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시대(高句麗時代)/고구려 유물(高句麗 遺物)

고구려구의동유적유물토기(高句麗九宜洞遺蹟址土器遺物)

鄕香 2006. 4. 23. 11:27

 

 

구의동(九宜洞)유적은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속하며 서울의 젖줄인 漢江邊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낮은 구릉(해발53m) 정상에 위치하며 높은 편은 아니지만 주변 지역이 낮은 탓으로 주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주위에는 아차산성,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고분군 등의 고구려와 백제의 유적이 혼재해 있으며 양국간의 각축이 심했던 지역입니다. 이 유적은 (직경 14.8m의 築石部와 그 내부의 직경7.6m의 燒土部로 이루어졌음)구덩이를 이중으로 파고 그위에 목조건물을 지은 후 그 가장자리를 돌로 돌려 벽을 만든 고구려의 방어시설로서 아차산성과 더불어 한강의 방어선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돌벽은 지름15m정도의 둥근 형태로서 깬돌과 냇돌을 섞어 1.0~1.8m의 높이로 안쪽으로 기울도록 쌓았는데 세 군데의 네모진 돌출부가 달려 있습니다. 돌벽 안쪽에서 지름 7.6m의 불탄 원형건물터가 조사되었고, 배수구 . 온돌시설 . 출입시설이 확인되었습니다.

구의동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토기류와 철기류가 출토되었습니다. 토기들은 일부를 제외 하고는 모두 泥質胎土로 되어 있으며, 표면색은 황갈색과 흑색, 흑회색, 회색 등이 있으나 황갈색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의동유적에서 출토된 고구려 토기류는 모두 19개의 器種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의 최소개체수는 369점에 달합니다. 이 중 독(甕)류와 동이(大鉢)류가 가장 많고 배긴항아리(長胴壺)類, 壺 . 甕類 등 4개 기종이 10% 이상의 구성비를 차지하고 있으며, 圓筒形三足器類, 有蓋盒類, 兩耳長胴甕類, 또아리병(橫甁)류 . 盤口甁類, 兩耳附壺類, 耳杯類 등의 10개 器種은 10점 미만이 확인 되었는데 이들 기종은 모두 고구려 중기 이후에 출현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 유적은 무기와 농기구가 함께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군사들이 노사를 지으면서 싸우는 둔전(屯田)적인 성격의 군사시설로도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고구려가 백제와 더불어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던 5-6세기경의 유적이라 여겨집니다.

 

 구의동유적 수혈내부 온돌유구 노출상태 (蓋石除去 後)

 

 구의동유적 배수로 노출 전경

 

 긴항아리(長胴壺)

高句麗5世紀/高32.7cm,口徑13.0cm,底徑11.6cm/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긴항아리(長胴壺)

高句麗5- 6世紀/(右)高31.1cm,口徑10.9cm,底徑12.3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시루(甑)

高句麗5- 6世紀/高24.5cm,口徑38.2cm,底徑20.3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시루 밑바닥(甑底)

 

철솥에 올려진 시루(鐵복)

 高句麗5- 6世紀/(전체)高45.5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시루(甑)

高句麗5- 6世紀/高16.7cm,口徑28.3cm,底徑11.3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시루 밑바닥(甑底)

 

 철솥에 올려진 시루(鐵복)

 高句麗5- 6世紀/(전체)高30.0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뚜껑(蓋)

高句麗5- 6世紀/高11.7cm,口徑36.7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뚜껑(蓋)

高句麗5- 6世紀/高5.7cm,口徑15.0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뚜껑(蓋)

高句麗5- 6世紀/高5.7cm,口徑15.0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뚜껑(蓋)

高句麗5- 6世紀/高6.3cm,口徑35.0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뚜껑(蓋)

高句麗5- 6世紀/高6.7cm,口徑40.2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병(盤口甁)

高句麗5- 6世紀/高11.9cm,口徑6.6cm,底徑6.4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병(環狀甁)

高句麗5- 6世紀/高10.7cm,口徑7.6cm,直徑30.3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사발 각종(盌 各種)

高句麗5- 6世紀/(右)高7.5cm,口徑16.9cm,底徑11.6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이 토기의 文樣은 '井'字를 새겨 넣은 것으로 신라 好盂塚에서 발굴된 靑銅盒 외면 밑바닥(底)에 施文된 文樣과 같은 문양으로 이 時期(4 - 5世紀 광개토대왕~ 장수왕 )의 고구려 用器에 새겨져 나오는 것으로, 청동합의 밑바닥에는 井字 文樣아래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崗上廣開土地好太王壺于十)"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을묘년(乙卯年)은 광개토대왕의 死後인 장수왕3년(서기 415년)입니다. 고구려 광개토왕을 위해 만들었던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계의 그릇이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당시 신라와 고구려와의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물증 자료입니다. 이'井'字는 그 모양새나 새겨 넣은 위치로 볼 때 문양이 아닌 광개토대왕의 文章으로 추측이 갑니다. 이 토기의 '井'字 가운데에 새긴 또 다른 삼지창 모양의 문양은 세의 발자국 처럼 생겼는데 이는 세발 까마귀의 발을 그려 넣은 것이 아닌지 주목이 됩니다.

작가 최인호씨가 소설 ‘제왕의문’에서 호우총청동합의  '#' 문양을 추적해 발힌 바에 의하면 광개토태왕의 문장이라고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 # 문양은 이 토기 외에도 여러 토기등에서도 많이 발견 됩니다. 

 

(盌底文樣)

 (盌底文樣)

 

 접시(皿)

高句麗5- 6世紀/(右)高3.5cm,口徑17.0cm,底徑13.5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접시(皿)

高句麗5- 6世紀/(上右)高1.8cm,口徑16.7cm,底徑15.5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접시 각종(皿 各種)

高句麗5- 6世紀/(右)高2.0cm,口徑16.0cm,底徑12.0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벽돌 각종(塼 各種)

高句麗5- 6世紀/(下)長26.8cm,口徑17.0cm,幅12.7cm두께5.3cm/ 서울大學校博物館 所藏

 

 

 參考資料 : 서울大학교 發掘遺物圖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