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朝鮮時代)/조선 백자(白磁)

朝鮮의 魂과 白磁器

鄕香 2007. 3. 23. 23:00

불교가 국교인 고려의 자기는 

유려한 곡선의 美와 섬세하고 우아하고 감정에 예민한 형태은 피안을 희구한 불교적 예술이었지요.

그러나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조선은 이 시대 窯藝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위엄의 미를 구했읍니다.

고려 때의 작품은 여성미가 있다면 조선시대의 작품은 남성미가 있습니다.

감정 보다도 의지가 미를 지배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도덕에 의해 어떻게 하면 확고한 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배워습니다.

조선의 많은 역사적 고민 속에서 다시 한 번 지상에서 안정된 왕조를 구가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릇에까지도 이것이 요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유유자적한 형태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문양에서도 고려시대의 섬세하고 우아한 문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조각과 깍기의 수법과 모양도 단순화하였습니다.

중국과는 다른 독보적인 순수한 형태와 문양은 한 시대의 고양된 기풍이 저절로 표현되었습니다.

조선시대는 흙과 돌을 섞어쓰지 않는 도기와 자기를 구분지은 자기의 시대입니다.

그리하여 단단하고 강한 자기가 가장 많이 요구되었고 고려시대의 작품과는 분명히 구분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틀, 새로운 기백, 새로운 정신, 새로운 문화로 조선을 창출 한 것입니다.

 

단단한 돌과 보다 높은 열도가 그들이 새로 원한 것이며

조선에서 크기와 강함을 찾으려면 조선시대의 자기에서 찾아야할 것입니다.

중국은 '매소포타미아'같은 문명의 발상지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조선은 문화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러나 

중국을 모방하거나 그에 종속되지 않은

조선의 특색과 정신을 살린 독립적 조선의 미를 창조하였습니다.

조선은 중국에서 떨어지려한 나라입니다.

이러한 인정에서 어떻게 중국과 동일한 것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예술이 마음을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면 조선에서 그대로 추종할 수 있는 중국의 작품이란 없는 것 입니다.

일단 조선에 들어온 중국의 수법은 소화되고 변화되어 전혀 다른 방향의 美로 옮아갔습니다.

 

유약 또한 독보적입니다.

백자에 있어서도 같은 흰빛이지만 저 냉랭한 듯한 날카로운 순백을 드러내는 명나라 자기와

언제나 연한 옥색을 나타내거나

혹은 흰빛에 싸여 있거나

음울한 회백색을 띄워

안으로 가라앉으려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는 조선 자기와는 얼마나 다른가!

요염한 모란이 중국의 도자기라면 청조하고 고운 수련의 아름다움이

조선의 백자입니다.

모란이 수련일 수 없고 수련이 모란일 수 없듯이 말입니다.

유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굽는 방법에서도

명나라의 자기중에서도 위대한 것은

거의 산화염으로 구워 졌으며 게다가 열도가 세고 본바탕은 단단하며 빛깔은 밝아 칼날같은 오싹한 날카로움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조선 자기는 얼마나 온화한가요.

열도도 고열이 필요없으며 즐겨 환원염으로 구워졌으며

이러한 불꽃에 적합한 가마구조와 연기로 그을려 표면을 안으로 가라 앉히는 수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드러진 구별을 잘못 보아선 안 됩니다.

 

다음은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문양입니다.

물론 어떤 것은 중국에서 들어와 전화된 것임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조선은 자신의 화법으로 그것을 자기 문양으로 바꾸었습니다.

龍蛇와 봉황만 하더라도 단순화의 추이를 볼 수 있으며

철화 백자 항아리에서 볼 수 있듯이 마침내

그것은(중국 문양이 조선방식으로 변화된 문양 )원형조차 찾을 수 없으며

스스로 주변에 있는 꽃과 새 또는 특색있는 자연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산수도에 뾰죽하게 솟은 산봉우리들이 구름사이로 보이고

멀리 두세척의 배를 띄운 강을, 그리고 양쪽에 큰 바위를 그린 구도는

한강변에 있는 분원에서 멀리 삼각산 일대를 바라본 풍경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구도를 갖춘 것은 오히려 적고 대부분 

한 송이의 꽃이나 한 마리의 새 같이 단순한 것을 대범한 필치로 그렸습니다.

그것은 결코 중국의 것도 그 어느 민족의 것도 아닙니다.

붓끝이 지나간 흔적을 더욱 주의 깊게 살펴 본다면

그것이 명나라의 필치와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산수도 같은 후자에서는 선이 바늘처럼 가늘고 날카롭고 맑지요.

그러나 전자에서는 필적이 훨씬 굵고 조용하며 천진스럽습니다.

 

중국은 어디까지나 자극이 강한 나라입니다. 자기의 형태도 문양도 채색도...

그러나 조선의 작품은 강요같은 짓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아이들이 그린 것 처럼 분방하고 자유로운 맛을 내고 있습니다.

또한 색채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처럼 조잡하고 다양한 채색 보다는

단아하고 은은함으로 편함을 표현했습니다.

조선 시대 정신은 다른 것에 대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것으로의 추종을 허락치 않는 독보적인 세계를 지녔습니다.

조선 백자는 우리의 자긍이었습니다.

인류의 문화가 그릇에서 시작한 문화라는 점에서

우리의 그릇 문화는 선사 시대의 토기와 고려 자기,

그리고 조선 백자를 거쳐 세계 문화의 선두적 문명입니다.

 

< 다음은 조선 백자에 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