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청와대 탐방》

鄕香 2022. 9. 18. 11:56

어짐이 일어나 겸양이 남다른 젓가락들이 나의 옛 무대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모두 한 두 곳은 아픔을 담고 있는 몸들이지만 그 아픔 중에서도 일곱 젓가락이 모여 담백한 곰탕으로 기력을 보하고 오늘의 목적지 청음 선생의 옛 집터와 청와대 탐방을 위해 정답고 운치 있는 우리의 친환경적이고 기품있는 아름다운 한옥들이 아늑하게 들어서 있는 서촌 골목길로 발걸음 내디뎠습니다 

 

 

백악산을 주산으로 그 아래 자리한 天下第一福地에 터를 잡은 漢陽

 

 

청와대 앞 광장

 

 

칠궁七宮과 궁정동을 거쳐 세검정으로 넘어가는 도로 입구 좌측이 청음 김상헌 선생의 옛 집터이다.

 

 

무궁화동산 한 가운데에 있는 쉼터

 

 

김상헌 선생의 옛 집터는 무궁화동산이 되었고 그 안쪽 소나무 숲에 소개표석과 청음 선생의 詩碑가 새워져 있다. 

 

 

청와대 앞 광장 모퉁이 옛 김상헌의 집터에 세워진 이 詩碑는 선조 때 인물로 도승지, 육조판서, 홍 예문관 대제학, 세자우빈객 등 고위 관직을 두루 거치고 청백리에 선정된 김상헌의 시비이다. 

김상헌은 머저리 같은 임금 인조14년(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 청나라와 화의를 맺고자하니 이에 강력 반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안동 풍산으로 낙향하였다. 그 후 인조18년(1640년) 12월 척화의 주된 인물로 지목되어 청나라 심양으로 압송되는 도중 한양을 지나면서 우국충정으로 읊은 시를 기념하여 그 후손들이 청음 선생의 옛 집터에 세운 것이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 옥살이 6년동안 심문에도 굽히지 않음에 감동한 청나라 조정에서 석방하였다 인조23년(1645년)2월 귀국하였다. 이듬해 3월 조정에서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에 제수하였으나 극구 사양하자 영돈령부사로 고쳐 제수하였다. 품계로는 좌의정이나 영돈령부사나 모두 정1품으로 같으나 실권은 형사법권 및 인사권의 으뜸 수장인 좌의정에 있겠다. 효종3년(1652년)6월25일83세로 양주 석실에서 서거하여 그 이듬해 영의정에 추증되고 文正 시호諡號를 내렸다. 

김상헌 선생이 임종한 곳 석실마을은 지금의 남양주시이다 사액賜額을 하사받아 설립한 석실사원은 대원군 이하응의 사원철폐 정책으로 폐쇄되었고 그 자리에는 대한제국 말 남양주 금곡동에 있던 조말생 묘가 인근에 홍릉이 들어서는 바람에 이장되어 자리하고 그 아래 표석만 세워져 있다. 

 

 

무궁화동산 내 해묵은 槐木 아래 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루고 옆 청와대로 들어섰습니다.

 

 

청와대 광장 앞에서

 

 

'청와대 국민품으로" 기념으로,

 

 

〈청와대 본관 전경〉

본관에는 대통령 집무실,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 정상회담장으로 집현실을 비롯해 충무실, 인왕실, 무궁화실 등 기능별로 다양한 공간과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다. 내부는 한국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가구와 예술품으로 장식되었다. 본관과 두 개의 부속 건물은 총 15만여 개의 전통적인 청기와로 덮여 있는데, 이 청기와는 도자기 굽듯이 1개씩 구워낸 것으로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다. 본관 앞의 잔디마당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각종 야외행사장으로 사용된다.   

 

 

청와대 본관 앞에서 바라본 경복궁 신무문(神武門)

 

 

청와대본관 현관을 들어서기 전 정경이다. 1층 현관에 들어서면 중앙홀 정면에 2단으로 구성된 폭 큰 계단이 마주있다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부속실이  있다,

 

 

현관을 들어서자 바로 좌측으로 들어섭니다.

본관 1층 좌측 복도를 2분하여 질서있게 들어가고 나올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복도 끝 방에는 역대 대통렬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자립과 부강을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윤보선 대통령,

 

 

역대 대통령 초상화

 

 

박근혜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등등 ···

 

 

본관 1층 우측의 건물에 자리한 영부인실

 

 

프란체스카 토너 리(Franziska Donner Lee) 건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 영부인과 박정희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사진 모습만 눈에 차오네.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를 보고 나와 좌측 뒤편복도로 가면 영부인실과 역대 대통령부인들의 사진을 본 후 사람들이 오르는 2단으로 구성된 중앙계단을 이용해 2층 대통령집무실을 관람하게 됩니다 

 

 

2단으로 구성된 계단을 올라가다가 1단에서 돌아서서 담은 정경이다. 

 

 

대통령집무실 외벽 정경이다.

 

 

대통령 집무실

 

 

집무실 남쪽 벽을 바라본 정경이다.

 

 

집무실 남쪽 벽 가운데 부착되어 있는 벽걸이燈이 이채롭다. 천마총에서 발굴된 새 날개 모양 금관 장식(보물 618호)과 역시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관(국보188호)을 조합한 모습으로 본을 떠 만든 조명등이 장식되어 빛을 내고 있으니 輝煌燦爛하다. 이 방의 주인은 저 왕관등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통령 집무실에 왕의 금관 형태로 빛을 내는 조명등을 만들어 장식한 그 意中이 보이는 듯해 어처구니가 없다. 절대군주의 상징 왕관이 빛을 낸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나는 왕이다! 이건가? 

왕과 대통령, 종신의 권력과 단기의 권력, 왕정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이게 달라도 한참 다른데 어떤 생각으로 저런 걸 구상했을까!  나는 이 방을 들어서기 전 적어도 박수근 화백의 그림 한 점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휘황찬란한 왕관등이라니! 이러니 통치가 그 꼴이었고 나라꼴이 이 모양이지 싶다.

 

 

〈참고〉

 새날개 모양 금관장식(보물 618호) /  (신라 5~6세기 / 세로45cm) 경주 천마총 발굴 

 

 

금관 (국보 188호) / (신라 5~6세기 / 높이32.5cm) / 경주 천마총 발굴 

 

 

  새날개 모양 금관장식 / 국보 87호(신라 5~6세기 / 세로40.8cm) 경주 금관총 발굴 

 

 

 금관 / (국보 87호) / (신라 5~6세기 / 높이27.5cm) / 경주 금관총 발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주변 정경.

 

 

2층에서 다시 2단으로 구성된 계단을 내려가서 좌측 안쪽 복도로 들어선다. 

 

 

 1층 좌측 연회장?

모든 방은 문이 잠겨있고 공개된 곳도 소개문이나 이름표찰이 없다.

 

 

복도 벽에 걸린 장식적 효과를 지닌 燈으로 그 형태는 추녀마루 끝머리 밑에 지붕을 받치는 다포식 고율 형태를 취한 것으로 끝에 봉황을 장식하였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방

 

 

용도를 알 수 없는 방

 

 

용도를 알 수 없는 방

 

 

다시 1층 중앙홀 현관 안쪽 앞에서 돌아서서 바라본 정경이다.

부득이 느낌을 쓰자면 통치자의 집무실로 볼 때 궁궐양식으로 지었다. 중후하나 중압감 없고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고 소박함마저 풍긴다. 88올림픽을 유치하고 이 건물을 짓게한 노태우 대통령의 품성이 보인다. 

 

 

〈본관 앞 좌측 드락에 세워진 머릿돌〉 

청와대의 이 터전은 고려조의 이궁으로 조선조 경복궁의 후원으로 천년에 걸친 역사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일제가 우리의 옛 건물들을 헐어내고 지은 총독의 집을 국가원수가 건국 이후 이제까지 써왔다 노태우대통령은 1988년 12월17일 민족문화의 전통을 잇고 드높아진 나라의 위상에 어울리는 청와대를 신축토록 하였다 관저가1990년 10월25일 완공되고 본관이 1991년 9월4일 준공되니 천하에 으뜸가는 복지위에 겨레의 앞날을 무한히 밝혀 줄 청와대가 새로 지어졌다.

 

 

청와대 본관 좌측 대통령 관저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일제 강점기 총독 관저로 건축한 건물이었던 청와대 구 본관(옛 경무대) 터, 소나무 사이 잔디에 경무대 건물 현관지붕위에 올렸던 화강암으로 만든 절병통節甁桶이 놓인 곳이다.

 

 

〈절병통/節甁桶〉

 

 

일제 강점기 총독 관저였던 옛 경무대 모습

 

 

〈천하제일복지〉

 

 

〈향나무〉

아 !

수령이 얼마나 되었을까!

몸통은 벼락으로 갈가리 찢어지고 속은 텅 비었건만

수많은 가지를 지탱하며 푸른 이파리를 무성하게 피웠으니 천년인들 못 살으리 

 

너는 대한민국을 건국하신 國父 이승만대통령각하와 세계에서 제일 가난했던 대한민국을 中興시켜 富强한 나라로 일궈낸 박정희대통령각하의 생전을 보듬고 안식토록 했으리라 

 

 

꽃사과나무와 인수문 현판

 

 

대통령 관저 인수문, 그 모습이 무척 친근하다. 솟을대문은 동향이요 관저는 남향이다. 

 

 

나무는 저마다 수많은 가지로 이리 꺽고 저리 틀어 멋진 춤사위를 고른다. 아름답게 가지마다 붉은 열매를 방울처럼 달고 요염하게 춤을 추는 꽃사과나무.

 

 

동편(인수문)에서 본 관저 앞뜰 정경

생활공간인 본채와 접견 행사 공간인 별채, 그리고 우리나라 전통 양식의 뜰과 사랑채 등으로 구성되었다. 

 

 

관저 본채 앞에서 ..

 

 

서편에서 동편(인수문)을 바라본 정경 조선시대 대갓집 정원과 사랑채를 보는 느낌이 든다.

 

 

서편 건물 남쪽 끝머리에서 바라본 정경

 

 

서편 건물 남측 면 모습

 

 

관저 뒤편 북쪽 면 정경

 

 

오운정으로 가는 산책길 입구에서 바라본 대통령관저,

옛 조선시대 대갓집 소슬대문을 보는 듯하다. 

 

 

산책로 옆 풍성한 감나무, 복성스럽고 펑퍼짐한 시골 아낙을 보는 듯하다.

 

 

감나무 아래 세 송이 백장미 청순하고 우아한 자태에 바라보는 마음 설레인다.

 

 

감나무 아래 붉디 붉은 장미꽃 두 송이 열정을 뚝뚝 떨구니 노구의 가슴조차 뭉클하다.   

 

 

대통령 관저에서 오운정을 거쳐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본관으로 가는 산책로 거리는510m. 

 

 

가파르기는 하지만 길지 않으니 老耉의 몸도 거뜬하다. 

 

 

조만치 아래 사각형의 정자가 보이는데, 오운정?

 

 

〈오운정 / 五雲亭〉

오운정은 경복궁 후원에 휴식을 위해 지은 정자이다 자연의 풍광이 신선세계와 같다하여 '오색구름'을 뜻하는 '오운五雲'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현판 글씨가 구름처럼 흐르는 듯하다.

이 건물이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히 알려 주는 기록은 없으나 고종 4년(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은 이후의 모습을 그린 '북궐도형北闕圖形'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이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위치는 현재보다 아래쪽에 있었으나, 1987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할 때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정자는 정사각형 건물로 지붕은 네 모서리가 한 꼭지점에 모이는 사모지붕 형태로 되어 있다. 주위에 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사방에 문을 내어 자연스럽게 주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자비를 받고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미남불을 향해 가는 길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慶州 方形臺座 石造如來坐像〉

이 불상은 한국 불교조각 중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석굴암 본존불을 계승한 불상으로  9세기경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되었다 자비로운 얼굴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 풍부한 양감 등에서 통일신라 전성기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수려한 조각미로 미남불로 불리기도 했다. 

 

 

머리에는 크고 높은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肉髻가 솟아 있으며, 양 눈썹 사이에는 무량세계를 비추는 부처님의 광명을 백호白毫로 표현했다. 목에는 세 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한데, 이는 번뇌, 업, 고苦 등 윤회의 인과를 의미한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들어낸 편단우견偏袒右肩을 걸처 입었다 

왼손을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손모양 즉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은 석가모니가 모든 번뇌를 끊고 깨달음에 이른 경지를 상징한다. 독특한 연꽃 문양이 세겨진 사각형 대좌는 이 시대의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로 매우 독창적이다. 

 

 

이 불상은 본래 경주에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1913년경 서울 남산의 왜성대倭城臺 총독 관저에 놓였다가 1930년대 총독 관저를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면서 함께 옮겨졌다.

1974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4호로 관리되어 오다가, 2017년 6월부터 역사적 고증과 가치 재평가 등을 통해 2018년 4월 20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승격되었다. 

 

 

다시 청와대 본관으로 가는 나무데크를 따라 간다.

 

 

관저 구역 정문을 나서다

 

 

가을 정취를 풍기는 보라색 쑥부쟁이꽃이 소정원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소정원 내 연못 

 

 

몸통을 이리저리 비틀고 가지는 꺾기고 굽어지고 나무는 언제 봐도 멋진 춤꾼, 아름답고 고마운 매력 덩어리 얼쑤~~ 

 

 

〈침류각 /枕流閣〉 

1920년대의 한옥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이 건물은 중앙에 방과 넓은 마루인 대청을 두고 앞쪽에는 한 단 더 높게 만든 누마루를 설치하여 한옥 건물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건물 기단 앞에는 물을 담아 수련 등을 키우는 돌로 만든 연못, 화재를 대비하여 물을 담아 두는 '두멍'(물을 담아두는 큰 가마나 독)이 배치되어 있다. 

 

 

침류각은 경복궁 후원에서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건물로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 뜻에서 枕流라는 이름이 지어졌으며, 이는 자연과 어우러진 삶을 의미한다. 

 

 

상춘재 입구 계단

 

 

 〈상춘재/常春齋〉

"항상 봄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상춘재는 이 자리에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常春室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1978년 서양식 목조건축로 개축하고 상춘재라 명명했다.  1982년 11월 기존 건물을 헐고 연면적418㎡ 크기의 목조 한옥을 착공하여 1983년4월 완공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궁궐 건축양식 한옥 상춘재는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의 전통 한옥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이다. 

 

 

상춘재 앞에 있는 녹지원은 청와대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120여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으며 어린이날 행사 등이 펼쳐진 공간이다. 

 

 

녹지원에서 가장 큰 나무의 위용

 

 

녹지원 잔디밭 앞에서 바라본 상춘재  

 

 

 

청와대 잔디 헬기장 

 

 

〈춘추관 주변 전경〉 

 

 

춘추관은 국내 외 언론사 기자 300여 명이 출입하는 청와대 프레스센터이다.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고 솟을 대문과 고각을 세워 전통 건축양식을 부각시켰다. 1층에는 기자실과 작은 브리핑 룸, 2층에는 대형 브리핑 룸이 있다. 춘추관이라는 명칭은 고려와 조선시대 時政 기록을 맡아보던 관청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자유언론'의 정신을 담고 있다.   

 

 

춘추문에서 바라본 춘추관과 앞마당  

 

 

춘추문을 나와서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을 거쳐 정든 옛 근무지(국립중앙박물관)였던 국립민속박물관을 지나 안국동으로 가기 위해 다시 청와대 정문으로 갑니다.

 

 

청와대 정문에서 바라본 경복궁 신무문神武門(북문)

 

 

경복궁으로 들어서서 신무문을 통해서 바라본 청와대 모습

 

 

내가 보기에 새로 복원한 다리가 의외로 크다. 취향교를 복원하기 전에는 향원정과 연못 그리고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고즈넉하고 운치가 있는 빼어난 경관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복원했다는 저 흰 다리(醉香橋)가 어설프고 크고 보니 향원정의 고즈넉함과 연못의 아름다움에 조화롭지 못하고 이질감이 느껴진다.

 

 

〈열상진원洌上真源〉

 

 

〈열상진원洌上真源〉

국립박물관 경복궁 시절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가장 아름답고 정취가 있는 향원정 주변을 거닐다 보면

못으로 흘러드는 물결이 미세한 흐름도 보이지 않게 흔들림 없이 흘러 드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선조들은 열상진원 샘물이 향원정 못으로 흘러들 때 물결이 세게 일렁여 수면에 비친 향원정 음영의

고요한 아름다움의 정적을 깰까 봐 열상진원 샘의 물길을 두 번에 걸쳐 직각으로 꺾어 놓았다.

세차게 뻗어나가는 물줄기가 한 번 꺾이고 다시 한 번 더 꺾이는 절차를 거침으로 인하여 세찬 물줄기는

물결 하나 없는 고요한 물줄기로 변한다. 

이런 세밀한 부분까지 흔들림 없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낸 조상들의 슬기로움에 감탄을 감출 수 없다    

못의 물결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물줄기를 두 번 꺾어 흘러들게 한 매우 과학적으로 구성된 열상진원 샘을 생각할 때마다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다. 

경복궁 창건 당시부터 있던 열상진원 샘물은 맑고 차가워서 음료수로 이용하였다. 

(이와 비슷한 治水 방식을 고려시대의 국립숙박시설건물지인 파주 혜음원址에서도 볼 수 있었다.)

 

 

〈열상진원과 전기/洌上真源과 電氣〉

향원정은 건청궁 앞에 있는 연못 가운데에 있는 정자로 특히 고종과 명성황후가 사랑했던 장소이다

이 아름답고 운치 있는 정자 옆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기를 밝혔던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건청궁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자그마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 작은 공간이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를 발전시켰던 장소이다

고종이 전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에 사절단으로 파견되었던 유길준 선생이 돌아와 전해준 서양문명의 발전상과 전기의 경이로움에 대한 설명으로 인해서였다고 한다. 호롱불을 밝히지 않아도 밤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주는 전구의 존재를 알게 된 고종은 직접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 부탁하여 건청궁을 밝힐 수 있도록 전기공사를 맡기게 되었고 에디슨전기회사는 향원지의 물을 끌어다 발전소를 건설함으로서 밤에 호롱불 대신 전구로 대낮처럼 환한 불을 밝힐 수 있었다 향원지 전기는 일본이나 중국보다 2년이나 앞선 것으로 그 의미가 깊다 하겠다.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발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담은 향원정, 향원정을 주축으로 어우러진 연못과 주변 경관을 희고 높은 취향교가 깎아내리고 있다.   

 

 

청와대를 나와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을 통과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에 이르렀을 때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 정경, 한참을 옛 시절에 젖어 회상 할 때 비는 멈추고 다시 발걸음을 종로3가 익선동 골목길로 옮겼다.  

 

 

酒煎거리는 길과 주전이 따로 없다 모두 주점이다. 

 

 

이 거리 이 풍경 둘러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노구의 가슴에 옛 청춘이 꿈틀 거린다. 

불쑥 한자리 끼고 싶다. 하, 마음아 나대지마라!

 

2022년9월 16일 동무들과  - 鄕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