10월26일 돌아가셔서 신유년(1681)2월22일 명릉(숙종의 능) 북쪽 산줄기 축좌(북북동에서 남남서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나이 20세이셨다. 

 

 

숙종 元妃 인경왕후 익릉 능침 정경.

 

 

익릉(翼陵 숙종 원비 인경왕후릉)은 숭릉(崇陵 현종과 명성왕후 능 구리 동구릉 내)의 양식에 따라 봉분은 난간석만 둘렀다. 

 

 

정자각 뒤에서 바라본 인경왕후 능침

 

 

〈수복방守僕房〉

제기祭器를 보관하거나 수릉관(守陵官 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守僕 청소 등 능의 잡다한雜事일을 맡아 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 내〉  2009년7월과 2023년 3월에 찍은 사진 임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