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구(裝嚴具)』
甕棺에서 출토된 장엄구(裝嚴具)에는 나주(羅州) 신촌리(新村里) 9號 을옹관(乙瓮棺)의 금동보관(金銅寶冠), 금동신발(金銅飾履), 은제단봉환두대도(銀製單鳳環頭大刀) 등이 있습니다. 관모(冠帽)는 신라와 가야고분에서 純金製, 銀製, 金銅製가 상당수 출토되었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것으로 알려진 예는 극히 적습니다. 신촌리 9호분 을관출토 금동관은 內冠과 外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라관(新羅冠)의 도안화(圖案化)된 出字形과는 달리 초화형입식(草花形立飾)으로 구성되어 있어 형식면에서 古式으로 보입니다. 환두대도(環頭大刀)에 나타나는 용봉문(龍鳳文)의 경우 관위(官位)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출현은 새로운 지배체제의 확립과 관련되어 5세기 후반에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신촌리 9호분 을관의 금동관을 비롯한 위세(威勢)를 나타내는 장엄구들은 이 지역 일대에 강력한 정치체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금동관(金銅冠)
백제/羅州 潘南 新村里 9號墳乙瓮棺 /高25.5cm
<금동신발(金銅履)>/ 羅州 潘南 新村里 9號墳乙甕棺 /長29.7cm
<은제팔찌(銀釧)>/羅州 潘南 新村里 9號墳乙甕棺 /徑7.5cm
<각종유리옥(琉璃玉各種)> 영산강유역 옹관묘출토
<각종유리옥(琉璃玉各種)> 영산강유역 옹관묘출토
『철기(鐵器)』
옹관고분(甕棺古墳)으로부터 출토되는 철기에는 철제대도(鐵製大刀)와 철촉(鐵鏃) 등 무기류(武器類)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도(大刀)의 경우에는 이른시기의 시종면일대(始終面一帶) 고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반남고분군(潘南古墳)에서는 다량의 철촉과 함께 大刀가 있고 최근 조사된 務安 九山里古墳에서도 鐵刀가 追加되었습니다. 이는 옹관고분의 축조집단이 소유한 戰鬪力의 面貌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大安里 9號墳과 新村里 9호분에서 조사된 화살통의附屬 金具들도 같은 성격의 유물들입니다. 刀子는 옹관묘에 가장 흔하게 副葬된 철기 중의 하나입니다. 병부(柄部)에 목질흔적(木質痕)이 있어 대체로 나무자루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대안리 9호분 辰棺에서는 직호문록각제도자병두(直弧文鹿角製刀子柄頭)가 출토되어 주목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쇠도끼(鐵斧), 쇠낫(철겸鐵鎌), 쇳덩이(철정鐵鋌) 등이 있습니다. 철정 가운데는 2~3cm 정도의 극소형 미니어처도 있으며 철부 역시 일부는 실용성이 없는 매납용(埋納用)으로 제작된 것들이 있습니다.
<각종철기(各種鐵器)>영산강유역 출토/길이(左下)15cm
<대도(大刀)>무안군 몽탄면 구산리 3호 옹관 출토/길이 69.2cm
<철정 외(鐵鋌 外)>영산강유역 옹관 출토/길이(左)16.6cm
『단야구(鍛冶具) 』
鍛冶具는 철기 생산에 사용된 道具들을 말합니다. 단야구에는 집게.망치 등의 도구세트를 비롯하여 務安郡 社倉里에서 출토된 ㄱ字形 공구와 같거나 날을 세울 때 썼던 숫돌이 포함됩니다. 단야구의 출토는 매우 한정된 드문 일입니다. 樂浪의 유적에서 집게와 망치가 출토되어 당시 중국 漢의 단조기술이 유입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남부지역에서는 1세기경의 昌原 茶戶里17號墳의 철망치를 제외하면 모두 4세기 이후의 자료입니다.
단야구(鍛冶具) / 무안군 몽탄면 사창리 출토 / 길이(左)25.2cm
參考 : 國立光州博物館 特別展示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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