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에 그냥

『(라이딩)고기리 이종무 장군 묘소 · 막국수집』

鄕香 2020. 6. 23. 09:56

어느 날 친구가 용인 고기리막국수집을 다녀왔다면서 인근에 太宗 · 世宗 년간의 명장이요 대마도 정벌의 삼군체찰사 이종무 장군의 묘소가 있다기에 마음이 動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자전거로 충분히 갈만한 곳이기에 강변 자전거도로를 거쳐 탄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탄천2교 아래 탄천과 성복천이 합수되는 곳에 도착해보니 고기리 낙생저수지로 이어지는 하천이 성복천이 아니고 지나온 구미교에서 탄천과 합수되는 동막천으로 들어서야 하는 것을 잘못알고 성복천합수지까지 온 것이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구미교에서 바로 동막천으로 들어서서 동막천을 우측에 끼고 가다 낙생교 밑을 통과하여 동막교를 지나자 자전거도로는 끝나고 하천 위 지방도로로 이어진다 위험은 하지만 어쩔수 없이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낙생저수지를 지나서 고기리막국수집에 도착하였다. 스마트폰에 전자번호표를 받으려고 보니 내가 받을 순번이 138번, 막구수 한 그릇 먹으려면 족히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단다. 이걸 언제 기다리나 싶어 번호도 받지 않고 이종무 장군 묘소로 발길을 돌렸다 장군의 사당 옆 푯말을 보니 뒷산으로 이어진 길을 가르키고 있다. 사당 뒤 거목의 뽕나무와 그 보다 더 큰 벚나무 옆에 장군의 묘지로 오르는 오솔길이 고요한 정적속에 열려 있다. 장군 묘소를 둘러보고 막국수집을 지나며 쳐다보니 위아래 주차장 모두 滿車요 사람들은 바글거리는 것에 만정이 떨어져 그대로 통과 1.8km 떨어진 일호미역에서 맛있고 영양가 높은 점심을 먹고 오던 길을 되밟아 귀가한 하루의 여정이다.

 

 

 출발점 왕숙교

 

집으로부터 400m 지점이다.

 

 

 팔당댐으로부터 15km지점인 좌측 다리방향은 덕소로 가는 길이자  4대강 국토종주 남한강길이다.

 

 

워커힐 아래 수도국 취수장 아래를 가고 있다.

 

 

 광진교를 건너가기 전 광나루다리. 

 

 

광진교(광나루다리)

 

 

광나루다리 중간에서 바라본 상류 풍경.

좌측은 고구려 유적의 보고 아차산, 우측은 선사시대의 빗살무늬토기의 보고 미사리

 

 

 천호동 한강시민공원.

 

 

  잠실교를 바라보며..

 

 

탄천은 한강으로 합수되고 나는 탄천으로 들어 섰다. 

 

 

양제천과 탄천의 합수머리.

두 팀의 라이너들이 한 팀은 양제천으로 이미 들어섰고 다른 한 팀은 마악 탄천으로 들어서고 있으므로 인하여 갈림길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현장감을 얻기 위해 길가 풀섶에 자전거를 눕혀놓고 20분을 기다려 얻은 사진이다.

 

 

 하천가 초목은 숲을 이루고 시설도 잘 정비되었건만, 정작 흐르는 물은 하수처리가 안 된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물빛은 거무죽죽하고 시궁창 썩은 냄새가 불쾌감을 준다.

   

 

분당선 · 3호선, 수서역 방향 날머리

 

 

3호선 · 8호선 가락시장역 갈림길

 

 

 성남비행장 옆 풍경

 

 

 내 어려서 사송교는 모란에서 말죽거리와 판교로 이어지는 탄천(숯내)의 유일한 큰 다리였다.

 

 

내가 태어난 고장이 나도 모를 고장이 되었구나!

  

 

분당신도시가 생기면서 청량한 물소리 아름답고 여울의 반짝임 빛나던 숯내에 생동하던 구구락지, 기름종개, 버들치, 수많은 물고기 다 어디 갔을까! 지금 보니 생명 없는 玄川에 다리만 수 없이 생겼네.

 

 

 잘 나가야할 중년들이 어쩌다 시름 앓이가 되었을가..

 

 

 여긴 그래도 내 어려서 미역 감고 물놀이 하던 옛 정경이 비칠듯하여 반가움이 울컥 솟는다.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는 남한산성으로부터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물이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아름다운 동네였지요 내 어머니 태어나 자라시고 또한 내가 태어난 외가입니다. 조선조 명재상 한음 이덕형의 후손 광주 이씨 문중의 자손들이 옹기종기 오손도손 모여 살던 살가운 집성촌이었지요.

 

 

 여기서 좌측 동막천으로 들어서야했는데 탄천2교에서 갈라지는 성복천으로 들어서야 하는 줄 알고 그냥 지나쳤었지요.

 

 

이곳은 탄천과 성북천이 합수되는 곳인데.. 내가 가야할 고기리는 오리교에서 갈라지는 동막천으로 들어서야했는데 그만 지나쳤으니 U-Turn해서 오리교로 되돌아갑니다.

 

 

구미교 우측 교각 사이로 탄천과 동막천이 합수되는 곳입니다. 고기리는 우측 동막천으로 들어서야 합니다.

 

 

구미교에서 동막천으로 들어서서 첫 번째로 맞이하는 낙생교

 

 

두 번째로 맞이한 이 다리(동막교)를 끝으로 자전거도로는 지방도로로 이어주고 사라집니다.   

 

 

인도도 없는 차도로 가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해발150m의 긴 언덕을 오릅니다. 좌측 봉우리 너머로 낙생저수지가 있습니다.

 

 

 해발 150m 고개를 넘어서자 보이는 낙생저수지의 풍경

 

 

 번잡스런 고기리 4거리 풍경

  

 

길은 좁고 인도조차 끊어지고..

 

 

 퇴역 비행기를 건물로 사용하고 있네요.

 

 

 다리 건너자마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에라 모르겠다 좌측으로 갑니다. 초행길 이만하면 잘 찾아가는 거죠?

 

 

왠지 몰라도 이 집 빵이 맛있을 것 같아 집으로 갈 때 들렸다간다는 것이 좁은 내리막 커브 길에서 앞만 보고 가다가 지나친 후 한참 지나서야 생각이 나서 그 맛을 못보고 온 것이 지금도 아쉽다.

 

 

제빵소를 뒤로 남기고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이사가기 전의 고기리막국수집은 제2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00m 더 올라가면 넓은 주차장이 딸린 새로 지은 고기리막국수집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 이사해서 영업 중인 고기리막국수 건물입구의 정경입니다. 안팎으로 사람들이 벅적거립니다.  코로나도 막지 못하는 味覺인가!

 

 

87팀이 대기 중이다. 내가 번호를 다운 받으려고 보니 187번, 이 복잡한 곳에서 전염될 수도 있을 코로나, 차라리 앓느니 죽지 맛이 어떤지 모르지만 난 막국수를 접었다.

 

 

막국수 집 뒷길로 300m 떨어진 산자락에 새로 건립한 장천군 이종무 장군 사당.

 

 

사당 뒤 묘로 오르는 오솔길 앞에 엄청난 크기의 뽕나무

 

 

 뽕나무 그늘 밑 반석에서 잠시 인증 샷 

 

 

 산길은 언제나 상큼하고 호젓하지 -

   

 

이종무 장군 묘로 오르는 돌계단   

 

 長川君 李從茂 將軍의 이력은 안내판으로 갈음합니다.

   

 

 장군 묘의 정경

   

 

다 아시겠습니다만 후대에 세운 이 비석의 前文은 다음과 같습니다.

戴 佐命功臣 行 輔國崇祿大夫 議政府左贊成 三軍都軆察使 長川府院君 對馬島征伐東征元帥 長川 李公 從茂 . 配 貞敬夫人 平壤 趙氏 之墓. 

증 추충구의익대 좌명공신 행 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찬성 삼군도체찰사 장천부원군 대마도정벌동정원수 장천 이공 종무 . 배 정경부인 평양 조씨 지묘. 여기서 贈은 사후 임금이 내린 칭호 또는 직첩이고, 行은 생전에 지낸 품계와 직위입니다. 

 

 

 현재 묘지는 3단으로 꾸며져 있는데 본래는 2단이었던 것을 혼유석을 새로 갖출 때 혼유석 위치에 맞춰서 1단을 더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장군의 묘는 자연석으로 2단을 올린 그 위에 사각형 돌을 이용해 전면과 좌우면을 석곽을 둔 正方形으로 뒤는 좌청룡 우백호를 의미하는 둔덕을 둔 고려 말 조선 초의 묘제형식이다. 혼유석과 그 앞에 놓은 향로석은 1975년11월9일 후손들이 마련한 것으로 혼유석에 각자되어 있다.  

 

 

 묘 정면 앞에 세워진 본래의 비는 풍화로 비문의 글자는 간간이 몇 자만 겨우 확인될 뿐 알아볼 수 없다.

 

 

  혼유석을 중심으로 직사각형 돌로 단을 올린 것은 혼유석(1975년11월9일)을 놓을 때 함께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

  

 

 좌측면

 

장군의 묘 앞에 장명등이 세워져 있던 것인데 火窓과 지붕돌(蓋石)은 유실되고 사각기둥 받침돌만 남아 있다.  

장명등은 정1품 이상의 재상의 묘 앞에만 세울 수 있는 석물로서 고인의 덕망이 널리 끼친다는 것에 그 의미를 가진다.

 

 

이 혼유석 우측면에는 1975년11월9일 제17대 孫들이 마련 한 것이라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본래의 혼유석과 향로석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인석은 관모와 옷 주름 등을 미루어 보건데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묘 좌측에 산신제를 올리는 상석.

 

 

총체적으로 볼 때 장군의 묘제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흐름을 볼 수 있겠다.

  

 

새로 건축된 장군의 사당 뒤 큰 뽕나무 아래서 바라본 풍경.

  

 

일호미역 본점의 대합미역국 반상의 매끄러운 자태이다. 막국수는 막국수 나름의 맛이 있겠지만, 미역국반상을 식사한 후 이 음식을 선택한 것이 오늘 제일 잘 한 일이었다.

 

 

돌마교 그 이름에 눈이 머문다 잠시 교각 밑에 자전거를 눕히고 벤치에  앉아 옛 생각에 잠긴다. 돌마는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의 옛 지명이다. 근처 돌마면 하대원리 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하대원동396번지는 나의 외갓댁이자 내 출생지이다. 어려서 신당동에 살던 나는 방학 때면 외가에서 지냈는데 수많은 편린처럼 반짝이는 수정같은 여울에서 꺽지, 구구락지, 기름종개, 불거지, 빠가사리, 피라미, 버들치, 매기, 뱀장어 등 그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고기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던 곳이다. 그리도 맑던 시내가 병들어 악취가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장소를 잘 산택해야 하느니 오염된 이 하천에서 무엇인들 먹을 수 있겠느냐? 먹이는 고사하고 병들기 십상이다. 어여 휴전선 맑은 냇가로 가거라!

 

 물속을 들여다보니 너희가 먹을 수 없는 크기의 잉어만 어슬렁거리고 네 모습을 보니 시름만 가득하구나..!

 

 

사송교는 성남시가 개발되기 전 광주에서 말죽거리와 수원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다리였다.

 

 

 탄천 서쪽 수풀에 가려져 있는 담은 성남비행장(서울공항)이다.

 

 

 탄천과 비행장을 좌측에 끼고 한강으로 이어지는 자전거도로의 정경

 

 

 수서역 인근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앞을 가다가 한강 건너 뚝섬 쪽을 바라보니 강물위에 울긋불긋 윈드서핑이 수를 놓았다 그 정경이 보기에 좋아 잠시 멈추었는데 거리메타에 100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구리 왕숙천에서 출발하여 고기리 이종무 장군 묘소를  돌아오는데 이곳이 100km이다. 구리 왕숙천까지 120km는 족히 되겠다.

 

 

행글라이드를 이용해 윈드서핑을 즐기는 서퍼의 모습이 보기에 멋있다.

 

 

강남 강변자전거도로에서 강북 뚝섬을 바라본 정경이다.

  

 

뚝섬 쪽 가까이에 윈드서핑을 행글라이드를 활용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저건 정말 어렵고 힘들 텐데..

 

 

행글라이드를 이용해 윈드서핑을 즐기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어 잠실대교를 건너서 뚝섬으로 왔다.

 

 

뚝섬에서 바라보이는 88올림픽주경기장

 

 

2020년 6월20일 - 鄕香 -