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역대 왕릉

조선국 제20대 경종,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릉) · 원비 단의왕후 심씨(혜릉)/景宗 , 繼妃 宣懿王后 魚氏 (懿陵) . 正妃 端懿王后 沈氏(惠陵)

鄕香 2009. 7. 4. 09:49

《경종·계비 선의왕후어씨/의릉》서울시 성북구 석관동 1-5  

《원비 단의왕후 심씨/혜릉》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2-1 동구릉 내

 

서울 석관동 천장산 능선자락에 위치해 있는 懿陵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景宗1688-1724, 재위1720-1724)과 두 번째 王妃 宣懿王后 魚氏(1705-1730)를 모신 능이다.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나시자 현재의 자리에 능침이 조성되었다. 경종의 능침에서 직선으로 30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선의왕후 능을 조성하였다. 같은 한 능선에 앞뒤로 조성한 이유는 풍수지리상 생기가 왕성한 正穴에서 벋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경종과 선의왕후 봉분주변에는 각각 망주석, 문석인, 무석인, 장명등, 혼유석 등의 석물을 갖추었고 경종의 능에만 곡장을 둘렀다.  

 

 

〈정자각丁字閣〉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제례를 드리는 집이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됨에 그 까닭이 있다. 이 의릉의 정자각 정전 양 옆에 한 칸씩 익랑(翼廊)을 추가했다.

 

 

경종과 선의왕후 능이 하나의 곡장 안에 앞뒤로 조성되어 있다. 앞 봉분이 왕비 능침이고, 뒤에 곡장을 두른 봉분이 경종의 능침이다. 

 

 

《경종대왕 의릉 표비문/景宗大王 懿陵 表碑文 》 (앞면글)

 

朝鮮國

景宗大王 懿陵

宣懿王后 祔 

 

 

《경종대왕 의릉 표비문景宗大王 懿陵 表碑文 》 (뒷면글)

 

景宗德文翼武純仁宣孝大王 崇禎紀元後六十一年戊辰十月二十八日誕生 庚子卽位 甲辰八月二十五日 昇遐 十二月十六日葬于 楊州南中梁浦天藏山申坐之原 在位四年 壽三十七 

繼妃敬純孝仁惠穆宣懿王后魚氏 乙酉十月二十九日歎生 戊戌冊世子嬪 庚子進封 王妃 庚戌六月二十九日昇遐 十月十九日祔葬在下 壽二十六

 

〈경종대왕 의릉비문 역문〉

경종덕문익무순인선효대왕은 숙종14년(1688)10월28일에 탄생하시어 1720년에 즉위하시고 1724년 8월25일 승하하시어 그 해 12월16일 양주 남쪽 중량포의 천장산 남쪽에서 북동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왕위에 계신 햇수는 4년이고 천수는 37세이셨다. 

두 번째 왕비이신 경순효인혜목 선의왕후 어씨는 숙종31년(1705)10월29일 탄생하시어 숙종44년(1718)에 왕세자빈으로 진봉되시어 1720년에 왕비로 책봉되셨다. 영조6년(1730)6월29일 승하하시어 그 해 10월19일 경종대왕 능 아래 가까운 곳에 부장되셨다. 천수는 26세이셨다. 

 

 

〈의릉 비각  懿陵 碑閣〉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워둔 집이다.

의릉 표석은 1724년 경종이 세상을 떠난신 후 세웠던 표석에 1730년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신 후 최종적으로 새긴 표석이다. 

 

 

제20대 왕 경종(景宗1688-1724, 재위1720-1724)은 숙종(肅宗)의 첫째 아들로 숙종과 옥산부대빈 장씨의 아드님으로 어머니는 사극 장희빈으로 유명하신 희빈 장씨(禧嬪 張玉貞)이시다. 숙종16년(1690) 세 살에 왕세자가 되셨고, 33세(1720)에 즉위하셨다. 몸이 매우 약하여 이듬해 바로 이복동생인 연잉군(英祖)을 후계자로 정하시고 재위  4년(1724)만인 37세에 자식 없이 창경궁 환취정에서 돌아가셨다. 어머니이신 희빈 장씨가 붕당정치의 권신들간의 다툼의 희생양으로 사약을 받아 돌아가셨고,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던 恨도 많으셨을 비운의 임금이셨다. 

 

 

〈경종대왕 능침〉

 

〈경종대왕 봉분〉

 

 

경종대왕 능침의 석물 정경, 석물의 규격이 실물에 맞춰 제작되어 있다.

 

 

무석인 갑옷 아래 표범가죽을 두른 모습인데 뒤에는 꼬리를 세 번 둥굴게 말린 모습까지 표현되어 있다. 

 

① 武石人  ②文石人

〈무석인(武石人)〉

 

《경종대왕 계비 선의왕후 능침》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1705-1730)는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 魚有龜의 따님으로 숙종44년(1718) 경종의 첫 번째 부인이신 심씨(추존 端懿王后)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시자 같은 해에 두 번째 왕세자빈에 책봉되셨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비가 되셨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신 후 경순왕대비(敬純王大妃)가 되셨으며, 경종이 승하하시고 6년후인 26세에 경덕궁(現 경희궁) 어조당에서 자손 없이 돌아가셨다.

이 능은 쌍능(雙陵)으로 풍수지리설에 의해 왕과 왕비의 봉분을 한 언덕에 앞뒤로 배치한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 이와 같은 陵은 孝宗의 寧陵이 있다. 

 

 

景宗大王 繼妃 宣懿王后 封墳

 

 

武石人과 그에 딸린 石馬

 

 

曲墻뒤에서 바라본 경종과 선의왕후 능침 情景 

 

 

 내려다 본 의릉(懿陵) 정경.

 

 

의릉 曲墻 뒤에서 바라본 정경.

 

 

《혜릉 惠陵》

〈조선 20대 경종(景宗)의 元妃 端懿王后 沈氏의 혜릉 〉

구리시 동구릉 내에 위치한 惠陵은 조선 제20代 임금 경종(景宗)의 正妃 端懿王后 沈氏(1686-1718)의 陵이다. 단의왕후는 靑恩府院君 沈浩의 따님으로 숙종22년(1696) 11세에 세자빈이 되셨다. 그러나 세자빈의 신분으로 숙종44년(1718) 33세로 창덕궁 창춘원에서 세상을 떠나 이 자리에 왕자의 例로 모셔졌다. 이 후 1720년 경종(景宗)이 왕위에 오르자 단의왕후로 추존하셨고 능호를 혜릉이라 하셨다. 경종2년(1722)에 능의 격식에 맞춰 난간석과 망주석, 문·무석인 등의 석물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왕릉의 형식에 맞게 난간석, 망주석, 문무석인 등을 세웠다, 혜릉의 석물은 명릉(숙종과 인현왕후 )의 제도에 따라 사실적으로 만들어져 문·무석인이 사람의 크기와 같은 것이 특징이다. 

 

 

홍살문 옆 판위 앞에서 바라본 단의왕후 혜릉 정경.

 

 

〈정자각丁字閣〉

祭禮 때 제물을 진설陳設(차림)하고제례를 드리는 집이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한자의  '丁' 字 모양과 같다하여 정자각이라 부른다. 정자각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동쪽으로 진입하여 서쪽으로 내려가는 동입서출(東入西出)로 진행됨에 따른 것이다. 

 

 

端懿王后 沈氏 陵寢

 

 

《경종 원비 단의왕후 혜릉 표비》 (앞면글)

 

朝鮮國 端懿王后 惠陵

 

 

《경종 원비 단의왕후 혜릉 표비》 (뒷면글)

恭孝定穆端懿王后沈氏 景宗大王元妃丙寅五月二十一日誕生 丙子冊封世子嬪戊戌二月七日昇遐四月十九日葬于楊州 崇陵左岡酉坐之原壽三十三庚子追封 王妃

崇禎紀元後一百二十年立  

 

《경종 원비 단의왕후 혜릉 표비》 (뒷면글)역문

공효정목 단의왕후 심씨는 경종대왕의 첫 번째 왕비이신데 병인년(1686)5월21일에 탄생하시고 병자년(1696)에 세자빈에 책봉되셨다. 무술년(1718) 2월7일에 승하하시어 같은 해 4월19일에 양주(지금의 구리시)숭릉 왼쪽 산줄기의 유좌(서쪽에서 동쪽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천수는 33세이시며 경자년(景宗2년, 1720년)에 왕비로 추봉되셨다.  숭정기원후 120년(1747년)에 세우다.

 

 

《경종 원비 단의왕후 혜릉 표비각》

비각은 능 주인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집이다.

 

 

〈수라간水剌間〉

산릉제례山陵祭禮 때 제례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던 곳.

 

 

〈수복방守僕房〉

제기祭器를 보관하거나 수릉관(守陵官 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守僕 청소 등 능의 雜事일을 맡아 보던 일종의 관노비)이 거처하던 곳. 

 

2023년4월5일 -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