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先史) 373

영산강유역의 문화 3 (出土遺物.裝嚴具.鐵器)

『장엄구(裝嚴具)』 甕棺에서 출토된 장엄구(裝嚴具)에는 나주(羅州) 신촌리(新村里) 9號 을옹관(乙瓮棺)의 금동보관(金銅寶冠), 금동신발(金銅飾履), 은제단봉환두대도(銀製單鳳環頭大刀) 등이 있습니다. 관모(冠帽)는 신라와 가야고분에서 純金製, 銀製, 金銅製가 상당수 출토되었지만 고구려와 백제..

영산강유역의 문화 2 (出土遺物.土器)

『영산강유역 출토유물 각종토기』 영산강유역의 옹관출토 토기는 회백색계의 연질토기와 회청색의 경질토기로 대별할 수 있으며 적갈색의 연질토기도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기의 절대량은 항아리종류(壺類)가 차지하고 있는데 30cm 내외의 둥근 짧은 목항아리(球形 短頸壺)가 많습니다. 단경호..

영산강유역의 문화 1 (墳丘의 巨大化)

영산강유역에서 발견되는 초기 분구묘(墳丘墓)는 토광묘(土壙墓)가 중심묘제로 등장합니다. 그 뒤 이러한 분구에 옹관묘(甕棺墓)가 追加되는 형태를 보이는데 이 시기의 분구묘는 그다지 높지 않은 구릉에 위치합니다. 분구의 둘레에 墓域으로서 周溝가 파여지고 이 때 나온 흙을 분구의 성토에 이용..

영산강의 고대문화 (墳丘墓 . 遺物 各種.)

原三國時代 후기 또는 삼국시대 초기가 되면 榮山江流域에서도 새로운 문화요소의 유입으로 墓制의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支石墓나 積石木棺墓가 소멸하고 대신 土壙墓나 甕棺墓가 유행하게 됩니다. 초기의 토광묘는 墳丘의 유무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지만 곧자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