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상시 바위그늘유적(丹陽)

鄕香 2020. 10. 23. 21:11

짝지의 호의와 배려로 유람 삼아 단양 잔도를 찾아 갔던 길에 52년 전 청운시절 답사했던 추억이 서린 인근 상시바위그늘유적을 들려봤다 당시는 산중 골짜기에 있던 유적지가 도로를 개설하며 불쑥 길가로 나앉아 있다. 당시 기억으로는 작은 촌락을 지나 개울을 따라 산자락을 돌아가면 아름다운 절경 속에 잠든 듯이 숨어 있던 바위그늘유적이었는데 맑은 물 흐르던 계곡은 오간데 없고 제일 높게 있던 동굴유적 앞에는 폐타이어가 쌓여 있고 낮은 동굴유적은 구덩이 속에 갇힌 듯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있다. 개발도 좋지만 7천여 년의 귀중한 선조들의 유적을 꼭 이렇게 취급할 수밖에 없었던가? 착잡한 마음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다. 고대 유적은 한번 훼손하면 영원히 복구할 수 없는 것을... 

 

상시 바위그늘유적/上詩岩蔭遺蹟(단양 매포읍 상시리)

상시유적은 3개의 바위 봉우리 밑 그늘에 이루어져 있으며 이 지역을 상시3그늘 유적이라고 한다. 

이 유적은 신석기시대 문화 성격 가운데 동굴유적으로 형성된 문화상을 보여주며 빗살무늬토기와 석기, 뼈도구들이 발굴되었다. 빗살무늬토기의 무늬는 전체적으로 적은 편이며, 口緣(입술부분)과 胴體(몸체) 부분의 일부에 베풀어져 있다. 이러한 무늬의 양상으로 볼 때 신석기 중기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토기의 바탕흙은 민무늬토기들과 구별되지 않는 모래 섞인 찰흙인데, 토기 가운데 검고 단단한 모래 질 토기들이 있는 점, 입술 바로 아래에 짧거나 긴 빗금을 한두 줄 새기고 그 아래를 비워 놓은 점 등은 남해안 지방의 토기들과 비슷한 성격이다. 

석기를 만든 돌감은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재들을 골라 이용하였고, 뼈를 갈아 만든(摩製) 송곳, 창끝, 찌르개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된 조가비 가운데 특히 서식지가 동남해안인 투박조개로 만든 조개가 출토되어 선사시대의 교역관계, 문화전파 등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제 1 · 2 · 3동굴 위 범상치 않은 바위모습,)

 

 

제 3 동굴 위 바위 모습.

 

 

제1 바위그늘동굴유적. 바로 옆에 도로를 내고 흙으로 지대를 높여 건축물이 들어섰다. 동굴 앞에 폐타이어와 각종 물건들이 너절하다. 

 

 

제 2 · 3 동굴유적 바위 상충부 모습.

 

 

제2 바위그늘동굴유적,

 

 

제 2 · 3 바위그늘동굴유적,

 

 

제 3 바위그늘동굴유적. 

 

 

제 2 바위그늘동굴유적 입구

 

 

제2 동굴유적 안쪽 모습. 

 

2020년10월12일 고마운 伴之와 함께,  -鄕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